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Die Deutsche Fußballnationalmannschaft'''
'''명칭'''
'''Die Deutsche Fußballnationalmannschaft'''[1]
(약칭) Nationalmannschaft (국가대표팀)
'''별칭'''
'''Die Mannschaft (선수단)'''[2]
Nationalelf (국가의 11인)
Die DFB-Elf (DFB의 11인)
Die Adler (독수리들)
'''FIFA 코드'''
GER
'''협회'''
독일 축구 연맹 (DFB)
'''연맹'''
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
[image] 요아힘 뢰프 (Joachim Löw)
'''주장'''
마누엘 노이어 (Manuel Neuer)
'''최다 출전자'''
로타어 마테우스 (Lothar Matthäus) - '''150경기'''
'''최다 득점자'''
미로슬라프 클로제 (Miroslav Klose) - '''71골'''
'''월드컵 최다 득점자'''
미로슬라프 클로제 (Miroslav Klose) - '''16골''' (2002, 2006, 2010, 2014)
'''홈 구장'''
''없음''[3]
'''첫 국제경기 출전'''
VS [image] 스위스 대표팀 (3:5 패)
(스위스 바젤, 1908년 4월 5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image] 러시아 대표팀 (16:0 승)
(스웨덴 스톡홀름, 1912년 7월 1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image] 잉글랜드 아마추어 팀 (0:9 패)
(영국 옥스포드, 1909년 3월 13일)
'''월드컵'''
출전 19회
우승 4회 (1954, 1974, 1990, 2014)
'''컨페드컵'''
출전 3회
우승 1회 (2017)
'''유로'''
출전 12회
우승 3회 (1972, 1980, 1996)
'''올림픽'''
출전 9회
은메달 1회 (2016)[4]
'''FIFA 랭킹'''
13위[5]
'''Elo 랭킹'''
10위[6]
'''라이벌'''
네덜란드, 브라질, 이탈리아,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프랑스, 폴란드
''' FIFA 월드컵 챔피언 '''
우루과이(1950)
(1954)
브라질(1958)
브라질(1970)
(1974)
아르헨티나(1978)
아르헨티나(1986)
(1990)
브라질(1994)
스페인(2010)
(2014)
프랑스(2018)



''' 유니폼 컬러 '''
''' 홈 '''
''' 어웨이 '''
'''골키퍼'''
'''상의'''

'''10'''


''' '''
'''1'''


'''하의'''
'''8'''
'''10'''
'''1'''
'''양말'''



1. 개요
2. 특징
2.1. 플레이 스타일
2.2. 명성
3. 상징
3.1. 검독수리
4. 별명
5. 유니폼
5.1. 홈 유니폼
5.2. 세컨드(어웨이) 유니폼
6. 홈 경기장
7. 역사
7.1. 1900년대
7.2. 1910년대
7.3. 1920년대
7.4. 1930년대 ~ 1940년대
7.5. 1950년대
7.6. 1960년대
7.7. 1970년대
7.8. 1980년대
7.9. 1990년대
7.10. 2000년대
7.11. 2010년대
7.12. 2020년대
8. 역대 감독
9. 역대 전적
11. 라이벌
12. 역대 대표팀
13. 현재 선수 명단
14. 역대 주요 선수
14.2. 역대 주장
14.3. 역대 주요 공격수
15. 징크스
16. 관련 말
17. 대한민국과의 전적
18. 사건사고
19. 청소년 대표팀
20. 둘러보기


1. 개요


독일축구 국가대표팀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가장 유명한 별명은 "'''Die Mannschaft (선수단)'''"[7]이다.
브라질에 이어 FIFA 월드컵 우승 횟수 4회로 브라질에 이은 역대 월드컵 우승횟수 2위이다. 또한 준우승 4회(1966, 1982, 1986, 2002)의 '''월드컵 최다 준우승국'''이기도 하다.[8]
유로에서는 스페인과 더불어 '''최다 우승(3회)''' 및 구 소련과 함께 '''최다 준우승(3회)'''을 기록하고 있다.
FIFA 월드컵 전적랭킹 2위에 올라있는데 1950년대 이후 계속 2위를 유지했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네 번째 우승을 달성하기 전에는 3위인 이탈리아에 우승횟수가 하나 밀렸기 때문에 불완전한 2위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본선에서 얻은 승점으로 랭킹을 메기는 전적랭킹으로 볼 때는 1950년대 이후 이탈리아보다 늘 앞선 순위를 기록하였다. 승점뿐만 아니라, 결승진출 횟수, 4강 및 토너먼트 진출 횟수, 골득실 등등 우승 횟수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이탈리아를 누르고 유럽 톱을 달렸다. 우승은 4번이지만 결승 진출 8회에 4강 진출은 13회로 국가대표 팀들 전체 1위를 달리고, 부동의 1위인 브라질과의 승점 차이를 2014년에 확연히 따라잡으면서 브라질과의 승점 차이가 10점 가량 줄어들었으나 2018 월드컵에서 승점을 단 3점밖에 못벌면서 다시 격차가 벌어지게 되었다. 2017년 3월부터 2018 러시아 월드컵 때까지 FIFA 랭킹 1위를 유지하고 있다가 자만심에 가득찬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1938년 이후 80년만에 1라운드에서 탈락한 여파[9]로 인해 2018년 8월 기준 FIFA 랭킹이 15위로 크게 떨어졌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이다.

2. 특징



2.1. 플레이 스타일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유명하며[10] 기본적으로는 우월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힘 축구를 주력으로 내세워 소위 "전차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으나, 요아힘 뢰프가 패스 축구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공-수-패스운영 등 모든 부분에서 톱 클래스가 된 완전체형 팀이 되었다. 스타 플레이어에 별 신경조차 안쓰는 것이 특징인 팀이다. 한두명의 스타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11] '''조직력을 목숨처럼 여기는 팀'''이다. 다른 국가에서는 이민자 자녀 출신 국가 대표들이 팀의 조직력을 해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독일은 아프리카 출신이든, 터키 출신이든 독일이라는 팀에 그야말로 완벽하게 녹아든다. 프란츠 베켄바워, 게르트 뮐러,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로타어 마테우스, 미로슬라프 클로제, 마누엘 노이어, 토마스 뮐러 등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도 엄청나게 널려 있는 팀, 특히 골키퍼는 세계 최강이긴 하지만 그 스타 플레이어조차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조직력에 기여하는 플레이를 시키는 팀이다. 그래서 조직력 하면 독일, 독일 하면 조직력으로 전 세계 모든 축구팀들 중 조직력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때문에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경향의 팀들인 리오넬 메시의 아르헨티나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를 상대로 강세를 보여왔다.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팀들에게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는 편이고 설령 고전한다고 해도 승리를 거두며,[12] 2002년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8:0으로 대파하고, 2006년 월드컵에선 코스타리카를 4:2, 에콰도르를 3:0으로 격파했다. 2010년 월드컵에서는 호주를 4:0으로 이기기도 했다. 2014년 월드컵에서도 포르투갈을 4:0으로 학살했다. 약팀으로 평가받는 팀들과의 경기에서 가끔 고전하는 강호들과 달리 독일은 기복없는 경기력과 득점력으로 자신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팀에게 절망을 안긴다.[13] 최근에는 AGAIN 2004를 기대했던 그리스가 한 골은 만회했지만 뒤이어 3골을 연달아 먹히며 희망을 접었다.
반면 박빙으로 평가받는 팀에게는 의외로 고전하거나,[14] 전성기를 구가하는 팀에게 비교적 약한 모습을 보인다.[15] 게다가 1994년 이후 발칸지역 국가에게 의외로 약하다. 1994년 월드컵 8강에서 불가리아에게 1:2로 역전패한 것을 비롯, 1998년 8강에서는 충격의 크로아티아전 0:3 대패를 당했고 유로 1996에서 2:1로 이겼지만 유로 2008에서도 크로아티아에게 1:2 패배를 당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세르비아에게 0:1로 지면서 24년간 이어지던 월드컵 조별예선 무패기록이 깨지기도 했다.
의외의 사실인데 유럽의 양대산맥인 독일과 이탈리아지만 정작 독일은 '''아무리 강력한 전력을 가져도 이탈리아만 만나면 기가 죽는다. ''' 이를 '''아주리 징크스'''라 하며 이 징크스가 매우 유명하다. 유로 1988과 1996 조별예선에서 각각 1:1, 0:0으로 비긴 것을 제외하고는 국제대회의 중요한 고비 때마다 독일은 이탈리아를 이긴 적이 없다.[16]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전에서 처절한 혈투 끝에 3대4로 패배했고 1982년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에서도 1대3으로 졌다. 이후 유로 1988과 1996에서 무승부를 거둔 두 팀은 2006년 독일월드컵 준결승에서 만났고 독일은 홈 이점을 앞세워 이탈리아를 이길거라고 마음먹었지만 연장 후반에만 2골을 얻어맞고 악연에 치를 떨어야 했다. 유로 2012 4강전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 독일은 복수를 외쳤지만 그동안 부진했던 발로텔리가 전반전에 선취한 2골로 죽음의 조를 3승으로 통과하고 8강에서 그리스를 압살한 독일의 기세가 꺾였다. 메수트 외질의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경기력은 이탈리아가 압도. 특히 유로 2012의 경우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의 '''거짓말 같은 패배'''였다. 왜냐하면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네덜란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유명한 포르투갈이나 무조건 다 쳐잡고 8강에서도 엄청 쉬운 그리스를 상대로 체력안배 할거 다 하고 나서 이탈리아와 맞붙은 반면 이탈리아는 조별리그부터 크로아티아에게조차 쩔쩔매며 스페인에게 크로아티아 좀 이겨달라고 애원했는데[18]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제압해서야 간신히 8강에 올랐고 8강에 올라서도 잉글랜드와 승부차기까지 가서 체력 소진할거 다 소진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누가 생각해도 승리할 독일이 너무 어이없게 패배했던 것이다. 분단시절 5전 3무 2패 그리고 1990년 독일 통일 이후에 3전 2승 1무이다. 특히 토너먼트에서는 무조건 패했다. 여담으로 동독 대표팀도 아주리와 2번 만났는데 1무 1패를 기록했으니... 과연 독일의 아주리 징크스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결국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8전 9기 끝에 UEFA 유로 2016 8강전에서 숙적 이탈리아와 1: 1로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6 : 5로 누르고 아주리 징크스를 어느정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있는 상당히 희한한 특징이라면 푸에르토리코,[19] 폴란드,[20] 스위스,[21] 브라질,[22]라트비아,[23][24] 가나,[25] 터키[26] 등의 다른 국가 대표로도 뛸 수 있는 이주민 가정 선수들이나 귀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표팀을 선택하였고, '''조직력 하나 만큼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능가하는 팀이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탄탄한 조직력을 기반으로 여러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일례로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 월드컵 기준으로 디펜딩 챔피언과 지난대회 준우승국임에도 불구하고 콩가루 조직력으로 극초반에 탈락했으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역시 그 뛰어난 선수들을 갖고도 지역예선에서 콩가루 조직력을 보이는 바람에 하마터면 지역예선에서 탈락할 뻔했다. 이런 점을 보면 단 한번도 조직력이 흐트러진 적이 없는 독일의 꾸준함이 빛난다고 볼 수 있다.
여담으로 2000년대 독일이 출전한 월드컵의 중요한 고비마다 이전 경기까지 좋은 활약을 펼쳤던 키플레이어가 없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2002년 월드컵 결승전엔 8강 미국전, 4강 한국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미하엘 발락이 한국전에서 받은 경고누적으로 브라질과의 결승전에 출장하지 못했고,[27]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 이탈리아전엔 수비형 미드필더로써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던 토르스텐 프링스가 8강 아르헨티나전 에서 승부차기 직후 아르헨티나의 서브 스트라이커인 훌리오 크루스를 때려서 2경기 출장 정지를 당해 이탈리아의 공격을 저지하지 못했다. 2010년 4강 스페인전에선 이전까지 4골 3도움을 기록하고 있던 독일의 괴물 신인 토마스 뮐러가 경고누적으로 인해 결장, 미드필더의 축을 상실함으로써 스페인의 점유율 축구에 휩쓸리는 원인이 되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2014 월드컵의 독일은 1930년 우루과이, 1934년 이탈리아, 1938년 이탈리아, 1950년 우루과이, 1958년 브라질, 1962년 브라질, 1966년 잉글랜드, 1970년 브라질, 1990년 독일, 1998년 프랑스에 이은 열한 번째 '''예선, 본선 무패 우승팀'''이다. 하지만, 개최국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1930, 1966, 1998년과 전 대회 우승국이 연속 우승했던 1938, 1962 그리고 기권국이 너무 많아 자동 진출했던 1950 우승팀을 제외하면, 지역예선까지 무패로 통과하여 우승한 사례로는 다섯 번째[28]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는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싶으면 16강 이후 본선 토너먼트에서 독일을 잡아라"'''라는 말이 있었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의 수문장'''이라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도 2002년 월드컵 이후 하나같이 '''독일을 쓰러뜨린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29] 2002년에는 브라질이 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우승했고, 2006년에는 이탈리아가 준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결승에 올라서 결승에서 프랑스를 쓰러뜨리고 우승했으며, 2010년에는 스페인이 준결승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결승에 올라서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쓰러뜨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2014년에는 '''아무도 독일을 이기지 못해서''' 독일이 우승했다. '''2018년은 독일이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했다(...)'''[30]
다만 이러한 말이 나온 것은 사실 독일이 세대교체에 성공하고 암흑기를 벗어나고 나서 2006년, 2010년 월드컵에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고 실제로도 대회 기간 동안 강력한 화력을 보였던 독일이 4강에서 번번히 맥없이 나가 떨어지면서 널리 퍼진 말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는 명예로운 말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우승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오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결국 2014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축구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면서 이런 오명을 벗었다고 할 수 있다.
독일 국가대표팀은 잉글랜드나 스페인,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은 팀이다. 사실 독일이 축구팀으로 큰 인기를 얻은 것도 비교적 근래의 일이며, 예전에는 좋은 성적과 메이저대회에서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재미없는 축구라는 오명을 쓰며 실력에 비해서는 인기가 없었다. 암흑기 이전인 1990년 월드컵 우승 당시에도 그랬다. 물론 마테우스와 클린스만이 활약하던 독일 국가대표팀이 인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브라질, 잉글랜드, 스페인 등에 비해 딱히 인기가 많았던 팀은 아니었다. 당시 가장 인기가 있었던 축구 국가대표팀은 마라도나가 활동하던 당시 아르헨티나였다. 다만 의외로 당시 독일 대표팀은 남미, 특히 브라질에서 인기가 있었다. 개인기의 힘으로 승부하던 남미 사람들에게 빈틈없는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독일 대표팀이 꽤나 인상적으로 다가온 모양. 게다가 브라질 축구가 상대적으로 침체기에 있었고, 숙적인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까지 발라주니... 베베토는 94년 월드컵에서 그 유명한 요람 세레머니로 태어난 아들에게 마테우스라는 이름을 지어줄 정도였다. 훗날 2006년 브라질 1부 리그의 우승팀인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가 마테우스를 감독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이때 이후 암흑기 때는 성적 자체가 안 나왔었다. 독일 대표팀의 인기가 상승한 건 2006년 독일 월드컵 4강을 시작으로 10년동안 월드컵, 유로 경기에서 4강 이상씩 꼬박꼬박 가는 꾸준한 성적과 이 과정에서 수위급 강호를 상대로도 관광쇼를 보여주는 위엄[31] 덕분이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선 '축구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독일 걱정이다' 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독일이 나오지 못한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루과이가 우승했던 묘한 기록도 있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30년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리베로'''라 불리는 중앙 수비수를 중심으로 한 전술을 구사했다. 실질적으로 프란츠 베켄바워가 창시한 리베로 전형은 독일 축구의 핵심 전술 가운데 하나였다. 이후 독일 대표팀에서 이 자리는 울리 슈틸리케, 디트마르 야콥스,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로타르 마테우스, 마티아스 자머로 이어진다. 선수들마다 스타일이 달랐기 때문에 리베로의 비중은 그때그때 달라졌는데, 베켄바워, 마테우스, 자머처럼 플레이메이킹에 능하고 공격력도 뛰어난 경우 경기 조율은 물론 공격과 수비를 수시로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슈틸리케, 아우겐탈러는 상대적으로 중앙 수비수로서의 역할에 치중했다. 대신 파울 브라이트너로타어 마테우스 같은 출중한 중앙 미드필더가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면서 경기를 조율했다. 90년대말 독일 축구 암흑기 때 자머와 마테우스가 노쇠하는 가운데 이 자리를 대체할 만한 다른 선수가 없었고, 때문에 마테우스가 거의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출장하기도 했다. 당시 대표팀 수석 코치인 슈틸리케가 전형을 포백으로 전환할 것을 주장하며 리베크 감독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32] 사실 마테우스는 98년까지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만 39세에 참가한 유로 2000에서는 속절없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국 이 대회를 끝으로 마테우스가 은퇴하고, 독일 대표팀도 포백으로 전환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암흑기였고 자원이 없었기에 포백으로 전환했지만 오히려 39세 마테우스를 중심으로 한 스리백 시절보다도 한동안 불안한 경기력을 보였었다.

2.2. 명성


가장 큰 특징은 그 특유의 '''꾸준함.''' 첫 월드컵은 불참, 1950년은 제 2차 세계 대전 전범국으로 출전 금지되어 출전하지 못한 것을 제외하고는 19번의 월드컵에 모두 출전했으며,[33] 나치 독일 시기인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극초반에 광탈, 2018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 단 두 번을 제외하고 모두 8강 이상 진출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34] 또한 2002 월드컵부터는 4개 대회 연속 4강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넘사벽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런 꾸준함을 바탕으로 현재 '''월드컵 최다 경기기록'''을 가지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미네이랑의 비극이라 불리는, 개최국 브라질을 7대1로 압살하며 월드컵 최다골 기록도 브라질로부터 빼앗아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4년 뒤에는 카잔의 치욕을 당함으로써 월드컵 최다골 기록도 도로 브라질한테 빼앗겼다. 독일 역시 암흑기는 존재한다. 항상 이렇게 잘나가기만 했던 것은 아니고 2002년 월드컵 당시의 독일은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를 만났는데 원정가서는 잘 이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홈에서 되려 '''1-5'''로 완전히 후벼파임을 당한 적이 있었다. 더군다나 선제골까지 넣고도 이런 꼴을 당했었다.
팀 컬러는 현대로 넘어오면서 정말 많이 바뀌었는데, 과거 8, 90년대 독일의 축구가 Die Mannschaft, 즉 '팀'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35] 주장, 감독의 지휘아래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서 철저한 분업축구로 톱니바퀴와 같은 조직력을 바탕으로 활약했고, 압도적인 피지컬과 제공권, 선이 굵은 롱볼 축구, 중거리 슛으로 대표되지만 반면 딱딱하고 투박한 볼 키핑과 헤딩 싸움이 발군인 대신 땅볼 싸움이 취약해서 어쩔 수 없이 롱볼을 난사해야만 했던 상황 등 양날의 검 축구를 했다. 그 독일다움을 유지하였던 것이 변화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이는 세대교체의 실패와도 맞물려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4를 망쳤고, 그 사이에 있었던 2002 월드컵은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을 보여주긴 하였으나, 대진운이 많이 따라주었다는 평을 들었으며, 오히려 이는 유로 2004에서 굴욕적인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이 기간의 독일 대표팀은 '''룸펠푸스발'''[36]이라고 불리우며 조롱을 받았고, 2006년 자국에서 열릴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전술 변화와 세대 교체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른바, 2004년부터 요아힘 뢰프 시대가 시작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 [37] 독일의 딱딱하고 투박한 축구를 완전히 폐기처분하고 70년대 람바참바[38] 스타일로의 복귀를 꾀하였고, 브라질의 샬레이라[39]나, 스페인의 티키타카 등 다른 나라에서 재미를 본 스타일의 축구를 도입하는, 한마디로 말해 '''기존의 것을 완전히 내다 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작업'''을 통해 넘사벽으로 업그레이드된 팀에 기술과 스피드를 접목시켜 약점을 찾기 힘든 팀으로 변모시켰다. 특히 이 시기는 유로 2000의 대실패로 인해 독일 클럽들이 대규모로 유소년 선수 육성을 시작해 그 첫 세대가 나올 즈음이었고, 뢰프 체제에 독일 국대에 승선해 핵심으로 자리잡은 대표적인 유망주들로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루카스 포돌스키, 필립 람, 페어 메르테사커, 아르네 프리드리히, 마르셀 얀센 등이 있다. 또한 서구 국가 중 가장 마지막까지 순혈주의의 팀이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혼혈 출신이나 해외의 이주민 2세들의 비중을 높인 점 역시 무시 못 할 부분인데 메수트 외질(겔젠키르헨 출신, 터키계), 사미 케디라(슈투트가르트 출신, 부친은 튀니지 출신, 모친은 독일인), 미로슬라프 클로제(폴란드 출생, 부친은 독일계, 모친은 폴란드인), 루카스 포돌스키(폴란드 태생, 부친은 독일계, 모친은 폴란드인), 제롬 보아텡(서베를린 출신, 가나계) 등등 유럽 및 아프리카의 여러 혈통들의 올스타스러운 인원들과 토종 독일 선수들과 조합을 꾀했다. 한마디로 '''2010년대 이후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팀 에디트의 정수를 보여준 셈'''이다. (물론 이전에도 비독일 계통 선수들이 뽑힌 경우도 있었다. 1982년, 1986년 월드컵에 참가했던 펠릭스 마가트는 푸에르토리코계이고, 2002 월드컵에서 야신상을 탄 올리버 칸은 라트비아계였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본선에서 사상 최초로 조별예선 탈락하였는데 골득실에서 밀리며 (대한민국{+0}, 독일{-2}) 조 꼴찌로 명성에 금이 갔었던 적이 있었다.
확 바뀐 속도감 넘치는 축구로 자국에서 열린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3위를 차지하며 녹슨 전차군단의 오명을 벗기 시작한 뢰프 체제의 독일은 이후 유로 2008, 2010 월드컵, 유로 2012, 2014 월드컵에서 모두 4강이나 결승에 진출하며 꾸준한 고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약점으로는 화끈한 공격력을 보여주다가도 정작 4강전부터는 상대를 너무 의식해서인지 소극적인 전술로 인해 실패를 겪는 고질적인 4강 징크스에 시달렸는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다시 한 번 결승에 진출하며 아르헨티나와 연장전까지 가는 결승전다운 치열한 혈투[40] 끝에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고 징크스를 깨뜨리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후에 대굴욕을 겪기도 했다.'''

3. 상징



3.1. 검독수리


로고[41]검독수리는 과거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프로이센 왕국,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화국, 나치 독일, 서독을 거쳐 現 독일연방공화국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역대 주요 국가들의 국기와 국장에 사용된 상징이다.

4. 별명


전통적인 축구 강호로써 한국에서는 전차군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당연히 독일군의 걸작 무기로 통하는 덕에 불리는 별칭[42]이다. 현지에서 별명은 '''Die Mannschaft'''(디 만샤프트 - '더 팀'이라는 의미)이다.[43] 그 밖에 Die DFB-Elf(디 데에프베 엘프)혹은 Die Nationalelf(디 나치오날엘프)[44], Der Panzer(데어 판처) 정도가 된다.

5. 유니폼



5.1. 홈 유니폼


흰색 상의와 검은 반바지 유니폼이 그들의 트레이드 마크다. 이는 근대 독일의 전신인 옛 프로이센 국기의 색깔과 동일하다. 2014년 월드컵 이전까지 흰색 상의에 흰색 반바지를 착용한 사례는 단 한번 있다.(1970년 월드컵 3-4위전)
흰색 상의, 검은색 바지 유니폼은 독일이 월드컵에 첫 출전한 1934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34년부터 1987년까지 완전한 흰색에 목과 팔 끝처리 부분에 검은색 테두리를 주었다. 상의에는 다른 무늬 없이 독일 국가대표팀 문양만 새겨졌다. 목 부분은 라운드, V넥, 칼라 등의 스타일이 주기적으로 바뀌었다.
독일 국가대표팀의 영원한 스폰서인 아디다스의 삼선 라인은 1980년부터 새겨졌다.[45]
1986년부터는 목 테두리를 기존의 검정색에서, 독일 국기의 삼색으로 바꾸었다.
이후 '''1988년에는 가슴에 독일 국기를 반영한 과감한 라인이 추가되었고 이 홈 유니폼으로 1990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해 영광의 유니폼이 되었다.''' 다만 이 유니폼이 처음 반영되었던 자국에서 개최된 88 유로에서는 네덜란드에게 아쉽게 패배하며 4강(8팀중 3위)를 기록한 점도 있었지만 1990년 월드컵에서 2년전 패배를 안겨주었던 네덜란드에게 이 유니폼을 입고 복수를 성공했다. 이 유니폼을 실착하고 그라운드에서 뛰면 어깨의 삼색 라인이 팔 동작과 함께 위로 올라가면서 독수리가 비상하는 듯한 인상적인 형상을 나타냈다. 또 이 유니폼 도입과 함께 주장 완장까지 독일 국기 3색을 채택했다.[46] 당시에 매우 호평 받은 디자인이었고 대부분의 축구팬들이 이 유니폼을 역대 독일의 유니폼 중에서 가장 잘나온 디자인으로 꼽고 있다. 현지 독일인들도 매우 좋아하는 디자인이라고 한다.[47] 독일에서 레전드 매치가 열릴 때마다 한결 같이 이 유니폼이 채택되고 있는 점을 봐도 이 유니폼이 독일에서 얼마나 각별하게 여겨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후부터 흰색 상의를 베이스로 하면서 독일 국기 디자인을 반영한 이런 저런 바리에이션들을 선보이고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유니폼 역시 독일 국기나 국장인 독수리의 이미지를 잘 나타낸 멋진 디자인이었다. 하지만, 기능적인 면에서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는데, 목의 카라가 너무 두껍고 꺼끌꺼끌 한데다, 당시 헐렁한 스타일의 유니폼은 폭염의 미국에서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독일 삼색 라인이 강조되었던 90 월드컵 유니폼과 94 월드컵 유니폼은 당시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동대문 운동장 지하상가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짝퉁 유니폼 중 하나였다. 이 유니폼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냐면 당시 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이 94년 독일 대표팀 유니폼과 삼선 색깔만 다르고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했었다. 그런데 1995년 독일과 조지아가 유로 예선에서 같은 조에 편성되었고, 조지아와의 두번째 경기에서 독일은 세컨드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심지어 조지아의 세컨드 유니폼도 색깔과 붉은 계열이었지 디자인은 독일과 똑같았다.
96 유로부터는 기존의 과감했던 독일 삼색 디자인을 축소하여 가늘게 포인트를 주는 선에서 주로 처리하고 있다. 이후 2012 유로 때까지 이런 하얀 유니폼을 유지했다.
그리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90년 당시의 유니폼을 반영한듯한 옷을 입었다. 브라질 월드컵때만 예외적으로 바지까지 흰색으로 입었는데, 역대 독일 국대 유니폼 중 유일한 예외이며 이후 다시 검은 바지를 착용했다.[48]
2018년의 유니폼은 '''1990 월드컵 유니폼의 무늬가 좌우반전되어 들어갔고 무늬의 색이 흑백으로 바뀌었는데 무늬에 들어간 선 여러개가 밑으로 갈수록 굵기가 달라서 명암 효과가 난다.'''
디자인은 1990년 월드컵 당시 유니폼과 더불어 잘 나온 디자인이 되었다.
상ㆍ하의 색 조합은 상술했듯 원래 상-흰색 하-검정 조합이지만 예외적으로 프랑스와의 네이션스 리그 두 경기는 상하의 모두 흰색을 착용하고 나왔다.[49]
유로 2020을 앞두고 발표한 홈 유니폼은 흰 바탕에 얇은 가로줄무늬 13개가 나 있다. 바지는 역시 검정색.

5.2. 세컨드(어웨이) 유니폼


세컨드(어웨이) 유니폼은 전통적으로 녹색/청록색 상의와 흰색 반바지를 착용했다. 세컨드로 녹색을 택한 이유는 푸르른 토이토부르크 숲에서 로마군에 대승한 것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이 녹색 세컨드 유니폼 전통은 2002 한일 월드컵 직전까지 유지되었으며, 2002 월드컵 이후에는 2년마다 바뀌고 있다. 하지만 전통의 녹색 유니폼도 주기적으로 다시 채택되고 있다. 과거 독일대표팀 사진을 검색해보면 베켄바워나 루메니게, 마테우스가 녹색 유니폼을 입었던 사진을 종종 볼 수 있다.
실착 사례가 많지 않고 때로는 수년만에 한번씩 등장하는 유니폼이라 언제부터 착용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월드컵에서는 1970년 월드컵에 최초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1987년까지는 단순한 순 녹색에 흰색 바지였다. 사실 끝물이었던 1987년 세컨드 유니폼(vs 아르헨티나 친선전 실착)을 보면 햇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약간 사선 라인이 보이지만 이는 패턴으로 빛 반사를 조절해서 그런 것이고 기본적으로 색깔자체는 완전한 순 녹색이었다.
이 녹색 계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한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자국에서 열린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이례적으로 총 3번이나 착용했다. 아마도 대회 공식 로고가 녹색이었기 때문에 깔맞춤하려 했던 것 같다. 그래도 결승전 때는 홈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왔다.
이후 1978, 1982 월드컵에서는 세컨드 유니폼을 입은 적이 없었다.
1984년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에서 이례적으로 상하의 모두 녹색으로 된 유니폼을 착용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총 2회 착용했으며, 특히 결승전(vs. 아르헨티나)에서 착용했던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50]
'''1988년부터 당시 트렌드가 반영된 복잡한 패턴의 청록색 계열로 약간 바뀌었고 이후에도 청록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조금씩 디자인을 달리했다.''' 1988-1990 서독 세컨드 유니폼과 같은 시기 동독 유니폼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51] 이 유니폼은 1988년 4월 아르헨티나와의 친선전에서 처음 실착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4강 잉글랜드전에 착용하고 나와서 그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로 간신히 이겨,[52] 이 경기가 1990년 대회에서 독일이 가장 고전한 경기가 되었다.
1992, 1994년에 나온 세컨드 유니폼은 독일 국기의 3색이 홈 유니폼에 들어간 것과 같은 형태로 들어갔다.
이후 1994, 1998 월드컵에서는 전부 홈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리고 세컨드 유니폼은 1996년부터 2000년까지에 나온 것은 어두운 녹색이었다. 1996년의 세컨드 유니폼은 어두운 녹색 바탕에 흰색 세로 곡선 라인이 들어간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메이저 대회에는 착용한 적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는 않았다.
2002 월드컵부터는 2년 주기로 새로운 세컨드 유니폼이 발표되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회색 디자인이 채택되었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한번도 실착한 적이 없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53]
유로 2004에서는 검은색이 채택되었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오른쪽 소매가 검은색인 빨간색 유니폼이 채택되었는데,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적색이 통계적으로 더 성공적이며, 상대에게 공포감을 더 키워준다"라고 주장한 데에서 나왔다. 월드컵을 앞두고 이탈리아와의 평가전 등에서 선보인 이 빨간색 세컨드 유니폼은 실제로 제법 강렬한 인상을 주었으나, 월드컵 본선에서 착용할 기회는 없었다.[54]
2008년에는 빨간색 베이스에 검은색을 혼합한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검은색 베이스에 금색 라인이 돋보이는 세컨드 유니폼을 채택했다. 2010 월드컵에서 독일 대표팀은 유독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할 기회가 많았는데, 총7경기 중 3경기에 이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나왔다.[55][56] 특히 4:0으로 아르헨티나를 격파했던 8강전에 바로 이 검은색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겨주기도 했다. 디자인도 좋았고 입고 뛴 경기 내용도 좋았던 유니폼이라 지금까지도 어웨이 유니폼중 2번째로 좋은 유니폼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유로 2012에서는 전통적인 초록색 상의, 흰색 바지로 회귀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개최국의 지역 클럽인 CR 플라멩구의 유니폼에서[57] 영감을 받아 독일 국기에 들어가는 색들이기도 한 검정색과 빨간색의 가로 줄무늬에 어깨의 은색 삼선이 조합된 유니폼을 제조하였다. 그리고 조별리그에서 가나와의 경기와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 전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아무래도 위 남아공때 유니폼보다 우승에 기여한 유니폼이라서인지 이 검빨 유니폼을 어웨이 유니폼중 가장 좋은 유니폼으로 칭송받고있다.
유로 2016 에는 소매가 카키색인 회색 어웨이 유니폼으로 결정되었는데, 안쪽은 형광/녹색이며 유니폼을 뒤집어 입을 수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과거의 청록색 상의, 흰색 바지 디자인이 채택되었다. 청록색 계열을 베이스로 모자이크(?) 패턴이 있는 디자인이며, 홈 유니폼, 어웨이 유니폼 모두 1990년 우승 당시 유니폼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디자인이다.
F조 조별리그에서 한국과의 경기[58]에 이 세컨드 유니폼을 착용하고 나와[59] 다시 한번 전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4년 전과는 '''정반대로''' 선사 했다.
2018년 어웨이 유니폼인 청록색 상의, 흰색 바지 디자인을 입고 나간 경기에서 독일은 출시되고 1년 넘게 한 번도 못 이기다가[60] 2019년 6월 유로 예선에서 벨라루스를 꺾으며 드디어 이 유니폼을 입고 1승을 챙겼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를 보면 2020년 어웨이 유니폼은 검은색으로 회귀할 것이고, 어두운 회색/은색과 조화를 이룰 거라고 한다. 당연히 팬들은 환호 중. 바지는 홈 유니폼 바지와 같은 색이다.
위에도 나오지만,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유독 어웨이 유니폼을 입을 일이 많았다. 이는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흰색 베이스의 상의와 짙은색의 바지를 입기 때문에 양팀이 맞붙을 때 한쪽은 세컨드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하지만 1993년 마이애미에서 열린 친선전처럼 독일, 아르헨티나 양국 모두 홈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 적도 있다. 이때는 독일 홈유니폼 어깨에 강한 삼선이 있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의 세컨드 유니폼은 파란색 혹은 녹색 계열인데, 예전에는 파란색 베이스인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녹색 계열이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

6. 홈 경기장


홈 경기장은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대표팀 홈 경기는 국내 곳곳에 분산해서 개최한다. 1908년부터 현재까지 43개 도시에서 홈 경기를 주최하였는데, 이 도시 중에는 브레슬라우, 쾨니히스베르크, 슈테틴, 보이텐 등 제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잃어버린 구 동방영토[61] 들과 안슐루스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던 오스트리아 에서 1938년부터 1942년까지 3번 개최한 것도 포함된다. 상징성 때문에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알리안츠 아레나 두 곳에서 주로 경기가 개최되지만 사실 딱히 정해진 홈 그라운드는 없다. UEFA 선정 카테고리 4 경기장이 무려 5개[62]나 있는데다 그에 못지않은 카테고리 3 경기장은 수두룩할 정도로 뛰어난 인프라가 갖춰져 있기 때문에 홈 경기장이 자주 바뀐다.

