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전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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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斯
(? ~ 기원전 208년)
1. 소개
2. 생애
2.1.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2.2.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3. 평가
4.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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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이자, 승상. 진시황을 도와서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인물. 원나라 말기에 저술된 서사회요에 따르면 자는 통고(通古)이지만, 꽤 먼 후대의 기록이라 사실인지 알 수 없다.

2. 생애



2.1.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원래는 초(楚)나라 상채(上蔡) 사람으로 하급 관리였다. 젊었을 때부터 야망에 불타는 사나이였는데, 관청의 오물을 먹는 쥐들은 변소를 전전하면서도 언제나 겁에 질려있는 반면 곡식을 먹는 넓은 창고의 쥐들은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고 자신도 부유한 집의 쥐처럼 살기 위해 초를 떠났다는 일화가 유명하다.[1]
이후 당대의 대강사 순자의 밑에 들어가 한비자와 함께 공부하고 이사가 진나라로 가려고 한다. 이때 순자가 이사에게 왜 조국이 아닌 진나라로 가냐고 묻자 "진나라는 모든 준비가 다 갖춰진 나라입니다."라고 말하면서[2] 진나라로 갔다. 진나라로 가자 이사의 재능을 알아본 여불위의 추천으로 장사의 벼슬에 오른다.
이후 여불위가 실각한 틈을 타 진시황의 환심을 사서 객경의 벼슬에 오르며 진나라의 기득권 세력과 맞서서 법가식 통치를 밀어 붙였다. 당시 이사가 진시황에게 유세를 하였는데 진나라의 강함과 대왕의 현명함이 있기에 솥단지 위에 앉은 먼지를 털어내듯 손쉽게 제후들을 멸망시키고 대업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이후 진시황은 이사를 중용한다.
이후 진나라는 이미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원교근공 정책[3]과 강력한 국력과 회유, 뇌물, 암살, 이간질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외교로 전국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하였다.[4]
하지만 위기감을 느낀 한(韓)나라는 진의 국력을 소모시켜 시간을 벌고자 기술자인 정국(鄭國)을 진나라로 보내 진왕 정에게 척박한 진나라 땅에 수로를 건설하여 개간할 것을 건의하도록 하였다. 다만, 이는 진나라의 국력을 일시적으로 약하게 만들어 시간은 벌어줄 수 있어도 결국 개간이 끝나고 나면 진나라에 이로운 일이었다. 결국은 정국이 첩자라는 것이 발각되었지만, 공사를 완공하면 진나라는 부강해질 것이라고 설득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진나라에는 외국인을 모두 첩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분위기가 생겼다.
이 사건을 빌미로 진나라 귀족들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외국의 인재들을 모두 진나라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축객령'을 진왕 정에게 상소하고, 진왕 정도 이를 시행한다. 이때 쫓겨날 위기에 처한 이사는 진왕 정에게 '간축객서'를 써서 전한다. 이 간축객서 중 특히 '태산은 한 줌의 흙도 사양하지 않아 그 높이를 이루었고, 황하는 한 줄기의 시냇물도 가리지 않아 그 깊이를 이루었다'는 문장이 유명하다. [5] 이 어구는 현대에도 자주 쓰이며 대한항공의 광고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이사가 간축객서를 통해 주장한 말은 모두 맞았다.'''[6]
이 편지는 진왕 정의 마음을 사로잡아 축객령은 폐지되고 진나라는 떠나간 모든 인재들을 불러들였다. 이후 이사는 진왕 정의 총애를 받게 된다. 이사가 진시황의 측근이 되어 가장 먼저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 나라는 한나라인데 한나라는 그동안 진나라의 속국처럼 행동해 왔지만 완전한 진나라의 영토가 아니어서 진나라가 다른 곳을 공격하고 있을 때 언제 배신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한나라에서는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한나라의 왕족이자 진왕 정이 감명깊게 읽은 책의 저자인 한비자를 보내 진왕 정을 설득하도록 했다. 한비자는 한나라를 공격하지 말고 조나라를 공격해야 하는 이유를 진시황에게 설명했는데
첫째. 한나라는 이미 진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어 한나라를 공격하면 아무도 진나라를 믿지 않게 될 거다.
둘째. 한나라가 멸망하면 조나라가 즉각적으로 위나라와 동맹하여 조나라를 공격하기 힘들어진다.
셋째. 조나라를 먼저 공격해 위나라와 제나라를 정벌하면 한나라는 편지 한 통으로 항복하게 되니 굳이 공격할 필요가 없다.
한비자는 원래 말더듬이라 달변가는 아니었지만 논리 정연한 주장에 진왕 정은 감탄했다. 문제는, 한비자는 진나라 같은 대국이 요가(姚賈)를 이용하여 뇌물로 타국의 관리를 매수하는 건 법가 사상을 기초로 하는 진나라에겐 맞지 않다고 요가를 비난한 것이었다. 이를 알게 된 이사와 요가는 진왕 정에게 한비자는 한나라의 왕족 출신이라 진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조금도 없고 한비자가 이야기한 계책은 전부 한나라를 위한 계책이라 모함하여 한비자를 감옥에 가두고 독살시켜 버렸다. 여기서 만약 진시황이 한비자를 죽인 이사와 요가를 원망해 진상을 밝히고 이사와 요가를 처벌하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진시황은 이사와 요가의 계획의 실용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그리하지 않았다. 대신 한비자가 죽은 이후 한비자를 사면하여 그의 정책과 사상을 이용하고 알릴 수 있게 하였다.[7][8]

