태극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국기. 흰색 배경 중앙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태극을, 네 귀퉁이에는 검은색의 사괘[8] 를 그린 것이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1883년 1월 27일(음력) 조선의 정식 국기로 선포되었다. 대한제국이 1910년 국권을 상실한 이후 일본 정부에 의해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기능하였으며, 1945년 광복과 함께 자유롭게 게양할 수 있게 되었다.[9] 북한 역시 광복 이후부터 1948년에 인공기가 제정되기 전까지 2년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북한의 입장에서) 적인 대한민국의 상징이기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10]
2. 대한민국국기법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기에 대한 인식의 제고 및 존엄성의 수호를 통하여 애국정신을 고양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국기에 관한 사항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다.
'''제4조(대한민국의 국기)''' 대한민국의 국기(이하 "국기"라 한다)는 태극기(太極旗)로 한다.
'''제5조(국기의 존엄성 등)''' ① 모든 국민은 국기를 존중하고 애호하여야 한다.
②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국기의 제작·게양 및 관리 등에 있어서 국기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여야 한다.
군사 정권 시절에는 국기 관리를 몹시 엄격하게 하여 국기가 더러워진 경우 빨지 않고 소각해야 한다는 관습이 생기기도 했다.[11] 하지만 현행법상 올이 풀리지 않을 정도라면 세탁도 가능하니 되도록 소각은 자제하자. 다만, 국기가 세탁으로 원상복구되지 못할 정도로 훼손되었다면 지체 없이 소각 등 적절한 방법으로 폐기하여야 한다.[12] 만약에 도저히 재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국기가 엄청 더러워지거나 많이 찢어지거나 한다면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 시청에 가면 국기 수거함이 비치되어 있으니 되도록이면 그 곳에 버리자.'''제10조(국기의 관리 등)''' ① 국기를 게양하는 기관 또는 단체의 장 등은 국기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국기·깃봉 및 깃대 등을 관리하여야 한다.
②여러 사람이 모이는 집회 등 각종 행사에서 수기(手旗)를 사용하는 경우 행사를 주최하는 자는 국기가 함부로 버려지지 아니하도록 관리하여야 한다.
국기를 영구(靈柩)에 덮을 때에는 국기가 땅에 닿지 않도록 하고 영구와 함께 매장하여서는 아니 된다(같은 조 제4항 전문). 따라서, 관을 매장할 때에도 관을 감쌌던 국기는 수거하고 관만 매장한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때 태극기를 관 위에 올려놓고 매장을 진행하던 중 행정안전부가 "국기법 위반이다"라고 지적함에 따라 다시 꺼낸 일도 있다. 관련기사 같은 이유로 화장으로 장례를 치르고자 할 때에는 화장로에 들어가기 전 태극기가 제거된 뒤 들어가며, 이렇게 제거된 태극기는 고인이 화장로에 들어가기 전 유족에게 전달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과 채명신 장군의 장례식 영상의 예시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제11조 제1항'''(국기 또는 국기문양의 활용 및 제한) 국기 또는 국기문양(태극과 4괘)은 각종 물품과 의식(儀式)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 깃면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등 훼손하여 사용하는 경우
* 국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방법으로 활용하는 경우
3. 범죄 행위
3.1. 국기모독죄
대한민국 형법 제105조는 국기·국장모독죄(國旗國章冒瀆罪)라 하여,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제거 또는 오욕하는 행위라는 매우 까다로운 조건이 붙기 때문에, 세간에서 가끔 화제가 되는 국기모독 관련 뉴스가 실제로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는 이야기는 듣기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형법 105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형법 제105조(국기, 국장의 모독)'''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손상, 제거 또는 오욕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2. 국기비방죄
한편, 국기를 욕보이는 것에는 단순히 물리적 행위뿐만이 아니라 언어적・무형적 행위도 포함되어 처벌 대상이 된다. 대한민국 형법 제106조는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비방한 자에게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형을 선고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때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이 법의 경우 상술한 국기모독죄보다도 대중적 인식도가 떨어져, '태극기를 욕하면 감옥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공권력도 마찬가지여서, 실제로도 이 죄가 적용된 경우를 찾기가 어렵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등지에는 태극기를 모욕하는 내용의 게시물이 이따금 올라오나, 법적인 처벌은 미미하다.'''형법 제106조(국기, 국장의 비방)''' 전조의 목적으로 국기 또는 국장을 비방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4. 역사
4.1. 태극의 역사
4.2. 태극기의 역사
태극기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인식에서 역관 '''이응준'''(李應浚, 1832 - ?)이 최초로 사용하였다. 본래 조선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기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국기 제정 문제를 두고 논의하였으나 계속하여 도안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1882년 5월 14일,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는 5월 22일 있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을 앞두고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통리기무아문의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 사용례인 속칭 '이응준 태극기'#이다. 2004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1882년 7월 19일 미국 해군부(Navy Department) 항해국이 제작한 서류 중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지금의 태극기에서 4괘의 좌·우가 바뀌고 태극 모양이 약간 다를 뿐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한 태극기 도안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나타났으며, 2018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앞서 발견된 태극기보다 두 달 빠른, 조약 당시(1882년 5월)의 도안도 발견되었다.#또 배마다 반드시 국기를 달아야 하는데 '''국기는 지극히 귀중한 물건'''으로서 갑국(甲國)의 배가 을국(乙國)의 국기를 도용(盜用)한 경우 해적(海賊)과 동일하게 보아 을국의 군함이 잡아 징벌할 것입니다.
