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인

 

한자: 蘇聯人
러시아어: Советский народ (사볘츠키 나로드)
우크라이나어: Радянський народ(라댠스키 나로드)
벨라루스어: Савецкі народ(사볘츠키 나로드)
카자흐어: Совет халқы(소베트 할키)
아제리어: Sovet xalqı(소베트 할크)
조지아어: საბჭოთა ხალხი(삽쵸타 할크)
아르메니아어: Խորհրդային մարդիկ(코르흐르다인 마르디크)
타지크어: Одамони советй(오다모니 소베티)
1. 소개
2. 인구 구성
3. 소수민족 학살ㆍ억압 정책
4. 유산
5. 관련항목


1. 소개


소비에트 연방에 살았던 제민족들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소련의 민족구성은 매우 복잡하여, 인구의 51%를 차지하는 러시아인 외에도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라트비아인, 우즈베크인, 아르메니아인, 타지크인, 조지아인, 타타르인들처럼 자기의 공화국이나 자치공화국을 가진 주요 소수 민족, 그리고 자기의 자치단위를 갖지 못한 기타 소수민족 등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민족이 있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혼혈이었다.
소련의 역대 최고지도자 중에서도 소수민족 출신이 많다. 블라디미르 레닌의 아버지는 볼가강 서안에 거주하던 튀르크추바시인이었고, 할머니는 칼미크인이었으며 어머니 알렉산드라는 기독교로 개종한 아슈케나짐 유대인으로 즉 가계의 1/4은 돌궐족, 또 1/4은 몽골족, 1/2는 유대인으로 레닌은 주류 슬라브계와는 완전히 무관한 배경에서 태어났다. 이오시프 스탈린러시아어조차 조지아어 억양으로 어색하게 말하는 조지아계였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우크라이나계였다. 물론 소련의 정치와 주류사회는 다수민족인 러시아계 정체성을 중심적으로 흘러가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소련=러시아라고 동일시해버리는 실수가 많다는 것에 비해서 소련인의 민족다양성은 외국인들의 생각보다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소련인이라는 개념은 민족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정체성으로서, 미국인, 중국인이라는 개념과 비슷하다. 소련은 민족주의를 매우 경계하였는데 첫번째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따르면 자본가들은 민족(nation) 개념을 통해 노동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이라고 인식하게 만들어 실제로는 자본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정치체제를 유지하며, 노동자들을 값싸게 징병 등을 하려는 수단으로 자본가가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본 것이다. 두번째는 소련은 러시아계가 51%, 비러시아계가 49%를 차지했기 때문에 다민족국가였고, "특정 민족"을 내세울 수 없었다.[1] 개별 공화국에서는 그 공화국 이름과 일치하는 민족이 다수 민족을 차지했다.[2] 그리고 그 민족은 다른 공화국에서는 소수 민족이 됐다. 이런 식으로 소련의 민족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강역이 있기에 민족으로 찢어지기 시작하면 붕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소련이 해체되었다.

2. 인구 구성


큰 틀에서 소련인의 70%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등 동슬라브 계통이었고, 12%는 우즈베크인, 카자흐인 등 튀르크계 민족이었다.
1989년도 통계 당시 민족별 인구 순서는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우즈베크인, 벨라루스인, 카자흐인, 아제르바이잔인, 타타르, 아르메니아인, 타지크인, 조지아인, 몰도바인, 리투아니아인, 투르크멘, 키르기스, 독일계 러시아인, 추바시인, 유대인, 모르드바인, 폴란드인, 에스토니아인 순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에는 독일인, 유대인, 폴란드인 인구는 대부분 구소련 지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였고, 슬라브계나 우랄계 인구는 소련 붕괴 이후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고,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가 흔해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튀르크계나 캅카스 지역 주민 등등 무슬림 민족들은 소련 시절 출산율이 유지되어 소련 붕괴 이후에도 인구가 감소하기는 커녕 오히려 증가한 편이었다.

