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 샨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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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4]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비로 샨도르는 1927년 Ⅲ 케륄레티 TVE라는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 때 나이는 16세. 케륄레티에서 비로는 1931년 컵대회 우승을 거둔 적이 있다. 결승에서 무려 페렌츠바로시 TC를 4대1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1933년 비로는 MTK 부다페스트로 팀을 옮겼고 만디 줄러와 풀백진을 이루었다. 1936년에 MTK 소속으로 드디어 헝가리 리그 첫 우승을 달성했고 이듬해 한번 더 우승에 성공했다. 하지만 1940년 MTK는 호르티 미클로시에 의해 쪼그라들었고 비로는 엘뢰레로 팀을 잠시 옮기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팀을 옮기기 전 헝가리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 것.
비로는 1941년 또는 1942년부터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우이페슈트에서 활약했고 호르티가 쫓겨나고 나서 다시 창단된 MTK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흘러간 전성기를 다시 찾을 순 없었고 1948년 데뷔팀인 케륄레티에서 마지막 시즌을 보냈다.
1.1.2. 국가대표팀
비로는 1932년부터 헝가리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고 데뷔전 상대는 독일이었다.
처음 비로는 대표팀에서 코라니어 라요슈와 호흡을 맞췄지만 코라니어가 다리 골절로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게 되자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바고 요제프 등과 2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로는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경쟁에 밀려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에 밀려 탈락하고 말았다.
1937년 코라니어가 대표팀에 돌아왔고 이 무렵에는 비로 역시 대표팀의 간판 수비수로 자리를 잡았다.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그리스를 11대1로 처참하게 박살냈으며 본선에서도 3경기 동안 1실점만을 허용하는 짠물 수비를 펼쳤다. 하지만 결승전에서는 코칭스태프의 결정에 의해 코라니어 대신 폴가르 줄러와 호흡을 맞췄고 이탈리아에 2대4로 패했다.
비로는 1946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총 54경기의 출장 기록을 남겼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키에 비해 빠른 스피드와 힘 그리고 기술적으로도 좋은 능력을 갖춘 수비수였다. 30년대 헝가리 최고의 수비수로 손꼽혔다.
3. 수상
3.1. 클럽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 2회: 1935–36, 1936–37(MTK 부다페스트), 1945 Spring(우이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우승 1회: 1930–31(Ⅲ 케륄레티 TVE)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1회: 1939-40(MTK 부다페스트), 1941–42(위페슈트 FC)
- 마자르 쿠파 준우승 1회: 1934–35(MTK 부다페스트)
3.2. 국가대표
3.3. 개인
- 헝가리 올해의 선수 1회: 1940(MTK 부다페스트)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서양식 이름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