고종실록 13권, 고종 13년(1876년) 2월 3일 을축 1번째기사 중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의 수록(手錄) 발췌
사실 태극기를 누가 먼저 고안했느냐 하는 논쟁은 1880년대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논쟁이다. 1882년 10월 2일자 도쿄 일간신문인 《시사신보》(時事新報) 제179호에 따르면 당시 이홍장에 의해 조선에 파견되어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도왔던 마건충(馬建忠; ''마젠중''[14][15] )이 약 한 달 전 '청나라 국기'를 모방한 국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조선의 종주국이었던 청나라는 당시 청 황실의 깃발로 사용하던 삼각형 황룡기를 변형하여 "조선에 속국의 모습을 보이라"고 제안하였는데, 말이 제안이지 사실상 명령이었다. 이 과정에서 황색 바탕을 백색 바탕으로 바꾸고 청색 용은 붉은 용으로 바꾸며 청색 구름도 추가하여 백저청운홍룡기를 만들어 쓰라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다루었다. 동양의 오방색에서 황색은 중앙을, 청색은 동쪽을 의미한다. 또한 청룡은 동쪽을 관장하는 신수이니, 청나라가 황룡기를 사용하고 조선이 청룡기를 사용하라는 의미는 곧 변방에 있는 신하의 예를 갖추라는 말을 의미했다. 또한 조선의 용은 격식을 낮추어 발톱이 하나 적게 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청나라의 이런 일방적인 명령을 분개해하여 거부하였으며, 태극기를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내렸다."지금까지 조선에 국기가 없었는데 이번에 청국에서 온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를 청국의 국기를 모방하여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서 쓰도록 한데 대하여 고종이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여서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령을 하교하였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마건충이 '청국의 국기를 모방한 것'뿐만 아니라 '태극 팔괘도' 또한 제안했으며, 따라서 태극기의 도안자는 마건충이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는 《청국문답(淸國問答)》에 수록된 마건충과 김홍집 간의 필담이 제시된다.
여기서 역사적 해석이 갈리는데, 위 기록들을 모두 사실로 전제하고 절충하자면 《청국문답》에서 '태극팔괘도'를 언급한 것은 4월 11일, 슈펠트의 요청 및 국기 제작일이 5월 14일로 알려져 있는 만큼, 발상 자체는 마건충이 제안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오늘날 중국 학계에서는 이러한 논리를 채택해 "태극기의 제작자는 중국의 외교관이다."라고 못박고 내부적으로 그것을 교육・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16] . 그러나 마건충이 제안한 태극기는 조선이 만든 도안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17] 마건충의 도안은 결과적으로는 반영되지 못했다. 또한 《청국문답》은 조선왕조실록처럼 제3자가 기록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김홍집이 개인적으로 기록한 것이라 교차검증이 불가능하여 사실 판단 여부가 어렵다."1882년 4월 11일 마건충은 김홍집과의 회담에서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조선의 국기를 흰 바탕에 태극 그림을 사용하고 주위에는 팔괘를 그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울러 고종이 직접 태극기 제작에 관여한 구체적인 기록도 박영효의 일기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고종의 개인적인 식견으로 없던 도안을 창조해낸 것은 아니다. 태극 자체는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그려진 것이 6세기 백제 때일만큼 오래 된 문양이었으며, 유교 이전에도 아시아 각국에서 영험한 문장으로 쓰이다가 송나라 대 유학자인 주돈이가 태극도를 만들어 주희 이후 성리학적 이론의 바탕으로 흡수되었다.
조선 왕실의 상징이었던 어기 역시 태극도에서 유래한 기본적인 요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임진왜란 이전부터 사용했던 조선군의 좌독기도 테두리에 둘러싸인 낙서(洛書)[18] 를 제외하고 보면 어기와 모양이 똑같다. 좌독기는 명나라에서 도입된 것으로 조선에서 독자적으로 창안한 디자인은 아니나,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팔괘로 둘러싸인 태극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모양이었을 것이다.
이후 박영효가 1882년 9월 25일 일본에 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고, 일본 기선인 메이지마루 호를 타고 건너가면서 공식 국기로 사용하였다[19] . 박영효는 저서인 《사화기략》에서 "메이지마루 호 선장이었던 영국인 제임스가 8괘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대각선의 4괘만 남기라고 건의하여 받아들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에도 국기에 8괘를 넣을지 4괘를 넣을지 확정되지 않았으나 고종이 태극팔괘도 대신 태극기의 원안을 고수하라고 부탁하였고, 배 내부에서 서양인들과 논의하여 그 신뢰성을 강화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일본에 도착한 박영효 일행은 숙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한다. 이 때의 4괘 태극기 역시 일본 신문에 실린 그림과 박영효가 귀국한 뒤 고종에게 올린 서한에서의 내용이 다르다. 태극기의 정확한 도안이 확정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듬해인 1883년 1월 27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청으로 반포가 시작되었으며, 3월 6일 고종은 어명을 내려 태극기를 조선국기로서 정식 공포한다. # 그러나 태극기의 도안은 이후에도 계속 바뀌었고 1897년 독립문에 태극기를 새기고 나서도 다시 다른 도안으로 제작된 태극기가 등장하는 등 민・관 모두에서 세부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에서 아뢰기를, "국기(國旗)를 이미 제정하였으니 팔도(八道)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다 알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하였다.
고종실록 20권, 고종 20년(1883년) 1월 27일 기유 1번째 기사
그러다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망하게 되자 당연히 국기로서의 태극기도 없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태극기는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어서 3.1 운동 때 휘날렸다. 일제는 태극기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보아 제조·소지를 금하였다. 그 결과 소용돌이치는 중앙의 태극과 대각선의 팔괘라는 기본 개념 외에는 고정된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3.1운동 시기 들고 나온 태극기의 도안도, 의병 전쟁 시기 사용된 태극기의 도안도, 임시정부가 사용한 태극기의 도안도 모두 달랐다.
1920년대 독립군들이 사용하던 태극기를 바탕으로 한 군기인 '진군기'. 태극기의 옆과 아래에 황색, 적색, 녹색 천을 덧대어서 군기로 사용하였다. 그 당시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은 청산리 전투 같은 무장독립투쟁의 최전선에서도 태극기를 휘날렸다.
