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면수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김붕준의 사위이다.
2. 생애
송면수는 1910년 3월 14일 강원도 회양군 난곡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0년 항일독립운동을 목적으로 상하이로 망명한 후 김붕준의 큰 딸 김효숙(金孝淑)과 결혼했으며, 1937년 7월 1일 중국 광동(廣東)에 있는 국립중산대학(國立中山大學) 법학원(法學院)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38년 나월환, 안춘생 등 200여 명과 함께 한국청년전지공작대(韓國靑年戰地工作隊)를 조직한 후 한커우, 우창, 창사 전투에 참가했으며, 1940년 임시정부가 충칭으로 이동하자 후방 공작을 담당하며 항일무력투쟁을 전개했다. 또한 창사 마원령에서 40여명의 한국 청년들과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쓴 ‘국경의 밤’·’상병의 벗’·’전야’ 등 항일극을 야전병원과 군부대에서 공연하여 사기를 붇독우는 문화선전 활동을 주도하였다.
1942년 4월 1일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2지대 개편시 정훈조장(政訓組長)으로 활동하다가 동년 10월 27일 안훈(安勳)이 정훈조장이 되고 그와 함께 조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40년 성도의 중국육군군관학교 제18기생으로 입교하여 1943년 1월 제1총대 통신병과(通信兵科)를 졸업하고 장교로서 군사전문지식을 갖추었다. 1943년 8월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제3차 전당대회에 참가하여 중앙집행위원회 상무위원 겸 선전부 주임(宣傳部主任)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4년 6월 19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구 확대강화에 따라 문화부 편집위원과 선전부 편집위원으로 동년 8월 21일까지 활동하였다.
1944년 이범석이 이끄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정훈조장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정보처(OSS) 두곡지대(杜曲支隊)에서 교육훈련을 받았으며 국내정진군(國內挺進軍) 황해도 지방반장으로 임명되어 국내진공을 준비했으나 8.15 광복으로 무산되었다. 그 후 1946년 광복군을 인솔하고 귀국했으며 이범석과 함께 조선민족청년단을 만들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국군에 입대하여 8사단 대령을 맡았다. 6.25 전쟁 발발후 풍기지구에서 조선인민군에 맞서 싸웠으나 1950년 8월 10일에 전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송면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3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