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차
1. 개요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자.
조지타운 대학교의 교수이자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이다.
2. 생애
1961년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서 태어났으며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박사를,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석사를 취득하였다.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백악관 NSC의 한반도 담당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한국계지만, 기본 성향은 미국 내의 네오콘과 같은 보수진영과 일맥상통하며, 북한의 의도에 회의적인 강경 성향의 인물이다. 2019년 6월 30일 트럼프가 방한 기간 중 판문점에서 김정은과 회동한 남북미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리얼리티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추후에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일회성의 사진찍기 행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그의 비판은 이듬해인 2020년 북한의 남북 연락사무소 폭파와 일련의 경색된 남북한 관계로 현실화되었다.
또한 한국이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과도 동맹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안보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한일 안보협력이었을 정도. 한국에서도 <적대적 제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바 있다.[1]
3. 주한미국대사 내정 및 철회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동맹국들 중 한국만 대사가 공석이었기에 마크 리퍼트 이후의 주한미국대사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아그레망을 받기 4시간 전 트럼프 정부에서 주한미국대사직 내정을 철회해버렸다. 미국 국무부는 정확한 답변으로 해명하지 않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내 일각의 대북 군사 옵션에 부정적이어서 철회되었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후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선 것을 근거로, 오히려 빅터 차의 대북 강경 성향에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빅터 차보다도 강경한 존 볼턴이 이후에 백악관 안보 보좌관에 임명되어 2019년 9월 10일까지 재직하고 있던 걸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반론의 여지가 있다. 현재로서는 그 내막이 불분명한 셈.
4. 이모저모
아버지가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이고 아내도 전라남도 강진군 출신이라고 한다.
조카가 대학 진학 사기로 관련 없으나 이미지가 추락하는 일이 있었다.
같은 한국계 미국인 출신의 성 김이나 조셉 윤과는 달리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성 김은 관용적 표현까지 섞어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유창하고, 조셉 윤은 어눌하고 영어 표현이 중간중간 섞이지만 의사소통엔 문제가 없을 정도로 한국어를 구사한다.
[1] 이렇게 쓰면 그가 '친일'적이라고 단정짓는 이도 있을 것이며, 그의 전반적 주장과 행적을 고려하면 친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태평양전쟁 시기를 제외하면 늘 일본과의 우호, 동맹을 중시해온 '친일' 국가였다. 빅터 차도 한국계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미국인’이고, 그의 생각, 활동도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한국계인데도 친일’이라는 식의 원망은 한국 내에서라면 모를까, 미국 등 한국 밖에서는 공감을 얻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