7. 역사



7.1. 1900년대



7.2. 1910년대



7.3. 1920년대



7.4. 1930년대 ~ 1940년대


1930년에 개최된 제1회 1930 우루과이 월드컵에는 불참했다.
처녀 출전한 1934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193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합병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흡수하여 월드컵에 출전했다. 직전 대회인 34년 월드컵에서 독일이 3위, 오스트리아가 4위를 거두었기 때문에 1938년 통합 독일대표팀은 월드컵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는데 대회직전에 급조된 팀이기 때문에 팀웍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다. 월드컵이 열리기 불과 두 달 전에 오스트리아가 합병되었기 때문에 새로 구성된 대표팀은 제대로 손발을 맞춰볼 기회도 없었다. 통합 대표팀 선수 선발도 실력보다 지역 배분 등으로 잡음이 있었다. 결국 졸전 끝에 1라운드에서 허무하게 탈락했다.[63] 시드 배정국 중 유일하게 탈락. 공식 순위는 10위. 이 대회는 독일 대표팀이 8강 안에 들지 못한 '''둘뿐인 월드컵이다.''' 아예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각각 따로 월드컵에 나왔다면 서로 더 나은 결과를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중단되었던 월드컵은 1950년에 재개되어 브라질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나 독일 3국인 서독, 동독, 자를란트(자르 보호령) 대표팀은 제2차 세계 대전 전범국이라는 이유로 FIFA로부터 월드컵 출전을 금지당했다. [64].

7.5. 1950년대


[image]
1954 스위스 월드컵 우승 후 줄리메컵을 들고 있는 주장 프리츠 발터
독일은 출전 금지가 풀린 1954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당시 독일은 서독, 동독, 자를란트 3개국 대표팀으로 나눠어 출전했다. 자를란트 대표팀은 이 대회가 메이저 대회 처음이자 마지막 출전이었으며, 2년 후 서독 대표팀에 흡수되었다. 사실 이 대회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특이한 대전방식을 도입했는데, 조별 예선에서 풀리그를 거치지 않았고[65], 8강 이후 토너먼트에서는 조1위끼리 맞붙거나, 조2위끼리 맞붙는 방식이었다. 이런 이상한 대전방식 때문에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불리한 입장에 있었는데, 같은 조 최약체팀인 승점자판기 대한민국과 경기를 치르지 않게 된 것이었다. 당시 한국전쟁이 끝난지 1년도 안된 시점의 한국은 명백한 약체팀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이러한 특이한 대전 방식의 헛점을 이용하는 전략인 접근을 취했는데, 조별리그에서 당시 세계 최강 헝가리와 맞붙었을 때 주전 7명을 제외한 사실상 2군을 내보내 패하고 조2위로 8강에 올랐다. 조1위로 8강에 오른 헝가리는 각조 1위인 브라질, 우르과이를 만나 혈전을 치르며 결승까지 올라와야 했지만, 독일은 토너먼트에서 조2위 국가인 유고슬라비아와 오스트리아를 만나 각각 2:0, 6:1로 꺾으며 손쉽게 결승에 진출했다. 결국 결승전에서 독일은 헝가리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당시 마자르 군단 헝가리는 세계 최강의 축구 대표팀으로, 이날 결승전에서 독일에서 패하기 전까지 4년여 동안 A매치 32경기 무패라는 대기록을 작성하고 있었다. 결승전은 초반 8분만에 헝가리가 두 골을 선취하며 2:0으로 앞서나가며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2분 후 막스 모를로크가 만회골을 터트리며 추격을 불씨를 지피기 시작했고 이어 헬무트 란이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끝내 경기를 경기를 뒤집는데 성공하며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 세계 최강이던 마자르 군단 헝가리를 극적으로 꺽고 우승을 차지한 이 경기는[66] 결승전이 열렸던 도시 스위스 베른의 이름을 따서 '''베른의 기적'''이라 불린다. 이 우승은 패전과 조국의 분단이라는 이중고(苦)에 시달렸던 독일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준, 독일 국민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역대급 사건이다.[67] 이후 16회 연속 대회 8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서는 죽음의 조인 1조에 배정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북아일랜드와 무승부를 거두며 다소 고전했으나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를 격파하고 1승2무로 조1위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 유고슬라비아를 만나 1:0 승리를 거두고 4강에 진출했다. 4강전에서 개최국 스웨덴에게 패하여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최종 순위는 4위이다.

7.6. 1960년대


1962 칠레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독일은 개최국 칠레와 스위스를 눌렀으나, 당시 그리 강한 전력이 아니었던 이탈리아와 비겨 2승 1무를 거두었다. 그래도 조 1위의 성적으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나, 8강전에서 유고슬라비아에 0:1로 패하고 말았다. '''4강 진출 실패의 충격'''으로 독일은 통합 프로리그의 필요성을 실감하고[68], 이듬해 1963년 분데스리가를 출범시켰다. 분데스리가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1990년 독일 통일로 인해 경제침체의 영향을 받을 때까지 70~80년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 중 하나로서 위용을 뽐냈다. 또 분데스리가 출범과 때를 같이 하여 54년 스위스 월드컵 우승의 주역인 명장 제프 헤르베르거가 물러나고 헬무트 쇤이 새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1960~70년대 독일 대표팀은 국가대표 B팀을 상설 운용했다. 다른나라에서도 간헐적으로 국가대표 B팀을 운용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지만, 당시 독일 대표팀은 B팀을 매우 활성화하여 상설화시켰다. 국가대표 B팀은 50년대부터 있었지만, 62년 칠레 월드컵 4강 탈락 충격으로 인한 독일 축구계 개혁 이후 국가대표 B팀도 강화되어 1965년부터는 다른나라 A대표팀과 평가전을 갖기 시작했다... 독일 축구협회는 B팀을 통해 차세대 국가대표 A팀 멤버로 성장할 선수들을 선별하여 육성했다. 이후 B팀은 1974년 우승 멤버들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했다. 1970년대에 이르러 독일 국가대표 B팀은 웬만한 다른나라 국가대표팀 못지 않은 강력한 전력을 가졌는데, 당시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넘쳐났던 A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했던 다른 우수한 선수들이 B팀에 수용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헬무트 쇤 감독이 A대표팀의 조직력을 고려하여 다분히 FC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양팀 선수층 위주로 A대표팀을 꾸렸던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중하위권팀에 소속된 뛰어난 선수들이 B팀에 많이 소속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클럽 경기 일정이 많아지고,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하는 B팀의 특성상 선수들의 동기 부여에도 한계를 보이면서 B팀은 사라지게 되었고 나중에 23세 이하 대표팀 등의 형태로 간접적으로 계승되었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조별 리그에서 독일은 첫 경기에서 스위스를 5:0으로 대파한 후, 2차전에서 아르헨티나와 비겼으나, 3차전에서 스페인을 이기면서 2승 1무의 성적으로 조 1위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브라질이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독일은 대회 최고의 우승후보로 부각되었고, 그러한 평에 걸맞는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8강에서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를 4:0으로 대파하였고, 4강에서 우승후보 소련을 만나 레프 야신의 놀라운 선방에도 불구하고 파상공세 끝에 두 골을 넣고 결승까지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편파판정 논란을 일으키며 결승에 진출했던 개최국 잉글랜드와 만났다. 2:2 동점 상황에서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고 제프 허스트의 튕겨져 나온 공이 골로 인정되는 오심[69]으로 경기는 3:2가 되었다. 만회골을 위해 총공세를 펼치던 독일은 경기 종료 1분전 수비진까지 모두 올라와 공격에 가세해 결정적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나 이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노마크의 허스트가 득점하면서 4:2로 경기가 종료되었다.[70]

7.7. 1970년대



▲축구 사상 위대한 팀 .. 1972-1974 독일 (Football's Greatest International Teams .. Germany 1972-1974)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조별 리그 3경기에서 3연승을 거두고 조 1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한 독일은 8강전에서 잉글랜드와 리턴매치를 갖게 되었다. 전반전에는 2:0으로 끌려갔으나, 후반전에 이르자 잉글랜드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고 독일이 반코트 게임으로 경기를 주도하며 두 골을 성공시켜 경기는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연장전에서 마침내 역전골을 터트려 잉글랜드에 설욕하며 4강에 진출했다. 이탈리아와의 4강전은 연장전까지 이어지며 선취득점-동점-역전-재동점-재역전-재재동점-추가골이 이어지는 역대급 명승부를 펼친 끝에 4:3으로 석패하여 결승진출에 실패했다. 이것이 월드컵에서 독일이 이탈리아에 패배한 첫 경기다. 이전까지는 이탈리아와 무승부만 있었다. 이 경기에서 베켄바워는 이탈리아의 거친 파울로 쇄골이 부서지고 어깨가 탈골하는 부상을 입었으나 이미 2명을 교체한 후였기 때문에 삼각건으로 탈골된 팔을 상체에 고정시킨 후 끝까지 경기에 뛰는 투혼을 발휘하여 전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게르트 뮐러는 대회에서 총 10골을 성공시켜 득점왕에 올랐고, 그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UEFA 유로 1972에서 헬무트 쇤 감독은 당시 분데스리가를 양분하던 FC 바이에른 뮌헨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선수들을 주축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1970년 월드컵 대표팀 멤버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볼프강 오베라트, 베르티 포크츠, 볼프강 베버 등이 참여할 수 없었다. 특히 1970년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그해 발롱도르 5위에 올랐던 중원 플레이메이커 오베라트의 공백은 적지 않은 타격이었다. 오베라트 대신 발탁된 이가 바로 귄터 네처였다. 네처 역시 분데스리가에서 오버라트와 쌍벽을 이룬 뛰어난 중원 플레이메이커였다. 헬무트 쇤 감독은 1970년 월드컵을 앞두고 오베라트와 네처를 공존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실패했고, 결국 쇤 감독은 둘 중 오베라트를 주전으로 선택했다. 이후 네처는 오베라트에 밀려 대표팀에 승선할 기회를 많이 얻지 못했다. 하지만 네처 역시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하며 1971년 발롱도르 4위에 올랐고, 1972년 유로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게 된다. 이 대회에서 서독 대표팀은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다. 베켄바워와 네처가 경기를 조율하면서 화려한 축구를 구사했고, 전방에는 어떻게 해서든 골로 결정짓는 게르트 뮐러가 있었다. 특히 예선 플레이오프 빅매치였던 잉글랜드전 웸블리 원정경기에서 잉글랜드를 완전히 압도하면서 3:1로 승리했다. 결승전에서는 소련을 상대로 일방적인 경기를 경기를 펼치며 3:0의 대승을 거두고 유럽 정상에 올랐다. 이 대회에서 서독 대표팀이 보여준 창의적인 축구는 '아트사커', '람바참바 풋볼'이라 불리며 찬사를 받았다. 독일이 이런 창의적인 축구를 보인데는 판타지스타 패스마스터 귄터 네처의 역할이 컸다.[71] 유로대회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72년 발롱도르 투표 1~3위를 독일 선수들이 독식했다. (1위 프란츠 베켄바워, 공동 2위 게르트 뮐러, 귄터 네처) 2000년대 중반 이전 독일 축구하면 투박하고 실리적인 축구를 떠올리지만 독일 축구가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닌데 대표적으로 유로 1972 당시 독일 대표팀은 브라질에 비견되는 아트사커를 구사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image]
1974 서독 월드컵 우승의 주역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
자국에서 개최된 1974 서독 월드컵을 위해 구성된 서독 대표팀은 당시 분데스리가와 유러피언컵을 호령하던 전성기의 FC 바이에른 뮌헨 주축 멤버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워, '폭격기' 게르트 뮐러를 위시하여, 제프 마이어, 파울 브라이트너, 울리 회네스 등 베스트 11 중 6명이 바이에른 뮌헨 소속이었다. 당시 서독 대표팀은 귄터 네처볼프강 오베라트라는 두명의 뛰어난 중원 플레이메이커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오베라트는 1970 월드컵에서 주전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했고, 오베라트가 부상으로 빠진 1972년 유로에서는 귄터 네처가 활약하면서 일약 스타가 되었다. 헬무트 쇤 감독은 분데스리가에서 라이벌이었던 자존심 센 이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를 공존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1972 유로에서 네처의 임팩트가 워낙 컸기 때문에 서독 국민들은 네처를 원했으나, 쇤 감독은 오베라트를 1974 월드컵 주전으로 선택했다.[72] 오베라트가 중원 플레이메이커로 선택되면서 서독 대표팀의 색깔은 72년과 다소 달라졌는데, 창의성 있는 아트사커 대신 활동량과 기동력, 전사와 같은 투쟁력이 보다 강조되었다는 평을 듣는다. 조별 리그 1, 2차전에서 서독은 칠레와 호주를 각각 1:0, 3:0으로 꺾었다. 3차전 상대는 동독이었다. 이 경기는 서독과 동독의 역사상 유일한 A매치였으며 당시에 상당한 화제를 모았던 경기였다. 그런데 서독은 이 경기에서 의외로 동독에 패하면서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다. 서독 국민들은 마치 대한민국이 북한에게 패한 것과 같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고, 이에 헬무트 쇤 감독은 국민들에게 동독전 패배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만 했다. 다만 서독이 8강 리그에서 유리한 B조에 속하기 위해 고의로 동독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74년 월드컵부터 8강, 4강 토너먼트 대신 2개의 조별리그로 치뤄지는 새로운 룰이 적용되었는데, 동독에게 패해 조 2위가 된 서독(1조 2위)은 유고슬라비아(2조 1위), 스웨덴(3조 2위), 폴란드(4조 1위)와 함께 B조가 된 반면, 1조 1위 동독은 브라질(2조 2위), 네덜란드(3조 1위), 아르헨티나(4조 2위)와 함께 A조가 되었다... 8강 리그 결과 A조에서는 토탈사커로 선풍을 일으키던 요한 크루이프의 네덜란드가 3승 무패로 결승에 올랐고, B조에서는 서독이 3승 무패로 결승에 올랐다. 양 팀 모두 3승무패로 결승에 올랐지만 유력한 우승 후보인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강호들을 발라버리며 결승에 올라온 크루이프의 네덜란드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팀들을 이기고 올라온 서독보다 훨씬 큰 인기를 얻고 있었고 전세계가 네덜란드에 열광하고 있었다. 결승전이 시작하자마자 네덜란드는 크루이프 팬들에 의해 전설로 불리는 그 유명한 16번의 볼터치 후 크루이프가 회네스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으로 선취 득점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거기까지였다. 선취 득점 이후 일방적인 서독의 경기였다. 헬무트 쇤 감독은 크루이프를 봉쇄하기 위해 대인방어에 뛰어난 베르티 포크츠를 기용하였는데, 포크츠가 크루이프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면서 네덜란드는 예전같은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독은 일방적으로 네덜란드를 몰아붙인 끝에 전반 25분 베른트 횔첸바인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파울 브라이트너가 성공시키며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서독의 공세는 더욱 거세어졌다. 서독은 수비수인 브라이트너나 심지어 크루이프의 전담 마크맨인 베르티 포크츠까지 문전 돌파 후 슛을 날리는 등 수비수들까지 전천후로 공격에 가담하며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토털 풋볼이란 이런 것이다 하는 것을 네덜란드 앞에서 시전했다. 이렇게 서독은 수비수들까지 돌아가면서 공격에 가담하는 등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쳤으며 리베로 베켄바워는 최후방에서 경기를 조율하는 동시에 크루이프의 침투를 무력화시켰다. 역전골을 넣게 위해 계속 밀어붙이던 독일은 전반 43분 게르트 뮐러의 골로 마침내 역전에 성공했다. 후반전에도 독일은 계속 기회를 잡았다. 뮐러가 두번째 골을 넣었으나,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었다. 그러나 이 오프사이드 판정은 오심으로 밝혀졌다. 85분에는 횔첸바인이 또다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넘어졌으나, 주심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다. 결국 2대1로 승리하며 서독이 두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73]
UEFA 유로 1976에 서독은 1974년 월드컵 우승멤버와 비슷한 멤버구성으로 출전했다. 조 1위로 조별 리그를 통과한 독일은 8강전에서 스페인을 꺾었고, 4강전에서는 유고슬라비아에 4:2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올랐다. 결승전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초반에 두 골을 넣어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나 했으나, 독일의 집요한 반격으로 디터 뮐러와 베른트 횔첸바인의 연속골로 2:2 동점이 되어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승부차기에서 4번째 키커 울리 회네스가 실축하면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한편 회네스 다음 키커인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키커 안토닌 파넨카가 바로 이 경기에서 파넨카킥을 시전하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유로 1976이 끝나면서 그동안 대표팀을 이끌었던 베켄바우어, 뮐러, 오베라트, 회네스, 하인케스 등이 은퇴하면서 대표팀은 세대 교체에 들어가게 된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을 앞두고 서독 대표팀은 클라우스 피셔, 디터 뮐러, 칼 하인츠 루메니게 등 신예들을 대거 기용하여 공격진을 꾸렸다. 이들은 당시 분데스리가에서 게르트 뮐러를 퇴물로 만들며 득점왕 경쟁을 펼치던 뛰어난 자원들이었으나 막상 대회가 시작되자 경험 부족 때문인지 한결같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 또 중원에서 경기를 조율하던 베켄바우어와 오베라트를 대체할 만한 걸출한 플레이메이커들이 부재했던 것도 컸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1라운드 조별리그에서는 2차전에서 멕시코를 6:0으로 바르기도 했지만, 1차전에서 지난 대회 4강 폴란드와 0:0 무승부를 기록한데 이어 3차전에서도 튀니지의 밀집수비를 뚫지 못하고 0:0으로 비겼다. 조2위로 2라운드(8강)에 올랐다. 그러나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이은 막장 쓰레기 대회라는 오명에 맞게 아르헨티나의 손쉬운 우승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인지 강팀들이 모조리 A조에 묶였다. A조에 전대회 우승 및 준우승국인 서독, 네덜란드를 비롯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함께 묶였다. 서독은 1,2차전에서 이탈리아, 네덜란드에 각각 0:0, 2:2 무승부를 거두었다. 3차전에서 오스트리아를 꺾고 4강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이미 네덜란드가 2승을 선취하면서 결승 진출이 확정되었고, 오스트리아에 승리를 거두더라도 결승 진출이 좌절된 서독은 오스트리아전에서 포크츠의 자책골 등으로 2:3로 패하면서 6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대규모 세대 교체가 이루어진 후 치뤄진 1978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기대에 비해 다소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이때 세대 교체로 새로 대표팀에 들어온 멤버들은 이후 1980년대 초반까지 대표팀의 주축으로 활약하면서 1980년 유로 우승, 1982년 월드컵 준우승 등을 일궈낸다.

7.8. 1980년대


[image]
유로 1980 결승전 벨기에전 선발 라인업(슈마허, 칼츠, 슈틸리케, K. 푀르스터, 디츠, 슈스터, 브리겔, 뮐러, 루메니게, 흐루베슈, 알로프스)
1980년 이탈리아에서 열린 유로 1980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스트라이커 클라우스 피셔[74]가 부상으로 빠지고, 대체선수로 대표팀 경험이 없던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승선하게 되면서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으나, 본선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독일은 체코슬로바키아를 만나 루메니게의 골로 승리하면서 4년전 결승전 승부차기 패배를 설욕했고, 두번째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는 78-79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 클라우스 알로프스의 해트트릭으로 네덜란드를 꺾었다. 조1위로 결승에 올라 결승전에서 호르스트 흐루베슈의 골로 벨기에에 2:1 승리를 거두고 우승했다. 네덜란드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알로프스는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고, 이 대회에서 활약한 루메니게는 80년, 81년 연속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거두었다. 아래에 서술될 히혼의 수치로 빛이 바랜 비운의 대표팀이지만 80년 유로 우승 멤버가 주축이 되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실력이 뛰어났던 만큼 너무 자만했다는 점인데 그것이 결국 히혼의 수치라는 비극을 초래한 단초가 되었다. 이 대회 조별리그 3차전에서 '''히혼의 수치''', 또는 알제리에서 안슐루스라 불린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 축구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라 불리는[75] 이 사건은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아르헨티나-페루전 등과 더불어 월드컵의 위상에 먹칠을 가한 흑역사로 남아있다. 독일은 전세계의 지탄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독일이라는 나라의 신뢰도에 먹칠을 가한 사건이기 때문에 독일 국내의 비판 여론도 거셌다. 내막은 이렇다.

우승후보였던 서독은 조별리그 첫 상대인 알제리를 아주 우습게 봤는데, 유프 데어발 감독은 "알제리를 이기지 못하면 바로 기차타고 집으로 가겠다"고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독은 만만하게 봤던 알제리에게 1-2로 패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면서 개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루메니게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4-1 대승을 거두었지만, 알제리전의 패배가 문제가 되어 오스트리아와의 마지막 3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아래과 같은 전적으로 2라운드 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순위








승점
1
오스트리아
2
2
0
0
3
0
+3
4[76]
2
알제리
3
2
0
1
5
5
0
4
3
서독
2
1
0
1
5
3
+2
2
4
칠레
3
0
0
3
3
8
-5
0
서독은 3차전에서 오스트리아를 무조건 이겨야 했고, 먼저 2승을 거둔 오스트리아는 2점 차 이내로 패하면 2라운드 진출에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토너먼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조1~2위 따른 유불리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게르만 형제 나라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서독은 파상공세를 펼쳤고 마침내 전반 11분 독일의 호르스트 흐루베슈가 득점하는데 성공했다. 그러자 양팀은 경기를 할 생각은 안하고 볼만 이리저리 돌리며 시간을 때웠다. 결국 그대로 경기가 끝나면서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2라운드에 동반 진출했고 알제리는 2승을 거두고도 탈락했다.
순위








승점
1
서독
3
2
0
1
6
3
+3
4
2
오스트리아
3
2
0
1
3
1
+2
4
3
알제리
3
2
0
1
5
5
0
4
4
칠레
3
0
0
3
3
8
-5
0
이 사건으로 독일은 알제리 뿐만아니라 전세계로부터 지탄을 받았다.네이버 캐스트 특약. 독일 자국 내부 비판이 더 컸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엇보다도 주변국들과의 관계와 신뢰 회복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알제리에서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안슐루스(Anschluss)라고 부르며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을 운운했던 만큼 독일 스스로 이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범게르만주의의 부활로 보여질 수 있는 이 사건을 조기진화하기 위해 독일 언론 스스로 이 사건에 많은 비판을 가했다. 이 경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부터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같은 시간대에 진행하는 것으로 규정이 변경되었다.[77]
[image]
1982 스페인 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전 선발 라인업(브라이트너, 슈틸리케, 슈마허, 브리겔, 루메니게(주장), 피셔, 리트바르스키, B. 푀르스터, 칼츠, 드레믈러, K. 푀르스터[78])
82년 월드컵 당시 서독은 80년 유로에서 맹활약했던 클라우스 알로프스가 갑작스런 부진으로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득점기계 클라우스 피셔가 노쇠한 상황이었지만 월드 클래스로 성장한 칼-하인츠 루메니게 덕분에 여전히 우승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대회 도중 루메니게가 부상을 입는 악재를 겪게 된다. 다행히 루메니게의 대체 자원으로 투입된 신예 리트바르스키가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하여 루메니게의 공백을 메웠고 서독은 2라운드를 통과하고 준결승에서 플라티니가 이끄는 프랑스와 격돌했다. 루메니게가 부상으로 선발출장하지 못했지만 리트바르스키가 초반에 득점에 성공하여 손쉽게 풀어나가나 했더니 페널티킥을 헌납하여 동점이 되어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전 전반에 연속으로 두 골을 먹고 3:1로 패색이 짙었으나 연장전에 교체 투입된 루메니게가 만회골을 넣었고, 이어 클라우스 피셔가 전매특허인 오버헤드킥을 작렬하며 극적으로 동점을 만들어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결국 결승에 진출했다.[79][80] 이 경기는 오늘날에도 독일에서는 '''세비야에서의 스릴러(Thriller von Sevilla)'''라고 부르는 명경기. 그러나 4강전에서의 체력 소모가 결승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결승에서는 파올로 로시가 이끄는 이탈리아와 맞붙게 되었다. 결승전에서 서독은 루메니게가 선발로 정상 출장하면서 루메니게, 피셔, 리트바르스키로 이어지는 3각 편대를 오랜만에 정상적으로 가동하였고 이 3인방은 연달아 이탈리아의 골문을 두드리며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선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리트바르스키, 루메니게, 피셔 모두 차례로 문전 앞에서의 찬스를 살리지 못하며 기회를 날렸고, 간간히 튀어나오는 이탈리아의 빠른 역습에 노쇠한 서독 수비진은 다소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전반 24분 브리겔의 무리한 수비로 페널티킥을 헌납했다. 이후 서독은 실점을 만회하기 위해 총공세에 나섰고 수비진까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브리겔, B. 푀르스터가 차례로 슈팅을 날렸으나 역시 골문을 빗나갔다. 이후에도 루메니게의 슛이 빗나가는 등 서독은 결승전 내내 결정 짓지 못하는 장면을 반복했다. 후반 내내 브리겔, 슈틸리케, 푀르스터 등 서독 수비진은 이탈리아 진영까지 넘어와 공격에 가담하다가 이탈리아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 수비 전형으로 전환하면서 극심한 체력 소모를 겪은 반면 이탈리아는 예의 수비 위주의 전술로 서독에 비해 체력을 아끼는 효율적인 운용을 펼치다가 빠른 역습으로 기회를 노렸고 이런 전술은 공격에 가담하고 있는 서독 수비진에게 매우 효과적이이서 적은 공격 기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연이어 득점에 성공하면서 3:0으로 앞서나가며 승부를 결정지었다. 막판 브라이트너의 만회골로 3:1으로 종료되었다.
유로 1984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과 무승부, 스페인과 경기에서 패배를 하며 1승 1무 1패로 4강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하고 5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4강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유프 데어발 감독이 자진사퇴하고 프란츠 베켄바워가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이 대회가 독일 대표팀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그것은 데어발 감독이 1980년 유로 우승과 1982년 월드컵 준우승을 거둔 검증된 대표팀 멤버에 수술을 가하며, 루디 푈러, 안드레아스 브레메, 로타어 마테우스 등 신예들을 과감히 주전으로 기용하는 세대교체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 84년 대표팀은 유로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당시에는 실패로 비춰졌으나 이때 세대교체로 등장한 인물들은 이후 86 월드컵 준우승에 이어 90 월드컵 우승을 이뤄내는 주역이 되었다.
[image]
1986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 프랑스전 선발 라인업(슈마허, 야콥스, 브레메, 에르더, 푀르스터, 브리겔, 마테우스, 롤프, 마가트, 루메니게 (57. 푈러 교체), 알로프스)
1986년 월드컵프란츠 베켄바워 감독의 첫 메이저 대회였다. 여전히 서독은 강팀 중 하나이긴 했지만 이전만큼 주목을 받는 우승후보는 아니었다. 서독 대표팀은 세대교체 와중이었고 이로 인해 84 유로에서 4강에 오르지 못하는 부진을 겪기도 했다. 과거 서독 대표팀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대거 은퇴했고, 로타어 마테우스, 루디 푈러, 안드레아스 브레메,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볼프강 롤프 등 20대 중반의 다소 생소한 신예들이 대표팀의 추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베켄바워 감독 역시 현역 은퇴 직후 아무런 지도자 경력 없이 대표팀 감독에 선임되었기 때문에 경험 부족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다. 86 월드컵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플라티니의 프랑스,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 전통의 강호 브라질 등이 독일보다 더 주목받는 팀이었다. 그밖에 게리 리네커의 잉글랜드, 개최국 멕시코 등도 주목받는 팀이었다.
실제로 1986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조별리그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덴마크에 2:0으로 패하는 등 1승 1무 1패의 성적으로 조 2위를 기록했다. 사실 조별리그에서 득점보다 실점이 많았다. 16강에서는 모로코를 맞아 박빙의 경기를 펼치다가 종료 직전 마테우스의 골로 가까스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개최국 멕시코를 맞아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4강에 올랐다. 서독은 8강까지 강호들을 피해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접전을 펼치며 어렵게 4강에 올랐다. 그러나 서독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3-5-2를 바탕으로 한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으로 토너먼트에서 무실점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회가 진행되면서 독일의 조직력과 경기력은 더욱 날카로워졌고 독일의 강점 중 하나인 강인한 체력도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준결승에서 서독은 1984 유로 우승국인 미셸 플라티니의 프랑스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명승부를 펼칠 것이라는 세간의 기대와 달리 4강전은 서독의 일방적인 경기였고 2:0의 완승을 거두었다.[81] 플라티니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축구 변방이었던 프랑스는 월드컵과 같은 큰 대회 경험이 부족했다. 프랑스는 8강에서 브라질과의 혈투를 치른 후 4강에서 급격하게 체력이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서독 역시 8강에서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4강전에서 프랑스를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였다. 또 서독이 특유의 조직력으로 플라티니를 철저히 봉쇄하자 플라티니에 크게 의존하던 프랑스는 결국 별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고 말았다. 결승전에서는 대회에서 최고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와 맞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서독은 2골을 연속으로 실점하며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에 교체투입된 루디 푈러가 맹활약하여 29분과 35분 루메니게루디 푈러가 연속골을 넣으며 극적인 동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후반 39분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부루차가가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3:2로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차지했다. 경기 후 베켄바워 감독은 마라도나를 지나치게 의식하여 수비 전술로 나간 것이 패인이었다며 자신의 전술적 선택을 후회했다고 한다.[82] 베켄바워 감독은 두 골을 먹힌 후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맞불 작전으로 전환하였고 루디 푈러를 투입하고 마라도나를 전담마크하라고 지시했던 마테우스에게 마라도나 마크를 하지 말고 공격에 가담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서독의 경기력이 확 살아나면서 순식간에 두 골을 만회했다. 물론 마테우스의 전담 마크에서 해방된 마라도나 역시 살아났지만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와 부르차가 등을 제외하면 클래스가 떨어지는 선수들이 많았고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했다면 서독이 우승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image]
유로 1988 준결승 네덜란드전 선발 라인업(헤르게트, 보로프카, 콜러, 푈러, 임멜, 클린스만, 톤, 브레메, 밀, 롤프, 마테우스)
1988년 유로에서는 조 1위로 4강에 올랐다. 4강 상대는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프랑크 레이카르트오렌지 삼총사를 비롯한 호화 멤버로 구성된 네덜란드였다. 서독은 페널티킥으로 선취 득점을 했으나 이후 똑같이 페널티킥을 내줬고 결국 2:1 역전패를 당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서독을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 네덜란드는 소련을 2:0으로 꺾고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7.9. 1990년대