3. 소수민족 학살ㆍ억압 정책


스탈린의 농업집산화 정책 추진 시대에는 소련 각지에서 엄청난 인명피해와 기근이 반복되었는데, 러시아인 중에서도 희생자가 많았지만 비러시아인 인구 손실은 그보다 더 큰 경우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1932년부터 33년 사이 농업집산화에 반대하던 우크라이나와 카자흐스탄 일대에 대기근이 유명하다. 자세한 내용은 우크라이나 대기근 문서 참조. 비슷한 사례로 1921~22년 볼가 강 하류 일대의 식량 배급을 끊어서 타타르인과 러시아계 독일인 인구 수십만여 명이 기아로 사망했던 역사 역시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정책으로 해석 가능하다.
고려인을 비롯해서 소련 시절 소수민족 강제 이주 목적지는 주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일대였는데, 이는 원래 중앙아시아 지역이 인구 밀도가 낮았던데다 1932~33년 당시 카자흐 인구가 대기근으로 38~42% 감소해서 노동력이 부족했던 영향이 컸다.
소련은 다민족 국가로 소련 스탈린 시절 강제이주당한 민족들의 사연이나 학살, 억압의 사례 등을 일일이 다 기록하는 것은 본 문서의 취지에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소련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는 점이 당시 소련은 러시아인 비러시아인 할 것 없이 다 못 살거나 엄청난 위기를 겪던 상황이었고, 또한 스탈린은 러시아인들과 자민족인 조지아인일지라도 자기에 거슬리거나 의심가면 자비없이 공평(?)하게 숙청시키던 작자였다는것을 생각하면 유독 소수민족만을 타킷삼아서 탄압한것은 아니기는 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소련의 소수민족 통치는 영국이나 프랑스, 포르투갈의 식민지 착취 지배에 비하면 그나마 양심적이었다. 소련에서는 적어도 소수민족과 러시아인 차이 할 것 없이 보통 교육을 실시하여 소련 전역에서 문맹을 사실상 완전 퇴치하는데 성공하였으나,[3] 프랑스와 포르투갈 식민지들의 경우 20세기 중반까지도 식민지 인구 절대다수가 문맹이었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중앙아시아 이슬람 국가들과 영국, 프랑스 식민 지배를 겪었던 아랍 국가들의 문맹률이나 고등교육 이수율, 치안 같은 요소를 비교할 수 있다.

4. 유산


소련 붕괴 이후 소련인들은 각 독립 공화국의 국민으로 개별화되었으나, 아직도 소련인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2010년 러시아 인구센서스에서는 27,000명이 자신들을 소련인이라고 자칭했다.#[4]
러시아뿐만 아니라 2014년 이후 현재 진행 중인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도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에 의용군으로 가담한 아르메니아인, 중앙아시아인들 중엔 자신의 정체성을 여전히 소련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5] 이런 독립국들을 "소련(러시아)의 식민지였다가 소련이 무너지면서 독립했다"며 해석(식민지-제국주의 열강의 관계처럼 생각)해버리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구 소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기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15개국으로 쪼개진 뒤 각자 민족국가가 되었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초월한 시절이었던 소련시기를 그리워하는 동기이다.
다만 발트3국처럼 소련 시대를 식민지 시절 취급하는 지역도 있는데, 이거는 당시 발트3국이 만약에 핀란드처럼 2차대전 이후에도 독립 국가로 유지되었으면, 북유럽만큼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에서 그런 점이 더 크다.[6]

5. 관련항목



[1] 다만 스탈린 집권 후부터 러시아인을 타 연방 국가로 대거 이주 시키거나 러시아어를 강제하기는 했다.[2] 예외는 소련 중기까지의 카자흐 SSR로 한때 러시아인이 다수민족이었다. 물론 소련 초기에는 카자흐인이 다수민족이었지만 1930년대 전반기의 대기근으로 카자흐인들의 1/3이 아사하고 남은 카자흐인들 가운데서도 굶주림을 피할려고 터키, 위구르, 페르시아 등 해외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 인구가 급감했다. 이에 모자라는 인구를 채우려는 목적에서 러시아인이나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이주에 혜택을 내보내던지 고려인, 크림 타타르, 체첸인처럼 강제로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인구를 채우는 과정에서 카자흐인과 러시아인간의 인구가 비슷해졌고, 1950년대 흐루쇼프가 처녀지 개간 운동으로 우랄과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의 처녀지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인력확충을 위해 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들을 대거 카자흐스탄에 파견보내며 한때는 러시아인이 43%인데 카자흐인은 29%에 불과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3] 소련은 광대한 영토에 수백여 가지 민족이 공존하던 다민족 국가였고 이런 국가에서 문맹을 퇴치한 성과 자체는 부정할 수가 없다. 종종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이 문맹 인구가 적다고 찬양하는 억지 주장을 하는 경우와 격이 다르다. 북한은 한글이라는 희대의 치트키에다가 사실상 단일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문맹을 퇴치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4] 비슷하게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에서는 자신들을 '유고슬라브인'이라 칭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주로 유고계 미국인들이지만 세르비아에 2만, 그 외 구유고 국가들에서 수백~수천명 정도. #[5] 예를 들면 이 아저씨. 따지고 보면 이들 입장에서 '분리주의' 세력은 자신들이 아니라 유로마이단 지지자들인 것이다. 소련 시절에는 유로마이단 지지자들의 전신격인 소련 내 숨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진짜로 분리주의 세력이었고...[6] 소련 시절 발트3국은 소련 내에서 가장 소득 수준이 높았던 지역이었다. 80년대 해당 지역의 민족주의는 오늘날 스페인의 카탈루냐, 바스크 지역 분리주의 운동과 비슷한, 우리 세금으로 못 사는 지역에 투자하지 말라 같은 제스쳐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지금도 발트3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에 속한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