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리 잭슨

 


1. 소개
2. 생애
3. 국내 출간작


1. 소개


Shirley Hardie Jackson. 1916.12.14~1965.8.8
미국의 소설가.
현대 고딕 호러의 선구자격 작가로 꼽힌다.[1]
귀신들린 집 장르의 고전이라 불리는 힐 하우스의 유령의 경우 더 헌팅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으며 스티븐 킹샤이닝을 쓸 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는 1948년에 발표한 제비뽑기가 있다. 영문학 교과서 다수에 실린 명작. 다만 발표된 당시에는 충격적인 내용 탓에 혹평한 독자들이 절대 다수라, 잡지사에 항의 전화가 빗발쳐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작품의 충격이 진정된 후에야 진가를 인정받은 케이스.
그의 이름을 따 셜리 잭슨 상이 제정되었는데, 편혜영 작가가 2017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기도 했다.

2. 생애


외가가 너새니얼 그린의 후손으로, 출생이 원치 않은 임신에 가까웠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불화가 심했다고 한다. 실제로 잭슨의 어머니는 잭슨한테 '실패한 피임의 산물'이라는 폭언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고. 잭슨의 어머니는 당대 여성상에 걸맞게 잭슨이 요조숙녀로 자라길 바랐으나, 잭슨은 그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딸이었기 때문에 모녀 간 갈등은 심할 수밖에 없었다.
잭슨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우울증과 자존감 부족에 시달렸다고 한다. 가족과 멀어지기 위해 일부러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했고, 재학 시절 자신의 작품을 보고 찾아온 유태인 평론가 스탠리 에드거 하이먼(1919~1970)과 이른 결혼을 해서 2남 2녀를 낳았다. 하지만 말이 결혼이지 비평가였던 남편의 잦은 외도로 사실상 오픈 릴레이션십에 가까웠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베닝턴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 베닝턴에 정착했지만 남편은 가정에 불성실했고 베닝턴 토박이었던 이웃들은 외지인에게 배타적인 사람들이라 어울리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이 시절 이웃들에게 배척당하면서 홀로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하며 느낀 소외감은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돈은 셜리가 훨씬 잘 벌었지만 [2] 재정은 남편인 하이먼이 관리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잭슨은 조현병 환자처럼 성격을 종잡을 수 없었으며, 돈을 마구 쓰고 폭식하는 등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기는 했지만 흥청망청 썼고, 거리에서 쓰러져 누워 자다가 경찰에 신고당하면 하이먼이 연락을 듣고 찾아와 데려가는 일도 있었다.
고도비만이라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데도[3] 작품 활동을 이유로 알콜과 코카인을 달고 살다가, 한창 활동할 시기인 만 48세에 병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화장되었고, 3년 뒤 미발표된 단편들과 미완성 장편이 하이먼에 의해 발견되어 출판되었다. 하이먼은 불륜 관계였던 포비 페팅겔과 재혼했으나, 잭슨 사후 5년 뒤에 본인도 죽었다. 이후 세월이 훨씬 흘러 1996년, 생가의 헛간 지하에 있던 상자에서 미발표되었던 또 다른 단편들이 발견되어 31년만에 출판되기도 했다.
남편 하이먼은 아내의 작품 활동에 긍정적이었다. 응원한답시고 술과 코카인을 아내에게 권하고 자신도 똑같이 즐겼다. 대학 시절부터 잭슨의 글을 호평해 왔고, 살아 생전 잭슨의 글이 그저 3류 호러소설 취급당하는 것에 분개하여 평론으로 이를 반박하기도 했다. 건실한 남편은 아니었으나 적어도 아내의 작품만큼은 생전 널리 알리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하이먼도 잭슨처럼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다. 골통 유대교 신자인 부모와 종교적 충돌을 빚었는데, 어릴 적 부모에게 굶기거나 다락에 가두는 등의 학대를 당했다. 그 트라우마로 종교 자체를 혐오하게 되어 지독한 무신론자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이는 신약 성경에서 강조하는 일부일처제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졌다. 사정이 된다면 실컷 다부다처제로 즐기라고 가정적 토대에 대해서도 대놓고 씹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고 한다.
하이먼의 무신론은 잭슨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그도 종교를 비판하고 무신론자가 되었다. 이런 어린 시절에 대한 동질감 때문인지 비록 사랑과 거리가 먼 가정 생활을 살아왔지만, 이혼은 서로 마다했다고 한다. 또한 하이먼도 여러 병에 시달려 약물에 의존했고, 이로 인해 그 역시 잭슨과 사별하고 5년밖에 안 되어 5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3. 국내 출간작


  •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4]
  • 힐 하우스의 유령
  • 제비뽑기[5]
[1] 다만 작정하고 호러로 쓴건 힐 하우스의 유령 정도다. 전반적인 작풍은 호러보다는 고딕이나 스릴러에 기울어 있었던 편이며, 힐 하우스의 유령 역시 유령보다는 이상 심리 묘사에 집중되어 있다.[2] 생전에도 작품의 영화화가 두 번이나 이뤄졌다.[3] 뚱뚱하고 못 생겼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컴플렉스가 있었다고 한다.[4] 셜리 잭슨이 사망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출간한 장편소설이다.[5] 제비뽑기 외에 20여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