대한민국 탄생의 시발점이 된 3.1 운동에서 탑골공원에 모인 시민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이 민족의 공통된 상징으로서 태극기를 흔들었다.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태극기를 국기로 채택했으며, 일제로부터 해방된 8.15 광복이 이루어지자 사람들은 태극기를 들고 감격을 표출했다. 1948년 7월 1일 제헌 국회는 대한민국 국기로 태극기를 채택하였다(재석 188, 찬성 139, 반대 4). 다만 헌법 2조에 넣을지 4조 후단에 넣을지 설왕설래하다 결의만 하되 넣지 않기로 했다.[22][23]
하지만 태극기를 국기로 결정했을 뿐, 태극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안인지는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1949년 1월 이승만은 총무처장에게 국기 도안을 확정지을 것을 명한다.대한민국 국기제정에 관한 건 그렇게 하여 여러 유력 인사들을 불러 김일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후보가 된 것은 총 4가지였다. #
1949년 2월 7일, 제1차 전체 회의에서 확정된 것은 당시 정부의 주요인사들이 망라된 '우리국기 보양회'[24] 가 제안한 태극기였다. 그런데 2월 28일, 2차 전체 회의에서 최남선[25] 과 법조계 인사들은 독립문 태극기를 5번째 후보로 제출하면서 독립문 태극기야말로 진정한 국기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갑론을박 끝에 다시 독립문 안으로 번복되어서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후 열린 제3차 전체 회의(3월 25일)에서 독립문 태극기의 4괘가 역리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 나와 다시 '우리국기 보양회' 안을 채택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투표 결과는 찬성 28[26] , 반대 11[27] , 기권 1(이병렬)[28] 였다. 광복과 함께 새로 국기를 만들자는 주장을 한 인사(노응도[29] , 권혁채[30] )도 있었으나 '''사상이 불손하다'''는 이유로 바로 배척되었다. 이 회의 결과를 토대로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고시가 공포되었다.
이때 양음의 배색을 단순히 빨강색(진홍색)과 파랑색(아청색)으로 규정했는데 90년대 배색 논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CIE 1931이나 Munsell 색체계는 이 당시에도 있었지만, 색깔까지 구체적으로 표준화한다는 개념이 없었던 듯하다.
4.3.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태극기 변천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해 서울이 함락당한 뒤, 인천 상륙작전으로 서울을 수복했을 때 중앙청 청사에도 태극기를 게양하여 서울이 국군의 보호안에 들어왔음을 표시했다.[38]
1960년 4.19 혁명,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폭력 진압으로 사망한 민주화 열사들의 시신을 태극기로 덮었고, 1987년 6월 항쟁에서도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었다. 당시 서면 중앙대로에서 촬영된 위 사진 "아! 나의 조국"은 6월 항쟁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유명하다.
5. 국기 달기[39]
국기 게양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행정안전부의 관련 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1. 태극기 구매하기
[image]
태극기는 시군구청 또는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태극기와 깃대, 보관함까지 합쳐 8,000원 정도이며 카드결제가 안되고 현금결제만 가능하니 참고. 또는 인터넷에서 우체국 쇼핑이나 태극기 판매업체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5.2. 국기 다는 날
현재 대한민국 법에서는 3월 1일(삼일절), ''6월 6일(현충일)'', 7월 17일(제헌절), 8월 15일(광복절), 10월 1일(국군의 날), 10월 3일(개천절), 10월 9일(한글날) 국기를 달도록 되어 있다.[40] 그 외에 국가장 기간이나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한 날에도 달도록 되어 있다.[41] (원래는 늘 달아 놓는 것이다.)
경축일 또는 평일에는 깃봉과 깃면의 사이를 떼지 아니하고 단다.[42] 그러나, 현충일과 국가장 기간 등 조의를 표하는 날(위에서 ''이탤릭체''로 표시한 날)에는 태극기 하나가 들어갈 공간만큼을 내려 다는 조기(弔旗)를 달도록 되어있다.[43] 과거에는 제헌절, 국군의 날 등 쉬지 않는 국경일 및 기념일에만 게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사람들이 국가주의 및 공동체주의적 사고를 과거보다 회의하는 분위기가 생기자 다는 것 자체가 드물어졌다.
1980년대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까지만 해도 오후 5시가 되면 도심이나 농촌을 가리지 않고 관공서 등에서 국기를 내리며 1분간 애국가를 울리면, 길 가던 시민들이나 농사짓는 농민들이 움직이지 않은 채로 가슴에 손을 얹는 의례가 있었다. 이후로는 폐지되어 하지 않는다. 시민의식이 현대화되어 전체주의적인 행동이라는 시각이 퍼져 이렇게 되었다.(물론 군부대에서는 유지 중이다.)[44] 비슷한 사례로 국민의례도 있다.[45]
과거에는 태극기에 물 한 방울, 티끌 한 점 묻히지 못하도록 우천 시 올리는 것을 금지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관련법이 개정되어 달고 싶으면 1년 365일 달 수 있다.[46] 하지만, 비나 눈 등은 상관이 없으나, 국기가 찢어질 염려가 있을 정도로 심한 악천후라면 지금도 달지 못하도록 한다.[47] 아파트 고층에서는 국기달기에 많이 유의해야 한다. 가끔 강풍에 날려서 발코니 난간에 깃봉을 꽂아 단 태극기가 깃봉 채로 빠져 떨어져 차량을 파손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가벼운 플라스틱이라도 고층에서 떨어지면 차 유리창 정도는 우습게 부순다.[48]
원래는 1월 1일 신정도 국기 게양일이었으나, 2007년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면서 구법인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과 함께 폐지됐다.##
5.3. 공공기관 등에서의 국기 달기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청사 등에는 국기를 연중 계속 달아야만 하며[49] , 다음 각 호의 장소에는 가능한 한 연중 국기를 달아야만 한다.[50]
위와 같이 청사 등지에 국기를 연중 계속 다는 경우 야간에는 적절한 조명을 하여야 한다.[51] 그러나, 각급 학교 및 군부대의 주된 게양대에는 국기를 매일 낮에만 단다.[52] 학교 등에선 직원들이 그냥 적당한 때에 올리고 내리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군부대에선 정해진 시각에 각 군 및 부대별로 정해진 복장[53] 을 착용한 병 2명을 각각 국기수와 호위병으로 동원해 애국가를 배경으로 올리고 내린다.
6. 국기에 대한 경례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 거의 모든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 가장 처음 하는 일이 모든 참석자가 태극기 방향으로 몸을 돌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는 것이다. 애국가 제창은 생략하는 경우가 자주 있으나 국기에 대한 맹세를 생략하는 일[54] 은 거의 없다. 국기에 대한 경례시 태극기를 직접 바라보아야 하며, 일반 국민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얹고, 군인이나 경찰관은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되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총을 들었다면 집총경례인 받들어 총을 하되 역시 경례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아나키스트와 세계 시민주의자들은 사상적인 이유로 이를 거부한다. 물론 아기 때 이민을 가서 어린 나이에 시민권을 땄다면 평생 해 볼 일이 없다.
국기에 대한 맹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7년 7월 27일에 개정하여 지금에 이른다.
