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개신죽림동
1. 개요
청주시 서원구의 행정동. 말 그대로 성화동, 개신동, 죽림동을 합쳐서 만든 행정동이다.
주민센터는 원래 성화동 KBS 부지 인근에 위치했으나 성화지구가 개발되면서 장전공원 인근으로 이전했다.
2. 명칭
청주시에서는 행정동 명칭으로 이렇게 법정동을 주르륵 나열한 경우가 꽤 많았다.
서원구에도 원래 '산미분수곡동(~1992)/산미분장동(~2007)', 사직사창동(~1963), 성화·개신·죽림동(~현재) 등의 묶음 지명이 있었다. 오히려 행정동이 그렇게 묶이지 않은 동은 서원구에서 모충동밖에 없다.[2] 산미분수곡동 같은 경우 '''산'''남동+'''미'''평동+'''분'''평동+'''수곡'''동으로 동 이름을 무려 4개나 넣은 위엄을 보여줬으며 산미분장동은 수곡동이 빠지고 장성동과 장암동이 들어가 한글로 보면 아예 5개 동이 들어간 꼴이었다(한자는 장성동의 長을 채택).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이런 식으로 묶인 동네들이 점차 개발되면서 행정구역 개편을 하게 되어,[3] 법정동명이 3개나 들어간 행정동명은 현재 성화·개신·죽림동과 용담명암산성동 둘만 남았다.
3. 역사
성화동과 개신동이 묶인 것은 그 역사가 깊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래[4] 청원군 사주면(四州面)에 속했던 두 리(농촌리, 개신리)는 1963년 사주면이 통째로 청주시에 편입되면서 두 리 역시 동시에 하나의 행정동으로 묶였다.[5] 당시의 이름은 '농촌개신동'. 이후 1987년 남이면 죽림리가 편입되면서 농촌개신죽림동이 되었다. 이후 1990년 농촌동이 성화동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성화·개신·죽림동이 되었다.
4. 면적
면적은 세 동 합쳐서 6.11㎢. 서원구의 동 중에서 제일 넓다. 그런 큼지막한 동들을 세 개나 합쳐놨으니 서원구에서 동 중에서는 제일 넓을 수밖에 없다. 2014년 이전 흥덕구 시절에는 강서2동 다음으로 제일 넓었다. 물론 읍면 급으로 넓지는 않다.
5. 분동 계획은?
성화지구가 개발되면서 인구가 4~5만 명 선이 되어 일반적인 분동의 기준에 어느 정도 이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산미분수곡동 식의 이름을 가진 동들은 개별 법정동이 2~3만 명이 되자마자 하나씩 쪼개져나갔기 때문에 성화·개신·죽림동도 비슷한 수순을 밟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다만 5만 명이 되기가 무섭게 타지로 인구가 빠져 4~5만 명 선을 오가고 있기 때문에, 행정구역 변동이 있으려면 개신동 중 충북대 수의대 인근의 방죽말과 세광고 인근의 원농촌 및 오류골이 어떻게 되는 지가 중요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만일 개발되어 분동된다면 산미분장동 분리 방식처럼 구룡산 자락을 기준으로 성화지구와 개신동을 하나로 묶고 원농촌•오류골과 죽림동을 하나로 묶는 방법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법정동과 행정동이 불일치하는 문제점이 있겠지만 생활권을 잘 반영한다는 장점을 얻을 수 있다.
6. 관할 법정동
6.1. 성화동
6.2. 개신동
6.3. 죽림동
[1] 2021년 1월 주민등록인구[2] 모충동은 일찍이 1946년부터 '모충동'이라는 개별 동이었다.[3] 용암동의 경우 '용암·용정·방서동'이었으나 인구 증가에 따라 용암1동/용암2동으로 분동하였다.[4] 그 전까지 개신리는 서주내면(西州內面), 농촌리(성화동)는 남주내면(南州內面), 죽림리는 남차이면(南次二面)이었다.[5] 이는 상당구에서 상황이 비슷한 용담명암산성동 역시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1963년에 사주면이 폐지되면서 함께 묶였다. 앞의 두 동이 먼저 편입되고 나머지 하나가 추가된 것도 동일. 산성동도 1973년에 추가 편입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