2.2.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후


이렇게 진시황을 위한 책략을 많이 낸 덕분에 말년에는 그 스스로가 진나라의 최대 기득권자가 되었다. 이걸 보면 애초에 진나라의 기득권 세력과 싸운 것도 자신이 그 위치로 올라가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수도 함양 안을 오갈 때 황제에 버금가는 무리를 이끌고 행차해 진시황이 경계하기도 했다고 한다.[9] 그의 딸과 아들은 진나라 황족과 결혼했고 이사의 장남 이유도 큰 세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결국 시초가 잘못되면 끝까지 문제가 발생하듯이 젊었을 때는 기득권 세력과 맞서던 이사도 결국 기득권 세력이 되어 간신 조고와 작당하여 황태자 부소에게 갈 유언장을 조작하는 병크를 터트린다. 애초에 제대로 된 진나라 충신이었다면 조고와 같은 간신배와 결탁하지 않았겠지만 스스로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이다.[10] 물론 사기에 기록된 이 작당의 과정을 보면, 이사가 처음부터 시황제의 유언을 조작할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조고가 후사로 호해를 세울 것을 권하니, 이사는 처음에 "이는 감히 신하들이 논의할 일이 아니다"라며 거절한다. 그러나 조고는 진나라가 전통적으로 왕이 바뀌면 선왕의 신하들이 대부분 권세를 잃고 야인이 되거나 심하면 목숨까지 잃어왔던 경향을 내세워[11] 이사를 협박했고, 이 협박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그 덕에 진나라는 호해라는 희대의 암군이 즉위하였고, 나라가 막장이 되자 이사는 호해에게 간언을 시도했으나 쇠 귀에 경 읽기. 이런 사례만 보아도, 조고나 이사 둘 다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유언을 조작했지만 적어도 이사에게는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고는 이사의 이런 마음을 간파하고 그를 해치기 위해 흉계를 꾸미게 된다. 신하들이 황제를 알현할 수 있게 자리를 주선하는 자신의 직무를 이용하여 호해가 한창 여자들과 술마시고 신나게 놀고 있을 때를 골라 이사에게 호해를 대면할 수 있게 해주었고, 철없는 호해는 노는 자리에서 이사가 머리아픈 업무 이야기나 간언을 해대자 짜증을 내면서 이사의 말을 한귀로 흘려버렸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호해는 이사를 불쾌하게 여기게 되었고, 이것을 기회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조고는 이사를 이사의 장남이자 삼천태수였던 이유가 반란자 진승의 군대가 지나갈 때 막지 않았고 이사와 진승이 서로 내통했다는 혐의를 씌워서 감옥에 붙잡아두고 만다. 이사는 억울함을 하소연했지만 조고는 무시해 버렸고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문을 하게 된다.
가혹한 고문에 견디지 못한 이사는 결국 자신에게 씌워진 누명을 인정하고 말았으며, 호해의 명령으로 함양의 시장에서 요참형을 당한다. 이사 뿐만 아니라 당시의 반역자 처리규정에 따라 이사의 일가친척(삼족) 역시 모두 참형을 당해서 대가 끊기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만다. 앞서 호해가 그의 장남 이유의 죄를 논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지만 이미 이유는 장안이 동아 전투에서 패주할때 항우&유방의 추격대에 맞서서 싸우다가 전사해 있었다.
이사는 요참형을 당하기 전에 오형을 당했는데 처형당하기 전에 차남을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 너와 함께 다시 한번 누런 를 끌고 상채[12]

동쪽 문으로 나가 토끼 사냥을 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겠구나!'''