(변경 전)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스런' 이라는 표현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틀린 표현이기 때문에 올바른 ㅂ 불규칙[55] 활용형 표준어인 '~스러운'으로 개정하였으며, '''좀 더 현실적인 내용'''으로 내용의 일부를 개정하였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한다"라는 내용이 제국주의, 일제강점기, 군사독재의 잔재가 아니냐는 논란에 의해 결국엔 수정되었으며,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라는 문구를 새로 만들어 대한민국이 자유롭고 정의롭지 않다면 충성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올바른 민주주의적인 사상을 더욱 강조하였다. 민주주의의 최선봉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상기한 충성의 맹세를 통해 국기와 국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 여전히 행해지긴 하지만 미국은 의외로 굉장히 앞뒤가 안맞는 나라라서 국가주의적인 사상이 강한 나라다.[56] '''일단 판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한 자에 대한 학교 등의 징계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변경 후)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진보 정당들[57] 을 비롯해 진보, 노동단체 대부분은 각종 행사 때 국민의례,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을 일체 거부하고, 대신 '민중의례'라 하여 노동 열사에 대한 추모 묵념과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대체한다. 2004년 첫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입 이후, 대한민국 국회에 등원하는 공식 정당 의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을 거부함을 허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요즘에는 진보 정당 인사들도 당내 행사가 아닌 외부 행사에서는 국민의례를 할 때는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도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경례를 하지 않는다.
참고로 깃발로 행해지는 제식 중 받들어 기를 행할 때, 국기인 태극기는 그 어디에도 굽히지 않는다. 나라 자체를 상징하는 태극기가 어딘가에 굽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7. 도안법
가로 세로 비율이 3:2다. A4용지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58] 태극과 사괘[59] 가 그려진 이 도안은 동양사상에서의 우주의 원리가 담겨 있다. 즉, 동양 철학을 집대성한 국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의 태극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것이며 좌측 상단의 건괘는 하늘, 우측 하단의 곤괘는 땅, 우측 상단의 감괘는 물, 좌측 하단의 이괘는 불을 상징한다. 세계에 몇 안 되는 우주의 원리를 담겠다는 의도를 나타내는 국기.[60][61] 흰색, 검은색, 빨간색, 파란색이 들어간 국기에 깃발의 봉의 노란색까지 넣어 오방색이 모두 들어갔다고도 한다.[62]
도안이 비교적 복잡한 관계로 외국인에게 그리기 몹시 어려운 국기로 꼽히나, 구불구불한 유기적 형태의 그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으로 이루어진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자와 컴퍼스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충분히 그릴 수 있다.[63] 사실 전세계의 문장, 상징 등을 디자인적으로 놓고 보면 태극기는 그다지 복잡하거나 어려운 도안도 아니다. 다만 국기들이 워낙 이색기니 삼색기니 십자가기니 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워 보일 뿐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들 색상기가 단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64] 앞에서 말했듯이 태극기는 기하학적 형상이기 때문에 그라데이션까지 적용되어 있는 벨리즈 국기, 부탄(용)[65] , 멕시코 국기(독수리가 뱀을 물고 선인장에 앉아있는 모습), 과테말라 국기(과테말라의 국조(國鳥)로 지정된 새인 케찰(케트살)[66] 및 과테말라 독립 문서), 투르크메니스탄 국기(설명이 힘든 '''기하학적 문양'''), 바티칸 시국(교황관과 성 베드로의 천국 열쇠), 벨라루스 국기 등 '그림 그리기' 류 국기에 견주면 양반이다. 그래서 이런 나라들은 대내적으로는 아예 문양이 없는 국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비교적 그리기 까다롭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태극 문양이 주는 동양적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라고 한다. 외국인에게 태극기 의미 설명하기 태극과 건곤감리가 들어간 지극히 도교스러운 디자인 때문에, 중국에서는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의 조상들 중에서 도사가 많았거나, 혹은 조선이나 대한민국 자체가 도사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었나 생각하면서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이걸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67]
태극기를 그릴 때 헷갈리는 요소는 사괘, 태극 문양의 경계선과 위아래의 색 등이 있다. 쉽게 외워서 그리는 팁 중 하나는 사괘와 태극 문양의 경우에는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후, S를 쓰는 순서대로 3(건괘), 4(이괘), 5(감괘), 6(곤괘)를 그리면 된다. 태극 문양의 경계선 역시 S를 왼쪽으로 90도 돌린 모양처럼 왼쪽이 아래로 볼록하고, 오른쪽이 위로 볼록하기 때문에 같이 외우면 된다. 소문자 '''n'''을 쓰는 순서로 줄 수가 늘어난다고 외워도 좋다. 또는 '''책 읽는 순서'''로 하나씩 외워도 된다. 물론 괘의 순서만 맞게 그린다고 태극기를 제대로 그렸다고 볼 수는 없고, 태극과 각 괘의 모양, 위치, 크기 등이 전부 세밀한 규격이 있다. 다만, 괘를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한다'''를 조건으로 그리기 시작하면 비교적 쉽게 외울 수 있다.[68] "4괘의 위치 기억은?" "위아래위위아래"
태극의 위아래 색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정말 단순하지만 쉽게 외우는 방법으로 위는 태양, 아래는 바다라고 생각하면 더 이상 헷갈릴 일은 없다. 더 간단한 방법은 그냥 위는 북쪽을 상징하는 색(빨간색), 아래는 남쪽을 상징하는 색(파란색)으로 외우는 것이다. 북쪽=위쪽이라는 인식이 꽤 널리 퍼져있으니 말이다. 태극의 두 색을 나누는 경계선이 치우친 방향을 헷갈리는 이들도 있는데, 왼쪽 절반은 아래쪽으로 볼록하고, 오른쪽 절반은 위로 볼록하다. 애국가를 떠올리면 쉽다.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 동해는 깊으니까 아래, 백두산은 높으니까 위. [69]
그런데 태극기를 제작할 때 규격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발생하며, 이는 인터넷상에 잘못된 규격의 국기 이미지가 돌아다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특히 실수가 많이 발생하는 경우는 4괘 부분으로, 4괘를 이루는 효(막대기 1개)의 굵기는 정확히 효와 효 사이의 간격의 두 배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효의 굵기가 가늘어서 효와 효 사이의 간격과 동일하거나 그보다도 가는 경우 국기에 힘이 없어보이고 국기의 위엄이 급격히 저하된다.