[image]
1990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전 아르헨티나전 선발 라인업(베어톨트, 일그너, 콜러, 부흐발트, 푈러, 아우겐탈러, 리트바르스키, 브레메, 헤슬러, 클린스만, 마테우스)
[image]
82, 86 월드컵에서 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던 서독은 삼수 끝에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마침내 세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86월드컵에서 8강까지 천신만고 끝에 올라오며 그야말로 살아남은 팀이 강팀이라는 사실을 보였던 서독 대표팀은 90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결승전까지 4강을 제외한다면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하며 그야말로 강팀, 무적의 팀이 무엇인가를 몸소 보여줬다. '압박축구' 전술의 유행으로 역대 최소득점으로 유명한 90년 월드컵에서 서독은 조별리그 1, 2차전에서 유고슬라비아와 아랍 에미리트를 각각 4:1, 5:1로 대파하는 가공할 만한 공격력을 보이며 우승후보 답게 조 1위로 손쉽게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는 우승후보 네덜란드와 리턴매치를 갖게 되었다. 90년 월드컵의 명경기로 꼽힌 이 경기에서 양팀은 독일 국가가 연주될 때 네덜란드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으면서 휘슬이 울리기도 전부터 과열되기 시작했다.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초반 팽팽한 경기를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레이카르트가 돌파하던 루디 푈러를 발로 차 넘어뜨리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고 결국 둘은 동반 퇴장을 당했다. 레이카르트의 선제 도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스트라이커가 퇴장당하게된 서독은 이후 투지가 불붙었다. 특히 네덜란드 선수들의 도발로 흥분했던 푈러를 격하게 뜯어 말렸으나 결국 푈러가 퇴장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클린스만은 이후 격한 감정 표출을 하며 네덜란드 수비진을 농락하며 골문을 연이어 강타했다. 동반 퇴장 이후 서독 선수들이 전의를 불태운 반면 네덜란드는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서독이 네덜란드 진영에서 일방적인 경기를 펼친 끝에 클린스만브레메의 연속골로 2:1 승리를 거두었다. 8강에서 체코슬로비키아를 1:0으로 꺾은 서독은 4강에서 게리 리네커의 잉글랜드를 맞아 쉽게 이길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방심했는지 다소 지쳤는지 이전과 다르게 잦은 실수를 하며 베컨바워 감독의 얼굴이 차갑게 굳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강한 압박 전술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하며 승부차기 끝에 결승에 올랐다. 결승전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와의 리턴매치. 브라질, 이탈리아 등 우승후보들을 연이어 꺾으며 결승까지 올라온 아르헨티나는 토너먼트에서 수비 위주의 역습을 노리는 전략으로 승리해 결승까지 올라왔다. 결승전에서도 아르헨티나는 서독을 상대로 10백을 시전했다. 하지만 경기는 전반전 후반 한때 아르헨티나가 기회를 잡은 것을 제외하면 내내 서독이 몰아붙이는 일방적인 경기였다. 아르헨티나는 수비적인 전술로 임했지만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고 서독 선수들에게 숱한 돌파와 슈팅을 허용했으나 운좋게 실점하지 않으면서 아슬아슬한 경기를 이어갔다. 서독은 숱한 찬스를 만들며 슈팅을 날렸지만 문전 골결정력 부족으로 득점 기회를 번번히 날려버렸다. 후반이 되자 아르헨티나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결국 서독 선수들의 계속된 돌파를 거친 수비로 끊으며 연이은 퇴장을 당했다, 서독은 계속된 파상 공세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아르헨티나의 골문을 열지 못했으나 결국 브레메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세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루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은 특히 독일이 징크스를 안고 있던 적지에서의 우승이었던데다[83] 동독과의 통일 분위기가 한껏 조성된 상황에서 국민들의 기쁨을 배가시킨 우승이었다.[84] 주장인 중앙 미드필더 로타어 마테우스는 공수를 오가는 전천후 활약을 펼치며 4골을 넣어 득점 2위를 차지했고, 그해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90월드컵은 DFB가 '서독 대표팀'으로 출전한 마지막 대회이기도 하다. 대회가 끝난 후 베켄바워가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수석코치였던 베르티 포크츠가 후임 감독이 되었다.
[image]
유로 1992 결승 덴마크전 선발 라인업(콜러, 일그너, 에펜베르크, 부흐발트, 헬머, 로이터, 리들레, 클린스만, 헤슬러, 브레메, 잠머)
유로 1992에서는 주장 마테우스가 부상으로 빠졌고, 대표팀의 3-5-2 전술에서 클린스만과 투톱을 이루었던 루디 푈러가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대회를 접는 등 전력 누수가 있었다. 본선 조별리그에서 스코틀랜드에게 2:0 승리, CIS에게 1:1 무승부, 네덜란드에게 1:3 패배로 불안하게 4강에 진출했으나, 스페인을 3: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변의 팀 덴마크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당초 푈러클린스만의 백업 공격수로 대표팀에 승선했던 칼-하인츠 리들레는 조별리그 첫경기에서 푈러가 불의의 부상을 당하며 대회에서 아웃되자 이후 결승까지 주전으로 활약하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후 그해말에 독일은 드디어 염원이었던 통일을 이루었다. 통일 독일이 들어서면서 축구계에서는 월드챔피언인 독일 대표팀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통일로 인한 경제적 침체와 지지부진한 세대교체로 이전 만큼의 위용을 보여주지 못한다. 에리히 리베크의 암흑기로 대표되는 이 90년대 후반~2000년대 전반은 독일대표팀에게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수 있는 암흑기로, 당시 메이저 대회에서 기록한 성적들을 보면 이러하다.
그 유명한 슈테판 에펜베르크법규가 시전된 대회였다. 그것도 무려 대한민국 국대 앞에서... 이후 독일은 에펜베르크 없이 토너먼트전을 치렀다.
1990년대에는 계속 하락세를 걸었기 때문에 녹슨 전차 군단이라는 오명을 썼다. 마테우스가 부상으로 빠지고 마티아스 잠머의 하드캐리해서 유로 1996을 우승해 통일 독일 최초로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긴 했지만 1994, 1998 월드컵과 유로 2000, 2004에서 계속된 부진으로 이런 비아냥을 계속해서 들어야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통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재정 상황의 악화로 분데스리가 내 대형선수들이 유출되고, 분데스리가가 상업적으로 저평가되어있어 해외 중계가 덜 되기 때문에 자국민들 빼고는 메이저 대회가 열리기 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암흑기 시절 동안 '''메이저 대회 직전마다 뛰어난 자원들이 자꾸 부상에 시달리는 고질적인 비극이 매 대회 계속됐는데''',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테크니션이자 전차군단 공격의 선봉격인 메멧 숄은 잦은 부상으로 유로 2000을 제외하면 메이저 대회에 제대로 출전한 적이 없다. 유로 2000에서 20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된 제바스티안 다이슬러는 천재적인 플레이로 세계를 놀라게 하며 독일 최고의 재능이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이 대회 이후 선수 커리어 내내 너무나 잦은 부상으로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 치료까지 받았으며, 결국 27세에 은퇴하고 말았다. 유로 2000은 다이슬러가 참여한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 대회가 되고 말았다. 올리버 칸, 메멧 숄과 더불어 90년대 말~2000년대 초 바이에른 뮌헨의 전성기를 이끈 굴지의 중원사령관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그 특유의 성깔머리로 대표팀 막내시절인 1994년 월드컵 한국전에서 F*ck 사건으로 대표팀에서 영구 퇴출되어 이후 단 한차례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는 도르트문트의 전설적인 리베로이자 당시 독일 대표팀 전술의 핵인 마티아스 잠머가 부상당하여, 40세를 눈앞에 둔 노장 로타어 마테우스를 써야하는 안습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처럼 주전급 선수들의 줄부상에 독일인들은 눈물을 흘렸는데 당시의 독일에 노장선수들의 후배들이 없다시피했던 안습한 역사들도 큰 몫을(?) 했다.
잘 거론되지 않지만 독일 대표팀의 암흑기는 능력 있는 지도자의 부재도 한 몫 했다. 암흑기의 시발점이 된 시점의 감독인 베르티 포크츠는 유로 96 우승으로 명장 소리도 듣기도 했지만, 3백을 고수하는 등 전반적으로 감독으로서의 역량이 뛰어나지는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게다가 마테우스, 클린스만, 에펜베르크 등 자존심 강한 선수들이 즐비한 독일 대표팀에서 전임 감독 베켄바워보다 선수 장악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받았다. 실제로 90년대 당시 독일 대표팀 선수들이 감독인 포크츠의 지도력에 불만을 갖고 마테우스를 더 따른다는 사실이 기사화되기도 하는 등 포크츠의 지도력과 선수 장악력은 줄기차게 구설수에 올랐다. 이는 조직력을 장점으로 하던 독일 대표팀에게는 치명적일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포크츠 정도의 능력과 커리어를 지닌 감독조차 당시 독일에는 없었다는 것. 포크츠가 저조한 성적 때문에 번번히 경질설에 시달리면서도 98년까지 장기집권한 것도 사실 포크츠를 대체할 만한 마땅한 감독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크츠의 후임 독일 대표팀 감독을 선출할 때도 심각한 인물난을 겪어서 감독으로서 실패에 가까운 커리어를 갖고 있던 울리 슈틸리케가 유력하게 거론될 정도였다. 그나마 막판에 뒤집혀서 에리히 리베크가 감독으로, 슈틸리케가 수석 코치로 부임하게 되었지만, 리베크 역시 전형적인 분데스리가 중하위권팀 감독이었다. 리베크의 후임인 루디 푈러 역시 지도자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독일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했다. 푈러의 후임인 클린스만도 마찬가지. 어쨌거나 요아힘 뢰프라는 걸출한 수석코치가 있었던 클린스만 시대에 암흑기가 끝났고, 클린스만의 뒤를 이은 뢰프는 2020년까지 장기집권하게 될 예정이다.
부수적으로, 암흑기 시절에는 팀웍도 좋지 않았다. 독일 대표팀은 과거에도 기술적으로는 세계최고라 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강호로 군림해온 것은 특유의 팀웍과 조직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90년대 암흑기에는 독일 대표팀의 가장 큰 장점인 팀웍에서도 문제를 노출했다. 무엇보다도 이전과 달리 감독 및 코칭스태프를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가 선수단에 팽배했다. 과거의 명감독들에 비해 카리스마가 부족한 포크츠가 대표팀 감독이 되면서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는 기사가 주기적으로 올라왔다. 후임 리베크 감독 시절에는 더욱 심해져서 훈련시간에 선수들이 수석코치 울리 슈틸리케를 비웃는 기사가 국내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막장 분위기를 보였다. 80년대 이전에는 지도자들이 뛰어난 커리어를 가진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던 탓도 있으나 이 시절에는 분데스리가에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뛰어난 선수들이 대표팀 승선을 위해 엄청나게 경쟁했으며 대표팀 훈련장에 와서는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에게 인정받고 눈도장 찍기 위해 헌신적인 자세로 훈련에 임했다. 하지만 분데스리가의 암흑기인 90년대에는 세대 교체를 하고 싶어도 그럴많한 젊은 인재들이 없었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장들만 계속 반복해서 대표팀에 승선하게 되었는데, 나이도 많고 대표팀 경력도 많고 대체 자원도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노장들이 코칭스태프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세대 교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노장들이 이런 태도를 보이니 대표팀 경력이 짧은 젊은 선수들도 곧 마찬가지 태도를 보였다.
[image]
▲1994 월드컵 조별리그 한국전 선발 라인업(일그너, 콜러, 베어톨트, 잠머, 에펜베르크, 부흐발트, 헤슬러, 브레메, 클린스만, 리들레, 마테우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부터 독일의 쇠락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독일은 전대회 우승국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조별리그에서 시원찮은 경기력을 보였다. 약체 볼리비아에 1:0의 진땀승을 거두었고, 스페인전에서는 1:1 무승부, 그리고 대한민국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3:2로 한국에게 질뻔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16강에 간신히 올랐다. 16강전에서는 벨기에를 만나 3:2로 꺾었지만, 8강전에서 불가리아에 1:2의 역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8강에서 탈락한다.[85]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4강 진출 실패의 충격 이후 16년 만의 일이었다.
94 월드컵에서의 부진은 세대교체 실패가 주원인으로 꼽힌다. 유로 92부터 칼-하인츠 리들레[86], 마티아스 잠머,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새로 대표팀에 승선했으나, 나머지 멤버는 모두 90년 월드컵 우승멤버였다. 새로 합류한 리들레나 잠머도 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다. 게다가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에펜베르크[87]는 조별예선 한국전에서 불미스런 일을 일으키고 대표팀에서 퇴출되었다.[88] 때문에 한국전 이후엔 백업멤버 바그너[89]가 출전했지만 에펜베르크의 공백을 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당시 독일 대표팀은 평균 31세가 넘는 94 월드컵 최고령팀이었다. 고령의 멤버들로 구성된 94 독일 대표팀은 엘리뇨로 인해 섭씨 36~39도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염으로 유명했던 94년 월드컵에서 체력적인 문제를 노출하면서 똥줄 경기력으로 일관했다.
[image]
▲유로 1996 결승전 체코전 선발 라인업(슈트룬츠, 잠머, 바벨, 아일츠(46분 보데), 헤슬러, 헬머, 치게, 쿤츠, (69분 비어호프), 클린스만, 쾨프케)
[image]
유로 1996에서는 로타어 마테우스가 빠지고 그를 대신한 새로운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를 중심으로 공격진에는 백전노장 위르겐 클린스만과 중고신인 올리버 비어호프가 활약했다. 특히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였던 비어호프는 이 대회에서 맹활약하며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결승전에서 체코의 베르거가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앞서나갔으나 교체 투입된 비어호프가 만회골을 넣어 동점을 만들었고, 연장전으로 가려던 찰라인 후반 50분 비어호프가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면서 2:1로 독일이 우승컵을 차지했다. 이로써 독일은 유로 대회 최다 우승의 기록을 세웠다.
[image]
▲1998 월드컵 8강 크로아티아전 선발 라인업(콜러, 하만, 타르나트, 하인리히, 비어호프, 뵈른스, 마테우스, 헤슬러, 예레미스, 클린스만(주장), 쾨프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앞두고 당시 대표팀의 핵인 리베로 잠머가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할 수 없게 되자 대신 만37세의 노장 마테우스의 대표팀 승선이 결정되었다. 16강에서 멕시코에 2:1 승리를 거두는 등 그럭저럭 8강에 올라왔으나, 8강에서 독일은 크로아티아에 0:3으로 완패했다.

이 경기에서 전반 막판에 뵈른스가 백태클로 퇴장당하는 역적질을 저지르며 독일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며 무너지기 시작한게 컸지만, 이 경기에서 크로아티아는 딱딱하고 투박한 독일식 축구를 어떻게 해체하는지 잘 알고 있음을 증명했다. 크로아티아 특유의 독일 약점 공략전술과 다보르 슈케르, 크로아티아LTE급 역습에 그대로 털렸다. 이때 당시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에서 최고 허접 자메이카에게도 패한 일본을 상대로 하마터면 비길 뻔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고는 해도 '''처녀 출전국치고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최대 돌풍팀이었다'''.
이 경기 이후 당시의 크로아티아에게 당한 충격은 독일인들에게 거의 종말, 나라 잃은 슬픔에 가까운 충격을 줬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독일은 크로아티아전 패배로 8강에서 탈락한 이후 독일축구는 약 6년간 최악의 암흑기를 겪게 된다. 또 94년 월드컵 8강전에서 불가리아에 패한 데 이어 1998년 월드컵 8강 크로아티아전 패배한 이후 독일은 한동안 동유럽 징크스, 동유럽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또 여전히 고전적인 3백을 고집해 현대 전술사의 흐름에 뒤쳐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후 1999년 2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처음으로 0:3의 완패를 당했고 1999년 7월,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또 다시 미국에게 0:2의 패배를 당해 토너먼트에 진출하지 못하는 최악의 수모를 당한다. 미국과의 경기에서 2번 맞붙어서 0:3, 0:2로 패배한 것이다. 당시 올리버 칸옌스 레만 로타어 마테우스까지 출전한 독일을 미국이 2번이나 맞붙어서 3:0, 2:0으로 밟아버림으로써 전차군단이라는 독일 축구의 명성에 최악의 수모를 안겨주었다. 경기 내용상 봐도 미국에 아무런 힘도 못쓰고 슛팅 한번 제대로 못하고 완패를 당하는 독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90]

7.10. 2000년대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에게 0:3으로 패배를 당했던 경기 장면)
유로 2000은 독일 대표팀 역대 최악의 대회라 부를만 하다.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꼴지인 4위를 차지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독일은 톱시드로 A조에 배정됐다. 그러나 조별리그 첫경기인 루마니아전에서 1-1로 비기며 불안하게 시작하더니, 두번째 경기인 잉글랜드전에서 앨런 시어러의 골로 0-1로 패하고 말았다. 이날 패배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결승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잉글랜드가 우승한 이후 처음으로 독일이 A매치에서 잉글랜드에 패한 경기였다. 그리고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의 세르지우 콘세이상에게 해트트릭을 얻어 맞으면서 '''3:0'''으로 참패했고 1무 2패로 A조 최하위로 탈락했다.[91]

2002년 월드컵 유럽지역예선에서는 뮌헨 홈구장에서 잉글랜드에게 '''1:5'''로 대역전패하는 망신을 당해 월드컵 본선진출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전 이래 독일 국가대표 홈경기에서 70년 동안 최고실점 경기였다.[92][93][94] 이날 대패하기 전까지 26년 동안 잉글랜드를 비롯한 영연방국가의 대표팀이 독일 대표팀을 이긴 적은 단 두번밖에 없을 정도로 독일은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잉글랜드에게 1:5로 역전당한 것도 충격이지만 '''마이클 오언''' 단 한사람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한 것은 더더욱 충격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선에서 독일은 준우승을 차지했고, 잉글랜드는 8강에서 브라질에게 발목이 잡혀 탈락했다.) 물론 이때 독일은 승점 3점 차로 조1위였고 잉글랜드는 월드컵에 나가기 위해 반드시 독일을 꺾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있기는 했다. 아무튼 이 경기 이후 상황은 뒤바뀌어 독일이 월드컵 진출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독일은 플레이오프에서 우크라이나와의 1차전에서도 0:1로 끌려간 상황에서 미하엘 발락이라는 구세주가 나타나 동점골을 터뜨려 간신히 무승부로 이끌고 2차전에서도 홀로 두 골이나 뽑아내는 원맨쇼로 이겨서 2002 한일 월드컵 본선에 겨우 진출한다.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메멧 숄이 부상으로 쓰러지고 독일의 기대주였던 차세대 테크니션 제바스티안 다이슬러도 부상, 거기에 레버쿠젠 3연준의 주역인 수비의 핵 옌스 노보트니마저 쓰러지는 악조건에서도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대진운에서 행운이 따라준데다가 올리버 칸이라는 전설적인 골키퍼와 위기때마다 터져준 미하엘 발락의 한방 그리고 쓰리백의 안정적인 수비 활약으로 가능했다. 조별예선 첫번째 경기 사우디아라비아 전에서는 8:0의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카메룬의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이 2:0의 승리를 거두었는데 양팀 퇴장 1명씩, 경고 6명을 받은 최악의 혈전이었다.[95] 독일은 카메룬에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했으나 주심의 카드남발이 심했다 쳐도 너무 거친 경기였다.[96]
[97] 이후 독일은 토너먼트에서 다시는 못 올 꿀대진을 받았다. 16강 상대는 당시 남미 예선을 4등으로 겨우 통과했던 파라과이였다. 그런데 독일은 파라과이를 상대로 졸전 끝에 경기 막판에 터진 올리버 뇌빌의 결승골로 1 : 0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올랐다. 8강 상대는 미국이었는데 독일은 미국을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미하엘 발락의 결승골로 간신히 1 : 0 승리를 거두었다.
4강 상대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그 대회 우승후보들로 거론된 팀들과 연달아 씨름을 하느라 지쳐서 기진맥진한 개최국 대한민국이었다. 독일은 이 지칠대로 지친 대한민국을 상대로도 역시 고전하다가 미하엘 발락의 결승골로 간신히 1 : 0 승리를 거두었다. 결승전 상대는 역시 지역예선에서 6번이나 패배할 정도로 비실거렸던 브라질이었다. 독일은 브라질에 0 : 2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물론 2002년의 준우승은 16강전 및 토너먼트에서 축구계에서 강호로 인정받는 팀을 만나지 않은 최상의 대진운 탓이 크다고 말하지만 독일에게는 기대 이상의 실적을 올린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 독일과 브라질의 결승전에서 베를린에서 독일인들의 독일 대표팀 응원 모습이다. 결승전에서 0:2로 브라질에 패배했으나 독일인들은 독일의 예상밖의 월드컵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얻으며 독일인들로 하여금 4년간 최악의 암흑기를 겪은 자국 축구에 대한 희망을 얻게 해준 대회였다.
그러나 이 후 프랑스와의 친선경기에서 0-3 완패, 헝가리와의 경기에서도 0-2로 패하더니, 4월달에 열린 루마니아와의 유로 2004를 앞둔 마지막 평가전에서 무려 1-5 대패를 당하면서 2002년 이전으로 리셋이 되어버렸고, 자국에서는 아예 유로대회에 안나가는 것이 좋겠다라는 맹비난을 들어야만 했다.[98]
결국 유로 2004에서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조별리그 첫 경기인 네덜란드전에서 1:1로 비길 때까지만 해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약체 라트비아전에서 9백 수비를 뚫지 못하고 0:0으로 비기고 말았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체코와의 3차전에서 독일은 90년대 바이에른 뮌헨이 재현한 5-4-1 포지션까지 꺼내들면서 마지막 발악을 하지만 결국 체코에 1:2로 패하면서 조3위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사실 이 시기 루디 푈러감독이 무작정 쓰리백만 고집했던건 아니였다. 당시 독일도 4-4-2나 4-2-3-1[99] 포메이션을 정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플레이메이커에 메멧 숄, 혹은 세바스티안 다이슬러로 두고 좌우에 올리버 노이빌레, 베른트 슈나이더, 혹은 토르스텐 프링스를 두며, 더블 볼란치에 미하엘 발락프랑크 바우만 혹은 파비안 에른스트세바스티안 켈, 시몬 치우머를 배치시키고, 풀백에 마르코 레머, 옌스 노보트니, 크리스토프 메첼더, 외르크 뵈메 혹은 토르스텐 프링스를 배치시키면 됐었다. 하지만 숄과 다이슬러, 노보트니는 유리몸이였고 레흐머와 뵈메는 미카엘 타르나트마르코 보데만큼의 클래스를 보여주질 못했다. 즉 플레이메이커는 없고, 풀백들은 엉망이니, 그렇다고 4-4-2를 쓰자니, 발락의 파트너로 굳게 믿었던 바우만과 치우머, 에른스트는 국대에만 오면 호러쇼를 보여주면서 망했어요.. 적어도 2006년 슈바인슈타이거, 메르테자커등 영건들이 성장하기 전까지 모든 팀의 코어를 발락 1명에게 몰빵할 수 밖에 없었다. 토르스텐 프링스의 경우 알다시피 풀백자원의 고갈로 불가피하게 풀백에 배치되면서 발락과의 중원호흡을 2006년 월드컵 이전까지 맞추질 못했다.
독일 국가 대표팀이 암흑기를 겪는 동안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유럽대항전에서 폭망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적어도 2002년도까진 어느정도 경쟁력을 보여주었다. 통일로 인한 경제난으로 분데스리가의 위상이 과거보다는 떨어졌지만 1995-96 UEFA컵을 우승한 바이에른 뮌헨, 1996-97 시즌에는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무려 UEFA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고 FC 샬케 04가 UEFA 컵을 들어올리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바이에른 뮌헨은 1998-99 시즌 챔스 준우승[100], 2000-01 시즌 챔스 우승을 달성했고 바이어 04 레버쿠젠도 2001-02 챔스 준우승의 쾌거를 올리는 등 독일 클럽들도 결코 몰락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2002-03 챔피언스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의 광탈에, 16강에간 레버쿠젠도 8강진출에 실패하면서 불안감을 보이더니 2003-04 시즌 도르트문트의 챔스 탈락, 그리고 UEFA컵에서도 샬케와 동반 조기탈락에, 바이에른 뮌헨과 슈투트가르트도 16강에 그치면서 이 시기 UEFA 랭킹 포인트를 달랑 2점밖에 받지 못했다. 2004-2005 시즌엔 레버쿠젠, 브레멘, 뮌헨이 모두 16강을 돌파했지만 레버쿠젠은 첼시에게 완패당하고 브레멘은 리옹에게 2-10으로 학살당하면서 결국 바이에른 뮌헨만 아스날을 잡고 8강에 진출하지만 뮌헨마져 첼시에 4-5로 패배하면서 또 다시 4강진출에 실패, UEFA컵에서는 도무지 힘을 쓰지 못했고, 05-06시즌에 UCL에선 아예 세리에A클럽에게 학살당하면서 또 16강에서 탈락. 그나마 샬케가 UEFA컵에서 4강까지 갔지만 세비아에게 0-1로 패하면서 2006년 말까지 분데스리가는 프랑스 리그앙에게도 포인트가 밀리며 5위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이러한 암흑시대는 2000년대 독일의 유망주 정책이 08-09시즌 서서히 빛을 보면서 다시 경쟁력을 갖추게 되고 09-10시즌 리그 랭킹 포인트 점수 1위를 기록하면서 동시에 다시 부활한 국대와 같이 암흑기를 끝내게 된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암흑기 시기 동안 독일 축구협회는 독일 축구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필요성을 느끼고 유소년 축구에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그 결과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유소년 축구 시스템을 갖췄다는 평을 받는다. 유소년 정책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다.
유로 2004에서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조별예선에서 탈락하자 독일 축구협회는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술면에서 비판을 받아왔던 루디 푈러 감독을 경질하고 후임 감독으로 위르겐 클린스만을 내정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당시 부진했던 대표팀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등에 업고 적극적인 개혁을 추진했는데, 당시에는 다소 생뚱맞게 비춰졌던 부분도 있어서 언론이나 축구협회와 다소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라 결국 일단 클린스만이 하는대로 내버려 둬 보자 하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클린스만은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루카스 포돌스키, 페어 메르테자커 등 젊은 피를 대거 주전으로 발탁하여 적극적으로 세대교체에 나섰다.[101] 2004년에는 아시아 원정을 통해 신예들을 시험하기도 했다. 클린스만호가 본격적으로 선보인 것은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였다. 독일은 4강에서 호나우지뉴, 호비뉴, 아드리아누 등이 활약한 브라질에 3-2로 석패하면서 3위에 그쳤지만, 신예 멤버들과 기존 멤버들이 조화를 이루며 골고루 활약하면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결국 2006 독일 월드컵에서 3위에 오르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이로써 녹슨 전차는 옛말이 되었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독일은 조별리그에서 3승무패를 거두고 조1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전에서는 스웨덴을 2:0으로 가볍게 꺾고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우승후보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는데, 양팀은 승부차기까지 가는 팽팽한 경기를 벌였고, 독일이 4강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숙적 이탈리아와 대결을 벌였다. 2006 이탈리아 대표팀은 역대 이탈리아 대표팀 중 거의 최약체로 꼽히는 팀이었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도 졸전을 펼치며 연패하는 등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월드컵 개막 직전 세리아A 승부조작 스캔들이 터지며 이탈리아 대표팀은 최악의 상황에서 월드컵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승부조작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이탈리아 대표팀은 코너에 몰린 쥐처럼 초인적인 힘을 내며 예상외의 선전을 펼치고 있었다. 4강전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팽팽한 접전이었다. 이탈리아는 이번 월드컵에서 죽기살기로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승부는 연장전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가려지지 않았고, 승부차기에 엄청나게 강했던 독일은 연장전 막판에 내심 승부차기를 반기는 분위기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이 승부차기에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이탈리아는 오히려 막판에 매섭게 몰아쳤고, 연장전 종료가 다가오면서 집중력이 흐트러진 독일 대표팀의 수비를 뚫고 그로소가 골을 넣었다. 이후 추가시간을 포함해 남은 약 2분의 시간동안 독일은 동점을 위한 총력전에 나섰지만 오히려 이탈리아의 역습을 허용하여 델피에로가 추가골을 넣으며 2:0으로 패하고 말았다. 3~4위전에서는 신예 슈바인슈타이거의 맹활약으로 포르투갈을 3:1로 이기고 최종순위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2006 독일 대표팀은 월드컵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였고, 특히 포돌스키, 슈바인슈타이거 등 신예들이 기대 이상의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대표팀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유로 2008에서는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 대회에서는 그동안 대표팀의 주축이었던 프링스가 다소 노쇠한 모습을 보이면서 2006 월드컵 때보다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나, 미하엘 발락과 필립 람이 건재하고, 2006 월드컵에서 맹활약하며 앞으로 독일 대표팀을 이끌어갈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은 포돌스키슈바인슈타이거가 날라다니며 독일을 토너먼트에서 캐리하였다. 독일 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폴란드와 개최국 오스트리아를 제압했으나 크로아티아에 발목을 잡히며 조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8강과 4강에서 각각 초절정의 흐름을 타고 있던 호날두의 포르투갈과 터키를 3대2로 제압하며 저력을 보여주었고,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스페인의 티키타카를 만나 너무 무기력한 모습으로 준우승에 머물고 말았다. 특히 절정의 세트플레이 감각을 보이던 클로제와 슈바인슈타이거가 결승에서 몇차례 세트플레이찬스를 어처구니없이 날려버렸고 교체멤버 케빈 쿠라니는 삽질의 끝판을 보여주며 모처럼의 메이저대회 우승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2006년 월드컵에서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독일이지만, 이후에도 세대교체는 계속되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에서 새로운 얼굴들이 대거 등장했다. 특히 2009년 U-21 우승멤버들이 대거 투입되었는데, 토마스 뮐러, 메수트 외질, 사미 케디라, 제롬 보아텡, 마누엘 노이어가 그들이다.[102] 특히 외질뮐러는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남아공 월드컵이 배출한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사실 이들 젊은피들은 대표팀에서 검증된 자원이 아니었고 독일 국내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신예들이었다. 독일 국내에서도 이들 신예들에 대한 기대가 크지는 않았고, 그보다 월드컵 개막 직전에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 발락이 부상으로 제외되면서 대표팀 경기력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되자 이들 영건들의 활약으로 독일은 놀라운 경기력을 보였고 이에 대표팀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여겨졌던 발락은 조용히 대표팀 은퇴 수순으로 접어들었다.

7.11. 2010년대


전반적으로 필리프 람이 팀에 차지하는 지분이 절반 이상인, 이른바 몰빵된 팀이었다. 때문에 필리프 람이 뛰면 일부(천적인 이탈리아나 급부상한 스페인)를 제외하고는 승승장구하는 팀이었으나 단지 필리프 람 혼자만 빠졌다고 해서 이런저런 비주류 팀들에게 쳐발렸다. 필리프 람 대신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주장 완장을 차고 뛴 유로 2016 지역예선에서는 폴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2로 패하던 뒤이어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경기를 0-1, 1-1 로 끝내 아일랜드를 이겨보지 못하고 예선을 마무리했으며 이후 2018년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멕시코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1로 패한 게 문제가 아니라 경기력이 너무 개판이라서 보다못한 박지성조차 "저런 놈들은 대한민국과 비벼볼만하다"고 평가할 정도였었으며 실제로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2로 패하면서 조별리그 탈락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조별라운드 1차전에서 독일은 호주를 4 : 0으로 이기면서 우승후보의 위력을 보이나 했더니 세르비아전에서 미로슬라프 클로제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고 경기가 급격히 기울면서 세르비아에 0 : 1로 패배하는 이변이 연출되었다. 그러나 마지막 3차전에서 가나를 상대로 고전 끝에 메수트 외질의 결승골로 1 : 0 신승을 거두고 2승 1패의 전적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에서는 잉글랜드를 4 : 1로 대파하며 뮌헨에서 당했던 1 : 5 굴욕을 9년만에 철저하게 갚아주었다.[103] 8강전에서는 메시, 이과인, 테베즈, 디 마리아 등 호화진용을 구축한 디에고 마라도나 감독의 아르헨티나와 격돌했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뚜껑을 열어보자 독일이 충격적일 정도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4 : 0'''의 압승을 거두면서 독일은 대회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104] 그러나 4강 스페인전에서는 토마스 뮐러가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는데 4강전에서 뮐러의 공백은 컸다. 또 16강전과 8강전에서 독일이 보여준 가공할만한 역습 패턴에 대해 철저히 분석하고 나온 스페인이 강한 전방압박과 특유의 점유율 축구로 독일의 역습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성공했고, 결국 독일은 스페인에 0 : 1로 졌다. 독일은 스페인카를레스 푸욜에게 결승골을 내주고 결승진출에 실패한다. 독일을 이긴 스페인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하고 독일은 3위 결정전에서 우루과이를 맞아 3 : 2 승리를 거두고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105]
2014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에선 오스트리아, 스웨덴, 카자흐스탄, 아일랜드, 페로 제도랑 같은 조를 이뤄서 쉽게 본선진출을 이룰 것으로 예측되었고, 안방에서 4 : 0으로 앞서다가 연달아 4골을 먹히며 비긴 스웨덴 경기를 빼고 전승하면서 결국 최종예선 결과 9승 1무로 압도적인 1위로 본선 진출 확정했다.[106]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선 포르투갈, 가나, 미국과 함께 죽음의 조인 G조에 속했다. 독일의 조별리그 1차전 상대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버티던 포르투갈이었다. 상당히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란 예측과 달리 결과는 매우 싱거웠다. 토마스 뮐러해트트릭을 앞세워 독일이 '''4 : 0''' 대승을 거두었다.[107] 그러나 2차전 가나와의 경기에선 매우 고전했으며 하마터면 질 뻔했다가 간신히 2 : 2 무승부를 거두었다. 3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도 독일은 우세한 볼 점유율을 바탕으로 시종일관 공격적으로 밀어붙였으나 의외로 골을 넣지 못했고 후반전에 터진 토마스 뮐러의 결승골로 1 : 0 신승을 거두며 2승 1무의 전적으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16강 상대는 바로 32년 전 히혼의 수치라는 악연으로 얽힌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였다. 수비의 핵인 마츠 후멜스의 결장과 요아힘 뢰프의 괴상하기 짝이 없는 '포터백'[108] 전술 그리고 슈코드란 무스타피의 희대의 민폐 플레이 때문에 알제리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렇게 90분을 하염없이 0 : 0으로 보냈다가 연장전에 간신히 안드레 쉬얼레메수트 외질의 골을 앞세워 2 : 1 신승을 거두고 8강에 올랐다. 그리고 8강 상대는 라이벌인 프랑스였다. 독일은 프랑스를 맞아 전반 13분에 터진 마츠 후멜스의 헤더골을 끝까지 잘 지켜 1 : 0 승리를 거두고 4회 연속 4강 진출에 성공했다.
4강 상대는 바로 개최국인 브라질이었다. 2002년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후 12년 만에 재회한 두 팀. 누가 이길지 예측불허인 경기로 예상되었고 승부차기까지 갈 수도 있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으나.... 브라질을 상대로 무려 '''7 : 1'''이라는 믿을 수 없는 스코어로 '''대승리'''를 했다. 독일이 득점을 너무 많이 하자, 차범근 조차 "독일이 골을 그만 넣었으면 좋겠다"고 몇 번이나 말할 정도였다. 12년 만에 결승진출에 성공한 독일은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 1 : 0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통일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의 주역은 토마스 뮐러, 마누엘 노이어, 안드레 쉬를레, 필립 람, 마리오 괴체 등.
[image]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독일이 유로 1996 우승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2006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암흑기에 벗어나 다시 강호로 거듭났다는 평가를 받고는 있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전까지 18년동안 독일에 국제대회에서의 우승실적이 없었기 때문에 절대강자 수준이라 보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4강까지 올라가는 횟수는 많지만 우승은 18년동안 없었다'''는 것. 이러한 점으로 인하여 독일은 유로 1996을 기점으로 '''우승으로 가는 길목의 수문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결국 2014년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고 세계축구 정상의 자리를 탈환하면서 이러한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2014년 10월 11일 유로 2016 예선 2차전 폴란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0대2 패배를 당하였다. 이 패배는 독일과 폴란드가 맞붙기 시작한 1933년 이래 독일의 첫 패배. 이전까지는 12승 6무라는 압도적인 상대전적이었으나 1패가 추가되었다.
2016년 3월 26일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에서 벌어진 독일과 잉글랜드와의 친선전에서 2:3으로 독일이 역전패했다. 독일은 전반 43분께 토니 크로스의 선제골과 후반 12분 사미 케디라의 패스를 마리오 고메스가 골로 연결시켜 2:0으로 앞서나갔다. 이에 잉글랜드는 후반 16분 해리 케인의 추격골을 시작으로 후반 29분 제이미 바디가 동점골을, 그리고 경기종료를 앞두고 추가된 시간에 에릭 다이어가 역전골로 잉글랜드에 승리를 안겼다. 친선전이라고는 해도 독일로서는 불쾌한 패배이기도 한데 공교롭게도 '''이게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8강전과 비슷한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독일이 0:2로 뒤지던 상황에서 프란츠 베켄바워의 추격골, 우베 젤러의 동점골, 그리고 연장전에서 터진 게르트 뮐러의 역전골로 3:2로 이겼었는데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어 독일이 2:0으로 이기고 있던 경기를 잉글랜드가 뒤집었다는 것이고 그리고 결승골이 연장전이 아닌 경기종료 직전의 추가시간 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요아힘 뢰프 감독으로서는 유로 2016을 앞두고 예방주사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을테지만 전차군단으로서는 다시 한번 방심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2016년 3월 29일에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에서 무려 '''4:1이란 스코어로 승리했다.''' 21년 만에 아주리 징크스를 격파했다.[109] 그리고 마침내 7월 3일에 열린 유로 2016 8강전에서 천적 이탈리아를 '''승부차기 끝에 6:5로 제압하고 4강에 올랐다.''' 그간 토너먼트에서 이탈리아만 만나면 짐을 싸야 했던 독일로서는 비록 공식기록은 무승부이긴 하지만 메이저대회에서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넘어선 것이기에 그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사미 케디라와 마리오 고메즈의 부상, 마츠 후멜스의 경고누적 등 전력의 누수가 생겼고 결국 4강전에서 프랑스에게 2대0[110]으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사족으로 독일은 58년 월드컵 4강-66년 월드컵 결승전 이후 월드컵-유로 대회에서 개최국에게 진 적이 없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50년만에 홈팀에게 무너지는 결말을 맞이하고 말았다.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 자격으로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출전하게 되었지만, 정작 독일 내에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축협이나 감독이나 이번 대회는 당장의 성적이 아닌 미래의 재능 양성을 위해 쓴다고 공포했고, 심지어 컨페드컵 폐지론마저 나돌았던 상황. 그리고 진짜로 선수 명단을 제출했을 땐 선수 평균 연령이 무려 '''약 23세'''에 A매치 출전 경험도 '''약 17경기'''인 파격적인 스쿼드를 발표했다. 당연히 FIFA는 대회의 질을 떨어뜨린다니 무시한다니 반응이 상당히 부정적이었으나...독일은 이를 비웃듯 호주와 카메룬을 상대로 각각 3득점씩 올리며 2승을 챙겼고, 강호 칠레와도 대등한 경기력을 보이며 2승 1무로 조 1위를 거머쥐었다. 4강에서는 멕시코를 상대로 4대1 대승을 거두며 결승에 무난히 안착했고, 다시 만난 칠레에게 고전하는 듯 했으나 행운의 선제골[111]을 넣고 효율적인 지역방어와 역습 위주의 경기를 펼치며 1대0으로 승리, 조국 최초의 컨페더레이션스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독일 입장에서는 성적과 실험 모두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2017년 10월 9일 아제르바이잔전을 마지막으로 러시아 월드컵 예선 C조에서 10전 전승으로 마무리하며 가볍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112]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녹슨 전차군단' 시절에는 유로에서만 부진했을 뿐, 월드컵에서는 대진운빨이라지만 2002년에 준우승을 거두기도 하고 아무리 못한다 해도 8강까지(1998년)는 진출했었다. 그러나 이 기록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 그것도 조 꼴찌로 탈락함으로서 중단되었고 이후로도 팀 내외적으로 답이 안보이는 행보만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이 막상 열리자 첫 경기부터 멕시코에 아무 힘도 못써보고 0:1로 충격패를 당하고 스웨덴전에서는 선취점을 빼앗기고 훌륭한 수비수까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끝에 20초 남긴 상태에서 토니 크로스의 기적같은 역전골로 2:1 승리를 했지만,[113] 3차전 한국전에서 0:2로 패배하여 조 4위 즉, 독일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조 꼴찌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114]