이에 이사와 아들은 소리내어 울고 모두 죽임을 당했다.[13]
일반적으로 재상 정도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상황이 여기까지 몰리면 자결하는 것이 통례였지만, 이사는 자결하지 않고 버티다가 사형을 당했다. 그것은 이사가 진나라의 전국 통일에 워낙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스스로도 그것이 참작되어 사형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고의 뒷처리에는 자비가 없었다.
나중에 전한소하유방에게 의심받아 감옥에 갇혔을 때 신하들에게 유방이 이사를 거론하며 '신하란 허물은 자신이 안고, 유익한 것은 군주에게 양보하는 게 미덕이라 들었는데 소하는 전혀 아닌 듯 하다'라고 변명하자 왕씨 성의 사람이 소하를 옹호하며 "그런 식으로 진시황이 자기 잘못에만 관대하게 굴게 만든 탓에 진나라가 망한 것인데, 그자들에게 대체 본받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사를 거론하며 승상을 의심하시다니 천박한 짓입니다."라며 유방을 깠다.
사기에는 이사가 죽자 진나라 내부에서는 이제 진나라는 끝났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호해나 조고를 포함한 3명 중에서 그나마 국정을 잘 이끌어갈 능력이 있던 유일한 인재가 숙청되면서 더이상 진나라를 보호할 인재가 없음을 한탄한 것으로 보인다.

3. 평가


희대의 간신조고와 손을 잡는 실수를 저질러 결국 자신이 헌신해온 진 제국과 개인의 안위까지도 망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나 사실 알고 보면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며 실제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이 군현제. 중앙의 황제가 직접 중앙에서 관리를 파견해 지방을 통제하는 군현제는 진시황이 추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설립한 것은 이사의 업적이다.
통일 전 진나라는 상앙의 개혁으로 군현제가 실시되고는 있었지만 이는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진나라 땅에서만 추진되고 있었지만 이것을 드넓은 중국 전체에 강력한 법가 사상과 함께 적용시킨 것은 이사의 업적이다. 그러나, 통일 이전, 중국은 주나라의 시스템인 봉건제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리잡고 있었기에 군현제는 익숙치 않은, 너무나 시대를 앞서간 정치 시스템이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이 항우다. 진을 멸망시키고 항우가 그대로 복권시킨 정치 시스템이 봉건제였고 이 봉건제는 강력한 중앙권력의 집권의 부재로 이어졌고 이것의 결과물이 바로 초한전쟁. 그렇다면 이사의 군현제는 실패한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는 군국제를 실시한다. 군현제는 중앙정부의 아주 효율적인 정치 시스템이었으나, 천년 동안 이어져온 봉건제를 급작스럽게 바꾸는 것은 누구에게나 크나큰 심리적인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군현제와 봉건제를 적절히 섞어 놓은 것이 군국제였다. 그러나 군국제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 왕에 봉해진 공신들이 유방이 살아있을 때는 몰라도 유방 사후에는 중앙집권에 분열이 생길 가능성이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방이 내놓은 방책이 왕에 봉해진 공신들의 토사구팽이었다. 그렇게 해서 유방 말년부터 시작해 결국에야 무제 때 군현제가 거의 완전히 군국제를 대체하고, 더 나아가 후대 왕조에도 군현제가 시행된다.
이사를 한비자의 죽음 및 조고와의 결탁과 출세를 위해 조국을 배신한 점 때문에 단순히 비도덕적인 인물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데, 후대 왕조의 통치수단으로 완벽히 자리잡은 군현제를 가장 처음 전국적으로 시행시킨 점에서 이사가 매우 혁신적인 정치가이자 행정가였음을 잊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박하고 편협한 평가다. 거기다 한비자 항목을 들어가보면 알겠지만 현대에는 태자 부소가 아니라 호해를 후계자로 정한 게 시황제라는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그 밖에도 한비자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해당 의혹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로부터 이기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14]

