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 언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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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6]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서보 언털은 1930년까지 고향 소록사르를 연고로 하는 소록사르 AC 유스팀에서 뛰었고 데뷔는 MTK 부다페스트에서 했다.
서보가 MTK에서 이룬 첫 우승은 1931-32 시즌의 헝가리 컵 대회였다. 결승에서 페렌츠바로시 TC에 재경기 끝에 4대3으로 승리하였고 서보의 활약은 계속되었지만 MTK의 전성기[7] 를 재현하는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MTK는 1935-36 시즌에 헝가리 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고 해당 시즌에 서보의 앞에 비로 샨도르, 만디 줄러와 함께 단단한 수비진을 결성했다. 서보는 26경기 출전, 21실점의 뛰어난 기록을 남기며 우승에 기여하였다.
1940년에 호르티 미클로시에 의해 MTK가 쪼그라들자 서보는 팀을 나갔고 여러 팀을 돌아다녔다. 이후의 기록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1.1.2. 국가대표팀
서보는 1932년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A매치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3대1로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다음 경기인 오스트리아전에서 헝가리는 2대8로 대패했고 한동안 하더 요제프에 밀리게 되었다.
절치부심하여 서보는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각종 국제 대회에서 주전 골키퍼로 나서며 하더 요제프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1934년 월드컵에서는 오스트리아에게 다시 패배하며 설욕에도 실패하고 8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4년 후의 월드컵에서 서보는 1라운드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헝가리의 골문을 지켰고 준우승의 성과를 거두었다. 결승전에서 열심히 선방했지만 이탈리아의 공격력 앞에 4골을 실점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174cm로 골키퍼로서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었지만 뛰어난 반사신경과 수비 조율 능력으로 단점을 극복했다.
3. 뒷이야기
- 서보의 42경기의 헝가리 대표팀 기록 중 무실점 경기는 4경기에 불과하다.
4. 어록
'''나는 4골을 먹혔지만 최소한 그들의 목숨은 구해줬어.'''
1938년 월드컵 결승전 패배 후 남긴 소감.[8]
5. 수상
5.1. 클럽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 2회: 1935–36, 1936–37(MTK 부다페스트)
- 마자르 쿠파 우승 1회: 1931–32(MTK 부다페스트)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3회: 1930-31, 1932-33, 1939-40(MTK 부다페스트)
- 마자르 쿠파 준우승 2회: 1934–35(MTK 부다페스트)
5.2. 국가대표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서양식 이름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2] 다수 위키피디아와 내셔널 풋볼 기준. 트랜스퍼마크트는 1978년, 독일어 위키피디아에는 1958년으로 기록되어 있다.[3]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4] 트랜스퍼마크트 기준. 위키피디아에는 부다페스트의 커리어를 1940년으로 적고 있고 바이스 만프레트 이후에도 몇 팀을 더 돌아다녔다고 한다.[5] 출처: 위키피디아, 11v11[6] 출처: 위키피디아, 11v11[7] 20년대의 전성기 시절 MTK는 헝가리 리그 8년 연속 우승 등 엄청난 기록을 썼었다.[8]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은 베니토 무솔리니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