결론적으로 '''태극기라고 알아볼 수준'''으로 그리기는 쉬우나 사괘나 태극 문양(특히 경계선과 그 곡률) 등의 '''규격을 정확하게 맞춰서''' 그리기는 어려운 국기이다. 그래서 실제로 캐드 실습, 포토샵 실습 등 그래픽 툴 학습교재로 애용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저 비율 맞추는 것 자체가 그래픽 툴 학습 용도로는 너무나 제격이다.
7.1. 색상
태극기의 표준 색도는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 별표 2에 규정되어 있으며 아래 표와 같다. 인쇄물 등에 태극기를 인쇄할 때에도 되도록이면 정해진 색을 써야 하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에는 흰색 부분과 빨간색 부분을 인쇄물 등의 바탕색으로, 파란색 부분과 괘를 검은색으로 표시한다.
- 법정 표준 색도
이 이전에도 태극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깃발로 사용했다.[2] 제헌 국회에서 국기로 공식 지정되었으나, 현재와 같은 사괘의 배치가 확립된 것은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 이후부터다.[3] 1948년 7월 10일 폐지[4]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이응준과는 동명이인이니 오해하지 말자. 애초에 그 이응준은 이 사람과는 생몰년도가 전혀 다르고, 거기다가 민족주의적 개화 사상가인 이 이응준과는 달리 친일반민족행위자이기까지 하다.[5] U+1F1F0 + U+1F1F7 두 글자이나 한 글자로 보이는 것이다.[6] 모바일 혹은 Mac OS 환경의 컴퓨터에서 볼 때 정상으로 보인다. 안드로이드 누가와 안드로이드 오레오에서는 이모티콘 업데이트로 펄럭이는 듯이 보인다. Windows에서는 합자가 되지 않고 두 글자의 모양대로 KR처럼 보인다.[7]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표현에 많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한다. '게양하다'는 '달다' 혹은 '올리다'의 표현으로 다듬어서 사용함이 바람직하겠다.[8] 건(乾, ☰), 곤(坤, ☷), 감(坎, ☵), 리(離, ☲). 팔괘 중 상하 대칭인 괘들.[9] 자세한 건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태극기의 내력과 담긴 뜻, 제작, 게양, 관리에 관해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10] 북한에서는 고위층을 제외하면 태극기의 존재 자체도 잘 알지 못한다고 한다. 다만 21세기 들어서서 아는 사람도 많아졌는데 국제 경기 대회를 중계하면서 남한 경기가 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화면에 나오는 태극기를 현재는 굳이 가리지 않는다.[11] 국기에 대한 경례가 생겨난 것도 이 때. 사실 이런 관습의 이면에는 그 당시 섬유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빨면 색이 바랜다는 이유도 있었다.[12] 대한민국국기법 제10조 제3항[13] 깃대 방향이 반대인데, 동양과 서양이 글 읽는 방향이 반대였듯 깃발도 마찬가지였다.[14] /Ma Jianzhong/[15] 묄렌도르프와 함께 파견된 청나라측 고문 마건상(馬建常; ''마젠창'')으로 오기한 사례가 있는데, 별개의 인물이다. 마건상은 대외적으로 '상백(相伯)'이라는 자를 써서 활동했다.[16] 아예 중국의 퀴즈쇼에 '태극기를 만든 중국의 외교관은?'이라고 물어보는 질문이 나와서 '마건충'이라고 하자 정답을 선언하는 장면도 방영되었다.[17] 마건충의 주장은 팔괘를 마름모 꼴로 배치하는 태극기였다. 즉, 상기한 태극팔괘도를 그대로 파쿠리한 것인데다 배치 형태와 괘의 방향만 달랐다.[18] 중국 하나라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낙수(洛水) 강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씌어 있었다는 마흔다섯개의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 팔괘의 원형이다. 여기에는 가운데 있어야할 십자모양의 무늬가 태극으로 인해 생략되어있다. [19] 이 때문에 이응준 태극기가 알려지기 전까지는 박영효가 처음 만들었다는 오해가 지배적이었다.[20] 황룡기 뒤에 코끼리가 그려진 적기는 시암(태국)의 국기이다.[21] 2009년에 진관사 칠성각에서 보수공사를 하였을 때 칠성각의 벽을 뜯었는데 벽면에서 한 보따리가 나오게 된다. 조심스럽게 보따리를 열었더니 보따리 안에 <獨立新聞(독립신문)>, <경고문>, 단재 신채호 선생의 <新大韓(신대한)>과 함께 이 태극기도 같이 발견되었다. ''' '일본의 제국주의에 독립정신을 새겨 넣는다.' '''는 의미이다. 현재 진관사에서 보관 중이다.[22] 제헌국회 제1회 제22차 국회본회의 회의록 10~12p[23] 헌법 조문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조헌영 의원(한국민주당)의 주장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중앙청에 걸려 있는 태극기도 우리가 생각하는 정확한 국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24] 이승만이 명예 총재로 있었고 고문으로 이시영 대한민국 부통령, 신익희 국회의장, 안호상 문교부장관이 있었다. 참고로 위원장 김일수는 여기 회장이기도 했다.[25] 위원은 아니었다. 반민특위에 소환된 사람이 국기 정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니까[26] 안재홍, 이병도, 정인보, 오세창, 이병기, 이재학, 고희동, 김일수 등[27] 최현배, 손진태 외 2인은 구황실 소장안을 지지했고 이정혁 외 4인은 독립문 안을 지지했다.[28] 문교부 편부과정이었던 이봉수는 참여했는데 투표 결과가 전해지지 않는다.[29] 경기도 학무국장[30] 우국노인회[31] 단 1942년 제정된 임시정부의 국기도안은 1946년 ~ 1949년 당시의 국기 도안과 같았다.[32] 임정 태극기를 왼쪽으로 90도 회전시키면 똑같다.[33] 이 때까지는 4괘의 배열이 3456 순으로 Z자 배열이었다.[34] 문교부고시 제2호, 국기제작법[35] 우리국기 보양회가 제시한 태극기 도안을 받아들여, 이때부터 4괘의 배열이 Z자 배열에서 지금과 같이 뒤집은 N자(И) 배열이 되었다.[36] 총무처고시 제1997-61호, 태극기표준색도지정[37] 비율은 종이:태극으로 3:1이다. 정확한 색상은 도안법을 참고.[38] 하지만 사실 이 사진은 사실 전쟁이 끝나고도 한참이 지난 1957년 서울 수복 기념 행사 때 재현하여 촬영한 것이다. 