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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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라 (이라크)

1. 개요
2. 특징
2.1. 자원의 보고
3. 역사
4. 기후
5. 석유에 의존한 경제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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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البصرة, Basra
쿠웨이트이란 근처의, 남부 이라크에 있는 이라크 제 3의 도시다. 알 바스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9년 기준으로 약 200만명의 인구가 있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유일한 초거대 항구로서 특히 석유 관련 운송에 중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수심이 얕아 심해로의 접근은 불가능하여, 그 경우는 걸프 해역에 직접 접한 움 카스르 항구에서 처리한다.
과거 이란과 전쟁을 치를 당시 이 지역이 격전지 중 하나였는데 이라크 입장에서 여기를 뺏기면 이라크는 내륙국(...) 신세가 되기 때문이다. 내륙국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내륙국은 바다가 없어 갇혀있기에 발전에 좋지 않은데 사막밖에 없는 이라크는 말이 필요없다. 그래서 이란군과 이 도시와 위성도시 움 카스르를 둘러싸고 격전을 벌여 간신히 사수해 내었다. 이 전쟁은 결국 이란이 무한 버티기(...)로 나가 이라크가 패배했으나[1] 이란도 이 도시를 손에 넣는데는 실패했었다.
쿠웨이트와 가까우며 실제로 사담 후세인오스만 제국 때 쿠웨이트가 바스라 주 소속이었단 것 하나만을 근거로 1990년 쿠웨이트를 무작정 침공했다가 걸프 전쟁에서 패퇴해 쿠웨이트를 토해내야 했으며 이후에도 이라크와 쿠웨이트는 철천지 원수 사이가 되었다.

2. 특징


지리적으로는 페르시아 만에서 55km 떨어져 있고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다.
이 지역은 과거 수메르 문명이 위치했던 곳이며 에덴동산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기 이슬람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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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도시면서도 특이하게도 운하 도시다. 샤트 알 아랍 수로에 접해 있기 때문인데, 이리저리 연결된 운하가 도시를 관통하므로 중동베니스라 불리기도 한다. 이 운하들은 20년 전까지는 실제 운송에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강 상류 터키시리아의 댐 건설 사업으로 강물의 수량이 부족해져서 수질이 악화되고 운하 운송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실질적 무역항 역할은 위성도시인 움 카스르가 행한다.
수로로 접한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스페인의 아프리카라고 불리는 세비야와 유사하다.

2.1. 자원의 보고


이라크는 세계 4위의 원유 매장량을 가진 나라인데, 대부분이 바스라 근처에 묻혀있다.
바스라 지역의 유전 예상 지역의 80%는 탐사조차 안된 상태. 따라서 인근에 유정이 많다. 현재 키르쿠크, 모술과 함께 바스라와 나시리아가 주 유전지대이며 쿠르디스탄에 위치하고 터키와 국경 분쟁을 겪는 키르쿠크나 모술과 달리 바스라는 안정된 남부에 위치해 생산에 차질도 없다. [2]
그리고 사막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의외로 풍요로운 경작 지대라서 주로 , 옥수수, 귀리, 이 산출되고 있으며 가축 또한 산출되고 있다.
농작물의 경우 오아시스에서 나는 고품질의 대추야자로도 유명하다.[3]

3.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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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 Bin Abi Talib 모스크
바스라는 636년에 이슬람 제국의 군사 주둔지 및 경비 초소로 건설되었다. 페르시아 만에 가깝고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및 동쪽의 국경에 접근이 쉬워서 점차 주요한 도시로 성장했다. 바스라는 8세기 및 9세기까지 문화의 중심이었고, 종교와 문예가 발달하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신밧드가 바로 바스라 출신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1411년 ~ 1432년까지 잘라이르 왕조의 수도이기도 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는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의 무역상들이 들어와 국제적 도시가 되었고 이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에 의해 점령당했다. 뒤이은 영국의 위임통치 기간 동안 바스라는 제국주의의 중동 거점으로 성장하였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와 가까운 데다가 주요 항구이다 보니 근대 및 현대에도 이래저래 전쟁이나 혁명에 휩쓸린 이력이 있다. 근현대에서의 바스라와 관련된 주요 역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영국오스만 제국 간에 바스라 전투가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바스라를 점령하였다.
러시아로의 보급물자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는 중요한 항구 역할을 했다.
심심하면 이란의 포격을 받았고, "라마단 작전"이나 "카르발라 5 작전" 같은 여러 격렬한 전투의 전장이 되었다.
제 2의 도시이므로 당연히 전쟁에 휘말렸고 수많은 유적과 시가지가 파괴되었다. 걸프전 중에 일어난 전투 중, 쿠르스크 전투 이후 최대의 전차전이라 불리는 "메디나 다리 전투(Battle of Medina Ridge)"의 무대가 바스라 근처이다. 걸프전이 끝난 후에는 바스라가 사담 후세인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지만 이 저항은 폭압적으로 진압되었다. 1999년에 다시 한번 저항 운동이 일어났지만 이 역시 대량 처형 등을 통해 진압되었다.
바스라 외곽이 초기 이라크 전의 격전지가 되었다.
  • 바스라 전투(2008)
반미 무장단체인 메흐디 민병대를 바스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이라크군이 대규모 공세를 펼쳤다. 6일간에 걸친 전투에서 1,000명의 사상자가 났다.