독일이 월드컵에서 무득점 2점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대패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0:2로 패배하고 2006년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게 0:2로 패배를 당한 이후 12년 후의 일이다. 전술한 팀들은 다 한 축구 하는 강호들이니 변호할 여지라도 있지만, 그런 강호들 축에 들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에게 무득점에 그것도 다실점 패배라는 세계구급 굴욕을 당했었다. 독일 국대가 동아시아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버리는 바람에 피해가 막심한 상황이다. 게다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대 한국전 패배는 독일이 월드컵 본선에서 아시아 국대에게 최초로 패한 경기이다. 해당 항목을 보면 기술돼 있지만 이 한국전 패배 전까지 독일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월드컵 본선 성적 6승 무패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오죽하면 베를린 교통 공사(BVG)가 독일에서 열리는 2018년 유럽 버스기사 대회를 앞두고, ‘한국은 이 대회에 참여하지 않으니 우리 버스기사가 우승을 차지할 절호의 기회’(Echte Chance: Südkorea ist nicht dabei)라는 식으로 홍보 활동을 벌였었다. 한국전에서 패한 후 가진 첫 A매치 2연전인 프랑스전과 페루전에서 페루에게는 승리하고 프랑스에게는 무승부를 거두며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살리는 데 성공했다. 특히 프랑스와의 UEFA 네이션스 리그 1차전에서는 프랑스의 강점인 역습을 사전에 모조리 차단하는 수비와 압박 위주의 전술을 들고 나와 월드컵 우승국을 쩔쩔매게 했으며, 골키퍼의 선방만 아니었으면 충분히 승리를 노려볼만한 경기력이었다. [115] 다만 이 경기만으로는 판단하는 게 무리인 게, 독일이 2018년 월드컵에서 망한 이유는 강팀을 상대로 못해서가 아니라 '''상대적 약체를 상대로 졸전을 펼치고 승점을 잃었기 때문이다.'''[116] 아니나 다를까 페루와의 평가전은 로이스와 베르너의 부진으로 인해 기회는 많이 잡고도 간신히 승리만 거두는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의 악몽을 극복하려면 시간이 아직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18년 10월에 가서는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실패한 네덜란드[117]에게도 '''0 : 3'''이라는 나락을 향해가는 참패를 맞이함으로써, 우승은 커녕 리그 B로 강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까지 몰렸다. 월드컵에서 사용했던 뻔한 전략을 또 다시 쓰다가 네덜란드의 역습에 발목이 잡혀버린 것이다.[118] 게다가 다음 상대는 월드컵 우승팀 프랑스...망했어요.[119] 독일이 3점차로 패배한 것은 2007년 체코에게 0 : 3으로 진 이후로 무려 11년 만의 일이었다.
냉정히 독일이 앞으로 좋은 성과를 얻고 싶다면 과감히 뢰프를 사퇴시키고 더 젊은 선수를 등용할 생각이 있는 감독으로 팀의 체질 개선을 해야할 것이다. 그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뢰프 & 선수단은 외부의 비판을 지나치게 개무시하고, 자신들의 스타일을 지나치게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이게 더 이상 먹히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선수단 구성뿐만이 아니라 포메이션을 짤 때에도 문제가 있다. 뢰프는 종종 풀백에 센터백이나 기동성이 아쉬운 선수를 선호하는데 (대표적으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기동성과 슈팅은 별로 좋지 않다. 슈바인슈타이거의 기동성이 클로제 수준이었으면 애초에 2010년 월드컵 4강에서 스페인한테 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전술은 현대축구에서 먹히지가 않는 시대착오적 전술이다. 또한 다른 좋은 윙어가 있음에도 베르너 & 뮐러와 같이 함량 미달인 선수를 꾸준히 기용하고 있다.
여튼 우려 속에 치른 프랑스와의 2차전은 전반은 꽤나 선방하며 크로스의 페널티킥으로 1대0으로 앞섰으나, 후반에 뒷심 부족으로 그리즈만에게 두 골을 내주며 1대2로 역전패했다. 전반전은 우세하게 진행했지만 결국 '''또''' 골 결정력 부족에 울었던 독일이다. 주범은 이 놈이 놈. 긍정적인 면을 꼽아보면 흔들리던 수비가 훨씬 견고해졌다는 점, 그리고 월드컵 챔피언을 상대로 기죽지 않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펼쳤던 점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여러 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경기이다. 다만, 수비가 견고했다는 것에는 윙백도 센터백 & 풀백으로 구성할 정도로 밸런스가 뒤에 쏠린 3백을 큰게 더 큰 원인이다.
UEFA 네이션스 리그 18-19 시즌 리그 A 1조 5차전인 네덜란드 vs 프랑스 전은 네덜란드가 2:0으로 승리하면서 6차전인 독일vs네덜란드 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독일은 결국 리그 B로 강등이 확정되고 말았다.''' 게다가 독일은 마지막 네덜란드전에서 선제골을 2골이나 넣었으나 뒷심부족으로 후반 막판에 네덜란드에게 2골을 내줘 2:2로 비겨 무승부를 거둠으로써 이제 독일은 다음 시즌인 20-21 시즌에선 리그 B에서 뛰어야 한다. 20-21시즌 리그 B 소속팀은 독일 외에 오스트리아, 웨일스, 핀란드, 폴란드, 아이슬란드, 크로아티아, 러시아, 체코, 노르웨이, 스코틀랜드, 세르비아가 있다. 거기다 리그 A 승격팀들은 '''우크라이나''',[120] 덴마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121] 스웨덴 이렇게 4팀. 심지어 UEFA 네이션스 리그 순위가 나왔는데, 독일은 리그 A 12개 팀 중 '''11위'''다. 12위는 다름아닌 리그 A 최약체가 예상되었던 '''아이슬란드'''. 심지어 '''폴란드(10위)한테도 밀렸다.''' 독일은 카잔의 치욕을 기점으로 치욕이란 치욕은 다 당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 결과도 4번의 대결에서 '''한 번도 못 이겼다'''는 게 문제다. 적어도 크로아티아는 막판에 스페인을 이겨서 다 올라간 스페인의 다리를 부러뜨렸고 이탈리아 역시 적어도 폴란드만이라도 이겨서 최소한의 체면치례를 했건만 독일은 그 딱 1번을 이기지 못하고 2무 2패의 초라한 전적으로 결국 리그 B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리그 B에서 더 떨어질 일은 거의 없어보인다는 것이 위안이다. 무엇보다도 독일은 이제 더 이상 월드컵 우승후보가 아니다. 그 이유는 팀의 기량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이제는 완전히 읽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2018년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드러난 것이다. 멕시코 수준이야 뻔한데 그런 멕시코를 상대로 아예 모든 면에서 일방적으로 압도당한 끝에 패하고 만 것이다. 이건 독일이 멕시코보다 실력이 없는 팀이 아니라 '''독일의 스타일이 멕시코에게 완전히 읽힌 것이다'''. 그 때문에 독일은 2018 월드컵을 포함해 그 이후 승리라는 게 스웨덴전의 승리와 러시아와의 친선경기 승리 정도밖에 없는데 이건 그냥 독일쪽의 선수 스펙이 좋아서 선수빨로 이겼을 뿐이다. 실제로도 독일은 선수 스펙이 비슷한 프랑스네덜란드에게는 UEFA 네이션스 리그 2018-2019 시즌에서 정말 찍소리도 못하고 각각 1무 1패씩 총 2무 2패를 거두며 결국 리그 B로 강등당했다. 독일이 다시 월드컵 우승후보가 되려면 뢰프를 경질시키든 유임시키든 간에 그 동안 써왔던 전술을 완전히 버리고 아예 다 갈아엎어야만 한다. 이 전술, 이 스타일 갖고는 이젠 앞으로 어느 대회 어느 경기에서도 써먹기 힘들다. 아니나 다를까, 월드컵과 비슷한 전술과 멤버로 나선 10월 네덜란드전에선 아무것도 못하고 털려버렸지만, 공격진을 완전히 갈아엎고 나서부터는 이후 3경기에서 6골을 기록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건 펩 과르디올라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점유율 축구에 대한 카운터로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이 나오기 시작한 후부터 드러난 조짐인데, 사실 독일 축구계는 그 두꺼운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런 텐백 전술을 뚫어줄 크랙 자원이 부족했다.[122] 과르디올라가 뮌헨 감독을 역임했었고, 그 바이에른 뮌헨에서 독일 국대에 승선하는 것이 상당수였으므로, 독일 국대 선수들은 점유율 축구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멕시코가 1:0으로 승리하면서 그 전략의 파훼법을 처음으로 제시했고, 한국이 2:0으로 승리하여 독일을 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시켜 버리면서 이 점유율 축구의 파훼법이 전세계에 확실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텐백을 비롯한 선 수비 후 역습으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겨버렸으니 당연히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유럽 축구 국가대표팀들이 해당 대결을 주목한 이유는 단순히 독일에 대한 조롱만이 아니라 약체임에도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독일 축구의 기술을 완전히 격파했기 때문에 그 기술이 주목받은 것이다. 네이션스 리그에서 네덜란드를 만난 독일은 또 그 점유율 축구를 들고 나왔고, 당연히 한국보다 선수층과 시스템이 더 탄탄한 네덜란드그 경기를 안 봤을 리 없으니 네덜란드는 역시 그 파훼법으로 손쉽게 승리했다. 결국 이 텐백을 뚫을 자원과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일은 한동안 타 국가들로부터 망신을 더 당하게 될 전망이다.
이런 조짐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우승하자마자 바로 보여줬다. 필립 람이 은퇴하자마자 독일은 공수 밸런스가 붕괴되었고, 독일에는 람만큼 중원 사령관을 하는 선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로 대체했으나, 슈바인슈타이거는 람만큼 뛰어난 자질이 아니었기에 UEFA 유로 2016 지역예선에서 폴란드아일랜드에게 연이어 패배했다. 독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약체들에게 연달아 잡힌 것이다. 그러나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군급 선수들을 내보내고도 깔끔하게 우승하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지역예선(유럽)에서도 체코, 북아일랜드, '''산마리노''' 등 독일로서는 준비운동거리조차 안 되는 상대들과 맞붙어 '''10전 전승'''을 기록했기에 다시 우승후보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본선에 나와 보니 람의 부재는 정말로 뼈아팠다. 그 외에도 지나친 경거망동+기고만장도 독일의 몰락의 원인이 되었는데,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 부분 결승전에서 패한 후 당시 수비수로 출장한 로베르트 바우어손가락 7개를 치켜세우며 브라질을 도발하여 구설수에 올랐다거나, 러시아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독일이 산마리노를 8-0으로 꺾고 난 직후, 뮐러가 '''"산마리노는 아마추어 팀이며, 이런 팀과의 경기는 쓸데없는 부상 위험만 만든다. 스케줄도 바쁜데 이러한 경기를 대체 왜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을 하여 전세계적으로 욕을 오지게 먹었다거나,[123] 전력분석을 소홀히 했다거나... 덤으로 독일의 모 축구선수가 2017년 새해 인사를 지난 대회 참극을 빗대어 2017의 1과 7을 브라질 : 독일로 조롱했다가 한국에게 0:2로 쳐발리고 조별리그 꼴찌로 광탈당하자 SNS로 찾아가서 새해 시작할 때마다 2와 0을 각각 태극기와 독일 국기로 놀림거리라는 업보를 받고 말았다.

7.12. 2020년대


2018년 마지막 A매치 2연전 중 첫 경기인 러시아와의 평가전에서는 간만에 시원시원한 독일스러운 경기력을 보이며 3대0 완승을 거두었다. 이 날은 단순히 내용 뿐만 아니라 선수들 역시 유망주와 젊은 선수들을 위주로 선발 라인업을 꾸렸고[124] 후반에도 신예들을 위주로 교체를 했기에 드디어 세대교체를 시작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러시아 역시 다소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시험하는 경기여서 결과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뭐하겠지만 드디어 구식 선수들을 제외하고 팀을 개편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네덜란드와의 최종전에서는 시종일관 압도적인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막판에 집중력이 떨어지며 2대2로 비기게 된다. 결과는 분명 아쉽지만 2018년의 마지막 세 경기는[125] 세대교체의 시동을 걸고 원래 독일의 모습으로 점차 돌아오고 있다는 점에서 어둠 숙에서 잠깐이나마 독일 축구에 기대심리를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다. 결국 독일 축구 역사상 최악의 한 해를 보냈었다.
2019년 3월 5일, 뢰브 감독이 바이에른 뮌헨의 훈련장을 찾아 토마스 뮐러, 마츠 후멜스, 그리고 제롬 보아텡에게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뽑지 않겠다고 통보하며 본격적으로 세대교체의 시작을 알렸다. 문제는 한창 시즌이 바쁠 때[126] 아무런 예고도 없는 거의 일방적인 통보였던지라 선수도 구단도 상당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어 칼 하인츠 루메니게 뮌헨 사장은 "통보를 뮌헨이 중요한 경기를 치르는 기간에 꼭 해야 했는가?"라고 성명서를 냈고, 로타어 마테우스도 세대교체에는 동의하지만 발표 타이밍이 상당히 안 좋았다며 뢰브를 비판했다. 이들 베테랑을 대놓고 안 뽑겠다고 선언한 이후 치뤄진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에서는 홈에서 1:1 무승부가 났다. 독일과 세르비아의 축구에서의 위상차를 생각해보면 홈에서 무승부가 난 것 자체도 상당히 부끄러운 일인데, 경기 내용면에서도 좋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 전반 12분만에 '''결정적인 1:1 찬스를 허용해 선제골을 먹힌 것이다'''. 이후 후반에 레온 고레츠카가 만회골을 넣었는데, 전반전 시작 얼마 안 돼서 선제골까지 먹힌 것은 수비 조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후 현지시각으로 2019년 3월 24일, 네덜란드와 유로 2020 예선 경기를 치렀다. 독일은 지난번과 비슷하게 젊은 선수들 위주로 기용했으며, 몇몇 베테랑들도 경기를 뛰었다. 키미히, 크로스, 그리고 최근 말이 많던 노이어도 선발로 나섰으며 로이스는 후반에 교체 출전했다.
초반엔 독일의 맹공으로 2:0 까지 달아났는데, 특히 젊은 공격수인 19번의 리로이 자네와 20번의 세르주 그나브리가 각각 한 골씩 기록했다. 자네는 수비할때 미드필드 진 아래까지 내려오는 적극성을 여러번 보였고, 20번 그나브리는 두 번째 골을 앞에 수비수 두명을 흔들고 혼자서 만들어낸 골이었다. 그와 더불어서 노이어는 전반에만 슈퍼 세이브 둘을 기록했으나, 전판 막판에 한 골을 허용하고 후반 초반에 동점골을 내주고 만다. 동점 상황에 이르자 요아힘 뢰프 감독은 후반 25분경, 그나브리를 빼고 일카이 귄도안을 투입하였으며 그 후 후반 막판인 43분에 고레츠카를 빼고 마르코 로이스를 넣으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점이 통했는지 후반 45분, 니코 슐츠가 로이스의 패스를 받아 극적인 결승골을 터트렸다. 결과는 네덜란드에 3:2 승리. 네덜란드 적지에서 32년만에 거둔 독일의 원정 승리였다. 뢰브 감독은 기존의 전술에서 벗어나 빠른 기동력을 지닌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고, 후반에는 용병술을 통한 승부수로 오랜만에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제 관건은 독일이 이런 좋은 모습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시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날 수 있느냐이다.
2019년 6월에 열린 A매치 2연전에서도 꽤 시원시원한 경기력을 보였다. 유로 예선 2연전을 치르며 벨라루스와 에스토니아를 상대했는데, 우선 벨라루스 원정을 가서 자네와 로이스의 골로 2대0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에스토니아를 홈에서 맞아 무려 '''8대0'''이라는 스코어로 대파하면서 3경기에서 전승, 4경기 4승을 거둔 북아일랜드를 맹추격하고 있다.[127] 물론 상대가 상대인지라 아직 이러한 결과로 독일의 부활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네덜란드전을 시작으로 유로 예선에서 다득점으로 3연승을 했다는 것은 분명히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2018년에 13전 4승 3무 6패라는 치욕적인 성적을 거두었던 걸 감안하면 현재는 4전 3승 1무로 작년 이맘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상황이다. 게다가 독일이 작년에 한 4승 중 3승이 평가전 성적이었고, 올해 독일의 3승은 모두 공식 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2019년 9월 7일에 벌어진 유로 예선 네덜란드와의 홈경기에서는 2:4로 완패했다. 승점 3점이 절실했던 네덜란드는 약체들과의 경기를 부담없이 대비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독일은 상승세가 꺾인것 처럼 보인다. 전반적으로 냐브리의 탐욕적인 슈팅이 더 점수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를 날렸고, 요나탄 타마테이스 더리흐트누가 더 못하는가를 겨루는 듯 서로 안 좋은 의미에서의 대활약을 해버렸다. 그나마 더리히트는 상대가 니코 슐츠나 로이스같은 독일 내에서도 실력 있는 선수에게 뚫린거라 변명이라도 해볼만하지만 요나단 타는 공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어차피 오프사이드였던 것을 자책골까지 기록하며 변명의 여지조차 없애버렸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더리흐트 정도만 못 한 거지만 독일의 경우 공격도, 수비도 안 되는 총체적 난국 상황이었으니. 하지만 며칠 뒤에 열린 북아일랜드 원정 경기에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2대0으로 이겼다. 물론 경기력 자체가 좋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조 선두를 상대로 승점 3점을 챙기며 본선 진출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2019년 11월 17일 벨라루스와의 유로 예선 7차전 경기에서도 4 : 0 완승을 거두며 2020년 유럽선수권대회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간간히 벨라루스에 위협적인 장면도 내주었지만[128] 전체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면서 낙승을 거두었다. 이후 칙른 북아일랜드와의 최종전에서도 6대1 대승을 거두며 조 1위로 진출해 톱시드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막상 본선 조추첨에서는 그 톱시드가 무색하게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와 유로 우승국 포르투갈과 묶여버리며''' 조별예선에서 역대급 빅뱅매치업을 선고받았다.[129][130]
2020년 A매치는 네이션스 리그로 시작하게 되었다. 첫 상대인 스페인과의 홈 경기에서는 베르너의 선제골로 앞서가다가 후반 추가시간에 가야에게 동점골을 먹히며 비겼다. 다음 경기인 스위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귄도안의 선제골로 앞서가다 후반전에 동점골을 허용하며 또 비겼다. 이것으로 독일은 네이션스 리그에서 지난 시즌을 포함해 6경기째 무승을 기록중이다.[131]
2020년 10월 7일, 쾰른에서 있었던 터키와의 친선 경기에서 3대3 또다시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독일이 선제골을 넣은 후 터키가 동점, 독일의 역전골 이후 터키가 다시 동점을 이루는 경기내용의 반복이었다. 올시즌 A매치에서만 무승부가 3차례가[132] 나와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이번 A매치에서 난적이라고 할 수 있는 팀은 네이션스 리그 조별리그 상대인 스페인 한 팀 뿐이어서 독일의 경기력에 대해 우려를 표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래도 독일은 네이션스 리그에서 압승을 하진 못했어도 패배하진 않았다. 스페인이 스위스를 상대로 삽질을 하는 동안 우크라이나를 제압하고 조 1위를 찍기도 했다. 이제는 마지막 스페인과의 맞대결에서 비기기만 해도 4강에 진출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지 시간으로 2020년 11월 17일, 네이션스 리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종이인형 2명과 서드키퍼를 끌고 나온 스페인에게 무려 0 : 6이라는 충격적인 대패를 당했다.''' 스코어도 충격적이지만 유효슈팅 0에다가 전통적으로 뛰어난 피지컬을 앞세우는 힘있는 축구를 하던 독일이 피지컬을 강점으로 두기는 어려운 스페인에게 제공권 싸움에서 밀리면서 대패했다는 것도 충격적이며 89년전 오스트리아에게 0 : 6으로 대패한 이후 또다시 반복된 참사였다.
이렇게 갈수록 디 만샤프트는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데다, 거기에 뢰프를 끝까지 기용한다는 독일 축구 협회에 독일 팬들의 민심은 극도로 차가워졌으며 지금까지의 국가대표팀의 최악의 암흑기로의 추락은 할말을 잃을 정도다. 당장 2020년 독일 국대 A매치 가운데 독일이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인 경기들이 없다. 심지어 예전같았으면 거의 발라버리는 수준의 타 유럽팀들과의 경기 마저 그저 '평타' 수준의 경기로 끝내는 경우도 많아져서 독일 축구팬들의 근심이 커지고 있는 지경에 결국 네이션스 리그에서 이렇게 큰 참사가 벌어졌다. 아예 2018 러시아 월드컵 이전의 독일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듯한 모습이어서 '괜한 걱정이 독일 걱정'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당장 2021년에 열릴 유로 2020에서도 프랑스, 포르투갈을 상대해야 되는데 시작부터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8. 역대 감독



'''Bundestrainer'''
대표팀 수석코치가 다음 감독을 자동 승계하는 오랜 전통이 있다. 프란츠 베켄바워를 제외하면 포크츠 감독까지 모든 감독들이 수석코치직에 있다가 감독직에 올랐다. 그러다가 포크츠의 후임인 리베크 감독 때 부터 클린스만 때까지는 이러한 전통이 지켜지지 못했는데, 이때가 독일대표팀의 암흑기와 일치한다. 앞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암흑기 당시 독일대표팀의 위기의 원인은 선수층의 세대교체 실패 외에도 걸출한 지도자의 부재가 한몫했다.
이는 좀 더 냉정히 말하면, 분데스 자체의 폼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독일이 괄목한 성과를 못내던 2002년 이후부터 분데스 클럽의 행보를 보면, 뮌헨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고[133] 다른 팀들은 재정적인 문제[134]로 힘든 기간을 보내왔다. 실제로, 도르트문트 & 뮌헨이 과거 명성을 회복하고 레버쿠젠과 샬케가 다시 살아나고 챔스에서 두각을 보여주던 2010년대 이후, 독일은 끝끝내 2014년 월드컵 트로피를 다시금 되찾게 되었다.[135] 허나, 다시금 바이에른의 주축선수들이 무너지고 레버쿠젠 & 샬케가 확실히 폼이 떨어지면서 위의 베테랑을 대체할 만한 선수들이 나오지 않게 되자, 다시금 독일은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엄청난 대굴욕을 맛보면서 조별 탈락의 결과를 맛보게 되었다.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 명칭은 Bundestrainer(분데스트레너, [ˈbʊndəsˌtʁɛːnɐ])다. 번역하면 '(독일) 연방 감독' 정도 되겠다. 지방 자치가 발달해 있는 독일에서는 지방정부가 아닌 중앙정부 책임자들에게는 앞에 Bundes를 붙인다. 예를들어 그냥 minister라고 하면 주정부 장관을 의미하며, 중앙정부 장관은 Bundesminister라고 한다. Bundestrainer 명칭은 종목과 관계없이 독일의 모든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사용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감독 명칭은 Reichstrainer(제국 감독)였다. 한편 프란츠 베켄바워, 루디 푈러처럼 현역에서 은퇴하고 특별한 지도자 경력없이 바로 국대 감독이 된 경우에는 감독 라이선스가 없기 때문에 Bundestrainer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Teamchef(팀셰프)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번역하면 '팀장'이라는 뜻이다. 그밖에 Nationaltrainer(나치오날트레너, 직역하면 국가 감독)라는 명칭도 쓰인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
'''이름'''
'''활동기간'''
'''경기 수'''
''''''
'''[136]'''
''''''
'''득점'''
'''실점'''
'''승률'''
'''대회 결과'''
1대
오토 네르츠
1926 - 1936
70
42
13
15
216
104
60%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
불참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3위'''
2대
제프 헤어베어거
1936 - 1964
167
94
26
46
435
250
56.28%
1938 FIFA 월드컵 프랑스
8강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우승'''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
4위
1962 FIFA 월드컵 칠레
8강
3대
헬무트 쇤
1964 - 1978
139
87
31
21
292
107
62.59%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
'''준우승'''
유로 1968
예선 탈락
1970 FIFA 월드컵 멕시코
'''3위'''
유로 1972
'''우승'''
1974 FIFA 월드컵 서독
'''우승'''
유로 1976
'''준우승'''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8강
4대
유프 데어발
1978 - 1984
67
44
12
11
144
60
65.67%
유로 1980
'''우승'''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준우승'''
유로 1984
조별리그 탈락
5대
프란츠 베켄바우어
1984 - 1990
66
34
20
12
107
61
51.52%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
'''준우승'''
유로 1988
준결승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우승'''
6대
베르티 포크츠
1990 - 1998
102
66
24
12
206
87
64.71%
유로 1992
'''준우승'''
1994 FIFA 월드컵 미국
8강
유로 1996
'''우승'''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8강
7대
에리히 리베크
1998 - 2000
66
34
20
12
107
61
51.52%
유로 2000
조별리그 탈락
8대
루디 푈러
2000 - 2004
53
29
11
13
109
57
54.7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우승'''
유로 2004
조별리그 탈락
9대
위르겐 클린스만
2004 - 2006
34
20
8
6
81
43
58.82%
2006 FIFA 월드컵 독일
'''3위'''
10대
요아힘 뢰프
2006 - 현재
137
90
24
23
326
134
65.69%
유로 2008
'''준우승'''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3위'''
유로 2012
준결승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우승'''
유로 2016
준결승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탈락
'''승률이 50% 아래로 떨어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137]

9. 역대 전적


다른 나라 대표팀과의 역대 전적은 독일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정렬 기준: 승률 → 대결 횟수 → 상대 전적상 승수 → 득점수 → 득점률
[image] '''독일의 상대전적'''
(갱신일: 2018.12.05)
'''상대팀'''
'''대결 횟수'''
'''상대 전적
(A매치 전체)'''
'''승률
(무승부 제외)'''
'''득 - 실
(승부차기 제외)'''
'''득점률'''
[image] 산마리노 #
4
4승 0무 0패
100.00%
34 - 0
100.00%
[image] 사우디아라비아 #
3
3승 0무 0패
100.00%
13 - 1
92.85%
[image] 페루 #
2
2승 0무 0패
100.00%
5 - 2
100.00%
[image] 일본 #
2
1승 1무 0패
100.00%
5 - 2
71.42%
[image] 우루과이 #
11
8승 2무 1패
88.88%
29 - 12
70.73%
[image] 벨기에 #
25
20승 1무 4패
83.33%
58 - 26
69.04%
[image] 러시아
(소련 기록) (러시아 기록)
19
15승 1무 3패
83.33%
50 - 14
78.12%
[image] 호주 #
6
4승 1무 1패
80.00%
17 - 9
65.38%
[image] 포르투갈 #
18
10승 5무 3패
76.92%
29 - 16
64.44%
[image] 칠레 #
9
6승 1무 2패
75.00%
13 - 8
61.90%
[image] 멕시코 #
12
5승 5무 2패
71.42%
24 - 21
53.33%
[image] 크로아티아 #
8
5승 1무 2패
71.42%
18 - 10
64.28%
[image] 미국 #
11
7승 0무 4패
63.63%
23 - 17
57.50%
[image] 네덜란드 #
42
15승 16무 11패
57.69%
79 - 69
53.37%
[image] 스웨덴 #
37
16승 9무 12패
57.14%
72 - 61
54.13%
[image] 대한민국 #
4
2승 0무 2패
50.00%
5 - 7
41.66%
[image] 세르비아 #
3
1승 1무 1패
50.00%
3 - 3
50.00%
[image] 아르헨티나 #
22
7승 5무 10패
41.17%
28 - 28
50.00%
[image] 프랑스 #
31
9승 8무 14패
39.13%
46 - 49
48.42%
[image] 이탈리아 #
35
8승 12무 15패
34.78%
41 - 50
45.05%
[image] 알제리 #
3
1승 0무 2패
33.33%
3 - 5
37.50%
[image] 브라질 #
23
5승 5무 13패
27.77%
31 - 40
40.25%
'''''': 승률 30% 미만 / '''''': 승률 30% ~ 44% / '''''': 승률 45 ~ 54% / '''''': 승률 55 ~ 69% / '''''': 승률 70% 이상

9.1. FIFA 월드컵


'''FIFA 월드컵 역대전적 서열: 2위'''
'''★★★★②②②②③③③③④'''
년도
결과
순위
승점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
4강
3위
9
4
3
0
1
11
8
1938 프랑스 월드컵
1라운드[138][139]
10위
1
2
0
1
1
3
5
1950 브라질 월드컵
출전금지[140]
1954 스위스 월드컵
'''우승'''[141]
'''1위'''
15
6
5
0
1
25
14
1958 스웨덴 월드컵
4강
4위
8
6
2
2
2
12
14
1962 칠레 월드컵
8강
7위
7
4
2
1
1
4
2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142]
2위
13
6
4
1
1
15
6
1970 멕시코 월드컵
4강
3위
15
6
5
0
1
17
10
1974 서독 월드컵
'''우승'''[143]
'''1위'''
18
7
6
0
1
13
4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8강
6위
7
6
1
4
1
10
5
1982 스페인 월드컵
준우승[144]
2위
11
7
3
2
2
12
10
1986 멕시코 월드컵
준우승
2위
11
7
3
2
2
8
7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145]
'''1위'''
17
7
5
2
0
15
5
1994 미국 월드컵
8강
5위
10
5
3
1
1
9
7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
7위
10
5
3
1
1
8
6
2002 한일 월드컵
준우승[146]
2위
16
7
5
1
1
14
3
2006 독일 월드컵
4강[147]
3위
16
7
5
1
1
14
6
2010 남아공 월드컵
4강
3위
15
7
5
0
2
16
5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148]
'''1위'''
19
7
6
1
0
18
4
2018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149]
공동 22위
3
3
1
0
2
2
4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
합계
'''19회 진출'''(19/21[150])
'''우승'''(4회)
'''221'''
'''109'''
'''67'''
'''20'''
'''22'''
'''226'''
'''125'''

