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잉글랜드'''
'''England'''
[image]
[image]
'''국기'''
{{{#white '''국장'''
(비공식)[1]}}}
'''수도'''
런던
'''면적'''
130,279㎢
'''인문환경'''
국가
[image] 영국
공용어
영어(사실상)
공인 지역 언어
콘월어
국교
잉글랜드 성공회
인구
56,286,961명(2019 추산)
인구밀도
424.3명/㎢
민족구성
백인 79.8%, 흑인 3.5%, 인도계 2.6%, 혼혈 2.3%, 파키스탄계 2.1%, 아일랜드계 1.0%, 화교 0.7%, 아랍계 0.4%(2011)
'''하위 행정구역'''
9개 지역(region), 48개 주(county)
'''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단일국가의 일부(자치권 없음)
'''ISO 3166-1'''
ENG, GB-ENG
'''도메인'''
없음(.uk 사용)
'''사이트'''
관광청
'''위치'''
[image]


1. 개요
2. 상징
2.1. 명칭
2.1.1. 색슨랜드? 잉글랜드?
2.2. 깃발
2.3. 문장
2.4. 노래
2.5. 표어
3. 역사
4. 정치
5. 민족주의
6. 행정 구역
8.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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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을 이루는 네 구성국 중 하나로 영국 영토의 절반, 인구의 5/6를 차지하고 있고 중앙 정부도 여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영국 정치, 경제, 문화 권력의 중심지다. 영어는 원래 잉글랜드 주민들이 쓰는 언어다. 'English(영어)'라는 표현도 '잉글랜드어'를 뜻한다.
축구럭비 같은 자부심이 대단한 종목들은 국가 대항전에서 지역별로 따로 나온다. 그러나 올림픽엔 축구와 럭비 모두 단일 팀으로 참전한다.

2. 상징



2.1. 명칭


잉글랜드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앵글인(Angles)의 땅'이라는 뜻이다. 앵글인은 로마 제국의 쇠퇴 이후 이 지역에 유입된 게르만족의 일파로 앵글로색슨의 '앵글'이 바로 이 앵글인을 의미한다.
고대 영어로는 Englaland, 중세 영어로 Engelond, Engeland 등으로 쓰다가 점차 철자 변형을 통해 England가 되었다. 가끔 앨비언(Albion)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앨비언이라는 말은 오늘날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섬 전체를 일컫는 경우가 더 많다.
한자로 음차해서 표기하면 영길리(英吉利)가 되고 한자 문화권에서 사용하는 '영국(英國)'이라는 명칭이 바로 이 한자 음차에서 따온 것이다. 오늘날에는 '영국'의 의미가 확대되어 'United Kingdom'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원래의 '잉글랜드'와는 의미와 용법에 차이가 생겼다. 동서양의 교류가 많지 않던 시절에는 영국과 영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잉글랜드의 구분이 어려워 이렇게 굳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둘을 구분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났기 때문에 중국어에서 잉글랜드는 영격란(英格蘭, Yīnggélán)으로 음차하고 한국어, 일본어 등에서는 자신들의 음운 체계에 맞는 음차[2] 등을 따로 사용한다.

2.1.1. 색슨랜드? 잉글랜드?