사진에서 중앙청 건물의 벽면이 흰색으로 깔끔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패주하는 인민군이 중앙청을 방화했기 때문에 수복 직후 중앙청 건물은 창문 유리가 대부분 깨지고 불이 난 건물 내부에서 창을 통해 연기가 나와 시커멓게 그을렸다. 이 사진이 1950년에 찍은 게 아니라는 증거들 중 하나다. 서울 전투가 종료된 후에도 얼마 동안은 이 게양대에 인공기가 그대로 걸려 있었고, 이걸 내리고 미군이 태극기가 아닌 유엔기를 달았다. 실제로 태극기를 게양했던 장소는 이 게양대가 아니라 사진에도 보이는 지붕 위 첨탑 방면이었다.[39]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표현에 많이 익숙한 사람들이 있는데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이는 일본식 한자어라고 한다. '게양하다'는 '달다' 혹은 '올리다'의 표현으로 다듬어서 사용함이 바람직하겠다.[40]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제1호, 제2호[41]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1항 제3호 내지 제5호[42] 대한민국국기법 제9조 제1호[43] 대한민국국기법 제9조 제2호[44] 재미있는건 약간 더 위험한 방송에서 평상시에도 군인들이 애국가가 울리면 정말로 태극기 앞에서 경례를 하는지 실험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사람마다 각자 다른 듯.[45] 1960년대~1980년대에 초, 중, 고등학교 에서는 아침 8시와 오후 5시에 각각 애국가를 틀고 게양, 하강을 했고 2000년대까지 매주 월요일 아침 자습시간에는 애국조회를 하며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후 애국가를 틀고 태극기 게양과 하강은 제6공화국으로 바뀐 1988년을 기점으로 1990년대 이후로 거의 다 사라졌고, 애국조회는 2010년대 이후로 거의 다 사라졌다. 사실 애국조회를 위한 구령대 자체가 일제시대의 잔재라 요즘 개교하는 학교에는 구령대가 없는 경우도 있다.[46]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2항[47]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5항.[48] 혹은 실족사 할 수도 있다. 조심하자.[49]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전문 전단[50]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전문 후단[51]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3항 후문[52] 대한민국국기법 제8조 제4항[53] 육군 및 공군, 해병대 일선 부대는 전투복에 단독군장, 해군 부대 대부분은 정복을 착용하며, 정복 착용이 곤란한 해군 고속정에선 고속정복을, 의장대가 있는 부대에선 의장병들에게 의장대 행사복을 착용시켜 실시한다.[54] 수정 전에는 국기에 대한 경례와 혼동하였으나, 국기에 대한 경례는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국장이나 추모식 같이 엄숙함을 유지해야 하는 행사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나 애국가 제창이 아예 없고 대신 국기에 대한 경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혹은 순국 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다.[55] 아름답다 → 아름다운, 어둡다 → 어두운, 선생답게 행동해라 → 선생다운 행동 등, 어간에 ㅂ받침이 있는 경우 활용시 'ㅂ'이 탈락하며 'ㅜ'가 따라오는 현상[56] 물론 도날드 트럼프 당선 직후 일부(특히 서부) 지역에선 저항권의 의미가 다시 강조되어, 한 쪽 무릎을 끓는 등 거부행위에 관대하다. #출처[57] 2018년 현재 노동당, 녹색당, 민중당 등.[58] A4 용지의 규격은 210mm * 297mm 이므로 가로가 18mm 가 부족한 셈. 반대로 가로 쪽을 기준으로 하면 세로가 12mm 남는다.[59] 사괘의 원류는 태호복희가 도안한 복희팔괘인데 이것이 주나라 때 한 번 수정되어 이전 복희씨가 그린 팔괘를 선천팔괘, 주나라 때 그려진 팔괘를 후천팔괘라 한다. 팔괘는 태극기에 그려진 건(乾, 하늘), 곤(坤, 땅), 감(坎, 물), 리(離, 불) 외에 진(震, 번개), 손(巽, 바람), 간(艮, 산), 태(兌, 늪)가 있다.[60] 세계 대다수 국가의 국기는 해당 국가의 건국 과정이나 비전을 표현한다.[61] 태극 문양의 경우 몽골의 소욤보 문장, 티베트(아직 정식 국가는 아니지만) 국기에도 사용되고 있다.[62] 각각의 방위는 청(靑)은 동쪽, 백(白)은 서쪽, 적(赤)은 남쪽, 흑(黑)은 북쪽, 황(黃)은 중앙을 가리킨다.[63] 수식으로 나타내는 것도 태극 문양을 정확히 그리는 데 필요한 역탄젠트함수와 곡선의 회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2009 개정 과정 기준으로 고등학교 수준으로 쉽게 나타낼 수 있다. (2015년 개정 이후부터는 경제수학 수강 필요.) 그래프 그리는 목적으로 개발된 desmos라는 프로그램으로 30×20 규격의 태극기를 그리면 이와 같다.[64] 애초에 삼색기는 프랑스 혁명 이후 모든 인민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명제 아래서,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기억하고 따라 그릴 수 있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정되었다.[65] 특히 이 쪽은 부탄 정부에서 아예 공식적으로 따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했다.[66] 과테말라의 화폐 단위이기도 하다.[67]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팔괘와 태극은 도교보다는 유교에 가까운 문양이다. 도교의 태극문양은 몽골 국기에서 볼 수 있다.[68] 무조건 대칭이 되도록 그려야 할 땐 3, 4, 5, 6 모두 한가지 도안 밖에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69] 물론 "북한이 위니까 빨강이 위, 남한이 아래니까 파랑이다"라는 말은 쉽게 외우기 위한 유머이지, 실제로 그런 이유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설은 사실이 아니다.
