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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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성산리의 성산동 고분군의 전경[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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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성산리에 위치하는 고분군. 1963년에 사적 제86호로 지정됐다.
2. 조사 내용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성산리 고분군과는 달리 성주군은 비교적 관광사업이 필요한(?) 지역이다보니 사적 정비 사업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정비가 잘 되어 있는 편에 해당한다.[1] 특히 성주 성산동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조사가 이루어져 왔으며 다량의 봉토분이 조사되어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었다.
성산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고분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舊 1, 2, 6호분, 해방 이후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 의해서 조사된 38호, 39호, 59호분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사적 공원 정비사업 과정에서도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고분이 추가로 조사되기도 하였다. 은제 허리띠 장식구 종류를 비롯하여 환두대도와 태환이식 등이 확인되었고 마구류가 꽤나 많이 출토되었다.
고분군의 범위 또한 굉장히 넓다. 지금의 네비에다가 찍고가는 사적 성산동 고분군은 원래는 1~5번까지 넓게 구역이 잡혀있었으며 그 중에서 일부 지표조사를 거친 구간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그 외에도 차동골이니 시비실, 장학동, 별티 등의 고분군이 성산동 후면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이 성산동 고분군의 후면의 고분군들 또한 발굴이 꽤나 많이 된 편인지라 연구가 비교적 누적된 곳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등 성산가야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으나 발굴조사 결과 대부분 신라와 굉장히 밀접한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어서 가야 또는 친 가야 세력이라고 보지는 않는 주장이 많다. 특히 5세기 후반경부터는 신라의 영향력 아래에 드는 것이 선명해보이며, 대가야도 국경을 맞댄 인근 집단의 추이를 의식해서인지 고령군의 북쪽에 산성을 쌓아 대비하는 모습도 보인다.
특히 성산동 고분군은 성주양식 토기류 소비의 중심지이다. 바로 인근 고령 대가야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토기 양식은 신라 토기 양식에 하위 양식으로 분류된다. 고배류로 대표되는 성주양식 토기들의 특징은 고배의 그릇 부분에 2개의 돌출된 돌대가 베풀어져있고 넓적한 공간을 갖고 그 공간에 파도문양을 장식하는 정형화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성주양식 토기들도 의성양식 토기에 못지않게 낙동강 중류역과 칠곡, 대구 서부에 확인되고 있으며 멀리 안동까지도 일부 확인이 되고 있다. 다만 실질적 소비 권역은 구미시의 남부와 성주군 일대라고 할 수 있다.
성주양식 토기가 형성되는 5세기 이전부터 낙동강 중류역 및 칠곡군, 대구 서부 지역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묘제에서 보이는 특징과도 일부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다.
성산동 고분군에는 가장 공통적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석곽의 깊이가 대체로 깊다는 것이다. 그 안의 토기들의 배치 양상을 보면 고배를 층층이 쌓아 부장하였다는 것이 바로 공통적 특징이다. 예를들어 7x6으로 1층을 쌓으면 그 위로 계속 고배를 쌓아 거의 석곽의 뚜껑에 닿을 정도로 쌓아 올렸다. 이런 부장 양상의 제의적(祭儀的)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성주지역에서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이다.
또한 묘제에 있어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먼저 낙동강 중류역의 고분들 및 대구 분지 일부 고분군에서 나타나는 소위 판석조 석곽이 가장 많이 확인되는 곳이 바로 성주 성산동 고분군이다. 이러한 판석조 석곽은 그 둘레로 약간의 적석시설이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인데 적석목곽묘와의 관련성이 부각되기도 한다. 또 판석조 석곽이 존재하는 한편 보편적인 석곽묘도 존재하는데 다만 그런 경우에 부곽이 주곽의 중앙 옆에 붙어 있어서 마치 凸, 昌자형의 배치형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의 배치 양상을 각 모양에 따라서 철자형 , 창자형 석곽이라고 한다. 다소 기괴한 형태의 배치지만 의외로 이러한 배치들은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3. 여담
고고도 종말단계 미사일 방어체계의 설치로 인해서 한때 고분 전시관 건립 사업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애초에 사드 부지 자체가 성산동 고분군과 관련이 있었던 터라 문제의 소지가 다소 있었으나 다행히 고분 전시관을 2017년에 착공하여 제반 정비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성주군의 '''성산동 고분군'''과 달성군 화원읍의 성산리 고분군 모두 성산리라는 지명으로 불리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里라는 지명은 해당 행정구역의 발전에 따라서 점차 洞으로도 바뀌기도 하는데다, 리나 동이 사실 같은 개념인지라 다소 혼동되기도 한다. 화원 성산리 고분군은 일단 문화재청이나 보고서 상에서는 성산리라고 불리고 있으나 해당 지역은 성산동으로도 불리고 있으며, 성주 성산리 역시 성산리라고는 되어 있지만 아에 공식적으로 성산동 고분군이라는 이름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4.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성주 성산동 고분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성주성산동고분군
- 고고학사전 : 성산동 고분
- 대한민국 구석구석 : 성주 성산동 고분군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 성산동 고분군
- 답사여행의 길잡이 8 - 팔공산 자락 : 성주 성산동 고분군
- 두산백과 : 성주 성산동 고분군
5. 사적 제86호
경상북도 성주군 성산일대에 있는 성산가야지배층의 무덤들이다. 성산의 정상에는 성산산성이 있고 주변에 70여기의 가야 무덤들이 분포하고 있다.
1호 무덤은 높이 3.6m, 지름 13.6m로 내부구조는 앞트기식돌방무덤(횡구식석실묘)으로 보인다. 돌방(석실)에서는 은제관장식과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 각종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2호 무덤은 구덩식돌방무덤(수혈식석실묘)으로 창·도끼·손칼을 비롯하여 많은 수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58호 무덤 굴방에서는 금제굵은고리귀고리(금제태환이식), 은제팔찌, 금동제말장식(행엽)이 발견되었다. 각 무덤에서 발견되는 굽다리접시(고배)의 굽에 생긴 구멍(투창)이나 1호 무덤에서 출토된 관장식이 경주지역의 것과 유사성을 보인다. 또한 58호 무덤의 유물은 전형적인 신라제품으로 5∼6세기경 성산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유물들은 성산가야가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고, 당시 신라와 적대관계였던 인접한 대가야와는 문화적으로 교류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