분명 칠왕국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색슨족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잉글랜드를 통일한 것도 앵글족이 아닌 색슨족의 국가 웨식스였다. 그런데도 색슨랜드가 아닌 잉글랜드라는 명칭으로 굳어졌기에, 레딧이나 쿼라 같은 영미권 커뮤니티에서는 관련 질문이 많은 편이다.
앵글로색슨 문서에도 있지만 사실 당시에 브리튼 섬으로 이주한 게르만족들은 색슨족이었다. 고대 영어를 사용하던 앵글족은 저지독일어를 사용하던 작센족(색슨족)과는 차이가 있었으나, 대규모로 브리튼 섬으로 이주하면서 점차 색슨족은 영어를 사용하며 앵글족에 동화되었다.
칠왕국 시대, 웨식스, 서식스, 에식스는 색슨족, 머시아, 노섬브리아, 동앵글리아는 앵글족이었다. ~식스는 본래 고대 영어로 -seaxe라는 어미인데, 이는 색슨족을 뜻한다. 즉, 저 세 색슨 나라의 국호는 각각 서색슨, 남색슨, 동색슨이라는 뜻이며, 동앵글리아 역시 이름부터 앵글족의 땅을 뜻하는 Anglia가 들어가 있다. 적어도 각국이 처음 세워질 때에는 앵글족과 색슨족의 구분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었다는 증거이다.
이후 점차 색슨족와 앵글족의 구분이 옅어지고 문화적, 언어적으로 거의 같은 민족으로 융화되었지만 일단 각국의 사람들은 서로를 다르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때 이교도 대군세가 닥치며 덴마크인들이 잉글랜드를 침략하자 웨식스 왕 알프레드는 단순히 하나의 국가가 다른 국가 위에 군림하는 브레트왈다를 넘어서, 잉글랜드의 완전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3]
이때 알프레드가 에딩턴 전투에서 바이킹 출신 동앵글리아 왕 구트룸 1세를 격파하고 조약을 체결하면서 머시아 서부를 갖게 되는데, 알프레드가 채택한 칭호가 바로 '''잉글랜드의 군주'''였다. 왜 색슨족의 왕이었던 그가 잉글랜드를 칭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지만,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은 머시아인들의 불만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웨식스와 머시아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다투던 나라였는데, 대부분의 경우 체급이 더 큰 머시아가 웨식스를 압도하였으나 머시아의 마지막 명군 오파(Offa)가 죽고 웨식스 왕 에그버트(Ecgbert) 때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역전되어 오히려 웨식스가 머시아를 정복하게 되었다. 사실상 에그버트는 잉글랜드를 통일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의 통일은 여전히 웨식스가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하는 브레트왈다의 지배에 불과했고, 그가 죽자 결국 머시아는 다시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이후 알프레드가 다시 머시아를 점령하게 되었을 때는 조부 에그버트의 선례를 떠올렸고, 웨식스는 당장 나라 이름부터 서색슨(West Seaxe, Wessex)이기 때문에 색슨랜드라는 이름은 지역색이 너무 강한 이름이었기에 머시아인들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고 판단, 자신은 머시아와 다르지 않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잉글랜드'라는 칭호를 밀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알프레드의 손자인 애설스탠이 바이킹을 몰아내 나머지 지역을 수복했고, 마침내 '''잉글랜드 왕국'''을 선포하며 잉글랜드라는 명칭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잉글랜드 내부의 정치적인 이유로 정착된 명칭이었기에 잉글랜드 밖에서는 그냥 부르던 대로 색슨족이라고 불렀다. 특히 색슨족과 충돌이 가장 잦았던 켈트족들이 그렇게 불렀고, 현재 켈트어파의 언어에선 잉글랜드를 색슨에서 유래한 말로 부른다. 아일랜드어의 Sasana, 스코틀랜드 게일어의 Sasanainn가 바로 그것.

2.2. 깃발


[image]
잉글랜드의 국기는 하얀 바탕에 적십자를 둔 성 조지의 십자가다.
성 조지의 십자가를 쓰는 이유는 성 조지(제오르지오)가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이다.
이 깃발을 처음 쓴 사람은 헨리 2세라고 전해지는데 12세기 말 그가 프랑스 왕국필리프 2세와 함께 십자군 전쟁에 참가할 때 헨리가 '''빨간색 바탕에 흰색 십자가'''를 쓰고 필리프가 '''흰색 바탕에 빨간색 십자가'''를 쓰기로 했다. 그러나 실물이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잉글랜드의 성 조지의 십자가(13세기)는 분명히 현재 잉글랜드 깃발처럼 흰색 바탕에 빨간 십자가가 새겨져 있어서 왜 기록과 다른 십자가가 되었는지는 불명이다. 12세기 십자군 전쟁 관련 모든 문헌에서 저렇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기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성립된 1707년에 스코틀랜드 왕국의 국기와 합쳐서 유니언 잭을 이루게 되었다.