4. 기타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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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13
삼국지11에서는 고대무장으로 등장하였다. 정치력은 무려 98이나 되며 지력도 높지만 나머지 능력은 형편없다. 그래도 특기능리라서 내정엔 쓸모가 많다. 삼국지12에서도 등장하지만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고, 삼국지 도원결의 카페같은 데에서 파일을 받아 강제로 데이터를 열어야 한다. 능력치는 여전하며 병과는 궁병이고 전법은 지력저하.
삼국지 13에서도 등장. 능력치는 15/24/88/98로 정치력 특화이다. 중신특성은 합리철저에 특기는 시원찮게 상업7 / 문화3 / 설파8로 부락 탈취특화로 되어있다. 전법은 군락지원이지만 정작 통솔과 무력이 저래서는 전장에 나오는 것 자체가 민폐다.
초한전기에서는 삼국(드라마)에서 순욱역을 맡았던 이건신이 연기하였다. KBS 더빙판 성우도 똑같이 순욱 역을 맡았던 홍진욱.[15] 진시황이 여는 연회에서 마음대로 다른 대신들을 부르거나, 아예 진시황이 직접 불러들여 바로 옆에서 비계를 건네주는 등 그의 위치를 보여준다. 이 연회의 사건으로 분서갱유의 싹이 트는듯한 연출로 나온다. 진시황 사후 조고가 호해를 부추겨 부소를 살해하자 할땐 그래도 이사는 진시황의 원래 유언을 따라야 한다 했지만, 호해가 보기에도 딱할 정도로 찌질하게 징징대고 그 자신도 부소에게 실각될 것이 뻔해 결국 눈감고 넘어간다. 하지만 이후 호해를 등에 업은 조고가 전횡을 일삼자 부소가 황제였다면 자긴 실각해도 나라 꼴이 이러진 않았을 거라고 하며 조고와 손잡고 호해를 황제로 세운 일이나 크게 치부한 것 등을 후회하고, 호해에게 마지막으로 간언한 뒤 낙향하여 아들과 함께 유유자적하게 살겠다고 하며 궁에 들어간다. 호해에게 진승-오광의 난을 진압해야 한다 간언하지만 조고의 음모로 하옥당한다. 감옥 안에서 평소 조정에서 싸우던 다른 신료들과 화해하고는 역사대로 사형당한다. 권력욕이 강하긴 했지만, 적어도 조고같은 간신배는 아니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4.1. 킹덤


여씨사주의 한 사람. 자세한건 이사(킹덤) 참조.

4.2.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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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무장으로 등장. 병종은 풍수사계고 성우는 이규창이다. 진나라 고대무장 중에서 시황제 영정과 함께 쓸만한 장수 성능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유방전 연의에서는 조고와 짜고 진시황의 유언을 조작한다.