월드컵 랭킹은 '''2위'''로서 '''67승 20무 22패 승점 221점'''을 기록 중이다.
유럽 국가 대부분이 불참을 선언한 1930년과 전범 국가로 출전 자격을 박탈당했던 1950년 대회를 제외하면 모든 대회에 본선 진출을 하였으며, '''브라질과 함께 참가한 대회에서 지역예선 탈락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151] 둘 뿐인 국가이다. 당연히 지역예선에서도 초강세를 보이는데, 2018년 대회 이전까지 지역예선에서 당한 패배가 '''단 2번에 불과하다.'''[152] 또한 1938년 대회와 2018년 대회를 제외하면 '''본선에서 2라운드 탈락을 한 번도 하지 않았으며, 언급된 네 번의 대회를 제외하면 아무리 못 해도 최소 8강'''이다.[153] 브라질이나 이탈리아조차 조별리그/16강이나 2라운드 탈락 경험이 몇 번 있고, 같은 월드컵 우승국인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프랑스, 잉글랜드, 스페인조차도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대단한 기록. 위의 월드컵 기록을 표기한 원문자가 유난히 많은 것도 이에 기인한다. 참고로 저건 16강 이상만 기록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4강에 진출함으로써 월드컵 최초로 '''4연속 4강'''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결승에 오름으로서 '''통산 최초 8회 결승 진출'''의 기록도 세웠다. 더불어 2002년부터 2014년 월드컵까지 월드컵 첫경기에서 항상 4골 이상을 터뜨리면서 산뜻하게 월드컵을 시작했다.[154] 그러나 2018년 월드컵 1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지면서 이 기록도 마감하게 되었다.
독일이 굉장히 놀라운 건 1982년 월드컵 이후 2014년 월드컵때까지 '''통일 후유증'''으로 연속으로 8강에 그쳤던 1994년 월드컵과 1998년 월드컵 이 두 개의 월드컵을 제외하면 '''계속 4강에 진출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기록도 2018년 대회에서 멕시코에 0:1, 대한민국에 0:2로 패배하면서 1승 2패로 F조 꼴찌로 탈락해 막을 내리게 되었다.
다만, 최고 수준의 강팀으로 손꼽히는 것 치고는 의외로 조별리그 성적은 좀 부실한 편이다.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는 그 당시 최강의 팀이었다고는 하나 헝가리에게 3:8로 학살을 당하기도 했고[155]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서 역시 알제리에게 일격을 얻어맞아 히혼의 수치가 야기되는 빌미를 제공했다.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에서는 이미 한물 간 우루과이와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덴마크에게마저 패하며 조별리그 탈락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회생해서 본선에 올라 준우승을 기록했으며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서도 콜롬비아와 비겨 흔들리기도 했지만 무사히 우승했다. 이후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서도 대한민국을 상대로 엄청난 고전을 했고 스페인과 비겼으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도 조 1위는 했으나 하마터면 유고슬라비아에게 패할 뻔했다. 최근 세 개의 대회의 경우 결과가 매우 해괴한데 같이 편성되는 3개 팀 중 제일 약한 팀을 상대로 가장 졸전을 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아예 세르비아에게 패했는데 해괴한건 이 세르비아가 독일 하나만 이기고 1승 2패의 기록으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역시 가나와 비겨 체면을 구겼는데 그 가나 역시 독일 하나만 비기고 1무 2패의 기록으로 조별리그 탈락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서는 대한민국에게 0:2로 지면서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이자 80년 만에 1라운드에서 탈락을 했고, 조별리그 체제가 도입된 이후로는 최초로 조별리그 탈락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볼드체 표시된 팀은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이다. (전적은 3승부터 볼드체 처리한다.)
'''브라질''': 1승 1패(2002, 2014)[156]
'''이탈리아''': 2무 3패(1962, 1970, 1978, 1982, 2006)
'''아르헨티나''': '''4승 2무 1패'''(1958, 1966, 1986, 1990, 2006, 2010, 2014)[157]
'''프랑스''': 2승 1무 1패(1958, 1982, 1986, 2014,)
'''잉글랜드''': 2승 2무 1패(1966,1970,1982,1990, 2010)[158]
'''스페인''': 2승 1무 1패(1966, 1982, 1994, 2010)
네덜란드: 2승 1무(1974, 1978, 1990)
'''우루과이''': '''3승 1무'''(1966, 1970, 1986, 2010)
스웨덴: '''4승 1패'''(1934, 1958, 1974, 2006, 2018)
러시아: 1승(1966)[159]
세르비아: '''4승 1무 2패'''(1954, 1958, 1962, 1974, 1990, 1998, 2010)
멕시코: 2승 1무 1패(1978, 1986, 1998, 2018)[160]
벨기에: 2승(1934, 1994)
폴란드: 2승 1무(1974, 1978, 2006)
포르투갈: 2승(2006, 2014)
헝가리: 1승 1패(1954(2회))[161]
스위스: 2승 1무 1패(1938(2회)[162], 1962, 1966)
체코: 1승 1무 1패(1934, 1958, 1990)[163]
오스트리아: '''3승 1패'''(1934, 1954, 1978, 1982[164])
칠레: '''3승'''(1962, 1974, 1982)
크로아티아: 1패(1998)
덴마크: 1패(1986)
파라과이: 1승(2002)
미국 : '''3승'''(1998, 2002, 2014)
콜롬비아: 1무(1990)
대한민국: 2승 1패(1994, 2002, 2018)[165]
코스타리카: 1승(2006)
스코틀랜드: 1승(1986)
카메룬: 1승(2002)
페루: 1승(1970)
불가리아 : 1승 1패(1970, 1994)
터키: 2승(1954(2회))[166]
가나: 1승 1무(2010, 2014)
아일랜드: 1무(2002)
북아일랜드: 1무(1958)
에콰도르: 1승(2006)
알제리: 1승 1패(1982, 2014)
모로코: 2승(1970, 1986)
사우디아라비아: 1승(2002)[167]
튀니지: 1무(1978)
이란: 1승(1998)
호주: 2승(1974, 2010)
[168]
볼리비아: 1승(1994)
아랍에미리트: 1승(1990)
대륙별 상대 전적은 다음과 같다.
'''유럽: 34승 13무 17패'''
'''남미: 15승 4무 2패'''
'''북중미: 6승 1무 1패'''
'''아프리카: 5승 2무 1패'''
'''아시아: 6승 1패'''
'''오세아니아: 1승'''[169]
위의 전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모든 대륙에 골고루 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는 북중미와 아시아 팀을 상대로 '''불패'''를 기록했을 정도였고 아예 아시아 팀을 상대로는 '''6전 전승'''을 거두었을 정도로 '''아시아 팀의 저승사자나 다름 없는 팀이 독일이었다.''' 또 북중미 팀이 기록한 1무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에서 멕시코가 거둔 기록인데 승부차기에서 독일에 패배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아시아와 북중미 팀을 상대로는 무패 신화를 써내려갔던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에서 아시아와 북중미를 상대로 기록한 무패 신화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멕시코에 0:1로 지면서 먼저 북중미 팀들을 상대로 한 무패 기록이 마감됐고, 3차전에서는 '''조현우선방쇼를 펼친 대한민국에 0:2로 완패를 당하며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한 무패 기록도 막을 내렸다.'''
아프리카 팀을 상대로도 아직은 1982년 스페인 월드컵알제리에 1:2로 패배한 이후 36년 동안 단 1번도 패배한 적이 없다. 남미 팀을 상대로도 네덜란드와 함께 남미 국가들에 단 2번밖에 지지 않았다. 독일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남미팀은 아르헨티나[170]와 브라질[171]단 둘 뿐인데, 모두 월드컵 결승전이었다.[172]그 정도로 독일은 남미를 상대로 초강세를 기록하고 있다. 실상 같은 유럽 팀에 비교적 약세를 보인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하다. 실제로 월드컵에서 종종 독일을 엿먹여온 팀들은 유럽 팀들이 대부분이다.
역대 월드컵 우승국들과 월드컵에서 모두 맞붙어 본 바 있는데 이 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이탈리아'''를 상대로만 단 1번도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아주리 징크스라고 부른다. 월드컵에서 5번을 만나 2무 3패를 기록하며 이탈리아에 승점을 11점이나 헌납하는 굴욕을 겪고 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월드컵 전체를 통틀어 조별리그에서 2번, 토너먼트에서 3번을 만났는데 조별리그에서 만났던 1962년과 1978년에는 2번 다 무승부를 기록하여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반면, 토너먼트에서 만났던 1970년, 1982년, 2006년에는 모두 이탈리아에 패배했고 이 중 1982년과 2006년에는 이탈리아가 우승컵을 차지했다. 1970년 대회에선 준결승에서 만나 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 등의 맹활약으로 연장전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엎치락뒤치락 명승부를 펼쳤으나 결국 3:4로 패배했고 1982년 대회에선 결승전에서 만났는데 이 때에 독일은 이탈리아에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하다 파울 브라이트너의 골로 간신히 영패만 면하며 1:3으로 패배해 이탈리아에 우승컵을 넘겨야 했다. 2006년 대회에선 다시 준결승에서 만났는데 이 때는 독일 홈에서 열린 만큼 아예 독일 국대가 무려 '''71년''' 동안 불패의 신화를 기록했던 도르트문트에서 맞붙었으나 그 승리의 땅 도르트문트도 아주리 징크스만은 꺾지 못했다. 승부차기로 넘어가는 듯했으나 연장 후반 14분과 연장 후반 추가시간 1분에 연달아 2골을 실점하며 0:2로 또 다시 무릎을 꿇어야 했다.
반면, 월드컵 우승국들과 맞붙어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상대는 바로 아르헨티나이다.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총 7번 맞붙었는데 4승 2무 1패의 성적으로 무려 14점을 획득했다. 이것은 독일이 단일 팀을 상대로 얻은 승점 중 가장 많은 승점이다. 그나마도 이 2무 중 하나인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8강전에서 만나 1:1로 비긴 뒤 독일이 승부차기 4:2로 승리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5승 1무 1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아르헨티나 입장에서 독일은 번번이 월드컵 우승을 가로막는 태산과도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1986년 멕시코 월드컵 결승전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의 맹활약으로 독일을 3:2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걸 빼면 번번이 아르헨티나가 독일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너졌다. 그 다음 대회인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다시 또 결승전에서 리턴 매치를 했으나 이 때는 독일이 1:0으로 승리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2006~2014년까지는 3개 대회 연속으로 토너먼트에서 만났는데 번번이 독일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선 독일에 영혼까지 탈탈 털리며 '''0:4'''로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당했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선 결승전에서 만나 24년 전 일의 복수를 다짐했으나 마리오 괴체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또 다시 0:1로 패배해 독일에 우승컵을 넘겨야 했다.
독일에 패배를 안긴 국가는 '''이탈리아(3패), 세르비아(2패), 대한민국(1패), 체코(1패), 스위스(1패), 헝가리(1패), 스웨덴(1패), 프랑스(1패), 잉글랜드(1패), 오스트리아(1패), 알제리(1패), 덴마크(1패), 아르헨티나(1패), 불가리아(1패), 크로아티아(1패), 브라질(1패), 스페인(1패), 멕시코(1패), '''으로 총 19팀이고, '''이탈리아'''와 '''세르비아'''를 제외하면 1패씩만 당했으며, 이 중에 '''덴마크'''와 '''크로아티아'''는 '''독일'''에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173]
반대로 독일이 가장 많은 승리를 거둔 팀은 차례대로 '''아르헨티나, 세르비아, 스웨덴(4번), 우루과이, 칠레, 오스트리아, 미국(3번)'''이 있다.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팀은 최근 3연속 월드컵에서 맞붙기도 한 '''아르헨티나(7경기 14점)'''로, 2위인 '''세르비아(7경기 13점)''', 그리고 브라질:스웨덴과 더불어 월드컵에서 가장 많이 만난 팀으로 기록되어 있다.[174]
독일에 상대 전적이 앞서는 국가는 이탈리아, 덴마크, 크로아티아, 동독으로 총 네 팀 뿐이다. 이탈리아야 독일의 전통적인 천적으로 명성이 나있고, 특이하게도 '''동독을 상대로 1패를 기록'''하여 독일이 독일에 밀리는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는 현재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서독 대표팀의 기록을 승계했기 때문이다. 동독 대표팀은 1974년에 단 1번 월드컵 본선에 올랐는데 그 때 독일을 1:0으로 꺾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더군다나 1990년 이후로 동독이란 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기에 되갚아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다시 나라를 쪼개지 않는 한. 브라질, 알제리에게도 상대전적이 밀렸지만 2014년 재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호각세를 보인다.
독일과 호각세를 보이는 국가는 '''브라질, 헝가리, 체코, 콜롬비아, 불가리아,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알제리, 튀니지'''로 총 9팀이다. 상기했듯 가장 최근 대회에서 브라질, 알제리와의 대결을 모두 이기면서 열세를 호각세로 끌어올렸다.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게는 모두 상대전적이 앞선다. 특히 '''러시아, 벨기에, 포르투갈, 칠레, 파라과이, 미국, 코스타리카, 스코틀랜드, 카메룬, 페루, 터키, 에콰도르, 모로코,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호주, 볼리비아, 아랍에미리트'''까지 총 18팀에게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2002년 조별리그 사우디아라비아전 8:0 승리고, 최다실점 기록은 1954년 조별리그 헝가리전 3:8 패배이다. 둘 다 8골로 같으며, 최다실점 기록을 세운 1954년엔 이렇게 대패를 당하고도 패배를 안긴 팀을 헝가리를 상대로 결승전에서 3:2로 역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내리 두 골을 실점하고 역전승으로 우승한 것은 월드컵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의외로 브라질과는 월드컵 투톱임에도 불구하고 2002년 결승전에서 붙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브라질과 독일이 전적랭킹 각각 3위, 4위인 이탈리아와 아르헨티나와 4번 이상씩 만났고 월드컵 연속 진출 횟수 1~2위라는 걸 생각하면 이상할 정도로 못 만난 격이다. 둘 사이의 전적은 1승 1패로 호각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골득실에서는 독일이 +4, 브라질이 -4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2014년에 브라질이 본인들 안방에서 독일에게 1:7로 대패를 당한것이 원인이다.
한편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우승한 후 통일되면서, 자연히 1994년 대회부터 통일 독일로 월드컵에 나오게 되었다. 1994년과 1998년에는 8강 문턱에서 떨어졌지만, 그 이후로는 최소 준결승전에는 진출하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2002년 준우승, 2006년 3위, 2010년 3위, 그리고 2014년에 마침내 통일 이래 첫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이 우승과 동시에 미로슬라프 클로제는 월드컵 통산 득점 1위에 오르는 겹경사도 맞았다. 그러나 2018년 대회에서는 2010년이탈리아2014년스페인에 이어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하며, 멕시코와의 1차전 경기에서 0:1로 패배하고, 스웨덴과의 2차전 경기에서는 2:1로 역전승을 하였으나 대한민국과의 3차전 경기에서 0:2로 또 다시 지는 바람에 결국 조 꼴찌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9.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1992 사우디 컨페더컵
예선 탈락
1995 사우디 컨페더컵
예선 탈락
1997 사우디 컨페더컵
불참
1999 멕시코 컨페더컵
조별리그
5위
3
1
0
2
2
6
2001 한일 컨페더컵
예선 탈락
2003 프랑스 컨페더컵
불참
2005 독일 컨페더컵
4강
3위
5
3
1
1
15
11
2009 남아공 컨페더컵
예선 탈락
2013 브라질 컨페더컵
예선 탈락
2017 러시아 컨페더컵
'''우승'''
'''1위'''
5
4
1
0
12
5
2021 카타르 컨페더컵
?
?
?
?
?
?
?
?
합계
'''3회 진출'''(3/10)
'''우승'''(1회)
'''13'''
'''8'''
'''2'''
'''3'''
'''29'''
'''22'''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출범한 90년대 이후부터 쇠퇴기를 겪었으며, 유로 1996 대회 우승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준우승국 자격으로 출전이 가능했던 1997년, 2003년[175] 대회에는 불참하는 등 컨페더레이션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러나 2017년 대회에서 기존 주전들을 전부 제외하고 1.5~2군 선수들만으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컨페드컵에서도 첫 우승을 달성했다.

9.3. UEFA 유로


'''UEFA 유로 : 1위'''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프랑스 1960
불참
스페인 1964
불참
이탈리아 1968
예선 탈락
벨기에 1972
'''우승'''
'''1위'''
2
2
0
0
5
1
유고슬라비아 1976
준우승
2위
2
1
1
0
6
4
이탈리아 1980
'''우승'''
'''1위'''
4
3
1
0
6
3
프랑스 1984
조별리그
5위
3
1
1
1
2
2
서독 1988
4강
3위
4
2
1
1
6
3
스웨덴 1992
준우승
2위
5
2
1
2
7
8
잉글랜드 1996
'''우승'''
'''1위'''
6
4
2
0
10
3
벨기에/네덜란드 2000
조별리그
14위
3
0
1
2
1
5
포르투갈 2004
조별리그
12위
3
0
2
1
2
3
오스트리아/스위스 2008
준우승
2위
6
4
0
2
10
7
폴란드/우크라이나 2012
4강
3위
5
4
0
1
10
6
프랑스 2016
4강
4위
6
3
2
1
7
3
유로 2020
?
?
?
?
?
?
?
?
합계
'''12회 진출'''(12/15)
'''우승'''(3회)
'''49'''
'''26'''
'''12'''
'''11'''
'''72'''
'''48'''
꾸준함이 빛나는 월드컵보다는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총 전적 49전 26승 12무 11패, 72득점 48실점으로 '''최다 우승 타이틀과 함께 역대 전적 1위'''에 올라있다.
다른 나라들과의 역대 전적은 아래와 같다.
국가명
전적
대회연도
프랑스
1패
2016
스페인
1승 2패
1984, 1988, 2008
이탈리아
3무 1패
1988, 1996, 2012, 2016
포르투갈
2승 1무 1패
1984, 2000, 2008, 2012
네덜란드
2승 1무 2패
1980, 1988, 1992, 2004, 2012
체코
3승 1무 1패
1976, 1980, 1996(2회), 2004
러시아
2승 1무
1972, 1992, 1996
잉글랜드
1무 1패
1996, 2000
크로아티아
1승 1패
1996, 2008
덴마크
2승 1패
1988, 1992, 2012
벨기에
2승
1972, 1980
스웨덴
1승
1992
그리스
1승 1무
1980, 2012
터키
1승
2008
폴란드
1승 1무
2008, 2016
세르비아
1승
1976
루마니아
1승 1무
1984, 2000
스코틀랜드
1승
1992
슬로바키아
1승
2016
북아일랜드
1승
2016
우크라이나
1승
2016
오스트리아
1승
2008
라트비아
1무
2004
독일이 패배를 기록한 나라들은 '''스페인(2패), 네덜란드(2패), 프랑스(1패), 이탈리아(1패), 포르투갈(1패), 체코(1패), 잉글랜드(1패), 크로아티아(1패), 덴마크(1패)'''로 총 9팀이다. 이 중 유일하게 프랑스 단 1팀을 상대로만 전패를 기록 중이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빼면 모두 1번씩만 패배했다.
독일이 승리를 기록한 나라들은 '''체코(3승), 포르투갈(2승), 네덜란드(2승), 러시아(2승), 덴마크(2승), 벨기에(2승), 스페인(1승), 크로아티아(1승), 스웨덴(1승), 그리스(1승), 터키(1승), 폴란드(1승), 세르비아(1승), 루마니아(1승), 스코틀랜드(1승), 슬로바키아(1승), 북아일랜드(1승), 우크라이나(1승), 오스트리아(1승)'''로 총 19팀이다.
독일이 유로에서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는 나라들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로 총 4팀이며, 호각세를 이루는 나라들은 '''네덜란드, 크로아티아, 라트비아'''로 총 3팀이다. 나머지를 상대로는 전부 상대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이 중 '''벨기에, 스웨덴, 터키, 세르비아, 스코틀랜드, 슬로바키아, 북아일랜드,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까지 총 9팀을 상대로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독일이 유로에서 가장 많은 승점을 획득한 상대는 '''체코'''로 총 5경기 10점을 기록했다. 그 다음으로 '''러시아, 포르투갈, 네덜란드'''에게서 각각 7점씩 획득하여 뒤를 이었다. 러시아는 3경기 7점, 포르투갈은 4경기 7점, 네덜란드는 5경기 7점을 기록했다.
유로 통산 성적 2위인 프랑스와는 의외로 2012년 대회까지 단 1번도 만나지 못했다가 2016년 대회 4강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 경기에서 0 : 2 패배를 기록해 월드컵과 달리 유로에선 프랑스에 상대 전적 열세를 기록하고 있다. 스페인을 상대로도 월드컵과 달리 유로에선 1승 2패로 전적 열세이며 이탈리아에는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유로에서도 전적 열세이며 단 1번도 못 이겨봤다.

9.4. 올림픽



10. 사라진 팀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자를란트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 바람.

11. 라이벌


축구 강대국이고, 지리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유럽의 중심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많은 나라가 독일의 라이벌로 꼽힌다.
축구 내적인 부분에선 브라질,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이 라이벌로 꼽히고, 축구 외적인 역사적인 부분을 볼 때 '''폴란드'''가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힌다. 축구 내외적인 부분을 모두 포함하였을 때 독일 국가대표팀의 라이벌은 보통 '''잉글랜드, 네덜란드''', 프랑스가 거론된다.[176]
'''폴란드'''의 경우 축구 내적인 면에선 독일의 라이벌이라고 불리기에는 부족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비롯한 여러 이슈들이 얽혀 있어 양 국가대표간의 경기에서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일례로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조별리그 2차전이 독일vs폴란드 전이었는데, 2005년 11월에 독일, 폴란드 양국 훌리건들끼리 전초전을 치루고 경기 당일에는 독일 전역에서 패싸움을 벌였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폴란드 처럼 독일에게 침공을 당한 적이 있으면서도 축구 실력이 대등한 편이라 축구 내외적인 면을 모두 볼 때 독일의 라이벌 이라고 하면 잉글랜드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이다. 잉글랜드 역시 독일과 1,2 차 세계대전을 통해 역사적으로 얽혀있으면서도, 월드컵에서 중요한 승부처에서 많이 만났고, 또 그 승부처가 오심 논란들이 양쪽에서 일어나는 등 독일과의 주요 라이벌팀이다.
독일과 함께 4회의 월드컵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탈리아.'''는 독일의 주요한 맞수이자 천적으로 꼽힌다. 독일은 현재까지 메이저급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에게 거의 이겨본 적이 없다.''' 아주리 징크스항목 참조.
'''아르헨티나'''와는 월드컵에서 지겹도록 많이 싸워서 라이벌로 엮인다. 결승전에서 3번을 만나서 월드컵 결승전 사상 역대 최다 매치업이다. 이중 86년, 90년 2회 연속으로 결승에서 만났는데 86년 대회때는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90년 대회에서는 리벤지에 성공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21세기에는 06년부터 14년까지 3대회 연속으로 만나서 모두 이겼다. 58년과 66년에는 조별리그에서 만나기도 했다.

12. 역대 대표팀



12.1. FIFA 월드컵



12.1.1.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


'''번호'''
'''이름'''
'''비고'''
1
토니 투레크
GK
7
요제프 포지팔
RB
10
베르너 리프리히
CB
3
베르너 콜마이어
LB
6
호르스트 에켈
HB
8
칼 마이
HB
13
막스 모를로크
IR
16
프리츠 발터
IL
12
헬무트 란
OR
15
오트마어 발터[177]
CF
20
한스 셰퍼
OL

12.1.2. 1974 FIFA 월드컵 서독


'''번호'''
'''이름'''
'''비고'''
1
제프 마이어
GK
2
베르티 포크츠
RB
5
프란츠 베켄바워
CB
4
한스게오르크 슈바르첸베크
CB
3
파울 브라이트너
LB
16
라이너 본호프
RM
14
울리 회네스
CM
12
볼프강 오베라트
LM
9
위르겐 그라보브스키
RF
13
게르트 뮐러
CF
17
베른트 횔첸바인
LF

12.1.3.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번호'''
'''이름'''
'''비고'''
1
하랄트 슈마허
GK
15
울리 슈틸리케
SW
20
만프레트 칼츠
CB
4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CB
5
베른트 푀르스터
LB
6
볼프강 드레믈러
RM
3
파울 브라이트너
CM
2
한스페터 브리겔
LM
11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RW
7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LW
8
클라우스 피셔
CF

12.1.4.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번호'''
'''이름'''
'''비고'''
1
보도 일그너
GK
5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SW
6
귀도 부흐발트
CB
4
위르겐 콜러
CB
14
토마스 베르톨트
RWB
3
안드레아스 브레메
LWB
10
로타어 마테우스
DM
8
토마스 헤슬러
CM
7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CM
9
루디 푈러
CF
18
위르겐 클린스만
CF

12.1.5.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8 FIFA World Cup 독일 대표팀'''
FW
올리버 비어호프
FW
위르겐 클린스만
MF
미하엘 타르나트
MF
토마스 헤슬러
WB
옌스 예레미스
DMF
디트마어 하만
WB
외르크 하인리히
DF
위르겐 콜러
SW
로타어 마테우스
DF
크리스티안 뵈른스
GK
안드레아스 쾨프케
對 미국 2:0 승 / 對 유고슬라비아 2:2 무 / 對 이란 2:0 승 / 對 멕시코 2:1 승 / 對 크로아티아 0:3 패
지난 유로대회 우승덕분에 결국 세대교체를 실패한 스쿼드. 노쇠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 클린스만이 아직도 주장이자 부동의 공격수이며, 1990년대까지 독일축구의 상징이자 중심인 리베로 자리 역시, 마티아스 잠머보다 6살이나 더 나이가 많은 로타어 마테우스가 복귀를 한 것만 봐도 알수 있다. 결국 8강에서 탈락했다. 오히려 8강을 간 것은 노장들의 클래스 덕분이기도 하다.

12.1.6.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 FIFA World Cup 독일 대표팀'''
FW
미로슬라프 클로제
FW
올리버 뇌빌[178]
MF
미하엘 발라크
MF
베른트 슈나이더
WB
크리스티안 치게
DMF
디트마어 하만
WB
토어스텐 프링스
DF
크리스토프 메첼더
DF
카르스텐 라멜로프
DF
토마스 링케
GK
올리버 칸
對 사우디아라비아 8:0 승 / 對 아일랜드 1:1 무 / 對 카메룬 2:0 승 / 對 파라과이 1:0 승 / 對 미국 1:0 승 / 對 대한민국 1:0 승 / 對 브라질 0:2 패
상대한 팀들을 보면 결승전에서 상대한 브라질을 제외하고는 강팀이 없는 꿀대진의 덕을 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1990년대 노장들이 모두 정리가 되었고, 다시 독일이 강호로 발돋움하는 세대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의 스쿼드이다.

12.1.7. 2006 FIFA 월드컵 독일


'''2006 FIFA World Cup 독일 대표팀'''
FW
미로슬라프 클로제
FW
루카스 포돌스키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미하엘 발라크'''
MF
토어스텐 프링스
MF
베른트 슈나이더
DF
필리프 람
DF
크리스토프 메첼더
DF
페어 메르테자커
DF
아르네 프리드리히
GK
옌스 레만
對 코스타리카 4:2 승 / 對 폴란드 1:0 승 / 對 에콰도르 3:0 승 / 對 스웨덴 2:0 승 / 對 아르헨티나 1:1 무(4:2 PK승) / 對 이탈리아 0:2 패 / 對 포르투갈 3:1 승
이 경기는 모두 홈 유니폼을 입었다.

12.1.8.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2010 FIFA World Cup 독일 대표팀'''
FW
미로슬라프 클로제
MF
루카스 포돌스키
MF
메수트 외질
MF
토마스 뮐러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사미 케디라
DF
제롬 보아텡
DF
아르네 프리드리히
DF
페어 메르테자커
DF
'''필리프 람'''
GK
마누엘 노이어
對 오스트레일리아 4:0 승 / 對 세르비아 0:1 패 / 對 가나 1:0 승 / 對 잉글랜드 4:1 승 / 對 아르헨티나 4:0 승 / 對 스페인 0:1 패 / 對 우루과이 3:2 승
지금 돌아보면 매우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2010년 월드컵 당시 독일 대표팀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많았다. 일단 이 시기까지 주장직을 역임하면서 독일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인 미하엘 발락이 부상으로 이번 대회 결장하면서 어찌 좋은 성적을 기대하겠느냐가 이 의견의 핵심이었다[179]. 그러나 당시 신예인 메수트 외질토마스 뮐러는 해당 시즌 유럽클럽대항전에서도 매우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큰 무대에 이미 실전감각을 익혔고 여기에 슈바인슈타이거의 포지션 전환 성공에 당시 분데스리가 클럽들이 유럽클럽대항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선수 뎁스도 두터워졌다. 그 버프를 살려 최종성적을 3위로 마무리 한다.

12.1.9.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FIFA World Cup 2014 독일 대표팀'''
MF
메수트 외질
FW
미로슬라프 클로제[180]
MF
'''토마스 뮐러'''
MF
'''토니 크로스'''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사미 케디라[181]
DF
베네딕트 회베데스
DF
마츠 후멜스
DF
제롬 보아텡
DF
필립 람
GK
'''마누엘 노이어'''
對 포르투갈 4:0 승 / 對 가나 2:2 무 / 對 미국 1:0 승 / 對 알제리 2:1 (연장)승 / 對 프랑스 1:0 승 / '''對 브라질 7:1 승''' / 對 아르헨티나 1:0 (연장)승

12.1.10.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IFA World Cup 2018 독일 대표팀'''
FW
티모 베르너
MF
마르코 로이스
MF
메수트 외질
MF
토마스 뮐러 [182]
MF
토니 크로스
MF
사미 케디라
DF
요나스 헥토어[183]
마츠 훔멜스[184]
제롬 보아텡[185]
요주아 키미히
GK
마누엘 노이어
對 멕시코 0:1 패 / 對 스웨덴 2:1 승 / 對 대한민국 0:2 패
조별리그 1차전부터 멕시코에게 0:1 패배를 당한다. 멕시코가 시작부터 주저앉지도 않았고 역습때는 기다렸다는듯이 빠르게 달려가는 등 준비를 잘 해온 반면 독일은 로사노에게 선제골을 내줬음에도 계속 패스전술만 고집한 끝에 예상치 못한 패배를 당한 것.
스웨덴과의 2차전 역시 경기력은 별 차이가 없었다. 스웨덴은 선제골 직전까지 대등하게 싸웠던 멕시코와는 달리 일찌감치 주저앉는 방법을 택했는데, 멕시코의 스피디한 역습만큼은 아니였지만 스웨덴이 1대1찬스를 잡는 등 위험한 장면이 여럿 연출되었으며 크로스의 패스미스로 올라 토이보넨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분위기가 스웨덴에게 넘어갔고 전반 종료 직전에 마르쿠스 베리의 헤딩슛을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 혼자서 겨우 막아내는 아찔한 상황이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후반전에 로이스와 크로스가 억지로 골을 집어넣는데 성공하면서 2:1 역전 진땀승을 거뒀지만 제롬 보아텡이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고 멕시코전에서 거하게 똥을 싼 사미 케디라를 대신할 제바스티안 루디가 부상으로 실려나가는 등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마지막 한국전. 당연히 한국팀은 라인을 왕창 내렸고 독일이 계속 몰아붙였지만 역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후반전에는 같은 조 타 구장에서 멕시코가 스웨덴에게 무기력하게 지고 있는 바람에 비겨도 16강을 못가게 되는 상황까지 닥쳐오자 토마스 뮐러, 마리오 고메스, 율리안 브란트 등 공격수들을 죄다 투입하여 맹공을 퍼부었지만 기회를 스스로 날려먹거나 조현우에게 막히면서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조급해진 나머지 엉성한 슈팅을 연달아 날리고 역습을 지속적으로 허용하면서 토너먼트 진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게 되고, 급기야 후반 추가시간에 토니 크로스의 치명적인 실책으로 김영권에게 선제골을 내주는 사태가 벌어진다. 2골을 넣어야 16강에 진출하는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오자 마누엘 노이어를 비롯한 전원이 하프라인을 넘어섰지만 노이어가 쓸데없이 골대 밖에서 하프라인을 넘어서까지 드리블하다 주세종에게 볼을 빼앗기고 손흥민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0:2로 완패를 당하면서 독일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하고 말았다.[186]
독일 대표팀에게 있어선 정말 여러모로 치욕적인 결과였다. 16강 진출 실패만으로도 치는 일인데, 아시아팀한테 완전히 발리면서 조 '''꼴찌'''로 탈락하는 최악의 기록을 남겼고,[187] 그 결과는 결국 FIFA 랭킹 1위가 순식간에 16위(12월 기준)로까지 떨어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랭킹 폭락으로 돌아오고 말았다.[189] 또한 1938년 대회 이후 무려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불명예스런 기록을 가지게 되었고,[190] 경기 외적으로도 산마리노전 발언, 스웨덴전 경기 종료 직후 도발, 파벌 루머, 외질에 대한 여러 구설수 등 각종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두말할 것도 없는 최악의 대회가 되고 만 것이다.

12.2.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12.2.1. 2017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러시아


'''2017 FIFA Confederations Cup 독일 대표팀'''
FW
티모 베르너[191]
FW
라르스 슈틴들
MF
레온 고레츠카
MF
율리안 드락슬러[192]
WB
요나스 헥토어
DMF
제바스티안 루디
WB
요주아 키미히
DF
마티아스 긴터
SW
슈코드란 무스타피
DF
안토니오 뤼디거
GK
마르크안드레 테어슈테겐
對 호주 3:2 승 / 對 칠레 1:1 무 / 對 카메룬 3:1 승 / 對 멕시코 4:1 승 / 對 칠레 1:0 승
사실 이번 대회는 베스트일레븐을 나열하기 참 뭐한게, 뢰프의 주 목적은 어린 선수들의 실험이라서 로테이션을 매 경기마다 돌렸다. 그나마 출전이 꾸준하던 선수들을 위주로 기술한 게 저 정도...그런데 이 스쿼드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12.3.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12.3.1. UEFA 유로 1980


'''번호'''
'''이름'''
'''비고'''
1
하랄트 슈마허
GK
15
울리 슈틸리케
SW
20
만프레트 칼츠
RB
5
베른하트 디츠
LB
4
칼하인츠 푀르스터
CB
6
베른트 슈스터
CM
2
한스-페터 브리겔
CM
5
한지 뮐러
CM
11
칼-하인츠 루메니게
RF
6
호르스트 흐루베슈
CF
8
클라우스 알로프스
LF

12.3.2. UEFA 유로 1996


'''UEFA EURO 1996 독일 대표팀'''
FW
슈테판 쿤츠
FW
위르겐 클린스만
MF
안드레아스 묄러
MF
메멧 숄
WB
크리스티안 치게
DMF
디터 아일츠
WB
마르쿠스 바벨
DF
슈테판 프로인트
SW
마티아스 잠머
DF
토마스 헬머
GK
안드레아스 쾨프케
對 체코 2:0 승 / 對 러시아 3:0 승 / 對 이탈리아 0:0 무 / 對 크로아티아 2:1 승 / 對 잉글랜드 1:1 무 (6:5 PK승) / 對 체코 2:1 승 (골든골)
94년월드컵때부터 팀이 노쇠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최후의 리베로 마티아스 잠머의 활약과 중고신인 올리버 비어호프의 맹활약, 그리고 90년대 독일 축구의 최고 테크니션으로 불린 메멧 숄의 활약으로 개최국이자 엄청난 공격력을 보여준 잉글랜드를 제치고, 체코까지 잡아내며 우승을 이뤄낸 스쿼드.