2.3. 문장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삼사자가 잉글랜드의 국장으로 간주되고 있다.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와 동군연합을 이루기 전에는 백년전쟁 이래로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 국왕이라고 사칭해왔던 역사 때문에 프랑스의 백합 문장과 섞은 것을 썼고 삼사자보다는 백합+삼사자의 혼합 문장이 사실상 잉글랜드의 국장처럼 취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조지 3세프랑스 제1공화국을 인정하면서 1801년부터 영국의 국장에 프랑스 백합 부분을 삭제하고 프랑스 국왕의 칭호를 쓰지 않기 때문에 지금은 자연히 삼사자만이 잉글랜드의 문장으로 쓰이고 있다.

2.4. 노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잉글랜드는 스스로를 상징하는 노래가 없다. Jerusalem이나 희망과 영광의 땅(Land of Hope and Glory, 위풍당당 행진곡) 등이 제안되었다. 잉글랜드가 따로 나오는 스포츠 국가 대항전의 경우 대체로 God Save the Queen을 연주하지만 종목에 따라 다른 것을 연주하기도 한다.

2.5. 표어


'''Dieu et mon droit'''

하느님과 나의 권리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데 튜더 왕가의 표어였고 그 뒤로 舊 잉글랜드 왕실에서 줄곧 사용되어 오늘날 영국 왕실의 표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잉글랜드에서만이고 영국 왕실은 스코틀랜드에서는 구 스코틀랜드 왕실의 표어인 In Defens God Me Defend[4]를 쓴다.
영국에서는 각종 상징을 옛 잉글랜드 왕국에서 쓰던 것을 계승해서 쓰는 걸 기본으로 하되 스코틀랜드에서만 특별히 옛 스코틀랜드 왕국의 것을 쓰는 식인 경우가 많다.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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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족의 일파인 앵글로색슨족이 원주민이었던 켈트계 브리튼족들을 침략해 칠왕국을 세운 것이 잉글랜드의 시작이다. 그 전의 그레이트브리튼 섬 중남부에 있었던 브리타니아는 로만 브리튼으로 로마 제국의 지배[5]하에 있었고 친 로마파 켈트계 원주민인 브리튼족들이 살고 있었다.