4.3. 천하제일상 거상


진시황릉에 '이사의사념'이라는 몬스터가 출몰하는데, 본 문서의 인물을 모티브로 한 유닛이다. 진시황릉 최하층인 지하궁전에 입장하자마자 이사의사념만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볼 수 있다. 또한 그보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진시황의혼' 몬스터가 있는데, 이 몬스터를 잡으면 해당 부대에 이사의사념이 같이 출몰하고 있다. 체력은 1만. 속성 패치 이후로 진시황의혼 업그레이드 버전의 보스몬스터가 추가되었는데[16], 이사의사념 역시 강화된 버전으로 불사의진시황 부대 내에 함께 출몰한다. 강화된 버전의 체력은 '''30만'''.
위의 패치와 함께 진시황의 부활을 저지한다는 내용의 주간 퀘스트 시리즈가 하나 추가되었다. 그 3번째 퀘스트가 바로 이사의사념을 200마리 때려잡는 것. 이 퀘스트를 부여할 때 NPC 민쿤의 설명에서 "이사는 진시황의 책사였다" "죽어서까지 진시황을 부활시키려는 간계를 꾸민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이 문서의 이사를 가리키는 것이 확실시된다.[17]
특이한 점은 드랍템중에 '시황제의옥새'라는 아이템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사가 권력을 거의 휘어잡아서 진시황이 경계하기도 했다는 위의 서술을 참고하면 의외로 고증이 잘 된 부분이긴 한데, 잃어버린 옥새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참고로 진시황의 주요 드랍템은 '황제의편지'인데, 이거 가짜라는 설정이다. 여러모로 막장.
[1] (어느 날 이사가) 관청의 변소에서 쥐가 오물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의 인기척이라도 나면 깜짝 놀라고 겁을 먹는 모습을 보았다. 또 어느 날인가는 창고에 들어갔는데, 그곳의 쥐들은 창고의 곡식을 먹으면서도 사람이나 개를 겁내지 않았다. 이에 이사는 '사람의 현명함과 현명하지 않음은 비유하자면 쥐와 같으니 자신이 처한 환경에 달려있구나!'라며 탄식했다. -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2] 이사는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그 유명한 말 중 하나가 바로 "천하게 대우를 받는 것보다 더한 수치는 없으며 빈곤한 것보다 큰 슬픔은 없을 것입니다. 비천한 지위와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면서 세상을 오직 비관만 하는 것만이 선비의 도리가 아닐 것입니다."[3]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고, 먼 나라와 화친하는 샌드위치 전략.[4] 무엇을 했냐면 명성이 높은 신하들 중에 뇌물로 회유가 가능한 자에겐 뇌물을 주었고, 말을 듣지 않은 신하는 암살, 그렇지 못하면 군주와 이간질을 획책하기 시작한다.[5] '황하는 한 줄기의 시냇물도 가리지 않아'란 말은 이전부터 전해져 오는 말을 이사 나름대로 재구성한 표현이다. 춘추좌씨전의 "천택은 더러운 물도 받아들이고, 산과 숲은 독을 가진 짐승도 용납하며, 아름다운 옥도 티가 있는 법이다(川澤納汚 山藪藏疾 瑾瑜匿瑕: 천택납오 산수장질 근유닉하)"라는 춘추시대 진나라 대부 백종이 한 말을 고친 것.[6] 이사의 말은 이후에도 인재의 능력을 평가하여 능력에 따라 기용을 해야지 다른 외적 요인들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줄곧 인용된다.[7] 때문에 이를 근거로 이사가 한비자를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견해가 달라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 한비자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으며, 설사 한비자와 친한 친구 사이였다 해도 한비자가 한나라를 정벌하는 데 방해가 되어 죽인 것이라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8] 현재 한비자와 이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기존의 개인적인 사심에 의해서, 아니면 냉혹한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속한 국가에 방해거리가 될 수 있는 적국의 인재를 없앤 것.[9] 정확히는 그 경계대상이 이사가 아닌 승상이었는데 그 승상이 누군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사일 가능성은 존재.[10] 사기의 저자 사마천이 정식으로 소개하고 있는 설이다. 그러나 진시황의 사후를 처리하는 과정이 워낙 비밀스러운 황실의 비밀이었는데, 백여 년 정도 후의 사람 사마천이 확실히 알 리가 없지 않겠는가? 다만 과연 진시황이 죽은 뒤에 이들의 작당질을 이들 둘만이 알았을 리는 없다. 나아가서 학자 공원국은 이사가 몰락한 후 고문당하면서 있는대로 이런 이야기들을 떠들어댔을 거라고 추측한다.[11] 상앙, 장의, 여불위 등. 타국까지 확대하면 오자서오기, 악의까지 해당된다.[12] 이사의 고향이다.[13] 이 일화에서 동문견(東門犬) 또는 황견지탄(黃犬之嘆)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회한과 부질없이 권력을 좇아 내달려온 무상한 인생역정에의 자성이 담긴 한탄을 의미한다.[14] 해당 의혹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한비자를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이유였으며 이사의 사심은 없었다고 보고 있다.[15] 재밌는 점은 이사, 조고, 호해 세 사람의 성우 모두 삼국에서 같은 배우가 맡은 배역을 맡았었다.[16] 정확한 명칭은 불사의진시황(火)으로, 진시황의혼의 체력이 2만이 채 되지 않는 것에 비해 이쪽은 체력이 무려 '''92만'''이다[17] 단 이 때 잡아야 하는 이사의사념은 강화된 버전이 아닌, '''일반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