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로군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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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ffffff 북로군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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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시기'''
1919년 ~ 1921년
'''총재'''
서일
'''사령관'''
김좌진
'''주요 전적'''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1. 개요
2. 결성
3. 활약
4. 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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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北路軍政署'''
1919년 북간도에서 조직된 항일독립운동단체.

2. 결성


북로군정서는 1911년에 조직된 대종교 계통의 항일운동단체인 중광단(重光團)이 전신이 되어 발족하였다. 1919년 3.1 운동 이후 북간도에서 대종교 계열의 중광단을 모체로 공교회[1] 등의 단체가 참여하여 대한정의단이 결성되었고, 대한정의단 산하에 무장투쟁을 위한 조직인 대한군정회를 조직하였다. 대한군정회는 군사 지도자로 서일, 김좌진 등을 초빙하여 군사훈련에 주력하였다.
대한군정회에 참여했던 김좌진은 신민회 회원들과 교류하고 공화주의 성향이었기 때문에 복벽주의 성향을 띤 공교회 계열 회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이후 대한정의단 내부에서 공교회 계열 회원들이 이탈하였고, 1919년 10월에 대한정의단과 대한군정회 조직을 통합하여, 서일을 총재로 하고 김좌진을 사령관으로 하는 대한군정부가 조직되었다. 이후 대한군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로 조직을 북로군정서로 개편하였다.[2]

3. 활약


북로군정서는 서로군정서, 대한독립군과 연합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때 북로군정서는 1920년 봉오동 전투청산리 전투에서 일제에 대승하였다.

4. 와해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한 일제는 간도 참변을 일으켜 간도의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다. 이때 북로군정서는 다른 만주의 항일독립군들과 함께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와 소련의 경계지대인 밀산에 집결하였다. 여기서 독립군들이 통합하여 서일을 총재로 한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고, 대한독립군단은 일단 소련의 자유시로 향했다. 여기서 서일은 자유시로, 김좌진은 회군하여 만주로 향했는데 그뒤 1921년에 자유시 참변이 발생하여 대한독립군단은 와해되었고, 북로군정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김좌진은 이때 자유시 참변으로 흩어진 대원들을 모아 다시 독립군을 조직했지만, 전과 같은 독립군단은 편성되지 못하였다.

[1] 孔敎會. 유교 계열의 단체이다. 공교회는 구 조선왕조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며 복벽주의 성향을 띤다.[2] 다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 있었고, 북로군정서는 만주에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직접적 지휘는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