5세기에 제국 밖의 게르만계 부족들이 서로마 제국을 침략하자 로마군은 유럽 대륙 방어를 위해 브리타니아에서 철수해 버렸고 방위력의 공백을 틈탄 북방의 픽트족과 스코트족의 준동은 브리튼 족들에게 심대한 위협이 되었다. 특히 지금의 스코틀랜드인 칼레도니아의 스코트 족은 같은 켈트계지만 로마 제국에 끝까지 강경하게 반항했다. 서유럽 전역에 걸쳐서 켈트계 부족들과 공존 관계를 구축한 로마인들도 이들은 도저히 상종하지 못할 야만족으로 간주했다.
브리튼 족은 픽트 족과 스코트 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바다 저편에 사는 독일, 덴마크 일대의 게르만족들을 용병으로 썼지만 브리타니아의 브리튼 족들에게는 로마와는 달리 용병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규모의 군단 방위력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이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image]
앵글로색슨족의 브리튼 이주
윌란 반도에서 앵글족에 뒤이어 이제는 색슨족[6]이 대거 바다를 건너 브리타니아를 침략해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브리튼족들의 영역은 서부의 산악 지대로 축소되어 현대의 웨일스가 되었다. 그리고 동부에 남아있던 브리튼족들은 앵글로색슨족들과 혼혈이 되어 이후 잉글랜드의 기본 주민이 되었다.
잉글랜드는 그렇게 앵글로색슨족이 지배하게 되었으나, 게르만족 특유의 사회 체제[7] 때문에 여러 대립 왕국들이 난립한 데다 본격적으로 바다를 건너 쳐들어오기 시작한 바이킹들의 침략으로 인해 오랫동안 분열된 상태였다.
그러다 10세기 즈음 애설스탠 왕 무렵에 처음 통일이 되었고 에드거 1세에 이르러서도 통일이 유지되었다가 덴마크로부터 쳐들어온 바이킹들에게 국가 전체가 정복되었다.
그러다 다시 독립을 하는가 싶더니 왕위 계승 문제로 혼란 상태에 놓여 있던 왕국을 노르망디공작이었던 정복자 윌리엄이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해럴드 2세를 물리치고 정복한다. 정복자 윌리엄은 대륙의 봉건제를 잉글랜드에 도입하였으나 많은 부분에서 앵글로색슨의 관습에 따라 잉글랜드를 통치했다.
13세기에는 존 왕이 귀족들의 요구에 굴복해 대헌장을 선포하게 된다. 이 문서는 귀족들의 권리를 확인시키기 위한 문서였지만 그동안 공식적인 헌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요성이 있다.
잉글랜드 군주들은 웨일즈, 아일랜드, 스코틀랜드에 수차례 원정을 감행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장미전쟁으로 요크가와 랭커스터가 싸워서 튜더 왕조[8]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선포된 마그나카르타 때문에 잉글랜드 왕들은 종종 자신이 하는 행위의 정당성을 얻기 위해 의회를 소집해야 했다.
장미전쟁을 제외하고는 대내 투쟁이 15세기에 이르기까지 줄어들었기 때문에 봉건적 봉사 의무도 세금으로 대체되었고 백년전쟁 시기 잉글랜드 '군대'도 용병이 상당량을 차지했다. 다만 백년전쟁 당시 잉글랜드 군대의 핵심은 여전히 두텁게 무장을 차려입은 기사진과 농민병 궁병대였고 용병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고용했다. 소작농 중의 일부는 '요먼'이라는 자영농 소지주가 되었다. 기사들은 싸울 일이 없자 토지를 매입하고 '젠트리'라는 계층을 형성했다. '젠트리'는 작위 없는 귀족에 가까웠지만 후대에는 세습 귀족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주요 산업은 농업을 제외하면 양털 생산이었다. 백년전쟁은 단순히 왕위 계승 전쟁이 아니라 양털 무역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플랑드르 지방을 두고 벌어진 전쟁이기도 했다. 젠트리는 양털이 매우 효과적인 이익 창출 수단이었기 때문에 전통적인 개방 농작지를 전부 목장으로 만들어 요먼 계층을 몰락시켰고 토지의 집약화를 이루었는데 이것을 인클로저(종획) 운동이라고 한다. 실제로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잉글랜드 중부에 한정된 것이었지만 농민들의 생활은 피해를 입었다.
현재와 같이 연합 왕국(United Kingdom)이라는 체제가 탄생한 것은 18세기의 일이다. 18세기 초에 동군 연합 상태에 놓여있던 스코틀랜드 왕국과 연합법을 통해 한 왕국으로 합치면서 그레이트브리튼 왕국(Kingdom of Great Britain)과 아일랜드 왕국(Kingdom of Ireland)이 함께 있는 체제를 만들었고 19세기 초에 다시 한번 합침으로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
이후 연합 왕국의 일원이었던 아일랜드 섬 남부가 대영제국자치령(dominion)인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어 영국 본국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현재 영국의 공식 명칭은 그레이트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 되었다.