- 국가기술표준원
- 팬톤 컬러
- 구 행정자치부 홈페이지
7.2. 주의점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에서 제작한 태극기나 국기에 대한 관심이 저조한 일부 대중들의 도안은 다음과 같이 '''삼원색을 사용하거나, 태극과 괘의 비율을 달리하여''' 태극기를 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국기법에 어긋나는 잘못된 깃발일 뿐만 아니라 채도가 강렬한 원색을 썼기 때문에 굉장히 눈이 아프고, 태극이나 괘의 크기가 다르면 전체적인 비율이 일그러져 보인다. 이러한 잘못된 국기를 행사에 사용할 경우, 태극기가 갖고 있는 중후한 멋을 없애기 때문에 '''굉장히 국격이 떨어져 보인다.''' 이 어색한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는 문서 상단의 태극기와 비교해 보면 단번에 감이 올 것이다.
특히 미니 태극기, 만국기나 태극기를 사용한 소품 등에서 이러한 오류가 자주 보이는데,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이나 외국 단체가 이런 태극기를 사용했다면 잘 모르고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법 하지만, 한국인 스스로 외국과 교류할 때 이런 실수를 범했다면 그것은 상당한 망신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전광판과 같은 일부 디스플레이 장치나, 특별한 경우에는 원색을 사용하기도 한다. 색조가 크게 떨어지는 일부 패널의 경우 원색이 아니라면 아예 색 자체가 안 보이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정사각형의 태극기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디스플레이 비율이나, 카드를 이용한 태극기 표시, 공간부족, 앱 아이콘 등의 이유다.) 이 경우, 일본은 그냥 붉은 원을 그리면 되고, 미국은 오른쪽 부분을 조금 잘라서 맞추는데, 한국은 그런 거 안 된다. 태극기를 축소하면 사괘가 이상하게 표시되는 경우가 많고, 태극기를 그대로 그 비율로 만들어버리면 태극 문양이 타원형이 되기 때문에(...) 태극 문양이라도 원형으로 맞추려고 원래의 태극기와 다른 도안을 사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찾아보면 이런 식으로 그려진 태극기가 꽤 많다. 심지어 국가기관에서도(!) 사용한다.
8. 태극기를 반대하는 입장
친일파 박영효의 태극기 제작설을 들어 우리 민족의 정통성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거나, 과거 군사 독재정권 당시의 태극기는 말 그대로 국가의 강압, 즉 전체주의와 권위주의를 상징했다고 보고 국가의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태극기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경우도 드물게 있다.[72] 실제 국기에 대한 경례 파트에서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라는 멘트가 전체주의적 사상이 표방된 부분이라는 지적을 받아 변경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멘트가 바뀐 이후에도 극좌 단체에서는 민중의례를 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생략한다던가 심지어 태극기조차 걸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전히 역사적 이유로 태극기에 대한 시선이 부정적인 것이다. 상술한 태극기 방화 같은 건 역시 이러한 시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시위에서 태극기를 태우는 행위를 저질렀던 적도 있다.
9. 북한에서의 태극기
공산주의에서는 모든 종교적인 상징에 대해서 그랬듯이 태극기의 음양, 사괘 요소를 봉건주의적 미신으로 여긴다. 실제로 북한에서 태극기가 폐지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한데, 1947년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부위원장 김두봉이 소련 장군 레베데프에게 태극기의 내력을 설명했지만, 반동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인공기가 지정된 후, 북한에서는 태극기 폐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를 댔다.
- 태극기는 새로운 민주 국가(?)의 성질에 위반된다.
- 태극기는 그 근거 되는 주역, 주돈이의 '학설'이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이다.
- 태극기는 처음부터 일정한 의의와 표준이 없이 제정된 것이다.
- 태극기는 무용한 난해로 인한 각양각색의 불통일 된 폐가 있다.
태극 문양이 신라나 백제의 유적에서 발굴되어 나올만큼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널리 사용되던 문양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태극과 사괘가 내포한 음양사상이나 주역사상이 중국에서 형성되었고 도교나 중국의 전통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국기로서 상징성이 부족하다고 보기도 한다. 태극을 사용하더라도 전통적인 삼태극을 사용하는 것이 보다 합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위의 역사 단락을 보면 알겠지만 태극기는 제정 이후 150년 가까이 우리 국가와 우리 국민을 상징하는 도안으로 쓰여왔으며, 한국을 지키고 발전시켜온 참전용사들과 산업역군들, 민주화 투사들이 모두 태극기를 내걸고 그 기치 아래서 최선을 다해왔던 만큼 그 스스로가 갖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태극기에 부정적인 의견이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폐지하자는 의견은 소수 있을지언정 북한처럼 국기를 갈아치우자는 의견은 없는 것, 무엇보다 '그렇다면 태극기를 대체할만한 문양/존재는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태극기 반대측에서조차도 통일된 도안이 나온적 없다는것[74] 또한 태극기 만큼의 모두가 동의하는 보편적인 국가적 상징 기호가 없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10. 기타
- 현존하는 실물 태극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1883년 푸트 미국공사의 수행원이었던 쥬이가 1884년 입수해서 미국으로 가져간 것으로, 이른바 '쥬이 태극기'이다. 스미소니언 역사 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상단 이미지에서는 붉은색이 아래로 내려간 형태인데, 상하를 바꾸면 이응준 태극기와 유사하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소장한 태극기 실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이른바 '데니 태극기'이다. 대한제국 시기 미국인 고문이었던 데니에게 고종 황제가 1890년 수여한 태극기이다. 1981년 데니의 외손자인 윌리엄 롤스턴 1세가 태극기를 소장했다는 알려지자[76] 당시 정부가 환수에 나섰다. 롤스턴 2세[77] 부부가 한국에 방문하여 해당 태극기를 기증하였고,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이다. 한국 내에 없는 쥬이 태극기와는 달리 국내 소장품이라 데니 태극기를 은근히 밀어주는 경향이 있다. 발견 당시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져서 그런 것도 있고. 거기다 2018년 10월 11일 제주도 해군 국제 관함식에서 독도함에 복제본을 게양하기도 했다.