12.3.3. UEFA 유로 2000


'''UEFA EURO 2000 독일 대표팀'''
FW
파울로 링크
FW
카르스텐 얀커
MF
디트마어 하만
MF
메멧 숄
WB
크리스티안 치게
DMF
옌스 예레미스
WB
제바스티안 다이슬러
DF
옌스 노보트니
SW
로타어 마테우스
DF
토마스 링케
GK
올리버 칸
  • 감독 - 에리히 리베크
  • 주장 - 올리버 비어호프 / 올리버 칸[193]
  • 최종성적 - 조별리그 탈락 (4위)
對 루마니아 1:1 무 / 對 잉글랜드 0:1 패 / 對 포르투갈 0:3 패
독일 축구의 암흑기. 지난 98 월드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감독 역시 독일 역사상 최단기간 감독을 맡게되는 에리히 리베크. 유로 대회 역사상 최강팀인 독일이 거둔 가장 안좋은 성적이다. 특히나 포르투갈에게 당한 0:3 패배는 치욕적이었다. 독일 최고의 재능인 제바스티안 다이슬러가 제대로 출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대회.

12.3.4. UEFA 유로 2004


'''UEFA EURO 2004 독일 대표팀'''
FW
케빈 쿠라니
MF
토어스텐 프링스
MF
미하엘 발락
MF
디트마어 하만
MF
베른트 슈나이더
DMF
프랑크 바우만
DF
필립 람
DF
옌스 노보트니
DF
크리스티안 뵈른스
DF
아르네 프리드리히
GK
올리버 칸
對 네덜란드 1:1 무 / 對 라트비아 0:0 무 / 對 체코 1:2 패
독일 축구의 과도기가 제일 심했던 시절로, 2002년 깜짝 준우승이 결국 대진운이라는 오명을 들을 수 밖에 없었던 대회였다. 이 시기 감독인 루디 푈러는 고전적인 쓰리백에서 탈피하고 원톱이 유행함에 따라 포백으로 전환하기 위해 애를 썼으나, 옌스 노보트니크리스티안 뵈른스는 유리몸이였고, 2002년 준수한 모습을 보인 베른트 슈나이더는 서른 줄이 넘으면서 노쇠화로 기량 하락에, 디트마어 하만도 노쇠화로 활동 반경이 좁아서 사실상 이 때까지 미하엘 발락의 원맨팀이나 다름 없었다. 또 이 당시 슈바인슈타이거포돌스키도 신예에 불과했기에 후보선수들이였고 그나마 필립 람의 발굴은 유일한 성과로 볼 수 있다[194].

12.3.5. UEFA 유로 2008


'''UEFA EURO 2008 독일 대표팀'''
FW
미로슬라프 클로제
MF
루카스 포돌스키
MF
미하엘 발락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토어스텐 프링스
MF
토마스 히츨슈페르거
DF
필립 람
DF
크리스토프 메첼더
DF
페어 메르테자커
DF
클레멘스 프리츠
GK
옌스 레만
對 폴란드 2:0 승[195] / 對 크로아티아 1:2 패 / 對 오스트리아 1:0 승 / 對 포르투갈 3:2 승 / 對 터키 3:2 승 / 對 스페인 0:1 패
독일 축구의 암흑기를 지탱한 미하엘 발락, 토어스텐 프링스 영웅들의 노쇠화함에 따라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페어 메르테자커등 당시 영건들이 본격적인 독일 축구의 바통을 이어받은 대회라 볼 수 있다. 물론 시행착오 때문인지[196] 조별리그 2차전에 크로아티아에 1:2로 패하는 등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결승에 진출하면서 2006년 부활이 운이 아니였음을 보여주었다. 또 이시기부터 서서히 분데스리가도 유럽클럽대항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서브선수들도 제 몫을 해내주었다.

12.3.6. UEFA 유로 2012


'''UEFA EURO 2012 독일 대표팀'''
FW
마리오 고메즈
MF
루카스 포돌스키[197]
MF
메수트 외질
MF
토마스 뮐러[198]
MF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MF
사미 케디라
DF
필립 람
DF
마츠 후멜스
DF
홀거 바트슈투버
DF
제롬 보아텡
GK
마누엘 노이어
對 포르투갈 1:0 승 / 對 네덜란드 2:1 승 / 對 덴마크 2:1 승 / 對 그리스 4:2 승 / 對 이탈리아 1:2 패[199]

12.3.7. UEFA 유로 2016


'''UEFA EURO 2016 독일 대표팀'''
FW
마리오 고메즈[200]
MF
율리안 드락슬러
MF
메수트 외질
MF
토마스 뮐러
MF
'''토니 크로스'''
MF
사미 케디라[201]
DF
요나스 헥토르
DF
마츠 후멜스
DF
'''제롬 보아텡'''
DF
'''요슈아 키미히'''
GK
마누엘 노이어
  • 감독 - 요아힘 뢰프
  • 주장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마누엘 노이어[202]
  • 최종성적 - 4강
對 우크라이나 2:0 승 / 對 폴란드 0:0 무 / 對 북아일랜드 1:0 승 / 對 슬로바키아 3:0 승 / 對 이탈리아 1:1 무 (6:5 pk승) / 對 프랑스 0:2 패

13. 현재 선수 명단




14. 역대 주요 선수



14.1.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팀의 명성에 비해 센추리 클럽 선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데[203], 기본적으로 80년대 이전 서독이 잘 나가던 시절에는 워낙 주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베켄바워와 루메니게를 제외하면 대표팀에서 100 경기 내외로 롱런한 선수들이 없다. 80년대 이전에 서독 대표팀에서 레귤러한 활약을 펼친 선수라 해도 기록을 찾아보면 의외로 50경기 이하로 출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70~80년대 서독 대표팀에서 매우 큰 임팩트를 남기며 한 시대를 이끈 선수들이라 할 수 있는 클라우스 피셔, 파울 브라이트너, 클라우스 알로프스조차도 워낙 치열한 주전 경쟁 탓에 출장 횟수는 의외로 많지 않다. 심지어 월드컵 통산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게르트 뮐러조차도 국가대표 출장이 62경기에 불과할 정도니. 귄터 네처, 디터 뮐러, 베른트 슈스터 같이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도 의외로 대표팀 출장 횟수가 저조하다. 수준 높은 여러 선수들 중에 누굴 골라야 할지 항상 감독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팀이 서독 국가대표팀이었다.
오히려 1990년대 ~ 2000년대 중반까지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에 있던 시절 선수들이 대표팀 출장 횟수가 많은 편이다. 당시 분데스리가의 쇠퇴로 독일 선수 층이 얇아지면서 좋지 않은 팀 전력에도 불구하고 대체할 자원이 부족하여 계속 주전으로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또 과거에는 오늘날 만큼 A매치가 빈번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70 ~ 80년대 서독은 월드컵, 유로 등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많이 우승하던 팀이었는데, 당시에는 우승국에게 다음 대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서독은 지역 예선을 면제받아서 다른 나라보다 A매치 횟수가 더욱 적었다.

가장 아쉬운 케이스는 칼 하인츠 루메니게미하엘 발락이다. 루메니게는 80년대 전반 서독 대표팀을 이끌며 80년 유로 우승, 82년 월드컵 준우승, 86년 월드컵 준우승 등을 일궈내며 독일 대표팀의 역사의 한 장에 남는 활약을 했고, 본인도 대표팀과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년 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월드컵 우승에 실패하면서 베켄바워마테우스에 이를만한 임팩트를 남기지 못했고, 국가대표팀 출장경기 역시 95경기 출장에 그쳐 센추리 클럽 가입이 좌절되었다. 준우승의 제왕인 미하엘 발락은 2010년 월드컵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대회 직전 불의의 부상으로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그의 국가대표 출장은 98경기에서 그치게 되었다.
그 다음으로는 루디 푈러도 아까운 케이스다. 푈러는 독일 대표팀의 전성기인 80년대에 활약하면서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 같은 분데스리가 올타임 레젠드를 포함하여 클라우스 알로프스, 호르스트 흐루베슈, 위르겐 클린스만, 칼 하인츠 리들레, 울프 키르스텐,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등 쟁쟁한 선수들과 주전 경쟁을 하면서도 대표팀에 90경기를 출장했다. 루디 푈러는 자주 비교되는 위르겐 클린스만과 비교해 볼 때 매우 불운한 케이스인데, 클린스만보다 더 뛰어난 기량과 득점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잘못 타고나 박터지게 주전 경쟁하며 어렵게 대표팀 생활을 했지만 클린스만처럼 암흑기에 활동하며 어렵지 않게 센츄리 클럽에 가입한 선수들만 못하게 되었다. 물론 푈러 뿐만 아니라 위에 있는 루메니게도 마찬가지. 88년부터 대표팀에 주전으로 선발되기 시작한 클린스만은 이후 독일 대표팀이 암흑기에 빠져들며 극도의 공격수난에 시달리자 걸핏하면 감독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출장 안하겠다며 배짱을 튀겨 가며 대표팀에 승선했다. 클린스만이 108경기에 출장하며 47득점을 한 반면, 루디 푈러는 클린스만보다 18경기나 적게 출장하고도 똑같은 47골을 기록했다는 점을 보면 시대를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임팩트로도 루디 푈러가 클리스만보다 훨씬 뛰어난데, 클린스만이 메이저 대회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90년 월드컵 16강 네덜란드전 골 정도이며, 그외에는 의외로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서 골이 거의 없다. 반면 루디 푈러는 네 차례 월드컵에 출전하여 1회 우승, 2회 준우승을 거두는 동안 숱하게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서독이 준우승을 차지한 86 월드컵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2:0으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푈러가 교체 투입된 후 원맨쇼를 펼치며 2:2 동점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놓아 전세계를 열광시켰던 장면은 독일 축구 역사상 남는 명장면이다. 아쉽게도 아르헨티나가 추가골을 넣고 서독이 패하면서 완전히 묻히고 말았지만 만약 독일이 결승골을 넣고 우승했더라면 월드컵 역대급 영웅이 될 뻔했다. 사실 이 경기는 나중에 베켄바워 감독도 인정했듯이 마라도나와 아르헨티나의 전력을 너무 과대평가해서 공격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수비전술로 나왔던 전술적 패배였다. 때문에 처음부터 푈러를 스타팅 멤버로 포함시키고 기존 전술대로 운용했다면 서독이 충분히 우승했을 수 있다는 평가도 많다. 4년 후 베켄바워와 독일 대표팀은 하던대로 공격적 전술로 나왔고, 아르헨티나를 시종일관 압도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어쨌거나 시대를 잘 만난 클린스만은 루디 푈러보다 부족한 기량에도 불구하고 센츄리 클럽에도 가입하고 포크츠 감독에게 96 유로에 마테우스를 출전시키면 자기는 출전하지 않겠다고 압박을 넣어 정적 마테우스를 강제 은퇴시키고, 또 감독에게 자기에게 마테우스의 주장 완장을 주지 않으면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현대 축구에서는 다소 이례적으로 스트라이커로서 주장이 되어 2016년 독일 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으로 추대되는 영예까지 얻게 되었다.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루메니게, 루디 푈러 등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씁씁한 일.

14.2. 역대 주장


이름
기간
비고
비고2
'''프리츠 슈체판'''
1934–1939


파울 야네스
1939–1942


'''프리츠 발터'''
1951–1956
'''1954 월드컵 우승 주장'''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한스 셰퍼
1952–1962


헤르베르트 에르하르트
1959–1962


'''우베 젤러'''
1962–1970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볼프강 오베라트
1970–1972


'''프란츠 베켄바워'''
1972–1977
1972 유로 우승 주장, '''1974 월드컵 우승 주장''', ((유로 76 준우승))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베르나르트 디츠
1979–1981
1980 유로 우승 주장

'''칼-하인츠 루메니게'''
1981–1986
(1982 월드컵 준우승, 1986 월드컵 준우승)

'''로타어 마테우스'''
1988–1994
'''1990 월드컵 우승 주장'''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위르겐 클린스만'''
1994–1998
1996 유로 우승 주장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2016)
올리버 비어호프
1998–2001


올리버 칸
2001–2004
(2002 월드컵 준우승)

'''미하엘 발락'''
2004–2010
((유로 2008 준우승))

'''필립 람'''
2010–2014
'''2014 월드컵 우승 주장'''
독일 국가대표팀 종신 명예 주장 (2017)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14–2016


'''마누엘 노이어'''
2016–현재


그 밖에 1시즌 이하 단기간 주장을 역임했던 선수들은 다음과 같다.
이름
기간
비고
비고2
헬무트 란
1958–1959


베르티 포크츠
1977–1978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표팀 주장

제프 마이어
1978–1979


하랄트 슈마허
1986


클라우스 알로프스
1986–1987


안드레아스 브레메
1992
유로 92 주장[204]
유로 92 준우승
율리안 드락슬러
2017
컨페더레이션 컵 대회 주장[205]
컨페더레이션 컵 우승

14.3. 역대 주요 공격수


이름
기록
기간
포지션[206]
비고
리하르트 호프만
25경기 24골
1927~1933
포워드

칼 호프만
26경기 20골
1930~1937
미드필더

에른스트 레너
65경기 31골
1933~1942
포워드

아돌프 우르만
21경기 11골
1935~1942
포워드

헬무트 쇤
16경기 17골
1937~1941
포워드
대표팀 감독 역임
빌헬름 하네만
23경기 16골
1938~1941
포워드

프리츠 발터
61경기 33골
1940~1958
공격형 미드필더, 인사이드 포워드
주장 역임
막스 모를로크
26경기 21골
1950~1958
포워드

헬무트 란
40경기 21골
1951~1960
윙 포워드
주장 역임
한스 셰퍼
39경기 15골
1952~1962
윙어
주장 역임
우베 젤러
72경기 43골
1954~1970
스트라이커
주장 역임
게르트 뮐러
62경기 68골
1966~1974
스트라이커

유프 하인케스
39경기 14골
1967~1976
포워드

클라우스 피셔
45경기 32골
1977~1982
포워드

칼-하인츠 루메니게
95경기 45골
1976~1986
포워드
주장 역임
클라우스 알로프스
56경기 17골
1978-1988
스트라이커
주장 역임
루디 푈러
90경기 47골
1982~1994
스트라이커
대표팀 감독 역임
위르겐 클린스만
108경기 47골
1987~1998
스트라이커
주장, 대표팀 감독 역임
울프 키르스텐
51경기 20골 (독일) / 49경기 14골 (동독)
1985~2000
스트라이커

칼-하인츠 리들레
42경기 16골
1988~1994
스트라이커

올리버 비어호프
70경기 37골
1996~2002
스트라이커
주장 역임
미하엘 발락
98경기 42골
1999~2010
미드필더
주장 역임
미로슬라프 클로제
137경기 71골
2001~2014
스트라이커

루카스 포돌스키
130경기 49골
2004~2017
포워드

마리오 고메스
78경기 31골
2007–2018
스트라이커

이 외에 요아힘 슈트라이히가 동독 국가대표팀에서 98경기 53골을 기록하여 동독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 위 리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70년대 분데스리가 전성기 시절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유프 하인케스, 칼 하인츠 루메니게 등 분데스리가 올타임 레전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시대를 풍미했던 디터 뮐러도 서독 대표팀에서 12경기 9골, 서독 대표 B팀에서 6경기 6골이라는 대단히 걸출한 골결정력을 기록했다. 디터 뮐러는 현대축구가 본격화된 60년대 이후 선수들 중에서 게르트 뮐러 다음 가는 높은 득점률을 기록했지만 당시 게르트 뮐러,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라는 기라성 같은 다른 공격수에 밀려 대표팀에 단 12경기 밖에 출장하지 못했다. 1976년 게르트 뮐러와 유프 하인케스가 대표팀에서 은퇴한 직후 세대교체 멤버로서 클라우스 피셔, 칼 하인츠 루메니게와 함께 한동안 번갈아 대표팀에 기용되었지만 결국 서독 대표팀은 1978년 월드컵을 앞두고 경험이 풍부한 클라우스 피셔와 신예지만 재능이 풍부한 루메니게를 주전 공격수로 택하여 고정했고 이로서 디터 뮐러는 더이상 대표팀에 발탁되지 못하고 2년간 짧은 대표팀 커리어를 마감했다. 월드컵 우승 2차례 및 준우승 2차례를 거두던 70~80년대 당시 서독 대표팀의 주전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디터 뮐러 뿐만 아니라 1980년대를 전후로 서독 대표팀에 뛰었던 선수들 대부분이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워낙 치열한 주전 경쟁 탓에 50경기 이상 대표팀 출장을 기록한 선수들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고 레전드인 게르트 뮐러나 루메니게조차도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
전문 공격수가 아닌 선수들 중 많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선수들을 살펴보면 우선 위 표에 포함된 미하엘 발락(미드필더)이 98경기 42골을 기록했으며, 로타 마테우스(미드필더, 수비수)가 150경기 23골,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미드필더, 윙어)가 121경기 24골, 메수트 외질(공격형 미드필더)이 92경기 23골을 기록했다. 또 미들필더와 공격수로 전천후 활약을 펼치고 있는 토마스 뮐러가 100경기 38골의 누적 기록을 올리고 있는 상태다. 토마스 뮐러는 2019년 대표팀 소집에서 제외되면서 대표팀에서 잠정 은퇴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후 소속팀에서 폼이 크게 살아나면서 최근 베켄바워가 뮐러의 복귀가 대표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발언하는 등 마테우스의 사례처럼 만년에 다시 대표팀에 복귀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
은퇴 선수 중 안드레 쉬얼레는 초기에 기대를 받았으나 57경기 22골을 기록하고 만 26세의 나이에 대표팀 커리어를 마친 후 만 29세에 완전히 선수 생활에서 은퇴했다. 과거에 비해 최근 대표팀 경기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 할 때 위의 표에 포함된 과거 선수들에 비해서는 살짝 부족한 임팩트를 남겼다 할 수 있다. 또 독일 암흑기 시절 대표팀 스트라이커를 맡았던 케빈 쿠라니는 52경기 19골의 기록을 남겼다.

15. 징크스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에 비해 광탈이 '''2개 밖에 없는 팀''' 답게 유럽 팀 한정 월드컵 공동 최다 우승국 이탈리아에 비해서 징크스가 많이 없다. 게리 리네커가 근 30년간 주장해오다 최근에 철회한 발언답게, 불패는 아닐지언정 이변의 희생양이 된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그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고 특히 세계 축구 사상 아시아 팀에 패배한 첫 디펜딩 챔피언이란 불명예를 안고 말았다. 몇 가지 징크스는 있다.
  • 지역 예선에서는 절대 탈락하지 않는다. 1930년에는 당시 월드컵의 위상을 유럽국가 대부분이 하찮게 봐서 불참한거고, 1950년에는 2차 세계대전의 전범 중 하나로 출전정지를 당한 것 뿐이지 실력으로 떨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207] 심지어 이탈리아는 2번 밖에(?) 아르헨티나는 1번 밖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지 않았다. 참고로 브라질은 퍼펙트 개근 출전.
  • 이탈리아와 관련된 징크스가 몇 가지 더 있는데 이탈리아가 지역 예선에 탈락한 월드컵에서는 독일 (서독)은 디펜딩 챔피언 신분이다. 이탈리아는 1958년과 2018년 월드컵에서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는데 1954년과 2014년 월드컵의 우승국은 독일(서독)이였다.
  • 더 웃긴 건 위에서 언급한 이탈리아가 없었던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주리 징크스 문서의 4번 문단 참조. 문서 확인하기 귀찮은 사람들을 위해 요약하자면 독일은 이탈리아가 없으면 을 당한다.[208][209]
  • 서독이 월드컵에 출전 못 했을때 우루과이가 우승했다. 이 징크스가 유지되려면 독일이 앞으로 열릴 월드컵에서 불참하고 우루과이가 우승해야 징크스가 유지된다. 그런데 독일은 정작 월드컵에서 우루과이를 만나면 그냥 도륙의 끝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 코리아 징크스 : A매치는 4번, 국제 대회는 월드컵에서 3번 만난 거라 아직 데이터가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 정도면 징크스라 불려도 좋을 정도로 자주 만난거다. 최근에 독일이 당한 독일 축구 역사상 최악의 대참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각인되고 이전의 전적들도 확인되어 결국 확정된 징크스다.
독일은 후술할 대륙별 전적에서 보듯, 아시아 킬러저승사자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대한민국만 만나면 쉽게 이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210] 비단 A매치뿐만 아니라 연령별 대표팀 전적을 다 통틀어 봐도 그러며,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 이후로 전 연령별 대표팀 전적을 통틀어 2020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을 이겨보질 못하고 무승부가 나거나 패배했다. A매치 전체에서 독일은 아시아 국가에게 2패를 당했는데, 그 2패를 전부 대한민국에게만 당했다. 그러니까 한국 이외의 아시아 국가는 A매치에서 독일한테 이겨본 적이 없는 것이다.[211] 그리고 2018년 당시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신태용 감독은 '아시아 국적 축구 감독으로서 최초로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감독'이란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또한 A매치 한정으로 이런 세부적인 징크스가 있다.
  • 독일이 이길 경우 : 고전 끝에 1점 차로 간신히 이긴다.
(1994년=3:2승, 2002년=1:0승)[212]
  • 대한민국이 이길 경우 : 2점 차로 완패한다.
(2004년=1:3패, 2018년=0:2패)
  • 승패와 상관없이, 대한민국이 득점할 경우 후반전에 2골을 넣는데, 2004년 친선경기의 경우, 전반전에 양팀이 한 골 씩 기록했으며, 대한민국이 전반 16분에 김동진이 선제골을 기록했고, 8분 뒤인 전반 24분 독일의 미하엘 발락이 동점골을 기록한다. 1994년 미국 월드컵 C조 최종전, 2004년 친선경기, 카잔의 기적 모두 대한민국이 후반전에 2골을 넣었다. (로타어 마테우스가 인정한 사실이기도 했었다.)
  • 1994년 월드컵때 만난 이후로 A매치에서 한국을 상대로 골을 넣은 독일 선수는 미하엘 발락(2골)이 유일하다.
  • 월드컵에서 한국을 만나면 이후 국제 대회에서 이상하게도 부진한 성적을 거둘 때가 많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유로 1996 우승을 제외하고는 2000년대 초반까지 '룸펠푸스발'이라는 침체기 맞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유로 2004 조별리그 탈락, 카잔의 기적 직후 열린 UEFA 네이션스 리그/2018-19 시즌에서 리그 B 강등[213], 20-21시즌은 스페인에게 6:0 패배.)
  • 월드컵에서 한국을 조별리그에서 만나면 2골을 먹는다. 독일이 한국을 만난 건 1994년 때 조별리그, 2002년 때 4강전, 2018년 때 조별리그에서 만나 3번의 경기를 치렀는데, 그 결과가 1994년에는 3:2 승리, 2002년에는 1:0 승리, 2018년 때는 0:2 패배를 당했다. 여기서 조별리그에서 만난 1994년과 2018년은 독일은 2실점을 기록했다. [214]
  • 반대로 검은색 계열의 어웨이 유니폼을 입으면 성적이 나쁘지 않았고, 심지어 이 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브라질을 아예 압살까지한 적도 있었다.
  • 월드컵이 개최되는 연도의 모든 일의 자리 별로 성적 징크스가 확실히 나온다.
    • 월드컵 개최 연도의 일의 자리가 4일때, 그 해가 개띠 해가 아니라면 우승을 한다. 서독(독일)이 이뤘던 4번의 우승중 1990년을 제외하면 모두 일의 자리가 4의 해다. 1954년 1974년, 2014년. 개띠 해에는 이탈리아가 강해지는 해이니 1934년과 1994년에는 우승하질 못했다.
    • 월드컵 개최 연도의 일의 자리가 8일때, 그 월드컵에선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1938: 광탈, 1958: 4위는 했지만 14실점 + 조별리그에서의 1승2무라는 답이 없는 경기, 1978: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에 밀려 2R 탈락, 1998: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 참패, 2018: 광탈했다.
  • 개띠 해에 개최되는 월드컵에서는 월드컵을 98% 정도(?) 망친다. 이건 이탈리아가 개띠 해에 결승에 진출하는 징크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이탈리아랑 안 붙으면 준우승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랑 만나기 전에 그리고 이탈리아가 월드컵에 못나올때 독일이 떨어진 경우도 있다.
  • 1958년 월드컵에서는 4위는 했으나 디펜딩 챔피언 최다 실점 + 조별리그에서 1승2무[215]라는 답없는 경기를 치뤘고
  • 1970년에는 조별리그에선 서독다운 모습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나 8강전에서 디펜딩 챔피언이자, 전 대회에서 잉글랜드의 계획대로야 월드컵에 당해 쥘 리메컵을 못 들게 했던 웬수인 잉글랜드를 다시 만났다. 문제는 2:0으로 지고 있다가 후반 막판에 2골을 만회해 연장까지 끌고갔으며 연장전에서 역전을 하여 승리하였다. 4강에선 이탈리아를 만나서 시작하고 8분만에 골을 먹어 후반 종료 직전 까지 1:0으로 지고 있다가 딱 90분에 동점골을 넣고 연장전에가 연장 시작 4분만에 역전골을 넣었다. 만약 이게 골든골제도였다면 이탈리아가 세리에 A에서 서독 선수를 안 썼을 수도 모르지만(?) 서독이 역전하고 4분 후 이탈리아가 동점을 만들고 이탈리아가 역전까지 하였다. 하지만 서독은 경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재동점골로 증명을 했다. 현재 스코어는 3:3. 하지만 불과 1분 후 이탈리아가 아주리 징크스의 시발점일지도 모르는 재역전골을 넣었다. 스코어는 4:3. 그리고 10분 후 경기가 종료되고 아주리 징크스가 시작되었다. 3/4위전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선 1:0으로 이겼다. 결국 서독은 잉글랜드와 마찬가지로 쥘리메컵을 딱 1개만 받아버렸다. 그마저도 도핑으로 우승해서 깨끗하게 이긴 경기는 아니라는 것.
  • 1994년에는 스페인과 한국하고 만났으나 한국한테는 3:2로 겨우 버텨 이기고 16강전에서 벨기에한테 3:2로 이기나 8강에서 불가리아한테 1:2로 진다. 처음으로 개띠 해 월드컵에서 4강도 못 간 대회가 되었다.
  • 2006년에는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4강까지 갔지만 또 이탈리아를 만났다. 연장전까지 0:0으로 답 없는 공격을 보이다가 119분과 120분에 연달아 골을 먹혀 이탈리아한테 처음으로 골도 못 넣고 경기를 끝냈다. 독일로서는 승부차기에 가면 이탈리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탈리아는 1분도 안 돼서 2골이나 넣고 결승전이 아니라 3/4위전으로 보내버렸다. 후에 미네이랑의 비극을 당한 브라질에게 이 경기가 유사하다고 독일 사람들이 언급을 한 거 보면은 독일 입장에서 도르트문트의 비극이 된 경기인 셈이다. 거기에 경기장은 독일의 불패신화가 있는 도르트문트였는데 아주리 징크스에 대한 맞불로는 턱도 없었다.
  • 16강에 진출하면 최소 8강은 간다.
영원한 라이벌인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과 같은데, 조별예선 다음으로 16강전이 도입된 1986 멕시코 월드컵부터 생겨난 징크스로, 86년에는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포르투갈을 상대로 조별예선에서 승리하고 조 1위 차지)를 상대로 승리, 90년에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네덜란드를 상대로 승리, 94년에는 벨기에를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 98년에는 멕시코를 상대로 승리, 02년에는 파라과이를 상대로 승리, 06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는 스웨덴 상대로 승리, 10년에는 원수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 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알제리를 상대로 연장접전 끝에 승리했다. 승부차기까지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토너먼트에 진출하면 최소한 8위(8강전에서 탈락한 팀 중 최하위)를 한다는 뜻이다.

16. 관련 말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always win."'''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쫒다가, 결국엔 '''독일이 항상 이기는 게임이다.'''

- 게리 리네커

Football is a simple game. 22 men chase the ball for 82 minutes and the Germans get a player sent off so 21 men chase the ball for 13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somehow f***ing win.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82분 동안 공을 쫒다가, 독일의 한 선수가 퇴장을 당해 21명의 선수가 13분 동안 공을 쫒지만 어떻게든 독일이 X같이 이기는 게임이다.

- 게리 리네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2차전 독일 vs 스웨덴 경기 직후 남긴 트윗 (전술된 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옛날 자신이 남긴 명언을 이 경기를 시청한 이후 새로이 갱신한 것이다.)

Football is a simple game. Twenty-two men chase a ball for 90 minutes and at the end, '''the Germans no longer always win.''' Previous version is confined to history.

축구는 간단하다. 22명이 90분 동안 공을 쫓다가, 결국엔 독일이 더 이상 늘 이기진 않는다.

- 게리 리네커 트위터 F조 최종전 대한민국 vs 독일 경기 직후 남긴 트윗. 순식간에 모든 명언들이 바뀌었다.


17. 대한민국과의 전적


체감상으로는 독일이 대한민국을 이탈리아와 더불어 '독일의 양대 천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16] 사실 역대 전적을 보면 이탈리아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게 독일이 밀린 적이 있어 독일 킬러라는 호칭이 과장되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여러국가 대부분이 월드컵 우승 경력이 있는 전통의 강호들이기에 열세라고 해서 져도 이상할 건 없고 다음에 되갚아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으로 A매치 13패를 당한 브라질에게 미네이랑의 비극을 선사했지 않았는가? 하지만 알제리와 한국에게는 두 국가가 언더독의 위치에 있음에도 압살하지 못하고 있다. 역대 네 번 맞붙어 2승 2패의 신기록을 나누어 가지고 있고, 심지어 5득점 7실점으로 독일대한민국에게 골득실로는 열세다. 대한민국과 독일의 상대 전적중 3번이나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었으며, 월드컵 본선만 놓고 보면 2승 1패로 독일이 근소하게 우위를 점한다. (골득실은 0이다.) 4경기 모두 대한민국독일 모두에게는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거나, 혹은 전세계의 충격을 안겨준 경기였으며, 특히 가장 최근 경기인 카잔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경기는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는 역사상 최대의 이변이고, 독일 대표팀에게는 추락의 시작이자 나치 독일의 패전 이후 겪는 최대 굴욕으로 작용하는 축구사적으로 기념비적인 경기로 기록되고 있다.[217] 엄밀히 따지자면 독일 입장에서 한국은 천적까지는 아니고, 난적(難敵)정도지만, 양국의 객관적인 전력차이를 감안하면 한국이 독일의 난적인 것도 신기한 상황이다. 자세한 경기별 내용은 후술.

경기 스코어는 독일 대표팀이 왼쪽이다.
일자
장소
경기 스코어
득점자
대한민국 득점자
비고
1994년 6월 27일
댈러스 코튼보울 (미국)
3:2 (3:0) '''승'''
위르겐 클린스만(2), 칼 하인츠 리들레
황선홍, 홍명보
1994 FIFA 월드컵 조별리그
2002년 6월 25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대한민국)
1:0 (0:0) '''승'''
미하엘 발락
없음
2002 FIFA 월드컵 준결승전
2004년 12월 19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 (대한민국)
1:3 (1:1) '''패'''
미하엘 발락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
친선경기
2018년 6월 27일
카잔 아레나 (러시아)
0:2 (0:0) '''패'''
'''없음'''
김영권, 손흥민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단순히 객관적인 전력만 놓고 보기 이전에, '''독일은 또 다른 강팀들을 무자비하게 압살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팀이다'''. 실제로 아시아의 강팀들이 독일을 상대한 전적만 봐도 이란 2패, 일본 1무 1패[218], 호주 1승 1무 4패에다가 골득실이 이란 -4, 일본 -3, 호주 -8로 '아시아 축구 전담 킬러, 혹은 저승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독일을 상대로 유일하게 2승 2패로 팽팽한 전적을 보이고 심지어 골득실이 +2인 팀이 바로 대한민국이다.'''(월드컵만 보면 1승 2패에 골득실차 0) A매치 기준으로 독일이 먼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2연승을 거뒀지만, 이후 친선 경기 및 월드컵 본선에서 2연패를 기록하면서 승패 동률인 것. 앞서 언급했다시피 독일 축구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이며 그에 걸맞게 월드컵 우승도 4번이나 차지한 강팀 중의 강팀이지만, 정작 대한민국과 맞붙을 때는 이상하게도 경기 내용 면에서도 엄청난 접전인데다 심지어 독일이 이길 때는 1점차의 겨우 신승을 거두는 반면, 한국이 이길 때는 2점차의 완승을 거둔다는 기묘한 징크스가 있다.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최종전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전, 두 경기 모두 독일이 각각 3 : 2, 1 : 0으로 승리해서 먼저 2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4년 12월 19일 부산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는 독일이 '''1 : 3'''으로 패해 대한민국이 첫 승을 기록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최종전에서는 추가 시간에만 2골을 허용하면서 '''0 : 2'''로 패했다.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이후 호주와의 친선 경기에서도 1 : 2로 패배하면서 독일을 이긴 아시아 팀은 두 팀[219] 으로 늘어났다.[220]
사실 독일 축구계는 의외로 대한민국에 대해 경계심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분데스리가에서 이름을 날렸던 차범근 때문도 있고 게다가 차범근이 독일의 유력 축구계 인사들과 무척 친하다. 그리고 댈러스에서 열린 양 국가의 첫 맞대결인 1994 FIFA 월드컵 C조 최종전과 2002 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끝까지 포기를 모르고 뛰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17.1.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최종전


양국 간 첫 맞대결.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당시에도 독일대한민국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최강의 팀 중 하나였으며, 실제로 이 날 독일위르겐 클린스만의 2골을 포함해 전반에 3 : 0으로 앞서며 싱겁게 끝날 것으로 여겨졌다. 승패를 따지는 게 아니라 '''전차군단이 몇 골을 더 넣을 것인가'''를 화제로 삼았을 정도.
후반 시작 후 10분만에 경기 양상이 뒤집혔다. 교체 투입된 골키퍼 이운재의 하드캐리로 대한민국의 수비력이 급상승되었고 이에 힘 입어 황선홍홍명보가 중거리 슛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순식간에 스코어가 '''3 : 2'''로 좁혀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습도가 높은 댈러스의 4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 당시 베테랑으로 구성된 독일 선수들이 급격한 체력 저하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막강한 공격력을 트레이드마크로 삼는 독일이 '''오히려 극단적인 수비에 급급하면서''' 대한민국독일 쪽 진영을 전세내고 골만 안 들어갔지 일방적으로 가둬놓고 팼다. 한국 쪽은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젊었고[221] 여름에 경기를 치르는 특성상 이런 고온다습한 무더위에서 경기를 치르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후반부에서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급격한 체력 저하를 겪어야 했다.
여기서 졸전을 하는 독일 국대를 향해 미국 관중들은 물론이고 독일 관중들도 야유를 보냈는데,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그 성질머리 못 죽이고 '''전 미국인과 전세계인들이 보는 앞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추태'''를 벌이다가 교체는 물론 강제귀국까지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도 에펜베르크는 일부 경기에서는 소집되었으나 메이저 대회는 두 번 다시 나가지 못하는 등 그다지 활약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222]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경기는 결국 독일의 3-2 승리로 끝났지만, 이 때 독일 축구 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당대 최고의 선수이자 당시 2골을 넣은 위르겐 클린스만이 '''"만약 대한민국이 전반전부터 이런 경기력을 보였거나, 후반 연장 시간이 5분만 더 길었더라면 무승부 혹은 역전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훗날 언급할 정도로 대한민국독일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심었다.[223] 뒤집어 말하자면 이 날 대한민국이 좀더 잘했거나[224] 독일이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더라면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축구 비주류 아시아 국가에게 역전패, 그것도 '''3골차 리드가 뒤집히는''' 희대의 개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던 것! 만약 이게 실제로 벌어졌다면 월드컵 최대 이변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17.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전


8년 전에 고전한 기억 때문에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4강에서 대한민국과 만나게 된 독일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차라리 스페인이 낫다'''는 의견까지 있었고 '''별로 그럴 것 같진 않지만 솔직히 대한민국에게 질 수도 있다'''는 독일 축구 팬의 발언도 나왔을 정도.[225][226]대회에서 독일이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대회 전 독일이 결승전까지 갈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 녹슨 전차라고 비아냥을 들을 만큼 경기력이 예전만 하지 못했기 때문. 물론 객관적인 전력상 독일이 한수위인건 분명했기 때문에 웬만하면 이길거라는게 중론이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 쟁쟁한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스페인을 꺾고 4강까지 올라왔기 때문에 한국이 이길 수도 있다고 기대하는 축구팬들도 많았고, 한국이 홈 어드밴티지까지 있어서 유리할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승률은 7(독일) : 3(한국)이나 6(독일) : 4(한국)정도였을것이다.
실제 경기 내용은 후반 30분까지 0 : 0으로 팽팽하게 맞설만큼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다. 대회 골든볼 & 야신상 수상자인 올리버 칸의 신들린 선방쇼가 있었지만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기록하고 온 이운재의 플레이 또한 활약을 했고, 이천수가 벼락같은 슈팅을 날리는 등의 감각적인 플레이도 돋보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주전 선수들의 계속된 풀 타임 출전과 2연속 토너먼트 연장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고 결국 후반 30분에 미하엘 발락을 순간적으로 놓쳐 결승골을 허용해 0 : 1로 독일에 패배했다.
더 자세한 것은 히딩크호/독일전 문서 참조.