4. 정치


잉글랜드는 영국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각 지방에 존재하는 지방 의회와 지방 정부 총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잉글랜드는 다른 세 지방과 달리 자치권 없이 중앙 정부의 직할을 받는 유일한 지방이다. 즉 영국 총리는 영국 전체의 총리일 뿐 잉글랜드 총리는 아니므로 잉글랜드 총리는 없는 셈이다. 어차피 잉글랜드 사람이 영국 총리를 거의 다 해먹으니 별 의미 없을 수도 있는데 잉글랜드 사람들에겐 이것이 불만이기도 하다.
그래서 잉글랜드 내부 문제는 영국의 잉글랜드 지역구 의원들만 법률 제정에 참여하게 한다든지[9] 그냥 비효율을 각오하고 잉글랜드 자치 의회와 정부를 만들자는 주장과 잉글랜드를 여러 자치 구역으로 쪼개자는 주장 등 다양한 주장이 있어 왔다.
결국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 의원들이 법률 제정 과정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쪽이 2015년에 논란 끝에 채택되었다. 이것을 English votes for English laws(EVEL)라고 한다. 하원에서는 잉글랜드에만 적용된다고 판단되는 법안의 경우 법안 심의 과정 중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 의원들만 한데 모아서 이 법안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다수결로 정하는 표결 절차를 만들었다. 수용하면 법안 심의의 다른 과정을 밟을 수 있지만 거부하게 될 경우 그 법안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 잉글랜드 지역구 하원 의원 다수가 거부하는 법안은 아예 법으로 성립되지 못하도록 블로킹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영국 국회의 상원은 지역구 개념이 없어 이런 절차를 못 만들지만 영국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법률은 양원을 모두 통과해야 하므로 어차피 하원에서 EVEL을 통해 거를 수 있다. 비슷하게 잉글랜드 뿐만 아니라 웨일스[10]에도 적용되는 법안을 심의할 때는 잉글랜드+웨일스의 하원 의원을 모두 모아놓고 법안을 수용할지 거부할지 묻는 절차를 밟게 된다.
물론 이런 방법들의 경우 직관적으로 영국 내 모든 지역에 공평하게 여겨지는 방안은 안 나와서 논란만 거듭 중이다.
잉글랜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잉글랜드를 여러 지역별로 나눠서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식의 자치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있고 지방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는 군소 정당들도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보수 우익 성향이 강한 잉글랜드 중산층들을 일컫는 미들 잉글랜드라는 용어가 있다. 영국 정계와 언론들에서는 자주 통용되는 표현이이고, 이들이 주로 남부 지역에 살고있기 때문에 잉글랜드 남부지역은 보수당 텃밭으로 간주된다. 반대로 런던과 잉글란드 북부는 진보, 노동당 지지성향이 강한 편.

