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센테 과이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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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골키퍼로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뛰고있다.
2. 클럽
발렌시아 C.F. 유스출신으로서 팀의 유명 골키퍼였던 산티아고 카니사레스의 뒤를 이을 유망한 선수였다.
2003년에 발렌시아 C.F. 유스팀에 입단하여 활약하다 2008년 5월 17일에 카니사레스가 은퇴하자 1군으로 승격한다.[1]
이후 2008년 10월 2일에 펼쳐진 UEFA컵 경기에서 1군 경기에 데뷔하게된다. 하지만 토트넘 핫스퍼에서 베테랑 골키퍼인 세자르 산체스가 영입되고 그 다음 시즌에 RCD 마요르카 출신의 유망한 골키퍼 미겔 앙헬 모야가 영입되자 과이타는 1군 경기에 선발될 수 없어 잉여자원이 되었다.[2]
결국 과이타는 스페인 2부 리그인 세군다 리가의 레크레아티보 우엘바로 임대되었고 거기서 마저 당시 레크레아티보 주전 골키퍼였던 베르나르도에게 밀려 벤치 신세를 지게된다. 하지만 시즌 중반 과이타에게도 주전 기회가 주어졌고 과이타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미칠듯한(...) 선방'''을 보여주게된다.[3]
이런 레크레아티보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과이타는 세군다 리가 최고 골키퍼에게 수여되는 상인 사모라 상까지 수여받게된다![4]
이렇게 큰 공로를 세우고 발렌시아로 돌아온 과이타이지만 발렌시아엔 아직 굳건한 세자르 옹과 미겔 앙헬 모야가 있었기에 다시 서드 골키퍼 자리를 맡아야만했다.
하지만 벤치를 달궈야했던 과이타에게 다시 기회가 오게된다. 2010-11 시즌 중반(그러니까 2010년 후반) 주전 골키퍼인 세자르가 부상당한데 이어 모야까지 부상당하는 기적(...)이 일어나자 서드키퍼였던 과이타에게 기회가 주어지게된다.
이에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은 과이타는 이후 몇 경기에서 간간히 삽을 푸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UEFA컵 챔피언스 리그에서 '''사모라 상의 위엄을 뽐내며 폭풍 같은 선방쑈를 보여주었다.'''
이런 과이타의 선전에 우나이 에메리 감독은 노장인 세자르를 이적시키고 골칫덩이 모야를 임대보내면서 과이타를 주전으로 기용하게된다.
2011년 4월 2일, 과이타의 아버지인 프란시스코 과이타가 타계하자 이후 몇 경기 동안은 다시 세자르가 발렌시아 C.F.의 주전 골키퍼가 되었다. 과이타의 아버지가 타계한 날 발렌시아는 헤타페 C.F.와의 원정경기에서 과이타의 아버지를 위한 추모식을 가졌다. 그리고 이날은 솔다도의 4골에 힘입어 발렌시아가 승리했다.[5]
과이타는 2011-12 시즌의 프리메라리가 12라운드까지 모두 주전으로 출전하면서 우나이 에메리 감독의 신임을 샀다. 더욱이 다비드 알벨다, 로베르토 솔다도, 히카르도 코스타의 뒤를 이어 발렌시아 C.F.의 사주장이 되어 에메리 감독과 발렌시아의 신임을 받고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11-12시즌 시작후에는 디에고 알베스와 주전경쟁을 했다. 상술했듯이 시즌 초에는 주전 경쟁에서 이겼지만 알베스도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고 결국 12-13 시즌부터는 알베스에게 밀려버렸다.
2014년 7월 31일 헤타페 CF로 이적하였다. 바이백 옵션이 있다.
2018~19 시즌부터 크리스탈 팰리스 FC 에서 뛰고있다. 아마 웨인 헤네시나 훌리안 스페로니에 이은 서드 골키퍼가 될 듯 했는데 시즌 중반부턴 아예 주전으로 자리잡아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결국 20경기 23실점, 10승 4무 6패, 7클린시트를 기록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6] 이러한 그의 활약에 힘입어 팀은 총 53실점에 그쳤고,[7]
첼시에서 케파가 경기 내내 부진한 모습을 선보이자 오나나와 함께 첼시 이적설이 나고 있다.
2020년 7월 19-20 시즌 기대 실점 선방 10.2골로 1위를 기록했다.
20-21시즌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여러차례 선방을 보여주며 팀의 무승부를 이끌었다.[8]
하지만, 리버풀과의 리그 14라운드에서 7개의 유효슈팅 중 하나도 막지 못하며 7대0 대패에 크게 일조했다. 사실 리버풀의 모든 슈팅이 워낙 빠른템포에 구석으로 들어가서 막는게 어렵긴 했다.
3. 플레이스타일
박스 안에서의 뛰어난 반사신경을 바탕으로 선방을 하는 골키퍼. 최근 경기에서도 준수함을 넘어 미친선방을 보여주고, 집중력과 판단력을 바탕으로 1대1 상황에서 좋은 선방을 보여준다.
경험도 많아 비가 와 경기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노련함으로 안정적인 선방을 보여준다.
하지만, 패스나 빌드업 등 발밑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다.
4. 같이 보기
[1] 당시 세컨 키퍼였던 티모 힐데브란트가 호펜하임으로 이적하자 과이타는 서드 키퍼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2] 당시 발렌시아의 주전 골키퍼 자리는 세자르와 모야가 경쟁하고 있었고 서드 키퍼 자리엔 헤난이 있었다. 결국 골키퍼를 최대 3명까지만 등록할 수 있는 라리가 규정상 과이타는 잉여가 되었다. [3] 30경기 24실점. 1경기당 1점도 실점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 기록은 세군다 리가 최소 실점기록이 되었다.[4] 2부리그인 세군다 리가의 상이라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세군다 리가엔 칠레 출신인 레알 소시에다드의 클라우디오 브라보 골키퍼도 있었다.[5] 골을 넣은 이후 스탄케시비우스와 솔다도는 과이타의 유니폼을 들어올리며 세리머니를 했다.[6] 18경기 26실점, 4승 3무 11패를 기록한 헤네시와 비교하면 매우 좋은 성적이다.[7] 이는 더 높은 순위에 있는 맨유, 왓포드나 웨스트햄보다 적은 수치이다.[8] 전반전 해리 케인의 무회전 슛을 제외하고는 신들린 선방쇼를 펼쳤으며, 특히 후반전 다이어의 프리킥, 오리에의 크로스에 이은 케인의 감각적인 헤딩까지 막아내며 에제, 자하와 함께 팀을 패배에서 구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