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황후 사씨

 


'''남송의 황후
成肅皇后 | 성숙황후
'''
'''시호'''
성숙황후(成肅皇后)
''''''
사(謝)
'''출생'''
1132년
'''사망'''
1207년
'''재위'''
'''남송의 황후'''
1176년 ~ 1189년
'''남송의 태상황후'''
1189년 ~ 1194년
'''남송의 황태후'''
1194년 ~ 1200년
'''남송의 태황태후'''
1200년 ~ 1207년
'''배우자'''
효종(高宗)
1. 개요
2. 생애
2.1. 초기 생애
2.2. 효종의 두번째 황후
2.3. 퇴위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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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남송의 황후로 제11대 황제였던 효종의 2번째 황후이다.

2. 생애



2.1. 초기 생애


사씨는 단양(丹陽) 출신으로, 어릴 적에 고아로 지냈다가 적씨(翟氏) 집안에서 자라 적씨 성을 사용하였다. 사씨는 장성하면서 조정에 선발되어 입궁하였고, 헌성자열황후 오씨의 시녀가 되었다. 이후 헌성자열황후는 고종의 양자였던 보안군왕 조신에게 사씨를 시집보냈고, 사씨는 함안군부인으로 책봉되었다.

2.2. 효종의 두번째 황후


고종이 1162년 조신에게 제위를 물려주어 태상황이 되면서, 조신이 제위에 오르는데 이가 송나라의 제11대 황제인 효종이었다. 사씨는 효종에 의해 완용으로 책봉되었다가 이후 귀비로 진봉되었다.
효종은 첫번째 황후였던 성공황후 하씨와 1167년에 사별하여, 오랫동안 황후 자리가 비어있었다. 태상황 고종과 태상황후 헌성자열황후 오씨는 효종에게 사씨를 황후로 세울 것을 권했고, 결국 1176년에 사씨가 정식으로 황후로 책봉되었다. 사씨는 이때 적씨 성을 버리고 본래 성씨를 다시 사용하였다.

2.3. 퇴위 이후


1189년, 효종이 태자인 광종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태상황이 되면서 사씨는 태상황후가 되었다. 사씨는 이때 수성황후(壽成皇后)라는 존호를 받았다. 하지만 퇴위 이후 효종과 광종은 사이가 점점 벌어졌는데, 그 이유는 바로 광종의 황후인 자의황후 이씨 때문이었다.
광종의 황후인 자의황후 이씨는 황후가 되기 이전부터 시기와 질투가 심하였고, 황후가 된 이후에는 더더욱 심해졌고 광종과 효종 사이를 이간질하였다. 태상황후였던 사씨 또한 자의황후에게 예의범절을 중시하라며 타일렀지만, 자의황후는 오히려 사씨의 신분을 들먹였다. 효종은 자의황후에 대한 폐위를 논하였지만 폐위는 흐지부지되었고, 효종은 결국 1194년에 사망하였다. 성숙황후는 이때 황태후가 되었다.
자의황후에게 휘둘렸던 광종은 효종의 상례를 주관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조여우와 한탁주 등이 당시 태황태후였던 헌성자열황후 오씨와의 논의 끝에 광종을 퇴위시켰고, 그 자리에 광종과 자의황후의 소생인 가왕 조확을 앉혔다. 이가 바로 송나라의 제13대 황제이자 남송의 제4대 황제인 영종이 된다. 이후 태상황인 광종과 태상황후인 자의황후가 1200년에 나란히 세상을 떠나면서, 사씨는 남송의 태황태후가 되었다. 사씨는 1207년에 사망하였고, 성숙황후(成肅皇后)로 추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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