-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 → 양의(兩儀) → 사상(四象) → 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선천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후천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 일부에서는 원래 우리 민족의 태극인 삼색 태극[78] 을 써야 오방색이 모두 갖춰지는데 노랑이 태극에서 빠진 바람에 중국 도교의 2태극이 되어버려서 우리나라의 국운이 쇠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깃봉 끝 무궁화 꽃봉오리의 황금색까지 포함하면 억지로라도 오방색을 만들 수는 있다만... 실제로 태극기가 빨강, 파랑 2색 태극만 쓴 것 때문에 그 모양대로 남북이 분단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6.25 전쟁 무렵에 꽤 널리 퍼지기도 했고, 반 농담으로 4괘가 주변 4대 강국(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을 뜻한다는 얘기도 있었다.[79]
- 항시 게시해도 된다는 법 개정과 더불어, 2002년의 월드컵을 기점으로 태극기가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는 등 이전보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태극기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아 국기법 위반이나 아니냐로 논란이 있는 편. 원칙상으로 태극기에 구멍을 내거나 절단하는 행위는 법률로 금지돼있다. 또한 태극기 응원이 범람하다보니 응원이 끝난 후 수많은 태극기가 길바닥에 버려지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런 응원도구들은 가급적 집에 가져가서 조용히 처리하라고 권한다.
-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선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를 비롯한 보수 집회 및 보수성향 단체에서 애국주의 마케팅을 위해 자신들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 태극기는 정치성향에 앞서 대한민국의 국기이기 때문에 민주당계나 진보정당계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지만 보수정당계에서 훨씬 적극적으로 여기저기에 사용하기에 태극기가 보수집회의 상징이란 인식도 어느정도 생겼다.
- 폭주족들이 삼일절, 광복절 등에 오토바이에 태극기를 달고 질주하는 바람에 경찰들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한다. 자기들은 애국심이라고들 하지만 이건 자기들 범법 행위를 태극기를 이용하여 애국적인 것으로 포장하는 행위다. 애국이라는 말로 욕 좀 안 얻어먹으려나 한 것 같은데, 그저 허울 좋은 구실일 뿐이다. 한편 2008년 이후 북악산길을 태극기를 달고 자전거로 질주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아마도 시야 방해와 국기 훼손 때문인 듯하다.
- 1997년에 태극기를 주제로 공익광고가 제작되기도 했다.
>영광이 있는 곳에 태극기가 있습니다.
>태극기가 있는 곳에 내가 있습니다.
>태극기는 또 다른 나의 얼굴입니다.
한국 전통화가가 붓으로 그린 듯한 애니메이션 영상을 잘 보면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던져 스트라이크를 맞추고, 축구 경기에서 축구선수들 역시 태극마크 형상의 공을 주고 받으며 골문을 뚫는데 성공하여 국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호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는 펄럭이는 태극기와 한반도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여 어떤 남성이 국민의례를 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20년이 지난 2017년에도 좋은 평을 들을 정도로 예술미와 전달력이 뛰어난 광고로 손꼽히고 있으며, 실제로도 이 광고를 기점으로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드는 광고의 질이 크게 좋아졌다. 내레이션은 김기현.
- 1997년 당시 박찬호 선수가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야구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있었던데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또한 1998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좋은 행보로 승승장구 하며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본격적인 틀을 갖추었을 정도로 스포츠 경기에 대한 범국민적인 관심과 사랑이 많던 시절이었다. 해방 이후 국내 시위 등에서 공식적으로 태극기가 불태워진 적은 없으나, 한때 통일이 되면 예멘이 통일 후 새 국기를 제정했던 것처럼 태극기가 아닌 국기(ex. 한반도기)를 써야 하나에 대한 주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태극기는 분단 이전부터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이 통일하고도 국기를 안 바꾼 것[80] 처럼 이대로 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 2004년에 조선일보가 가장 오래된 태극기를 공개했다. 한국어 판, 영어판(두번째 부분), 일본어 판(아쉽게도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비교사진, 한국의 비교사진.[81]
- 외국에서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대팀 관중이 태극기를 들기도 한다. 유로 2004의 조별리그에서는 덴마크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에서는 무득점 무승부로 끝났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별리그에서도 뉴질랜드 관중이 태극기를 꺼내들었고, 그 경기 또한 1대1 무승부를 거뒀다.
- 세계 네티즌들 사이에서 펩시기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은 태극기의 태극이 펩시의 마크와 닮은 것을 이용한 범 세계적 유머로, 구글에 Pepsi Korea flag를 검색하면 수많은 펩시 마크와 합성한 이미지들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실제로 펩시콜라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지극히 우연일 뿐이다. 2001년 개봉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는 이 밈을 역이용해서 오히려 펩시가 국산품 아니냐는 드립을 쳤는데, 단순한 영화 각본상의 개그가 아니라 펩시측의 정식 PPL이다(...) 해당 항목을 참조해 보면 꽤 성공적인 간접광고라고 내부에선 평가한 것 같다. 또한 태극 마크를 모티브로 만든 대한항공 로고 또한 펩시 로고와 유사하다는 평가 때문에 외국 항덕들 사이에서는 “Pepsi Air(펩시항공)”이라 불리고 있다. 실제로 예전의 펩시콜라 마크는 굴곡이 조금 더 적은 태극마크와 유사했으나, 이후 로고를 바꾸면서 유사성이 약간 떨어졌다.
- 대한민국 국대를 통틀어서 특히 태극 색깔을 베이스로 한 유니폼을 입는 축구대표팀을 '태극 전사'라고 부르는데 이 표현은 이제 외국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 되었다. 문제는 영문 표기시 대부분 'Taegeuk Warrior'가 아니라 'Taeguk Warrior' 라고 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야 어떻게 발음하든 별 상관이 없긴 하지만 한국인이 보기에 좀 거슬리는건 어쩔 수 없는 듯.[82]
- 2015년부터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전군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게 되었다.[83]
- 2016년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발표 때 나온 홍보물에 태극기가 있는데 4괘의 순서가 Z자로 잘못 표시됐다. 자세히 보면 태극의 방향도 잘못 되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949년까지 사용된 태극기를 첨부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67년 전 태극기를 정부 부처라는 곳에서 뜬금없이 자랑스레 내건 것이다.
- 이 태극 무늬가 기묘하게도 위쪽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도 잘 쓰이는 빨간색이고, 아랫쪽이 자본주의 혹은 보수주의,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색으로 자주 쓰이는 파란색인데다,두 색의 경계선 모양이 군사분계선과 흡사해서, 옛 사람들이 태극기를 고안하면서 한국이 분단 국가가 될 것을 예언했다는 카더라가 있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독일팀이 이 국기를 같이 들고 나왔다고 한다.
10.1. 태극기 펄-럭
- 인터넷에서 자주 사용되는 태극기 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