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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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축구 감독으로, 자칫 암흑기에 빠질 수 있었던 1970년대 초반 거너스를 빛내준 감독이다.
2. 일생
2.1. 감독 이전
1918년에 노팅엄셔 주 벌웰에서 태어나 1939년 더비 카운티 입단 이후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일찌감치 선수생활을 접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육군 의무단에 입대해 6년여간 물리치료학을 배우고 1960년에 빌리 밀른 물리치료사의 후임으로 아스날에 들어가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그는 물리치료사에 그치지 않고 경기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드러내는 재능이 있었다.
2.2. 감독 시절
1966년에 빌리 라이트 감독의 후임으로 막상 감독직에 임명되었을 당시 팬들은 미에게 회의적인 반응을 드러냈으나 데니스 힐우드 회장을 위시한 아스날의 이사진들은 그의 재능을 높이 샀고, 미는 대단히 놀랐지만 모두가 원한다면 한번 해 보겠다고 해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는 감독 초기에 데이브 섹스턴과 돈 하우 코치의 보조를 받으며 군 출신답게 거너스를 절도 있게 다스렸다. 그는 골키퍼 프랭크 모스와 수비수 프랭크 매클린톡, 그리고 조율이 뛰어난 조지 그레이엄, 공격수 레이 케네디, 존 래드퍼드, 10대였던 찰리 조지가 시너지를 일으켜 수년 동안 부진만 거듭해온 거너스에 힘을 실었다.
1968년과 1969년에 각각 풋볼 리그 컵 결승에 올랐지만 리즈 유나이티드와 스윈던 타운(당시 3부 리그 팀이었다.)에 밀려 각각 우승을 못 했지만, 1970년에 열린 인터-시티 페어스컵[1] 에서 RSC 안데를레흐트를 4-3으로 이기면서 아스날 구단 역사상 최초로 유럽 무대를 제패했고, 특히 1970/71 시즌에는 마침내 리그와 FA컵 더블을 달성하게 된다. 아스날의 1부 리그 우승은 1952-53시즌 이후 18년만에 처음.
이후 아스날은 1971년에 앨런 볼을 영입하여 1972년 FA컵 준우승, 1973년 리그 준우승을 기록했지만 우승컵을 더 차지하지는 못했다. 결국 1970/71 시즌의 영광은 점차 빛을 잃었고, 그는 1975/76 시즌을 끝으로 사임한다. 후임 감독으로는 아스날 선수 출신인 테리 닐이 취임한다.
2.3. 은퇴 이후
거너스를 떠난 이후 2년만에 미는 왓포드 FC의 코치로 들어와 그레이엄 테일러를 보좌했고, 1986년부터 왓포드의 단장을 맡다가 1991년에 은퇴했다. 그리고 그는 축구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공로로 1984년에 대영제국 훈장 4등급을 수여받았다.
2001년 10월 22일에 런던에서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3. 기록
3.1. 감독 기록
- 아스날 FC (1966 - 1976)
- 잉글랜드 풋볼 리그 디비전 1 (1) : 1970/71
- FA컵 (1) : 1970/71
- 인터-시티 페어스컵 (1) : 1969/70
3.2. 개인 수상
- 잉글랜드 올해의 감독 : 1971
- 대영제국 훈장 4등급(OBE) 명예수훈 :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