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비 소씨

 


1. 개요
2. 생애
3. 죽음
4. 죽음 이후
5. 대중 매체의 등장


1. 개요


당고종 이치의 후궁.

2. 생애


당 고종의 후궁으로, 당나라 시대의 후궁 서열 2위인 숙비[1]였다. 한때 당 고종의 총애를 받아 옹왕(雍王) 이소절(李素節), 의양공주(義陽公主), 선성공주(宣城公主)를 낳았다.
당연히 정실인 황후 왕씨[2]와는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소씨는 황제의 총애를 받아 황자와 공주들을 생산하여 기세등등했던 반면, 황후 왕씨는 자녀가 없었다. 황후는 숙비의 존재가 점점 불편했다.
그래서 황후 왕씨는 바로 (훗날에 측천무후라고 불리게 되는, 선대 황제인 당태종의 후궁인) 무미랑을 다시 입궁[3]시킨다. 무미랑은 금세 소 숙비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후궁[4]이 되었고, 고종의 총애는 무 소의에게 쏠리게 되었다.[5]
이렇듯 초반에는 왕 황후와 무 소의가 연합하여 소 숙비를 견제하는 데에 성공했으나, 후에 무 소의에 의해 왕 황후도 무 소의의 딸 안정공주의 돌연사 문제 등에 연루되어 왕씨는 황후 자리에서 폐위되었고, 소 숙비 역시 폐서인이 되었다. 공석이 된 황후 자리는 무 소의가 차지하였다.

3. 죽음


이후 빛이 들어오지 않고 음식이 들어올 좁은 구멍만 있는 방에 왕 황후와 함께 유폐되었다. 이 과정에서 왕 황후와 화해하여 두 사람은 친자매처럼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들러 음식을 챙겨준 고종에게 "빛을 보게 해 달라"고 탄원하였으나, 이를 알게 된 무 황후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고 말았다.[6] 소 숙비는 마지막에 '''"다음 생에 고양이로 환생하여 무 황후를 물어 죽이겠다"며 저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 황실에서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4. 죽음 이후


사후 무 황후에 의해 올빼미를 뜻하는 효(梟)씨로 성을 강제로 바꾸게 되기도 하였다. 이때 왕 황후도 이무기를 뜻하는 망(蟒)씨로 강제로 개성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훗날 측천문자를 만들고 연호를 자주 바꾸는 등, 문자에 예민했던 측천무후의 성향 때문이었다.

5. 대중 매체의 등장


무미랑전기에서 배우 장신위가 소 숙비 역할을 맡았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숙비 소씨(무미랑전기)로.
국내 SBS의 대하드라마 연개소문에도 잠시 출현했다.

[1] 정1품이고 귀비, 숙비, 덕비, 현비. 4부인이라고 한다.[2] 당고조의 여동생인 동안공주(同安公主)의 손녀.[3] 태종이 죽은 후, 그의 후궁들은 모두 출가하여 감업사(感業寺)에서 비구니로 살고 있었다.[4] 당시 후궁 서열 5위인 소의.[5] 무 소의는 당 고종이 태자였을 때, 그러니까 아직 당 태종의 후궁인 재인이었을 때부터 애정을 받았다고 알려지고 있다.[6] 곤장을 100대 치고 사지를 잘라 술독에 담가 죽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