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파라자노프

 

[image]

영화의 신전에는 이미지, 조명, 리얼리티가 있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는 그 신전의 주인이었다.

--

장 뤽 고다르

1. 소개
2. 생애
3. 주요 작품


1. 소개


아르메니아어: Սարգիս Հովսեփի Փարաջանյան (Sargis Hovsepʿi Pʿaraǰanyan, 사르키스 호프세피 파라자냔)
조지아어: სერგო იოსების ძე ფარაჯანოვი (Sergo Iosebis dze Paraǯanovi, 세르고 이오세비스 제 파라자노비)
러시아어: Серге́й Ио́сифович Параджа́нов (Sergéj Iósifovič Paradžánov, 세르게이 이오시포비치 파라자노프)
세르게이 파라자노프(1924년 1월 9일 ~ 1990년 7월 20일)는 아르메니아계 소련인 영화감독이다. 위대한 아르메니아인 음악가로 아람 하차투리안을 꼽는다면 영화계에서는 세르게이 파라자노프가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관과 아르메니아의 문화를 결합시켜 걸작들을 만들어냈지만 그 예술관 때문에 소련 공산당의 탄압을 받아 제대로 된 영화 활동을 하지 못했으며 고르바초프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한 해빙 분위기 속에서 재기할 기회를 노렸지만 병마로 인해 끝내 재기하지 못하고 타계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1924년 태어났으며 하차투리안과 마찬가지로 파라자노프도 탄생지 자체는 조지아 트빌리시였으나 인종적으로는 아르메니아인이었다. 1945년 모스크바에 소재한 영화학교에 입학했다. 영화 학교에 재학중이던 1948년 파라자노프는 동성애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을 당했으나 곧 풀려나게 된다. 이때의 부당한 대우의 경험 때문에 파라자노프는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작품들에 그러한 반체제적 성향들이 드러나게 된다. 1951년 졸업 작품으로 단편 영화 '몰도바 이야기'(Молдавская сказка)를 발표하고 3년 뒤인 1954년 데뷔작 '안드리예시'(Андриеш)를 발표하여 파라자노프는 소련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후 다큐멘터리와 단편 영화들을 계속 제작하던 그는 1965년 우크라이나 지방의 설화를 소재로 한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Тіні забутих предків)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1968년 마침내 그의 최고 걸작이자 문제작인 '석류의 빛깔' (Цвет граната, 아르메니아어로 Նռան գույնը)를 발표한다. 18세기에 활동한 아르메니아의 시인 '사야트 노바' (Սայաթ-Նովա, 1712?~1795)의 생애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대사보다 영상미 자체에 대한 집중, 기존 영화의 전개 방식의 탈피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고 1인 다역, 아르메니아적 전통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기존 프로파간다적 소련 영화와는 확실한 차이가 있었다. 바로 이 점이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집권 이래 보수주의로 회귀하던 소련 공산당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게 만들었고 더군다나 민족주의적 요소를 탄압하던 공산당 입장에서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이 작품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이미 제작 단계에서부터 소련 정부의 간섭이 들어갔고 압력에 굴복하여 장면 일부를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1977년 이전까지 이 영화는 해외에 공개되지 못했다.
'석류의 빛깔' 제작 이후 파라자노프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었고 결국 1973년 12월 당국에서 동성애, 선동 등 날조된 혐의를 적용해 파라자노프를 체포하고 그에게 5년 형을 선고한다.[1]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등 동료 영화 감독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파라자노프는 4년 동안 수감되었어야 했고 출소 이후에도 날조된 혐의로 여러번 투옥당하는 등 10년 넘게 사실상 영화 활동을 할 수 없었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그에 대한 사면이 이루어지면서 파라자노프는 무려 17년 만에 새로운 작품 '수람 요새의 전설' (Легенда о Сурамской крепости, 조지아어 ამბავი სურამის ციხისა)를 조지아인 감독 도도 아바시제(დოდო აბაშიძე)와 함께 발표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단독으로 영화 제작에 매진하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던 파라자노프는 고국 아르메니아가 독립하기 1년 전인 1990년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은 영화 '고백' (Խոստովանանք)를 끝내 마무리짓지 못하고 예레반에서 폐암으로 타계한다.

3. 주요 작품


[image]
  • 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Тіні забутих предків, 1965)
우크라이나의 문학가 미하일로 코추빈스키(Михайло Коцюбинський)의 작품을 기반으로 하여 서부 우크라이나 지역 일대의 설화를 다루었으며 소련 내 소수 민족들의 문화에 대한 파라자노프의 지대한 관심을 보여준 영화이기도 하다.
[image]
  • 석류의 빛깔 (Цвет граната, 아르메니아어 Նռան գույնը, 1968)
파라자노프를 가장 위대한 소련(아르메니아)의 영화 감독 중 하나로 역사에 길이 남게 만들어준 최대의 걸작이자 동시에 파라자노프의 영화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작품. 이 추락은 그의 영화적 재능에 한계가 있어서가 아닌 순전히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경직성이라는 외부적 요인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을 더욱더 안타깝게 만들어준다. 아르메니아의 시인 사야트 노바의 인생과 그의 시들을 파라자노프 개인의 철학, 그리고 아르메니아적 전통과 결합하여 스크린 상에 말 그대로 풀어놓은 이 작품은 대사보다도 그 영상미에 커다란 의의가 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영화가 아니라 마치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며 강렬한 빛깔과 사물 하나하나에 상징성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조지아인 여배우 소피코 치아우렐리(სოფიკო ჭიაურელი)가 1인 다역을 맡았으며 시나리오, 영화 소품, 배우의 행동, 안무 하나하나 파라자노프가 직접 기획했다. 전술했다시피 이러한 파격적인 영화 구성 방식 덕분에 파라자노프는 소련 공산당의 눈 밖에 났고 결국 이 영화 하나로 20여년 가까이 파라자노프는 영화 제작을 못하게 된다. 비주얼 때문에 의외로 한국 내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영화다.
2014년 칸 영화제 클래식 부문에서 4K 복원판이 상영되었다. 이후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으로 블루레이 출시.
  • 수람 요새의 전설 (Легенда о Сурамской крепости, 조지아어 ამბავი სურამის ციხისა), 1985)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당국에 의해 사면받은 파라자노프의 복귀작. 조지아인 감독 도도 아바시제와 공동 감독한 작품이다.
  • 아쉬크 케립 (აშიკ-ქერიბი, 1988)
작가 미하일 레르몬토프의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전작인 '수람 요새...'와 마찬가지로 도도 아바시제와 파라자노프의 공동 감독 작품이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헌정되었으며, 사실상의 유작에 가깝다.
  • 고백 (Խոստովանանք, 1989~1990)
파라자노프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자 했던 미완성작이자 유작.

[1] 다만, 파라자노프는 실제로 동성애자 내지는 양성애자였다는 의혹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련 당국의 폭압적인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