17.3. 2004년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아시아 원정


이 경기는 단순한 친선경기가 아니었는데, 독일축구협회에서 추진한 독일 국가대표팀의 아시아 투어 행사의 일환으로써 구체적으로는 일본, 대한민국, 태국 등 아시아 지역의 국가대표팀들과 평가전도 치르고 차기 월드컵과 자국 국가대표팀의 홍보를 꾀했던 것이다. 이 당시 있었던 에피소드로 유명한 해운대 굴욕(?) 사건이 있다. 일본과의 경기 후 대한민국에 도착한 독일 선수들은 부산 해운대에서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 선수들이 길을 걷고 있는데도 시민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 슈슈의 꽃게탕집 수족관 사진도 이 때 생산된 것이다.
일본과의 경기는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해서 후보 선수들을 대거 내보낸 2군으로 3 : 0의 대승을 거뒀고,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비로소 분데스리가 주전 멤버들로 구성된 최정예 멤버들을 내보냈다. 오히려 한국이 1.5군정도의 멤버로 이 경기에 임했다. 박지성 이영표 등의 유럽파 소집이 안됐기 때문. 이 경기에는 월드컵 최다득점 기록 소유자인 미로슬라프 클로제도 출전했다. 그런데 도리어 김동진, 이동국, 조재진에게 골을 내줘 1 : 3으로 패했다. 그나마 미하엘 발락이 프리킥으로 동점 골을 기록해서 영패는 면했으며, 한편으로는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내 2년 전 서울에서 당한 패배의 아픔을 복수한 이운재의 선방과 독일 수비진을 당혹케하는 차두리의 피지컬[227], 그리고 올리버 칸을 일순간 허수아비로 만든 이동국의 발리 슛 득점이 백미. 더구나 이 슛은 이동국이 180도로 몸을 돌리면서 때린 터닝 발리슛이었다. 칸이 그저 바라봤어야 했을 정도로 교묘한 슛이었다.
대한민국차두리독일 선수들 3명을 떨궈 버린 돌파력[228], 후반에서 터진 이동국의 터닝 슛, 그리고 발락의 페널티킥을 막아 낸 이운재의 선방이 활약을 했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본프레레호/2004년#s-2.3 문서에도 나와 있다.

17.4.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최종전


(현대 축구의 흐름을 놓고 본다면 카잔의 기적과 같은 일은 거의 생기기 힘들다고 봐도 무방하다. 경기력 뿐만이 아니라, 인종차별 등 독일 사회의 문제까지 이 여파가 번졌는데, 독일 대표팀의 주축 중 한 명인 터키계 선수 메수트 외질이 "내가 잘할 때 그들에게 나는 독일인이었지만, 내가 못할 때 나는 그들에겐 터키인이었다!"라며 자신에 대한 공정치 않은 비난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로 내외적으로 제대로 진통을 겪었었다.)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 된 경기[229]이자 '''20년 전 크로아티아전보다도 못한 최악의 졸전이었다.'''[230] 장소는 카잔 아레나. 월드컵 무대로 보자면 2002 한일 월드컵 준결승전 이후 16년 만의 재회며, 조별리그에서 만난 것까지 따지면 1994 미국 월드컵 이후 24년 만에 그것도 또 3차전 매치다. 덤으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후 다음 대회인 1994 미국 월드컵에서 대한민국과 만난 것처럼, 통일 독일의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 후 한국을 만났다. 독일은 마지막으로 맞붙은지 14년이 지났다는 세월 때문인지,[231] 한국 축구가 예선부터 갈팡질팡했다는 소식을 접한 탓인지 모르지만 그동안 한국이 자신들과 엎치락뒤치락하며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음을 완전히 망각하고 2002년의 포르투갈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 대한 분석조차 등한시하면서 깔보는 태도로 경기에 임하는 치명적인 우를 범했다. 그 결과 독일의 눈에 가려져 있던 골키퍼 조현우의 경이로운 선방 능력, 김영권윤영선의 철벽과 같은 호수비, 그리고 대표적인 지독파 선수인 손흥민을 필두로 한 공격진의 빠른 역습과 레온 고레츠카의 치달을 막는 홍철의 스피드 등등 갖가지 장애물들이 튀어나와 독일의 승리를 가로막았고, '''끝내 기적적으로 2:0으로 대한민국이 이겼다.''' 말 그대로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단어가 이 경기를 위해 있는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독일에게 있어서 굉장히 비참한 결과를 받은 것이다. 김택용을 깔보다가 패배한 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대목이다.
독일이 월드컵에서 무득점 2점차 이상의 패배를 당한 것은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0:3으로 패하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결승 에서 브라질에 0:2 패배를 당하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준결승 4강전에서 이탈리아에게 0:2 패배를 당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더구나 앞의 세 팀들은 FIFA 랭킹 상위권에 속하는 팀들이다. 심지어 1998년의 크로아티아는 당 대회 돌풍의 팀이었으며(첫 출전에 3위) 2002년의 브라질과 2006년의 이탈리아는 각각 그 대회의 우승팀이었다. 상위 20위권내에도 들지 못하는 아시아 축구 대표팀들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정말이지 충격적인 것이다.
이 경기 이전부터 에르도안과 관련해서 말이 많았던 메수트 외질은 마지막 최종전 이후에도 극심한 비판과 비난에 시달리자, 월드컵이 끝나고 몇 주 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외질의 은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과 관련된 문제점이 더 크지만, 한국과의 경기 결과가 독일 최고의 No.10 선수가 은퇴를 결정하는 상황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특히, 외질은 마테우스푸틴과 악수를 하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왜 내가 자국 대통령과 악수를 한 것은 문제가 되고 왜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안 되느냐?"는 비판을 하였다. 푸틴 역시 에르도안 못지않은 독재자인 것과 마테우스는 러시아와 하등 관련도 없는 것을 고려하면, 외질의 이 비판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과 몇몇 순혈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대한 큰 영향을 미칠듯 하다. "터키 출신인 내가 에르도안과 악수를 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데, 러시아 출신인 마테우스가 푸틴과 악수를 하는 것은 왜 문제가 안 되느냐?"는 외질의 외침은 현재 독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통렬하게 꿰뚫고 있다. 그러나 마테우스는 FIFA 풋볼 어워즈 심사위원의 자격으로 러시아에 갔고, 푸틴과 만난 자리에서도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함께 FIFA 위원으로서 월드컵 주최국의 국가 원수와 만난 것이다. 외질이 에르도안과 그냥 개인적으로 만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허나, 위의 에르도안 건을 깡끄리 무시하고 축구내적으로 보더라도 독일 언론과 축구인사들의 발언은 지극히 도를 넘었고, 외질의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느낄 만 하다. 실제로, 외질도 잘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도 몇몇 빼고 대체적으로 잘하지는 못하였고 (몇몇 평가에서는 한국전 때 외질이 그나마 제일 잘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 그들이 그토록 까대던 외질이 은퇴한 뒤에도 독일 국대가 노답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외질의 발언을 두고 토니 크로스&토마스 뮐러 등이 한 발언과 제롬 보아텡이 한 발언은 독일 국대 내애서도 이를 달리 보는 선수들이 있다는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나, 현재 외질이 은퇴를 한 이후에도 그보다 더 못하고 있는 베르너 & 뮐러와 대한 독일 언론의 모습은 코웃음이 나올 정도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가대표를 위해서 헌신한 선수가 이러한 부당한 차별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이런식으로 은퇴한 것은 비판을 받을 만한 상황임은 분명하다는 거다. 특히나, 보아텡이 한 발언 중 '''"외질은 우리와 함께한 매우 훌륭한 선수다. 그는 이주자의 배경을 가졌지만 10번을 달고 세계 챔피언으로 독일 축구를 변화시켰다. 그런데, 외질에게 고마워해야 할 선수들은 어디 있는가?”''' 라며 같은 팀 동료들과 몇몇 축구인사들을 저격한 듯 한 발언은 독일 축구계와 사회가 반드시 바라봐야 하는 점이다. 애초에, 이 외질이라는 축구선수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에르도안을 만날 정도의 정치관점을 평소에 드러낸 적이 없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독일의 이번 관련 사태는 독일의 이주자에 대한 민망한 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 봐도 무방하다.
소속만 아시아인 호주는 1승 1무 4패로 열세인데(호주가 2011년 3월 친선경기에서 2:1로 이기긴 했다.) 유럽/남미에서 웬만큼 잘 나간다는 팀들을 2~3골 차로 이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독일에게 그것도 축구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아시아의 팀이 2승 2패로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이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유럽 축구계에서 아시아를 약체를 넘어 '''호구'''로 여기는 마당에, 유럽을 뛰어넘어 세계구급 강팀인 독일을 상대로 저런 전적을 보이는 것 자체가 가히 미스터리급이었다. 독일이 2018년 15승 10무 10패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네덜란드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한국을 5:0으로 압살한 걸 감안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다.
독일 대표팀은 체력과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살하는 팀이다.[232] 대한민국 대표팀도 독일처럼 체력과 조직력으로 밀어붙이는 팀이다. 이렇듯 같은 성향의 팀끼리 붙었을 때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대목은 '얼마나 굳은 심지를 갖고 상대팀을 끝까지 압박하느냐'인 것이다.[233]대한민국이 독일을 이긴 경기를 분석해보면, 전부 독일에게 선취실점을 내주지 않고 오히려 선취득점을 올린 경우다. 독일 역시도 마찬가지다. 즉 역전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234] 또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축구계의 비주류 아시아에 속한지라 약체 취급을 받기는 하지만[235]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236]독일과 만날 때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의외로 자주 독일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대한민국과의 4강전이야 독일이 후반에 득점에 성공하여 1:0으로 이겼으니 딱히 고전했다고 여기지는 않는 것 같지만,[237] 1994 FIFA 월드컵 미국 C조 예선 때 3:0으로 앞서다가 3:2로 따라잡힌 것도 모자라 후반전 내내 수비 전술만으로 겨우겨우 막아낸 게 트라우마 수준으로 새겨진 듯하다.[238] 그것도 그 당시(1994년) 독일은 디펜딩 챔피언에 피파랭킹 1위의 초강팀이었다. 10년후인 2004년 친선 경기에서 1:3으로 패하면서 한국을 마냥 얕보기가 곤란할 정도로 인식되더니 그게 잊혀질 무렵 2018년 월드컵에서 아예 0:2로 패하는 굴욕을 겪는 바람에 이제는 한국과 맞붙게 될 경우 아무리 한국이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시절처럼 삽질에 삽질을 거듭하는 한이 있다 한들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유로 2004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리스도 무려 홍명보가 이끄는 한국에게 친선경기에서 그것도 한창 슬럼프를 겪던 박주영에게 실점해서 0-2로 패했기 때문이다. 한국에게 0-2의 완패를 당하고 이나라 저나라에 두들겨 맞아 2018년 12월 기준 피파랭킹이 16위로 곤두박질쳤다[239].

18. 사건사고



18.1. 금지약물 지원 의혹


2013년 독일 홈볼트 대학 연구진의 보고서에 따르면 1954 스위스 월드컵, 1966 잉글랜드 월드컵, 1976 몬트리올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에서 정부 차원의 금지약물 복용을 지원해줬다고 한다.[240] "독일서 70년대까지 국가가 도핑 주도" 2002년 월드컵에서도 독일은 금지약물 복용 의혹을 받기도 했다."독일 선수단 약물복용" 소문 확산
독일축구협회는 이에 대해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강한 의혹으로만 남아있는 상태다.

18.2. 히혼의 수치


위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 내용이다.
히혼의 수치 문서 참조.

19. 청소년 대표팀


현재 U-21 팀 감독에 슈테판 쿤츠, U-20 팀 감독에 마누엘 바움, U-19, U-18 팀 감독에 크리스티안 뵈른스가 부임해 있다.
1981년 FIFA U-20 월드컵 에서 우승했다.
2007년 FIFA U-17 월드컵에서는 4강전에서 탈락했다.
2017년 U-21대회에서 우승했다. 라이벌 관계인 잉글랜드, 유망주들의 산실인 스페인을 꺾음으로서 독일국가대표가 왜 세계최고의 유망주들이 성장하고 있는지 증명했다.

