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이
'''Sepoy'''
1. 소개 및 역사
19세기의 인도 용병. 인도를 지배한 영국군에는 무슬림과 힌두교도 등이 뒤섞여 구성된 많은 인도인 용병이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세포이'라고 불렀다. 현대 인도에서는 '이등병'이라는 뜻이며, 원래는 페르시아어로 “수조권[1] 을 갖는 직업 군인”을 의미했다. 영국 동인도 회사가 인도 정복을 위해 인도 현지인 용병을 고용하면서 토지 수조권보다는 돈으로 봉급을 주게 되었다.[2]
서부의 봄베이군, 동부의 벵골군, 남부의 마드라스군으로 구성되었다. 벵골 세포이들은 영국의 미얀마 정복에 큰 공을 세웠으나 이후 세포이 항쟁을 주도하였다. 이들이 세포이 항쟁을 일으킴으로써 영국의 식민지배는 큰 혼란에 빠졌고, 세포이 항쟁이 진압된 이후 영국은 무굴 제국을 멸망시키고 동인도 회사를 해체하여 인도를 직접 지배하게 된다.
2. 유사 사례
포르투갈의 경우 포르투갈령 고아(인도)와 스리랑카 식민지에서는 현지인들을 가톨릭으로 강제 개종시킨 후 식민지 군대의 실질적인 주력으로 운영했는데 이들의 경우 라스카린이라 불렸다.
영국의 세포이의 경우 거의 힌두, 무슬림, 시크교도였다면 포르투갈의 라스카린은 개종한 가톨릭 교도였다는 점이 다르다. 포르투갈 식민 제국의 경우 인력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선원도 상당수를 인도계 라스카린으로 채워야 했다. 이후 포르투갈이 스리랑카에서 세력을 상실한 이후에도 네덜란드, 영국에 봉사하는 현지 스리랑카 군인이나 인도계 선원들은 관습적으로 계속 라스카린이라고 칭해졌다. 다만 네덜란드가 포르투갈 세력을 스리랑카에서 축출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을 믿는 인도 현지인들이 다시 포르투갈 편을 들 것을 우려하여 이들을 개신교로 개종시키거나 아니면 차라리 다시 힌두교/이슬람을 믿도록 만들었는데[3] 이를 기점으로 라스카린이 인도 현지 가톨릭교도 중에서 징집되는 전통은 사라졌다.
상술한 대로 영국령 인도 제국에서는 인도계 해군이나 선원을 관습적으로 라스카르라고 칭했는데, 이들 중 일부는 영국령 홍콩에 정착했다고 한다.
[1] 토지로부터 조세를 거둘 수 있는 권리[2] 물론 무굴 제국 시대와 마찬가지로 군인들에게는 토지세 관련 특혜가 제공되었다.[3] 같은 맥락에서 동방 가톨릭의 영향을 받던 남인도 케랄라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네덜란드의 도움을 얻어 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같은 오리엔트 정교회로 개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