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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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بصرى الشام
영어 Busra al-Sham
시리아 남부의 도시. 정식 지명은 샴 지방의 부스라이지만 그냥 보스라 혹은 부스라로 부른다. 영어로는 Bostra, Busrana, Bozrah, Bozra 등으로 표기가 다양하다.
로마 제국 초기의 유적이 아직도 잘 남아있어 서양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던 도시였지만 시리아 내전을 겪으며 전투로 유적이 일부 훼손되었고 2만명에 달하던 인구도 반감하였다. 위기에 처한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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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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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초기에 제3 키레나이카 군단 (legio III Cyrenaica)의 군단 기지였고 동시에 아라비아 페트라에아 속주의 치소로서 번영하였는데, 현재까지 그 유구가 잘 보존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634년,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가 이끄는 이슬람 군대는 도시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과 가산 왕국의 연합군을 격파하여 이슬람 시대가 도래하였다. 우마이야 왕조 시대에 보스라는 그 수도인 다마스쿠스의 남쪽 관문으로서 중시되었으나 750년에 우마이야 조가 멸망한 이후로는 쇠퇴하였다. 11세기 후반, 보스라는 파티마 왕조와 셀주크 제국 간의 각축과 십자군의 위협을 받으며 요새 도시로 변모하였고 이때에 로마 극장이 성채로 바뀌었다.
12세기 들어 다마스쿠스가 재차 부리 왕조의 수도가 되며 부스라는 다시 중요해졌고 이때 알 오마리 모스크가 세워졌다. 그리고 12세기 말엽, 살라흐 앗 딘이 사망한 후 아이유브 왕조가 이집트와 시리아로 분리되자, 시리아 아이유브 조의 수도는 역시 다마스쿠스였고 부스라는 부흥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13세기 이후 부스라는 겨우 100 가구만이 거주하는 소도시로 전락하여 현재는 요르단과의 국경 도시로서 이어진다. 2015년에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보스라 전투가 일어났는데 반군이 승리하여 부스라는 반군 영토가 되었다.
3. 무함마드와의 인연
이슬람 최후의 사도 무함마드는 12살 때에 당시 그를 보살피던 삼촌 아부 탈립의 대상 행렬을 따라 보스라에 왔다고 한다. 일행은 그곳에서 바히라 (게오르게스)라는 수사를 만났는데, 그는 극진한 대접을 베풀곤 무함마드를 가리키며 '인류를 지도할 사도'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로마인의 탄압을 우려한 그의 조언에 따라 일행은 시리아로 더 가지 않고 메카로 귀환하였다고 한다. 당시 보스라는 로마의 속국인 가산 왕국의 수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