20. 둘러보기





[1] Fußball-National-Mannschaft가 합성된 단어이다. 독음은 '디 도이체 푸스발 나치오날 만샤프트'.[2] 영어로 직역하면 '''The Team'''. 원래는 team이라는 일반명사지만, 클럽 팀을 지칭할 때는 잘 쓰이지 않고, 대표팀을 지칭할 때 주로 쓰이게 되면서 앞에 정관사 die를 넣어 대표팀을 지칭하는 말로 굳어졌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애칭 중 가장 흔한 애칭이다. 독일 축구 연맹에서도 이 명칭을 주로 사용하며, 언론에서도 대표팀을 지칭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명칭이다.[3]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홈 경기장은 특정한 한 곳으로 정해져 있지 않고, 독일 내 여러 경기장을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1908년부터 현재까지 43개의 다른 도시에서 홈 경기를 치렀는데 이들 중에는 과거에 오스트리아 합병 당시 독일 영토이자 1938년부터 1942년까지 세 차례 홈경기를 주최한 현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도 포함된다.[4]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독 축구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차지한 적이 있다.[5] Rank (2020년 12월 랭킹 기준)[6] Rank (2021년 2월 랭킹 기준)[7] '만샤프트'로 음독된다. 독일 이외의 유럽 지역에서도 정관사 die를 제외한 mannschaft라는 별칭이 통용되고 있다.[8] 2위는 네덜란드의 3회다(1974, 1978, 2010)[9] 조별리그가 포함된 월드컵 기준으로는 사상 최초이다. 독일이 최초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던 그 80년전 월드컵인 1938 프랑스 월드컵은 조별리그 없이 전 경기를 토너먼트식으로 진행하였다.[10] 리그전에서 승점상 크게 이길 필요가 없는 경기에도 이기려고 악을 쓰는 팀이다.[11] 21세기 초반에 발락이 홀로 이끌어 나가던 시절이 있긴 있다.[12] 단 1982년 첫 출전한 알제리에게 1:2로 진 건 예외다. 1994년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치른 미국 월드컵에서도 볼리비아와 한국에게 고전 끝에 겨우 이기고 스페인과는 비겼다.[13] 잉글랜드의 경우는 데이비드 베컴의 은퇴 이후 프랑스 못지않은 하향세를 보이는 팀이고, 2010년의 아르헨티나는 가장 아르헨티나답지 못한 팀으로 디에고 마라도나가 아예 작정하고 팀을 망쳤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다.[14] 유로 2008 4강에서 터키를 이기고 올라왔지만 90분에 결승골로 간신히 3:2 펠레스코어 승리를 거두었다. 2010년 월드컵 수아레즈의 신의 손으로 4강에 올라 네덜란드와 인상적인 경기를 펼친 우루과이와의 3·4위전에서도 난타전 끝에 3:2 한골차 승리를 거두었다. 유로 2012 조별예선에서 3승을 거두고 조 1위로 올라왔지만 모두 한골차 승. 물론 네덜란드전은 전반에 2골을 미리 선취했지만. 또한 201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는 연장 후반의 기나긴 혈투 끝에 승부차기 일보직전까지 가서야 마리오 괴체의 인생골로 겨우 1:0으로 이겼는데 하마터면 패할 뻔했다. 특히 '''토니 크로스가 상대 선수인 곤살로 이과인에게 어시스트를 해주는 황당한 짓거리'''는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며 이것을 이과인이 골인시켰다면 크로스는 독일 국대에서 추방당했을 것이다.[15] 스페인이 세계 최강팀으로 거듭난 유로 2008의 우승 제물이 바로 독일이었다. 스페인의 1:0 승리, 그리고 2010년 남아공월드컵 4강에서 복수를 다짐했지만 푸욜의 헤딩골로 인해 다시 0:1로 패배.[16] 단 유로 1996에서 이탈리아는 반드시 독일을 잡아야 했지만 무승부를 거둬서 8강 진출에 실패했다.[17] 당시 크로아티아는 아일랜드를 3:1로 털어버려서 다득점에서 앞서가는 중이었다.[18] 더구나 이 당시 이탈리아는 스페인이 크로아티아를 이기고 '''자신들은 다득점으로 아일랜드를 이겨야 조별리그 통과가 가능했던 형편이었다.''' 골득실에서 크로아티아에게 뒤져있던 상황이라 크로아티아가 1골만 넣는다고 해도 이탈리아의 탈락이 기정사실화 되기 때문이었다.[17] 그런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를 2대0으로 이기고 헤수스 나바스가 후반 43분에 터뜨린 결승골로 스페인이 크로아티아에 1:0 신승을 거둔 후에야 간신히 8강행을 확정지은 것.[19] 펠릭스 마가트 [20] 미로슬라프 클로제, 루카스 포돌스키, 피오트르 트로호프스키 [21] 올리버 뇌빌 [22] 케빈 쿠라니, 카카우 [23] 올리버 칸 [24] 조모가 라트비아 출신[25] 게랄드 아사모아, 제롬 보아텡.[26] 메멧 숄, 메수트 외질, 일카이 귄도안, 엠레 찬.[27] 전반전까지 독일과 브라질은 0대 0으로 경기 내용 역시 약간 브라질이 우세했어도 칸의 적절한 선방으로 대체적으로 팽팽했다. 올리버 뇌빌의 강력한 직접프리킥을 마르쿠스 골키퍼가 간신히 쳐내면서 브라질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지만 호나우두, 히바우두와 더불어 월드컵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하고 있던 발락의 결장이 정말 아쉬웠던 경기.[28] 이탈리아 1회, (1934년 이탈리아는 개최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지역예선을 치뤘기에 여기에 포함된다.) 브라질 2회, 독일 2회[29] 1998년에는 크로아티아가 8강에서 독일을 쓰러뜨리고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에서는 하필이면 에메 자케가 이끄는 프랑스에게 걸려 패하는 바람에 3/4위전으로 밀려났지만 3·4위전에서는 네덜란드를 쓰러뜨리고 3위를 차지한 바 있다.[30] 그것도 세계 축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여겨지던 아시아의 어느 나라 대표팀에게 참패를 당해 독일 축구 사상 첫 조별리그 최하위로 마감했다. 게다가 전 대회 우승팀 최초로 아시아 팀에 진 팀이란 대망신도 당했다.[31] 2010 아르헨티나전 4:0/2014 포르투갈전 4:0, 브라질전 7:1[32] 둘은 애초에 대표팀 감독 자리를 두고 다투던 라이벌이었다. 결국 리베크가 감독, 슈틸리케는 수석코치로 차기를 기약하는 것으로 정리되었지만, 이런 탕평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슈틸리케는 리베크 감독에게 계속해서 개겼다.[33] 첫 대회 이래 모든 대회에 출전한 브라질(21회)에 이어 2위 기록이다.[34] 1938년은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망친 것이나 다름 없었는데 대회 직전에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병합을 시전하면서 오스트리아 선수들을 강제로 독일 대표팀에 편입시켜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오스트리아 선수들은 남의 나라인 독일을 위해 뛰어야 하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대놓고 태업을 했다. 독일에게는 그야말로 인과응보. 2018년의 탈락은 차욕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유럽 지역예선을 전승 찍고 통과한데다 직전 대회 우승까지 하고 2군 선수로 컨페드컵 우승까지 한 팀이 아시아에서도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하며 겨우겨우 본선에 올라온 한국에 0 : 2로 패배했으니까 입이 100개라도 할 말이 없다.[35] Die Mannschaft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은 뜻을 가진다. 현재는 가장 많이 쓰이는 뜻은 스포츠 팀을 지칭할 때이지만, 군대나 항공/선박 승무원, 부대원 등등을 지칭하는 뜻도 된다. 영어로 굳이 직역하면 Man + -ship(혹은 group) 정도 되는 의미.[36] Rumpelfussball, 우리말로 직역하면 "덜컹축구"이다. 베켄바워가 유로 2000 참사를 목격하고 쏟은 비난이다. 베켄바워는 이 단어로 2001년 신조어상을 받았다.[37] 푈러 감독의 독일이 유로 2004 광탈 이후 2006년 월드컵 종료까지 위르겐 클린스만이 감독직을 맡았지만, 실질적인 전술구상이나 선수 선발은 대부분 요아힘 뢰프가 했기에 대부분 이 시기부터 뢰프 체제로 해석한다.[38] 70년대 독일 축구를 지칭하는 단어는 람바참바 (Rambazamba) 이다. 람바참바는 춤추며 흥겨울 때 쓰는 의성어이며, 공을 최대한 많이 잡고 경기를 지배하며 스피드를 이용해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리는 화려한 축구이다. # 독일의 유로 2012 어웨이 유니폼 안쪽에는 "1972 : 성공 스토리의 서막, 2012 : 새로운 장을 기록한다"라는 40년 전의 70년대 람바참바 축구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멘트가 쓰여져 있다.[39] Chaleira, "주전자" 축구, 드리블과 개인기를 사용하는 브라질 축구, 한국에서는 흔히 "삼바 축구"로 알려져 있다.[40] 실제로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세르히오 아궤로와의 충돌로 출혈을 일으켰고, 그리고 곤살로 이과인에게 절호의 찬스를 3번이나 허용하면서 하마터면 패할 뻔하기까지 했다.[41] 위의 로고는 유니폼에 달리는 로고일 뿐 독일축구협회의 로고가 아니다. 독일축구협회 로고는 화살촉 방향으로 겹쳐진 두 개(한 개는 변 하나가 끊긴)의 삼각형에 초록색 바탕을 한 문장이다.[42]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그만큼 파괴적이면서 견고한 축구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독일의 기계 공업에는 잔고장이 없기로 유명한, 그러니까 철저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한 무결점 축구를 지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43] 사실 독일 국가대표팀들의 면면을 보면 분데스리가 자국팀들과 해외에서 활약하고 있는 자국 선수들이 합류해 뛰지만 이들에게 소속팀 고유의 색깔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일 축구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더 적합한 별명이다.[44] elf가 숫자 11을 뜻하므로, 영어론 National Eleven인 셈.[45] 왜냐하면 아디다스가 독일 축구 협회와 처음 계약한 때가 1980년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현재 아디다스의 자회사인 에리마(1. FC 쾰른의 유니폼 제작사)의 유니폼을 입었었다.[46] 이전에 루메니게도 독일 삼색 디자인의 주장 완장을 몇번 착용한 적이 있으나 월드컵과 유로 등 메이저 대회 본선에서는 착용하지 않았다.[47] 게다가 이 해에 독일이 통일 했기 때문에 독일 국기인 삼색기를 좋아하는 독일인들도 있다. 이 디자인이 정말 호평을 받아서 심지어는 1986년 월드컵때 입은 녹색 어웨이 유니폼에다가 이 무늬를 넣은 녹색 유니폼을 CG로 재현했을 정도이다. [48] 물론, 1970년 월드컵때 3,4위전에서도 아래 위 흰색 유니폼을 착용한 사례가 있으나, 이 역시 예외적인 사례이며, 이전 4강 전까지는 모두 흰색 상의, 검정색 바지를 착용하고 나왔었고, 이후에도 2014년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아래위 흰색을 입고 출전한 사례는 없다.[49] 2018년 내내 유독 안좋은 경기력을 보이던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정말 공교롭게도 이 두 경기에서만큼은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50] 1986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아르헨티나가 홈 유니폼, 서독이 어웨이 유니폼을 착용했지만, 199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서독이 홈 유니폼, 아르헨티나가 파란색 상의의 어웨이 유니폼을 착용했다. 그리고 2014냔 월드컵에서도 아르헨티나는 파란색의 어웨이 유니폼 독일은 하얀색 홈 유니폼을 입었다. 그 세 결승전 모두 홈 유니폼을 입은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51] 거의 동일한 디자인이었으며, 심지어 카라 디자인도 동일했고 아디다스 삼선까지 동일했다. 색상도 비슷한 옅은 푸른색 계열이이었다. 다만 서독은 청록색, 동독은 하늘색에 가까웠다는 정도의 차이였다. 구글을 검색해보면 80년대말 마티아스 자머울프 키르스텐이 착용한 이 동독 대표팀 유니폼을 볼 수 있다.[52] 물론, 잉글랜드는 승부차기에 상당히 약한 팀 중 하나이기도 했다.[53] 독일은 한일월드컵때 전경기 모두 흰색 상의 검정색 하의 흰색 양말을 입었다.[54] 한일월드컵 때와 동일[55] 조별예선 3차전 가나전, 8강 아르헨티나전, 3/4위전 우루과이전.[56] 다만 하의는 원래 흰색이었는데 월드컵 본선에서는 상하의 모두 검은색을 입고 나왔다.[57] 한국 프로팀인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도 저 팀에서 따왔다.[58] 대한민국은 홈 유니폼인 빨간색 상의, 검정색 하의를 입고 빨간색 양말을 신었다.[59] 참고로 독일이 통일 후에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에 녹색 계통의 어웨이 유니폼을 입은 경기였다.[60] 스페인과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각각 1대1 무, 0대1 패에 이어 대한민국과의 월드컵 조별예선 경기 0대2 패.[61] 브레슬라우와 보이텐은 슐레지엔 지역, 슈테틴은 포메른 지역, 쾨니히스베르크는 동프로이센 지역으로, 현재 폴란드(쾨니히스베르크가 속한 동프로이센 북부는 러시아, 최북부는 리투아니아)의 땅이다. 참고로 독일이 1차 대전으로 잃어버린 포젠, 서프로이센의 도시들 중에 대표팀의 홈 경기를 주최한 곳은 없다.[62] 헤르타 베를린의 홈구장 올림피아슈타디온 베를린,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 알리안츠 아레나, 함부르크 SV의 홈구장 폴크스파르크슈타디온,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홈구장 지그날 이두나 파크, 그리고 FC 샬케 04의 홈구장 펠틴스 아레나.[63] 물론 처음에는 1:1 무승부였지만, 재대결에서 2:4로 패배해서 탈락했다.[64] 이탈리아가 독일과 일본으로 구성된 추축국의 일원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다지 적극적이라고 할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이들 두 나라보다는 잔혹행위도 그다지 눈에 띌 정도로 심한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이들보다 더 먼저 연합군에 항복한 점도 고려한 것이다. 사실 추축국간의 협력이라고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었을 정도로 박자도 맞지 않았다. 실례로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히틀러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막상 히틀러가 도움을 요청했을땐 국내정세를 핑계로 꽁무니만 빼댔다.[65] 그래서 당시 한국 대표팀은 독일과 같은 조였음에도 헝가리, 터키와만 경기를 치렀다.[66] 조별리그에서도 독일과 헝가리가 만났는데, '''8대 3으로 발렸다.'''더군다나 이 당시의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은 현재도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무시무시한 강팀이었다.[67] 다만 약빨이 있었다는 의혹이 있다.[68] 당시까지는 통합 분데스리가가 아닌, 각 지방의 레기오날리가(Regionalliga) 우승팀끼리 또 토너먼트를 벌여 우승자를 가리는 방식이었다.[69] 골로 인정되려면 골라인을 완전히 통과해야 한다. 영국 옥스포드대 공과대학과 임페이얼 칼리지의 연구 등에서도 이것이 노골임이 인정되었다.[70] 허스트가 막판 추가 득점을 상황도 관중이 난입하는 상황이어서 논란을 야기했다.[71] 네처는 1972 유로에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고 이듬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72] 귄터 네처는 1974년 월드컵 동독전에서 교체로 출전한 것이 전부였다. 1972년 유로에서 갑작스런 성공 이후 네처가 자기 관리를 소홀히 해서 폼이 떨어졌는데 이는 네처 스스로도 인정했다. 또 스타일 상 대표팀에서 네처와 베켄바워의 역할이 겹쳤고, 이때문에 베켄바워가 대표팀에서 네처를 견제했다는 썰도 있다. 네처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였기 때문에 당시 독일의 쇄국정책 때문에 대표팀에서 탈락했다는 얘기도 있지만, 어디까지 네처의 폼 저하가 주 원인이었다. 쇤 감독은 월드컵 전 평가전에서 계속 네처를 기용하며 어떻게든 그를 활용해보려고 노력했다.[73] 줄리메컵이 브라질에게 영구 수여된 이후 최초로 FIFA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올린 팀이기도 하다.[74] 독일 대표팀에서 통산 45경기 32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75] 차라리 1998년 월드컵 크로아티아전에 0:3으로 패한 것이 훨씬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운 일이 될 정도.[76] 이 당시에는 이기면 승점 2점이었다.[77] 훗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에서 독일과 알제리가 만났을 때는 독일이 알제리를 이겼다.[78] 결승에서 파올로 로시를 전담 마크했다.[79] 신예 리트바르스키는 이날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고, 만회골과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1골 2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80] 승부차기에서 한때 한국 국대 감독을 맡았던 그 분이 키커로 나서서 실축했다. 실축하고는 그대로 푹 쓰러져 땅을 손바닥으로 치는 모습이 몹시 애잔하다...[81] 아이러니하게도 이 경기는 흡사 유로2012 4강전인 독일(1986년 프랑스)과 이탈리아(1986년 독일)와의 경기의 서막을 보는 듯 했다. 이탈리아는 조별리그에 스페인을 상대로 명승부를 펼치며 무승부를 기록했으나 이 후 크로아티아에 고전해 무승부를 거두며 1승 2무 조 2위로 8강에 진출했고 8강에서도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4강에 진출한 반면 독일은 당시 포르투갈 - 네덜란드 - 덴마크로 이루어진 죽음의 조에서 3전 전승을 찍고 8강 체코를 상대로도 정규시간 내에 승리를 거두면서 이번에야말로 아주리 징크스를 깰 수 있다란 예상이 지배적이였으나 결과는 이탈리아의 2 : 1 승리, 그 것도 독일은 후반 막한 PK를 얻어 간신히 영패를 모면했을 뿐이다. [82] 마테우스의 인터뷰[83] 완전 반대상황이 2006년에 펼쳐지긴 했다.[84]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굿바이 레닌에서 이 시기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있다.[85] 8강에서 '''이 대회 시작전까지 무승이었던 불가리아'''를 만나 후반전에 마테우스의 페널티킥으로 앞서나갔으나, 스토이치코프에게 프리킥으로 얻어맞고, 레치코프에게 역전골을 내주어 1-2로 역전패를 당해 탈락하였다.[86] 리들레는 90 월드컵 엔트리에 들었고 우승 멤버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완전한 백업 멤버로서 주전으로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리들레가 본격적으로 주전이 된 것은 92 유로부터였다.[87] 대표팀에서 가장 어렸으나 대회 당시 만 25세였다.[88] 한국전 도중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을 향해 꼴뚜기질을 하다가 즉시 교체 및 귀국 조치를 당하고 더 이상 국제무대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었다.[89] 대표팀 통산 출전 6회[90] 이와 비견될 최악의 패배는 2004년 4월 열린 루마니아와의 경기에서 당한 1-5 대패를 들 수 있다. 그나마도 후반 막판까지 5-0으로 지고 있다가 필립 람의 만회골로 간신히 영패를 면한 것.[91] 잉글랜드는 조3위로 동반 예선탈락했다.[92] 70년전에 오스트리아에 0:6으로 진 적이 있다. 1930년대 오스트리아는 섀도우 스트라이커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티아스 진델라라는 엄청난 슈퍼스타를 앞세워 월드컵 4위를 기록하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던 강팀이었다.[93] 이 경기 주심은 그 유명한 피에르루이기 콜리나 심판이었다. 이후 이상하게도 콜리나 심판과 독일과의 악연이 2002 한일 월드컵 결승전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된다. 사실 이 경기가 있기 전에 독일 축구 협회에서 콜리나에게 선물이라고 준 게 하필이면 '''이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94] 이후 스페인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이와 비슷하게 네덜란드한테 '''1:5'''로 대역전패하는 수모를 당했다.[95] 그 퇴장도 모두 경고 누적으로 인한 퇴장이기에 팀 당 8개의 옐로 카드가 제시된 것이다.[96] 이후 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심한 난투극으로 얼룩진 즉, 뉘른베르크의 전투라고 불리는 포르투갈네덜란드의 16강전 경기가 열렸다. 자세한 내용은 뉘른베르크의 전투 참조.[97] 그런데 사람들은 당시 독일의 성과를 대부분 발락과 칸의 투맨쇼로 그나마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둘이 워낙 압도적인 퍼포먼스였으니...당연하다. 그리고 막말로 우크라이나와의 플레이오프에서 발락이 없었으면 독일은 진작에 예선에서 탈락했을 수도 있다. 2002 월드컵에서 독일은 주전들의 줄줄이 부상을 메첼더, 프링스 등 젊은 선수들의 기대 이상의 활약과 디트마르 하만의 중원 조율, 미하엘 발락, 마르코 보데의 위기상황에서의 한방, 거기에 올리버 뇌빌의 기동성과 베른트 슈나이더의 창의성, 미로슬라프 클로제의 고공폭격이 더해져 의외로 밸런스 자체는 잘 잡힌 팀이었다. 워낙 구식전술을 들고나온 루디 푈러 감독 체제하의 답답한 공격전개로 자국 팬들조차 야유했지만 2002년 월드컵만 하더라도 쓰리백이 의외로 먹히면서 수비라인이 어느정도 제 몫을 해주었고 4강전부터는 포백으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등 2002 월드컵은 '''그래도 그 최악의 부상악령의 상황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얻은 것이다.'''[98] 99년 미국전보다도 훨씬 더 심한 졸전이였다. 여기서 독일은 경기내내 패스자체가 루마니아 선수들에게 죄다 컷팅당했고, 당시 루디 퓔러 감독은 발락에 대한 의존증을 줄이기 위해 프랑코 바우만, 파비안 에른스트 카드를 과감히 꺼내들었으나 전반에만 4골이나 먹히면서 망했어요. 독일의 만회골도 후반 89분, 루마니아 선수들이 봐줘서 노마크 상태인 필립 람이 냅다 꽃을 중거리 골이였으니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다.[99] 4-2-3-1은 의외로 역사가 깊은 포메이션이다. 데포르티보가 이 포메이션으로 2000년대 초 전성기를 구가했고, 90년대만 하더라도, 거스 히딩크 감독의 네덜란드와 레알 마드리드가 틈틈히 사용했던 포메이션이다.[100] 캄 노우의 기적으로 유명한 그 경기다.[101] 다만 이들은 전임 푈러 감독 시절 대표팀에서 처음 승선했다. 하지만 주전으로 도약한 것은 클린스만 감독 시절이다.[102] 마츠 후멜스회베데스도 2009 U-21 대표팀 출신이다. 이들은 2010 남아공 월드컵 스쿼드에는 포함되지 못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활약했다.[103] 다만 2 : 1로 앞선 상황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골 라인을 넘은 슈팅이 골로 인정되지 않은 오심이 있었다.[104] 물론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인 디에고 마라도나의 최악의 지도력도 한몫하기는 했다.[105] 토마스 뮐러는 남아공 월드컵 영플레이어상과 골든슈를 차지했다.[106] 한편 2위인 스웨덴은 플레이오프에서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털리며 탈락했다.[107] 물론 페페토마스 뮐러 머리에 헤딩해서 퇴장당하며 포르투갈이 자멸한 게 컸다.[108] 포백 라인을 전부 센터백으로 구성하는 전술을 말한다.[109] 이제 국제대회에서 이탈리아를 이긴다면 아주리 징크스를 완전히 격파하게 된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의 승리는 '''통일 독일로서 가진 대 이탈리아전 승리'''라는 점에서 뜻깊은 경기였다. 다만 정식 메이저 국가 대항전{FIFA 월드컵유로}에서의 성적은 여전히 독일의 무승이므로 이들 무대 중 하나에서 독일이 이탈리아를 이긴다면 아주리 징크스를 정복하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110] 그리즈만 2골[111] 칠레의 마르셀로 디아스가 페널티박스 바깥쪽에서 공을 지나치게 소유하다가 티모 베르너의 압박에 공을 놓쳤고, 베르너는 브라보를 제치고 라르스 슈틴들에게 연결, 슈틴들이 마무리했다.[112] 당시 독일이 유럽 지역예선에서 남긴 성적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득점43점, 실점 4점, 골득실 +39, 승점 30.[113] 사실 이 경기도 그다지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전반 32분때 스웨덴의 올라 토이보넨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후반 2분에 마르코 로이스가 동점골로 균형을 맞춘 뒤, 경기종료 추가시간때 크로스의 프리킥으로 역전, 가까스로 승리했던 것.[114] 엄밀하게 말하면 나치 독일 시절인 (80년 전) 1938년 프랑스 대회 1라운드 탈락이 있었으므로 최초라고 할 수는 없으며, 해외 해설진 역시 "1938년 대회 이후 80년만에 첫 본선 탈락"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지금과 같이 조별리그가 도입된 이후로 탈락한 경우로서는 최초이다.[115] 취소선을 쳐놓긴 했지만, 현 랭킹만으로 봤을 땐 1위와 15위, 즉 무려 '''14계단'''이나 차이나는 팀들의 대결이었다. 독일의 위상이 월드컵 참사 이후로 얼마나 떨어졌는지 알 수 있는 부분.[116] 물론 그렇다고 강팀을 상대로 잘 한 것도 아니다. 월드컵 진출 확정 후 잉글랜드, 프랑스, 스페인, 브라질과 가진 평가전에서는 3무 1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그렇다고 약체인 사우디아라비아에게는 홈에서 졸전 끝에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을 정도.[117] 독일과 달리, 네덜란드는 어느정도 리빌딩에 성공을 하였다. 쿠만 부임 이후 포르투갈을 3:0으로 압도하거나 프랑스를 2:0으로 이기는 막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프랑스를 제치고 네이션스리그 4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그 월드컵 본선 진출을 못했다는 조편성부터가 '''그 월드컵을 우승한 프랑스''', 그 월드컵에서 8강에 올라간 스웨덴이 들어온 죽음의 조였다. 같은 지역예선에서 독일이 체코, 산마리노 등 코흘리개들을 상대한 것과는 격이 다르다. 실제로 본선에 올라온 독일의 꼬라지를 보면 스웨덴이나 이탈리아 자리에 독일이 들어갔으면 독일도 얄짤없이 지역예선 탈락이었다(본선에서의 선수들을 사용했을 경우). 그냥 네덜란드가 독일보다 훨씬 강해서 진거다.[118] 다만 이 경기는 더 심했던 게 믿고 있던 마츠 후멜스마저 거한 삽질을 하는 바람에 마누엘 노이어 혼자만 개고생해야 했다.[119] 독일이 다음 경기에서 프랑스에게 패해도 프랑스가 이후에 네덜란드를 잡아주고 본인들이 또 네덜란드를 이기면 잔류가 확정된다. 문제는 독일의 현 경기력을 보면 그마저도 굉장히 힘들어 보인다는 것...[120] 우크라이나러시아무려 4년 넘게 전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때문에 아예 전 국토에 러시아산 미사일(...)이 날아오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친EU파와 친러파로 갈려서 스포츠 지원은 커녕 수십년 째 나라 내부 수습도 못하는 상황이니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이상으로 엄청난 선전이다. 당연히 우크라이나 축구 국가대표팀 내 선수들도 친EU파와 친러파가 갈려서 싸우는 와중에 승격한 것이다.[121] 아직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완벽한 주권을 행사하고 있지 못하고 민족들끼리 대통령을 한 명씩 총 세 명을 뽑는다는 것과, 이러한 정국 불안정으로 인해 스포츠도 세 쪽으로 분열되어 발전이 저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정말 엄청나게 선전한 거다.[122] 당장 토마스 뮐러만 봐도 점유율 축구의 전성기 때 자신의 커리어 최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로 하향세에 있다. 즉 텐백을 뚫는데 있어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123] 정작 독일축구협회 측은 오히려 이런 뮐러를 옹호해 줘서 더 크게 욕을 먹었다.[124] 베테랑으로 칠 만한 선수가 주장 노이어 한 명이었다.[125] 프랑스전 1대2 패, 러시아전 3대0 승, 네덜란드전 2대2 무다. 실은 9월에 프랑스와 거둔 0대0 무승부도 경기력은 괜찮았지만, 새로운 선수들을 본격적으로 기용하기 시작한 건 10월 프랑스전부터이다.[126] 당시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을 앞둔 중요한 시기였다.[127] 다만 북아일랜드의 4전은 모두 벨라루스, 에스토니아를 홈/원정에서 만나면서 거둔 것으로, 앞으로 그들에게 남은 상대는 네덜란드와 독일 4연전이었다.[128] 그 위협적인 장면은 전부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에 막혀버렸다. 심지어 페널티킥까지 막혔다.[129] 플레이오프 종료 후 헝가리가 이 조에 합류하게 된다.[130] 정작 독일이 2번 포트로 밀어낸 네덜란드는 우크라이나, 오스트리아, 그리고 최약체로 불리는 북마케도니아라는 무난한 조 편성을 받아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게 이 지옥의 조 편성을 뽑아준 인물은 다름 아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고의 주장 중 한 명인 필립 람이었다.[131] 스페인과 스위스전 모두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무승부로 끝냈다는데서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독일이 A매치를 치를 때 고민해야 할 문제거리다.[132] 네이션스 리그 2경기 포함한다.[133] 뮌헨의 주장인 발락이 첼시로 챔스 우승을 위해 이적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다.[134] 도르트문트 & 묀헨글라드바흐[135] 2013년에 바이에른 & 도르트문트가 챔스 결승에서 만난 것은 어쩌면 독일축구의 부활을 의미했던 것일 수도 있다.[136] 승부차기 포함[137]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1998년 차범근 감독 부임이후 신태용 감독이 되기까지 13명의 감독이 거쳐갔지만, 독일은 1926년 오토 네르츠 감독 부임이래 10명의 감독뿐이다.[138] 당시는 전 경기 토너먼트였다. 지금으로 치면 조별리그 탈락[139] 첫 경기에서 스위스와 무재배하고 재경기 끝에 탈락. FIFA 공식 기록은 재경기까지 포함.[140]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에 대한 징계로 출전자격을 박탈당했다.[141] 헝가리에 조별예선에서 3:8로 대패하고 결승전에서 3:2로 복수에 성공했다. 참고로 결승전 당시 독일 선수 전원이 암페타민을 흡입한 상태였고, 헝가리는 남미의 강호 두 팀(브라질, 우루과이)와 혈전 + 패싸움 끝에 부상 선수가 다수 나온 반면, 독일은 선수 유출 없이 상대적으로 쉬운 팀(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을 누르고 올라왔다. '''헝가리를 이긴 것이 이변이었으며''', 지금도 베른의 기적이라 불리는 사건이다.[142] 잉글랜드와의 결승전 연장전 세번째 골이 라인을 넘어가지 않았음에도 인정. 아직까지도 가장 논란이 많은 결승전[143] 독일과 동독이 같은 조에 속했는데 동독이 독일을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러나 독일은 토탈풋볼의 네덜란드를 누르고 우승을 가져갔다.[144]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알제리에 1:2로 패하는 이변을 연출. 마지막 경기에서 오스트리아와의 승부조작으로 유명했던 대회. 충격을 받은 독일 팬이 자살하고 프랑스에서 '노벨 평화상'감이란 비아냥을 날렸던 최악의 팀이었지만 결국 프랑스는 4강에서 졌고 결승에 갔다.[145] 서독으로서 우승한, 그리고 서독으로 출전한 마지막 월드컵이었다.[146] 지역예선에서 잉글랜드에 1:5 대패하는 등 최악의 졸전을 보이며 올라왔지만, 사우디를 무려 '''8:0'''으로 대학살한 것을 시작으로 결국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사우디전에서 클로제가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역대 준우승국들 중 가장 쉬운 대진으로, '''결승에 오르기까지 우승후보급 강팀을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147] 16년 전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우승이 독일, 3위가 개최국'''이었는데 2006 독일 대회에서는 '''우승이 이탈리아, 3위가 개최국'''이라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148] 4강전에서 홈팀 브라질을 상대로 '''7:1''' 대승을 거두고, 클로제의 월드컵 최다골을 비롯해 최다 결승진출, 팀 최다득점까지 다양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통일 이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149] 1라운드에서 탈락한 것 자체는 1938 프랑스 월드컵에 이어 두 번째이자 80년 만이고, 조별리그 체제가 도입된 이후로는 최초의 조별리그 탈락이다. 즉 독일 대표팀이 최초로 '''조별리그 탈락'''했다는 말은 맞는 말이고, 최초로 '''1라운드 탈락'''했다는 말은 틀린 말이다.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150]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151] 첫번째 월드컵이야 너무 많은 나라가 고의로 불참했기에 본선 출전 경력이 없는 걸 일반적으로 유럽 월드컵사에서 실력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 역시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서의 징계로 인한 강제 불참이기에 이 역시 실력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그 사례들을 제외한 경력만으로 보면 프랑스는 다섯 번, 스페인은 네 번 탈락했으며, 잉글랜드는 세 번 떨어졌고, 이탈리아도 무려 두 번이나 실력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 남미 대륙의 아르헨티나 역시 한 번 지역예선에서 탈락한 적이 있는데, 그런데도 독일은 없는 것이니 그야말로 유럽 베스트 커리어이다.[152] 1986년 지역예선 포르투갈전 0:1 패, 2002년 지역예선 잉글랜드전 1:5 패[153] 하지만 1938년 조차도 녹아웃 토너먼트라서 1개 팀이랑 경기를 해서 완전 정확한 탈락은 2018년이다.[154] 2002년 vs 사우디 8:0 2006년 vs 코스타리카 4:2 2010년 vs 호주 4:0 2014년 vs 포르투갈 4:0[155] 물론 이것은 일부러 조 2위를 차지하고 헝가리를 1위로 보내려는 독일의 꼼수가 있었다. 조 1위를 하면 브라질, 우루과이로 이어지는 불지옥급 대진이 이어지지만 조 2위를 하면 유고슬라비아, 오스트리아로 이어지는 꿀대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별리그에서는 3:8로 학살당한 독일이 결승전에서 다시 헝가리를 만나서는 3:2로 꺾고 우승했다.[156] 특히 2014년 대회에서는 브라질의 홈에서 열린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에 '''7 : 1로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로 인해 브라질 현지에서는 독일전 대패에 빡친 브라질팬들이 자국국기와 네이마르의 유니폼을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하였다.'''[157] 독일과 아르헨티나는 2006~2014년까지 3회 연속으로 토너먼트에서 만났고 번번이 독일이 승리하여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을 좌절시켰다. 또 2무 중 1번은 독일의 승부차기 승이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5승 1무 1패이다.[158] 이 중 1990년 대회는 독일이 잉글랜드에 승부차기로 승리하였으므로, 실질적으론 3승 1무 1패이나, 승부차기는 무승부로 처리되므로 무승부로 기록한다.[159] 정확하게는 소련과의 경기였다. 그러나 소련의 기록은 러시아로 승계되므로 러시아로 표기하였다.[160] 이 중 1986년 대회는 독일이 멕시코에 승부차기로 승리했으므로 실질적으로는 3승 1패이다. 그러나 승부차기는 공식적으로는 무승부로 기록하기 때문에 무승부로 기록한다.[161] 조별리그에서 처음 맞붙었을 때는 헝가리가 8:3으로 승리했으나 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었을 때는 독일이 '''3 : 2로 승리했다.'''[162] 이 당시에는 승부차기가 없었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연장전까지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엔 며칠 후에 재경기를 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대회는 올 라운드가 토너먼트로 진행되었는데 1차전에선 독일과 스위스가 1 : 1로 비겼고 재경기를 치른 결과 스위스가 4 : 2로 승리하여 8강에 진출했다. 이것이 2018년 이전까지 유일하게 독일이 1라운드에서 탈락한 대회였다.[163] 사실은 모두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경기였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의 기록은 모두 체코로 승계되므로 체코로 표기하였다.[164] 이 경기가 바로 그 악명 높은 승부조작 경기인 히혼의 수치라 불리는 그 경기다. 경기 결과는 독일의 1 : 0 승리.[165] 독일이 조별리그에서 약체팀 상대로 0:2로 패배하고 조 꼴찌로 탈락하는 바람에 다른 유럽팀들에게 놀림거리로 전략해버렸다.[166] 1차전에서 독일이 4:1로 터키를 꺾었고 순위 결정전에서 다시 7:2로 승리했다.[167] 이 경기에서 독일이 사우디아라비아 골문에 8개의 골폭탄을 박아넣으며 '''8:0'''으로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현재까지 독일의 월드컵 단일경기 최다 득점이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월드컵 단일경기 최다 실점 경기로 남아 있다.[168] 동독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이고 동독의 기록을 승계받을 나라도 없으므로 기록은 하되 취소선으로 표시한다.[169] 호주는 1974년부터 2006년까지 오세아니아 소속으로 나섰고 2010년 대회부터 아시아 소속으로 출전했다.[170] 1986년 결승전[171] 2002년 결승전[172] 네덜란드가 남미 국가에 당한 2패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1번씩 당한 패배인데, 아르헨티나에게는 1978년 결승전에서, 브라질에게는 1994년 8강전에서 패배했다.[173] 동독은 1990년 이후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이므로 실질적으로는 18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174] 또한 독일:아르헨티나는 '''월드컵 결승전 최다 매치업'''이기도 하다. 1986, 1990, 2014년에 맞붙어 아르헨티나가 한 번, 독일이 두 번의 우승을 가져갔다.[175] 처음엔 유로 2000 우승국 이탈리아가 첫번째 대상자였으나 거절하고 이후 독일과 당시 피파랭킹 2위였던 스페인을 포함해서 세 국가가 전부 거절하자 월드컵 3위를 기록했던 터키가 대신 출전했다.[176] 다만 프랑스의 경우는 독일과 주요 매치에서 만난 적이 적은 편이어서 실제적으로는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두 팀이 많이 거론된다.[177] 이름을 봐서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프리츠 발터의 친동생이다.[178] 당시 방송중계에서도 Neuville를 그대로 독일어 식으로 읽었기에 이 양반을 '''올리버 노이빌레'''라고 아는 올드팬이 많은데 뇌빌 자신은 프랑스어권 벨기에 혈통이고 이름도 프랑스식 발음인 뇌빌로 불러주길 원힌다고 밝혔다. 하메스 로드리게스가 '''제임스''' 로드리게스가 아니라 '''하메스'''로 불리는 것과 같다.[179] 모 잡지에서 2010년 월드컵 우승후보로 스페인, 이탈리아, 잉글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꼽았는데 브라질, 스페인은 충분히 납득이 가고, 아르헨티나도 충분히 우승후보로 꼽히며, 이탈리아도 전 대회 챔피언이니 납득할 수 있다 쳐도, 2006년 월드컵을 통해 거품인게 만천하에 들어났음에도 아직도 잉글랜드를 우승후보로 꼽은 것에 대해 조소를 보내는 여론이 많았다.[180] 조별리그 1,2차전은 마리오 괴체가 선발[181] 케디라가 13/14 시즌에 무릎 부상으로 폼이 완벽하지는 않아서 8강까지는 람을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놓기도 했다. 람의 자리에는 풀백 경험이 풍부한 보아텡이 들어가고, 센터백 자리를 메르테자커가 메꾸는 형식.[182] 조별리그 3차전은 레온 고레츠카가 선발[183] 조별리그 1차전은 마빈 플라텐하르트가 선발[184] 조별리그 2차전은 안토니오 뤼디거가 선발[185] 조별리그 3차전은 니클라스 쥘레가 선발[186] 나치 독일 시기인 1938년 월드컵에서 스위스에게 패해 1라운드만 치른 적은 있다.[187] 독일이 이 대회에서 기록한 22위, 즉 '''20위권 순위'''는 독일의 월드컵 출전 역사상 유일무이한 기록이다! 대한민국은 19위로 10위권 순위에 진입했다.[188] 대회 10년전이었던 유로 1992에선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며 우승을 거두었고, 1998 월드컵에서도 8강에 진출하며 브라질과 호각을 다퉜다. [189] 디펜딩 챔피언 타이틀을 달고 체면을 구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둘 다 유럽팀이고 해당 대회에서 토너먼트에 진출한 덴마크[188]와 슬로바키아한테 발렸고, 스페인도 호주는 이겼다.[190] 1938년 대회는 올 토너먼트[191] 득점왕[192] 대회 MVP[193] 비어호프가 고령으로 인해 매 경기 선발출장한게 아니라서 2,3경기는 올리버 칸이 주장으로 출전[194] 슈바이니와 포돌스키가 본격적인 국대 주전으로 성장한 시가는 2006년 월드컵 부터이다.[195] 두 골 모두 루카스 포돌스키가 넣었다. 폴란드 태생인 포돌스키는 두 번 모두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며 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196] 대표적으로 슈바인슈타이거는 이때까지 윙으로 뛰면서 소속팀에서도 아직 붕뜬 모습을 보여주었다. 슈바이니의 본격적인 전성기는 2009-10 시즌 부터다.[197] 포돌스키가 이미 폼이 영 시원찮아서 안드레 쉬얼레와 사실상 로테이션이었다.[198] 뮐러도 영 아닌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마르코 로이스가 자주 기용되었다.[199] 아주리 징크스#s-3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지만 도무지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조별리그를 간단히 정리하고 8강도 거의 몸풀다시피해서 올라온 독일과는 달리 조별리그도 거의 기사회생 하다시피 하며 올라온데다 8강전이던 대 잉글랜드전 역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으로 너덜너덜하게 4강에 온 이탈리아에게 발로텔리의 2골을 얻어맞고 질질 끌려다니다가 경기종료직전 얻어낸 페널티킥을 외질이 성공시켜 클린시트를 면한 경기였기 때문이다.[200] 조별리그 1,2차전은 마리오 괴체가 선발[201] 중도 부상으로 8강부터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출전[202] 기존 주장인 슈바인슈타이거가 부상으로 인해 폼이 완벽하지 않아 사미 케디라가 조별리그를 선발로 출전하고 노이어가 대신 주장완장을 찼다. 슈바인슈타이거는 교체로 출장하다가 8강 이탈리아전부터 복귀했다.[203] 그래도 전체 국가중 4위[204] 기존 주장인 마테우스가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브레메가 유로 대회 기간 동안 주장직을 수행했다[205] 뢰브 감독이 기존 주전들 대신 신예 멤버들로 팀을 구성했다[206] 영문 위키피디아 기준[207] 2002년 월드컵 예선에서 잉글랜드한테 1:5로 크게 지는 바람에 플레이오프로 떨어져 겨우 올라오기는 했다.[208] 1938년 월드컵과 이 두 월드컵이 독일의 득실차가 마이너스인 월드컵이였다.[209] 2018 러시아 대회 역시 이탈리아가 본선 진출을 하지못하고 탈락했는데 독일 역시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하고 최하위로 탈락했다.[210] 대한민국과 처음 만난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3:2로 신승했으며 두 번째로 만난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전에서 1:0으로 역시 신승했다. 놀라운 것은 이 두 번의 승부와의 시간차가 무려 8년차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력 상으로도 상당한 변화가 있었을 기간임에도 1점차 승부로 마쳤다는 것이고 게다가 2002년 대회 때의 득점은 미하엘 발락의 페널티킥 골이 전부였다. 즉, 1994년보다도 더 안 좋았다는 말이다. 축구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이 있는 위키러들이라면 상식적으로도 설명이 안되는 상황이다.[211] 호주한테 친선 경기에서 진 적이 딱 한 번 있긴 한데, 호주는 소속만 AFC지 대륙으로는 아시아 국가가 아니다.[212] 보면 알겠지만 둘 다 1점차 신승인데 두 번의 승부 간에 8년이란 기간의 간격이 존재한다. 게다가 2002년도의 승리는 미하엘 발락의 필드골로 딴 점수이다. 말 그대로 독일이 자랑스럽게 생각할 이유를 느낄 수 없는 점수차다.[213] 될뻔 했지만 초대 대회라서 강등은 무산됨.[214] 공교롭게도 이탈리아도 한국하고 2번을 만났는데 1986년에선 조별리그에서 만나 3:2 승리, , 2002년에는 16강에서 만나 1:2 패배를 당했다.[215] 이 1승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기록했으며 아르헨티나는 같은 조에있던 체코슬로바키아한테 1:6으로 대패를 당했는데, 서독은 이 아르헨티나한테 선제골을 허용하고 3:1로 간신히 이겼다. 참고로 체코슬로바키아한테는 0:2로 지고 있다가 간신히 동점을 만들어 무승부.[216] 실언이 아니라 당장 독일과 3번의 월드컵 대결에서 1승 2패를 기록 중인데 그 2패도 다 1점차 석패다! 유럽의 축구 최강자를 상대로 1점차 패배를 당한 건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한국이 조별리그 대이탈리아전에서 3:2로 패한 후 두번째이고(게다가 그 이탈리아는 무려 전 대회였던 1982년 월드컵 챔피언이었다!) 이후 2004년 부산에서 벌어진 친선전에서는 3:1로 이겨 아시아 최초로 A매치에서 독일을 이긴 팀이 되었고 급기야 2018년 6월 27일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독일을 조별리그 탈락으로 몰아넣은 대업을 이뤄낸다.[217] 더구나 대한민국 대표팀은 파울루 벤투를 신임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한 이후, 몇차례 가진 평가전에서 양호한 성적을 내고 있으며 심지어는 8수만에 우루과이 대표팀에 승리하는 쾌거도 누린 반면 독일 대표팀은 호성적은 커녕 오히려 리그 강등이 확정된 것도 모자라 2020년에는 스페인에게 6:0의 참패를 당하는 지경으로 까지 전락했다.[218] 일본의 1무는 2006년 독일 월드컵 직전이었던 2006년 5월 30일 독일 현지에서 가졌던 평가전이었는데 일본의 타카하라가 후반 11분과 19분에 각각 선제골과 추가골을 올려 2-0으로 일본이 앞서있었으나 후반 31분께 클로제의 만회골과 역시 후반 35분께 슈바인슈타이거가 동점골로 2-2 무승부로 끝났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 독일의 골키퍼였던 레만은 아시아 선수에게 무려 2골을 허용하는 수모(?)를 겪었다.[219] 대한민국, 호주[220] 호주는 지리상으론 오세아니아지만 AFC 소속이므로 아시아에 포함한다.[221] 당장에 이 대회에서 득점을 기록한 황선홍홍명보, 서정원만 봐도 당시 20대 중반이었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부터 대표팀의 일원이었던 베테랑 김주성이 20대 후반에, 주전 골키퍼이자 주장인 최인영이 당시 32세로 최연장자였으니...[222] 이전에 알려진 사실로는 이 사건 때문에 이 경기를 자신의 국대 은퇴 경기가 되었다고 나무위키에 기재되어 있었으나 사실무근인 이야기다. 물론 이 사건의 여파 때문에 이후의 메이저 대회는 나가지 못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223] 공교롭게도 24년 후 카잔의 기적에서 한국팀이 독일팀을 상대로 승리했을 때 추가 연장시간에 연이어 2골을 넣고 승리하였다.[224] 이 당시 대한민국의 골 결정력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조별리그 3승'''도 가능했다. 앞서 스페인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도 결정적인 찬스를 여러 번 잡았고, 독일과의 경기 역시 전반 초반에 조진호가 측면에서 슛을 때릴 때 좀 더 정확했다면 아예 '''선제 골'''을 기록할 수도 있었고, 두 번째 골을 내준 이후의 김주성의 중거리 슛이 보도 일그너의 정면으로 가지 않았다면 만회골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225] 이 시기가 역대 독일 국대 감독중 가장 욕을 먹던 루디 푈러 시기였다는걸 감안하자. 심지어 한국이 독일의 천적인 이탈리아를 때려잡고 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었다.[226] 한국이 독일과 대결해 이룬 성적도 경이롭지만 한국의 대이탈리아전의 성적은 더 깔끔하다. 1986년 34년만에 첫 진출을 이룬 멕시코 대회에서 편파판정 탓도 있기 했지만 2:3 석패를 했고 2002년 한일대회에서는 2:1로 승리 통합전적 1승 1패를 기록중이다. 유럽 축구강호를 상대로 유일한 5할대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것이다.[227] 치달을 시작하기 전, 독일 선수 한명이 달려들었으나 벗겨냈고 두번째 독일 수비진이 달려들었으나 이마저도 제쳐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달려든게 필립 람이었고 람 역시 처음엔 따돌려졌으나 끈질기게 달라붙어 박스 좌측 측면에서 크로스 올리기 직전 차단시켰다.[228] 그 중 한명이 바로 필립 람이었다.[229] 1938 프랑스 월드컵 1라운드 탈락 이후 80년 만이라고 하지만, 조별리그 운영으로 따지면 역사상 최초이다. 비교해 보면 1938년보다 지금이 더 최악이다. 그나마 1938년 대회엔 아돌프 히틀러 때문에 망쳤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었다. 왜냐 하면, 월드컵이 열리기 두 달 전에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집어삼켰는데, 이 때 히틀러는 강제로 오스트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독일 대표팀에 편입시키는 뻘짓을 자행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 출신 선수들은 "내가 왜 내 조국이 아닌 독일을 위해 뛰어야 하나?"라며 경기 중에 대놓고 반항하고 태업하며 개겼을 정도였다. 그래서 독일은 1라운드에서 힘 한 번 못 써보고 광탈했다.[230] 20년 전크로아티아전 때는 크리스티안 뵈른스가 백태클로 즉각 퇴장을 당해 수적 열세를 지게 된 점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의 경우에는 그것도 아니었으니...[231] 한국이 독일과 마지막으로 대결한 2004년 친선경기에서부터 계산한 기간.[232] 참고로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도 똑같은 성향의 팀이다. 스웨덴은 2005년 대한민국과의 평가전에서 1-1과 2-2로 비기고 2010년, 2012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0-0과 4-4의 박빙 승부를 펼쳤으며, 2018년 본선 F조에서 독일(1-2 패)과 대한민국(1-0 승)을 상대할 때도 서로간에 힘겨운 싸움을 펼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2012년 독일과의 평가전에서 독일이 초반에 4-0으로 압도하다가 후반에 연달아 4골이나 실점하며 비겼다! 또한 최근 30년동안 스웨덴이 독일과 대한민국을 상대하면서 역전하거나 역전당한 경우는 2018년 독일전이 유일할 정도로, 이들 팀끼리 역전하는 경우는 이례 중에 이례에 속한다.[233] 다른 성향을 가진 상대팀 입장에서는 이런 팀들을 상대로 빠른 시간에 득점을 하지 못하면 경기 후반부로 갈수록 힘에 부쳐서 패배하는 등 힘든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런 성향의 팀들은 빠른 시간에 선취 득점을 올리지 못하면 자멸하기도 한다. 거기에다 대표팀 선수들이나, 코칭스태프 전원이 한국 대표팀의 득점 실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점을 최소화하는 것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잘 알겠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올린 최다골이 2골이다.[234] 애초에 경기를 뒤집는 게 이례적이다. 다만 이렇듯 체력과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성향의 팀끼리 붙을 때 그런 경우가 더 두드러지는 것 뿐이다. 이렇게 역전이 더 어려운 건 체력과 조직력으로 승부하는 팀끼리 붙었을 때는 다른 때보다도 강한 압박축구로 인해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235] 아시아 대표팀들 가운데 상위 20위권내에 올라와 있는 팀이 없다. 아시아 최강자인 이란이 22위일 정도로 세계 축구계에서 비주류인것이 아시아 축구다.[236] 1954년 스위스 대회에서 당시 최강의 팀이던 헝가리에 0:9로 졌으나 당시 두자리 점수차로 대패할 것이라던 외신 기자들의 예상을 뒤엎었고, 32년만에 첫 본선진출을 이뤘던 멕시코 대회에서 전 대회 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에 2:3로 1점차로 패한 것과 1994년 대회에서 첫 대결을 했던 독일전을 2:3으로 진 것 등, 절대로 만만하게 볼 팀이 아님을 증명했다.[237] 실제로는 당시 독일 대표팀은 대한민국 대표팀을 상대로 빠른 시간에 득점을 올리지 못해서 고전했다.[238] 후반 40분 경에는 독일 선수들은 체력이 급격히 바닥나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일방적인 공격을 간신히 겨우겨우 막아냈다. 그것도 대한민국은 전반전에 대삽질한 골키퍼 최인영을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운재로 바꾼 상태였다. 독일은 수비수는 물론이고 위르겐 클린스만까지 온몸을 날려 막아내고 있었고, 골키퍼 보도 일그너의 혼을 실은 선방 덕분에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독일 선수 절반 이상은 탈진해 쓰러졌으며, 일부 선수는 인터뷰에서 후반전에는 공포심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후반전에 한국을 상대로 쩔쩔 매는 자신들에게 야유를 퍼붓는 자국 관중 및 미국 관중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정신나간 짓거리를 벌여 즉각 교체됨과 동시에 사실상 국가대표에서 쫓겨났고(물론 그 이후에도 몇 번 대표팀에 차출되기는 했지만, 메이저 대회는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8강에서 불가리아한테 역전을 당해 떨어지는 등 독일 축구의 세대 교체에 큰 악영향을 주게 되었다.[239] 물론 한국전을 패한 후유증 때문이라고 딱잘라 말할 순 없으나 이 한국전 패배 이후 독일의 위세가 약화된 것만은 사실이다. 심지어 2020-21 네이션스 리그에서의 상황을 보면 현재 6경기 무승을 기록중일 정도로 좋은 분위기가 아니다.[240] 1954년 당시에는 메스암페타민 등의 약물 복용이 합법이기도 했고, 약물 복용에 대한 개념 자체가 정립이 되어 있지 않던 시절이지만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