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후한)

 

孫壽
? ~ 159년
중국 후한의 인물. 후한의 간신양기의 아내로 워낙 아름답고 출중한 미모를 가졌는데, 성격이 드세서 양기를 꽉 휘어잡고 살았다고 한다.
양기가 권세를 가지자 손수도 팔자를 피게 되어 도장을 찍은 허리띠를 차는 등 장공주[1]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권세를 부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부탁해서 손씨 집안의 사람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는데, 덕분에 조정은 양씨와 손씨가 판을 쳤다.
그리고 손수는 양기의 집 말고도 자신의 집을 따로 만들어 양기의 옆에 만들었는데, 양기가 집을 크게 지으면 손수도 따라서 집을 크게 짓고 손수가 크게 지으면 양기도 다시 크게 지으면서 병림픽을 벌이고는 둘이 마차를 끌고 길 한복판에 나와서 재밌게 놀면서 즐기고 하는등 갖은 사치를 다 부렸다.
양기의 아버지인 양상(梁商)은 우통기(友通期)라는 미녀를 순제에게 바쳤는데, 우통기가 잘못을 저질러 궁에서 쫒겨나는 일이 있었다. 입을 쩝쩝 다시고 있던 양기는 신나게 우통기와 간통을 벌였는데 이 일을 안 손수는 우통기를 두들겨 패고 머리카락을 다 잘라버렸다. 양기가 손수의 어머니에게 가서 빌었지만 손수는 자기 아들 양윤(梁胤)을 시켜 우통기를 기어코 때려 죽이고 우(友)씨 집안을 싸그리 몰살시켰다. 양기는 두려워서 감히 이를 막지 못했다.
손수의 외삼촌 중에 양기(梁紀)[2]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양기의 부인인 선(宣)씨에게는 이전의 남편과의 사이에서 만든 인 등맹(鄧猛)이라는 아이가 있었다. 얼굴을 보고 괜찮다고 생각한 손수는 등맹의 성씨를 양(梁)씨로 바꾸고 환제의 후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입막음을 위해 남편 양기를 시켜 선씨를 죽이게 했는데, 어찌된것인지 선씨는 살아서 궁궐로 달려갔다.
사정을 다 들은 환제는 화가 나기도 하고, 황제를 능멸한 죄도 있으니 환관들과 손을 잡고 한번에 들이닥쳐 다 박살을 냈다. 양기의 집은 포위되었고, 양기와 손수는 절망해서 자결하였다.
손수는 평소에 사치스럽고 몸을 꾸미는데 관심이 많아서 당시 한나라 고위층의 여성들 패션화장을 주도하였다고 한다. 손수가 유행시킨 화장등은 다음과 같다.

1. 수미(愁眉): 근심에 잠긴 것처럼 보이게 위해 눈썹을 가늘게 그리는 화장법

2. 제장(啼粧): 눈 밑을 하얗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장법[3]

3. 타마계(墯馬髻): 머리를 살짝 기울게 하여 여자의 몸가짐이 다소 흐트러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법

4. 절요보(切要步): 허리를 꺾고 흔들면서 걷는 방법

5. 우치소(齲歯笑): 이가 아픈 것처럼 얼굴을 살짝 찡그리는 방법

대부분 요즘 기준으로도 남자들이 뿅가죽네를 외치는 것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건 비슷하다. 보통 예전에는 뚱뚱한 사람들이 미인이라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남은 그림등으로 볼때 호리호리한 쪽이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4] 약간 통통한 미인이 대세가 된것은 때부터. 정확히 말하면 양귀비 때부터다. 손수가 썼다던 화장도구들은 다음과 같다.

1. 평상병차(平上輧車)

2. 비책(埤幘)

3. 협관(狹冠)

4. 절상건(折上巾)

5. 옹신선(擁身扇)

6. 호미단의(狐尾單衣)

[1] 임금의 누이나 누이동생.[2] 남편인 양기는 梁冀[3] 실제로 요즘도 눈가를 살짝 발그스름하게 칠해 울고 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화장법이 있다.[4] 사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조비연 계열의 하늘하늘하고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미녀를 선호했다. 물론 양귀비 같은 통통한 글래머 타입도 나름대로 인기를 누리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