4. 기후


북쪽 시리아와는 다르게 아라비아 사막에 있다보니 당연히 날씨가 매우 덥다. 특히 바스라 일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도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이다. 눈은 꿈도 못꿀 정도이다.
쾨펜의 기후 구분으로는 더운 사막기후(BWh)에 속한다. 그나마 해안에 접해있기 때문에 내륙의 도시보다는 강수량이 약간 많은 편.
7월의 평균 기온은 34°C로 사막의 높은 일교차를 생각해 보아도 매우 높은 편이고, 평균 최고 기온은 41°C에 달한다. 이 경우 체온보다 높은 기온이기 때문에 선풍기를 쐬면 더 덥다. 덥다기보단 '''뜨겁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당연히 한국에서 제일 더운 대구광역시 정도는 그냥 쌈싸먹는다. 스페인에서 유일하게 겨울에도 더운 세비야보다도 덥다.
흔히 아프리카가 덥다는 인식이 있지만 이는 사하라 사막북아프리카 일부의 이미지에 불과하고 적도 근처는 의외로 비가 자주 와서 그렇게 덥지 않다. 아시아에 비해서 아프리카는 대륙 서안이라 건조한 편이라 그늘에 들어가면 쾌적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바스라 등 남부 이라크 일대는 아프리카보다 훨씬 덥다. 그나마 습도가 동부 아시아보단 낮다는게 위안이면 위안.
한겨울인 1월달의 최저 기온 평균은 12°C, 낮 기온은 18°C 정도로서 평균 13도로 서울의 4월 기온, 아열대인 홍콩 및 타이베이의 1월 한겨울 기온과 비슷하다.
1921년 7월 8일에 58.8°C를 기록,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으로 최고기록. 2016년 7월 22일에도 낮 기온 53.8℃, 이어진 밤 기온 38.8℃라는 무시무시한 폭염이 기록되었다.
이렇게 어마무시한 날씨는 덥다기보단 뜨겁다고 해야 맞을 정도인데 옆의 쿠웨이트도 이와 비슷한 날씨를 보인다.

5. 석유에 의존한 경제


이라크라는 나라가 다 그렇듯이, 이 도시도 주로 석유로 먹고 산다.
이라크의 가장 큰 유전 중 몇 개가 이 근처에 있고[4] 대부분의 석유 수출분이 이 도시의 알 바스라 석유 터미널에서 출항한다.
직접적인 원유 산업뿐만 아니라 관련 석유화학 산업도 있어서 폴리에틸렌이나 PVC 같은 석유 화학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석유 덕분에 운송 및 물류 산업도 발달했다. 바스라는 이라크의 6개 항구 모두에 대한 근거지인데, 이들 항구 중 움 카스르(Umm Qasr)가 가장 크다.
허나 석유의 주산지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이라크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기반시설 복구 부진 등 정부의 무능이 장기화 됨에 따라, 2018년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산유국임에도 석유값이 비싸 에너지가 모자라는 상황은 어째 베네수엘라와 같다.

6. 기타


  • 다행히도 이곳은 아직 ISIL에게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라크 가장 남쪽에 위치한 최후방이기 때문. 현재 이라크 내 ISIL이 거의 소탕된 상태라 과거 전쟁이 있었지만 축복의 도시라고 불린다.
  • 역시나 대항해시대로 꽤나 잘 알려진 도시이다. 대항온에서는 우르를 끼고 있기 때문에 아덴에서 줄기차게 드나들어야 한다.
  • 범우사의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는 '바소라'로 오역되었다. 중역의 폐해로 추정된다.

[1] 애당초 인구라든지 경제력이라든지 국력이라든지 군사력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이라크가 이란에 열세였다. 이란혁명 이후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틈을 타서 이라크의 후세인이 무모하게 선빵을 날렸다가 발리다시피한 전쟁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주로 소련제 구식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이란은 당시로써는 최첨단 미국제 전투기 F-14를 보유하고 있었다.[2] 모술 그리고 키르쿠크 등은 터키가 과거 오스만 제국 때 행정구역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 중이다. 터키이라크 간 국경분쟁지대인 셈. 실제로 이 지역엔 쿠르드인 말고도 튀르크계 투르크멘 및 노가이 타타르 부족들도 대거 살고 있어 터키가 영유권 주장을 할 근거가 충분하다.[3] 사실 원래 메소포타미아는 아주 비옥한 온대림 지대였다. 그러나 페르시아, 몽골 제국, 오스만 제국 등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나무가 모두 베이고 관개사업에도 실패해 현재는 대부분 농사를 못 짓는 사막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4] 키르쿠크, 모술 그리고 이 바스라와 나시리아 등이 이라크의 주요 유전지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