5. 민족주의


오랫동안 영국이 잉글랜드가 주도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잉글랜드만의 민족주의는 제한적으로 형성되어 있던 상태였다. 영국인(British) = 범위가 확장되고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잉글랜드인(English)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자치 지역이 되면서 거꾸로 잉글랜드가 마치 '축소된 영국'처럼 되어 버렸다.
잉글랜드에도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자치권을 달라는 운동이 있긴 한데 아직 잉글랜드 여론이 크게 호응하진 않는다. 또 하나의 의회와 정부가 생기면 그만큼 세금 낭비가 되는 거 아닌지 싶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지방인 요크셔나 잉글랜드와 다른 독자적인 민족 정체성이 있는 콘월 등에서도 자치 운동을 하는 군소 정당들이 있다.
자치 요구를 넘어서서 아예 영국이라는 국가를 해체하고 잉글랜드의 독립을 쟁취하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영국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잉글랜드가 굳이 독립을 부르짖는다는 것은 스코틀랜드인, 웨일스인, 북아일랜드인이나 이민자 등 소수파를 배척하겠다는 발상과 연결되기 쉽다. 실제로 잉글랜드 독립론자들은 거의 반EU, 반이민, 백인우월주의 성향의 극우 세력인 경우가 많다.[11] 한때 잉글랜드 독립을 주장했던[12] 정당으로 잉글랜드 민주당(English Democrats)이라는 군소 정당[13]이 있는데 이 당도 우파~극우로 분류된다. 친EU 좌파 일부가 독립론을 주도하는 스코틀랜드(스코틀랜드 국민당), 웨일스(플라이드 컴리)등과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한편 2010년대에 들어서 인터넷 주소를 관리하는 ICANN의 정책이 바뀌어 ISO 3166-1 코드가 없는 지역·민족 집단·언어권도 일정 요건만 갖추면 신규 최상위 도메인(TLD)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걸 GeoTLD라고 한다. 잉글랜드의 민간 단체와 기업들이 잉글랜드의 도메인으로 '''.eng'''을 등록할 수 있게 현재 서명 운동을 받고 있는 중이다.[14]
2014년 이후 .london(런던), .scot(스코틀랜드), .cymru/.wales(웨일스)가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15] 아직까지는 진전이 없다. 잉글랜드 자치 정부라도 생기지 않는 한 .eng 도메인을 등록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인지도도 없을 게 뻔한 이 도메인을 굳이 쓰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스럽다. 게다가 요즘에는 도메인을 그대로 사이트명이나 기업 이름으로 쓰는 경우도 많은데 ~닷잉이라고 명명하긴 뭔가 이상하다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2020년 PanelBase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잉글랜드 주민의 34%, 무응답자를 제외하면 무려 49%가 잉글랜드 독립을 지지한다고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브렉시트,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혼란과 갈등이 구성국 주민들의 독립 열망을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6.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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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는 크게 9개의 권역(Region)으로 나눈다. 하위 행정 구역으로 주(County), 지구(Districts), 단일 자치구 등이 있다. 위 권역은 통계나 유럽의회 선거 등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사용되고 저 중에 런던 외 다른 곳은 지방 자치 단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 행정 편의상 인위적으로 편성해 놓은 지역이라는 성격이 강하다.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기였던 2004년에 존 프레스콧 부총리 주도로 런던[16] 외 여덟 권역에 기존보다 강력한 자치 단체를 설치하려고 했고 장기적으로는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과 비슷한 자치 지역으로 격상되게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노스이스트 잉글랜드부터 시험삼아 이것에 대한 찬반 주민 투표를 해보니 반대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오자 결국 이 계획은 무기한 보류되었다. 이것만 봐도 저 권역이 얼마나 주민들에게 밀착이 안 되어 있고 인위적인 행정 구역인지 알 수 있다.
1990년대 말 이후 영국에서는 유럽 의회 선거[17]를 치를 때 권역별 비례대표제[18]로 실시한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각각 하나의 '지역구'[19]를 이루는 데 반해 잉글랜드는 덩치가 크기 때문에 위 권역에 따라 쪼개서 각각을 지역구로 한다. 그래서 영국의 유럽 의회 지역구는 모두 12개이다.
참고로 영국 본토 밖 속령인 지브롤터[20]는 인구가 너무 적기 때문에 2004년부터 유럽 의회 선거에서 뜬금없이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지역구의 일부로 병합해서 치렀다.[21] 지브롤터 외 영국의 다른 속령(왕실령 또는 해외 영토)들은 유럽 연합에 속하지 않는 지역이었기 때문에[22] 유럽 의회 의석도 없었고 주민들에게 투표권도 부여되지 않았다. 지금은 브렉시트로 영국 본국과 지브롤터의 유럽의회 의석이 폐지되었다.
잉글랜드 내 지방 자치 단체들은 2단계로 되어 있다. 다만 일부 지방 자치 단체들은 1단계만 두기도 하는데 이들을 unitary authority라고 부른다.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지방 자치 단체는 전부 1단계로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23] unitary authority라는 용어는 보통 잉글랜드의 지방 자치에서만 쓴다.
다만 영국은 북아일랜드를 제외하고는 행정 구역이 1단계가 되었든 2단계가 되었든 그 밑에 적은 인구들을 대표하는 community council[24]들이 별개로 있을 수 있다.[25] 잉글랜드는 이들 기관이 최대 1600만 명을 대표하도록 법으로 정해 놓고 있는데 이 1600만 명은 어디까지나 상한선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그 인구를 대표하는 parish council은 없다. 시골이면 고작 수십명밖에 대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7. 무역




8. 기타


  • 잉글랜드 국왕
  • 현재 잉글랜드에 소속된 콘월은 현지의 민족주의자들이 잉글랜드에서 분리되어 영국 내 별도의 지역으로 취급되길 바라고 있다.
  • 베릭 어폰 트위드(Berwick-upon-Tweed)라는 북서부의 작은 마을은 스코틀랜드와 자주 분쟁을 겪었던 지역이고 최종적으로 잉글랜드의 지배가 확정된 15세기 이후 잉글랜드면서도 스코틀랜드 같은 지역이었다. 현재는 법적으로 확실하게 잉글랜드의 일부로 되어 있지만 여전히 스코틀랜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미들 잉글랜드

