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
嬴扶蘇
? ~ 기원전 210년
중국 진나라의 황태자. 시황제의 장남이자, 이세황제의 형.
총명하여 아버지로부터 장래를 촉망받았다. 하지만 사상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수많은 서적들을 불태우고, 자신을 비판한 유생 460여명을 생매장하게 된 사건인 즉, 분서갱유를 행하던 아버지에게 자제해달라고 간언[1] 했다가 분노를 사고 말아서 흉노족의 국경 감독을 명령받아 몽염과 함께 사실상 벽지로 추방당했다.
진시황은 부소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순행 중에 급사했고 진시황의 사망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밀로 부쳐졌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환관 조고와 이사는 부소에게 자결을 명령하는 거짓 황명을 보냈고 부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이 바로 사구정변이다.[2] 이후 호해가 이세황제로 즉위한다.
흔히 소설 초한지의 영향으로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삼세황제 영자영이 부소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부소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기록은 없다.
후에 진승·오광의 난에서 진승이 부소를 사칭하고, 오광이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을 사칭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중국, 일본 학계에서는 부소의 어머니가 초나라 출신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다.
부소가 자결하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에서 시작하는 PC용 액션 RPG Prince of Qin(진의 왕자)이 2002년 출시됐다. 평가는 그냥 저냥인듯.
드라마 진시명월에서는 배우 장상이 부소역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검왕조에서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진나라의 군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기 전에 군주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image]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유방전 스토리에서 등장해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벌이자 학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한 처사라고 하는데, 이사가 궁중의 법도를 어겼다면서 예를 갖추라고 하자 황제의 총기를 어지럽힌다면서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진시황이 그렇게 나약해서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냐면서 장성의 감군에 임명되어 몽염과 함께 축조하라는 명령을 받고 궁궐에서 쫓겨났으며, 이후로는 직접적인 등장 없이 진시황 사후 조작된 유서를 통해 자결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초상화는 본래 부손의 초상화로 쓸 예정이었지만, 부손의 등장이 취소되면서 유방전 스토리에서 부소의 초상화로 쓰였다.
? ~ 기원전 210년
중국 진나라의 황태자. 시황제의 장남이자, 이세황제의 형.
총명하여 아버지로부터 장래를 촉망받았다. 하지만 사상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수많은 서적들을 불태우고, 자신을 비판한 유생 460여명을 생매장하게 된 사건인 즉, 분서갱유를 행하던 아버지에게 자제해달라고 간언[1] 했다가 분노를 사고 말아서 흉노족의 국경 감독을 명령받아 몽염과 함께 사실상 벽지로 추방당했다.
진시황은 부소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순행 중에 급사했고 진시황의 사망은 혼란을 피하기 위해, 비밀로 부쳐졌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환관 조고와 이사는 부소에게 자결을 명령하는 거짓 황명을 보냈고 부소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이 바로 사구정변이다.[2] 이후 호해가 이세황제로 즉위한다.
흔히 소설 초한지의 영향으로 진나라의 마지막 군주인 삼세황제 영자영이 부소의 아들로 알려져 있지만, 부소의 아들이라는 명백한 기록은 없다.
후에 진승·오광의 난에서 진승이 부소를 사칭하고, 오광이 초나라 최후의 명장 항연을 사칭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중국, 일본 학계에서는 부소의 어머니가 초나라 출신이 아니었냐는 의견도 있다.
1. 창작물에서
부소가 자결하지 않았다면? 이란 가정에서 시작하는 PC용 액션 RPG Prince of Qin(진의 왕자)이 2002년 출시됐다. 평가는 그냥 저냥인듯.
드라마 진시명월에서는 배우 장상이 부소역을 맡았다.
애니메이션 검왕조에서 춘추전국시대 말기에 진나라의 군주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기 전에 군주 자리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image]
삼국지조조전 Online에서는 유방전 스토리에서 등장해 진시황이 분서갱유를 벌이자 학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에 대해 옳지 못한 처사라고 하는데, 이사가 궁중의 법도를 어겼다면서 예를 갖추라고 하자 황제의 총기를 어지럽힌다면서 죽어 마땅하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진시황이 그렇게 나약해서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냐면서 장성의 감군에 임명되어 몽염과 함께 축조하라는 명령을 받고 궁궐에서 쫓겨났으며, 이후로는 직접적인 등장 없이 진시황 사후 조작된 유서를 통해 자결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초상화는 본래 부손의 초상화로 쓸 예정이었지만, 부손의 등장이 취소되면서 유방전 스토리에서 부소의 초상화로 쓰였다.
[1] 기록에 의하면 부소는 평소에 공자의 말씀을 외고 본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다.[2] 몽염은 이것이 거짓 황명이라는 것을 간파히고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부소는 의심하는 것 자체가 도리에 반한다고 말하고 자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