[1] 최초로 이 문장을 쓴 것으로 확인되는 인물은 사자심왕 리처드이며, 그 이전에도 썼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정복왕 윌리엄의 가계를 상징한다고도 한다.[2] 한국어의 잉글랜드, 일본어의 イングランド/ingurando[3] 이는 한국사로 치면 각각 후삼국시대 고려(혹은 태봉), 후백제, 신라, 발해(발해 유민), 말갈(발해 멸망 직후 고려로 망명한 친발해·반거란 성향 말갈족 및 후대에 통일국가 고려로 귀화한 여진족)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지며 지역별로 다른 정체성을 가지던 통일국가 고려의 백성들이 여몽전쟁을 기점으로 통합된 민족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과도 비슷하다.[4] 스코트어: 내 안에 하느님이 나를 보호한다[5] C.E. 43~410[6] 작센족이라고도 한다. 이들의 고향이 독일 작센 지방이기 때문이다.[7] 기본적으로 부족 단위로 생활하고 하위 부족이 상위 부족에 종속된다.[8] 양쪽의 혈통을 다 받았다.[9] 보수당의 주장[10] 잉글랜드와 법역을 공유해서 잉글랜드 + 웨일스가 동일한 법을 쓰는 경우가 많다.[11] 물론 극우 세력이 전부 잉글랜드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12] 창당 당시 잉글랜드 자치 의회 설치와 같은 걸 주장했다가 2014년에 더 과격하게 잉글랜드 독립을 공약했다. 그랬다가 역풍을 맞아서 2016년에 잉글랜드 독립은 배제하고 다시 잉글랜드 자치 의회 설치 주장으로 복귀했다.[13] 그래도 잉글랜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정당 중에서는 그나마 저명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14] #[15] 등록 성공 시 런던 지역에서 쓸 수 있는 도메인은 .uk, .london, .eng 모두 3개가 된다고 하지만 아직까진 요원한 일이다.[16] 이미 2000년에 자치 단체화된 지 오래다[17] 유럽 의회 지역구와 선거 방식은 유럽연합 차원에서 큰 틀만 정해 놓고 세부적으로는 각 회원국이 알아서 정하게 되어 있다.[18]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비례 대표처럼 폐쇄식 명부를 사용한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를 쓰되 전국 단위가 아니라 권역별이다. 다만 북아일랜드는 단기 이양식 투표(STV)를 실시한다. STV는 선호투표제의 일종이면서 동시에 비례 대표제의 일종(정당 명부식은 아님)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영국은 전국이 동일한 선거 방식은 아니지만 결국 권역별 비례 대표제로 유럽 의회 의원을 뽑는 셈이다.[19] 한국 국회나 지방 의회의 지역구보다 지역이 크고 선출 방식도 1명의 의원을 뽑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명의 의원을 비례 대표로 뽑는다.[20] 영국의 해외 영토로 스페인 남부에 있다.[21] 본래는 지브롤터 주민들은 유럽 의회 선거에서 배제시켰다. 영국 총선에서도 속령들은 지역구가 없어서 투표권이 부여되지 않는데 이걸 확대 적용한 셈이다. 하지만 이 방식이 유럽 인권 재판소에 제소돼서 유럽 의회 선거에서 지브롤터 주민들을 배제하지 말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영국에 할당된 유럽 의회 의석을 덜어내서 인구가 극도로 적은 지브롤터에 할당하는 건 여러 모로 무리라고 생각해 지브롤터 유권자들을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에 병합했다.[22] 속령들을 유럽 연합의 일부로 포함시킬지 말지는 각 지역 사정에 따라 정한다.[23] 물론 이들 지역은 지방 자치 단체 상위에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자치 정부와 자치 의회가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건 '지방' 자치 단체라기보다는 거의 국가 수준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으니 논외로 하는 편이다.[24] community council은 영국 전체에서 통용되는 명칭이고 잉글랜드만 한정할 경우 parish council이라고 한다. 다만 이들 기관이 스스로 사용하는 명칭은 달리할 수 있는데 커버하는 단위가 town이면 town council, city면 city council이라는 명칭을 대신 사용할 수도 있고 그냥 community council이라고 칭해도 된다.[25] 그레이트브리튼 대부분 지역에 community council이 존재하나 없는 곳도 존재한다. community council의 설치는 필수가 아니라서 런던에는 community council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