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랑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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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난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주연은 판빙빙. 시청률 3%를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
2014년 12월 21일에 방영을 시작했다가 12월 28일에 갑자기 방영이 중단되었다가 2015년 1월 1일에 방송이 재개되었는데, 여배우들 의상이 가슴골 노출이 심하다는 논란이 있어서 이를 수정했기 때문. 얼굴만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가슴골을 안 보이게 하다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슴골 부분을 덧칠해서 수정판이 만들어졌다.[3] 답이 없는 중국 검열 제도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도 과도한 검열이라고 보도를 했다. 다만 이건 제작진들의 잘못이 아니라, 원래 당나라 상류층의 한푸 자체가 노출도가 대단한데 그걸 그대로 고증해서 그런 것이다. [4] 한푸의 당나라 항목에 들어가면 대단한 노출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한국 심의로 따진다면 저 정도의 가슴골 노출은 애초에 한국 방송에서 절대로 나올 수가 없을 정도다. 여담으로 수출용으로 제작되는 삭제판에서는 컴퓨터cg기술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슴골 부분을 옷으로 덮었다. 중국 사극의 가슴골 부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궁중 모든 여인의 옷에 cg작업을 했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 가슴 부분의 작은 옷 부분은 모두 cg이다...) 2015년 2월 3일 96화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후궁견환전처럼 전형적인 궁중암투물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무미랑전기가 진부할 스토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류의 사극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지만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루는 대하사극이나 정통사극이라는 느낌보다는 후궁견환전 같은 궁중암투물에 가깝다. 로맨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고 역사왜곡도 심심찮게 있어서 정통사극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좀 실망할 수도 있다.
궁중암투 부분에서도 언제나 똑같은 화비 포지션인 위귀비와 주인공을 돕는 양숙비 그리고 초반에는 언제나 수수하지만 흑화를 거듭하는 주인공 무미랑에 그런 주인공의 단짝친구인 서현비와 하동춘 같은 싸가지 없는 캐릭터인 소첩여 등등이 등장해서 스토리가 진부한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총 80부작인데 53화에 가서야 겨우 당태종이 죽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남은 27화 동안 어떻게 무미랑의 이야기를 전부 다루고 스토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관심이 컸었는데 결국 96부작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복식고증이 뛰어나며 볼거리가 많고 '''눈이 호강한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후궁들인 위귀비나 양숙비, 은덕비, 소숙비, 왕황후 같은 경우에는 당나라의 화려하고 대담하기 짝이 없는 의상들이 그대로 고증되어 매우 화려한데, 그 모습들은 그야말로 대륙의 기상을 보여준다.
또 주인공 무미랑도 후궁견환전의 견환이나 작약만가: 서리꽃의 리빈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흑화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복식과 화장의 변화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머리모양도 단순하고 장신구를 꽃으로 하거나 한두개만 하며, 옷도 파스텔 톤으로 연하고 하늘하늘하게 입었으나 위귀비에게 고문을 당하고 냉궁에 갔다 온 이후 옷의 색이 진해지고 장신구 수도 늘어나며, 머리모양도 높아진다.
감업사에 갔다 온 후 환궁 후에 태비의 신분이므로 더욱 화려해진 감이 있다. 이후 아이를 유산하고 난 후 소의에 책봉된 이후에 매우 화려해지지만[5] 여전히 화장은 분홍빛이 베이스이고 봄과 꽃의 이미지가 강하다. 황후가 된 이후의 모습은 작정하고 화려해졌으며 눈화장이 검정색과 보라색의 그라데이션을 넣어서 매우 다크해지고 카리스마도 넘친다.
실제로도 제작비에 3억 위안(한화로 530억)이 들었으며 인테리어와 복식고증에 많이 신경을 썼다고 한다. 진짜로 대륙의 기상을 담아 만들어낸 영화였던 것.
무미랑전기/등장인물 문서 참고.
한마디로 평하자면 '''중국판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다.''' 볼거리는 훌륭할지 몰라도 스토리가 클리셰가 심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다. 일단 스토리의 클리셰부터. 스토리가 후궁견환전+황후화라는 비판이 중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후궁견환전에 나오는 캐릭터들과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고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후궁들이 많으니까 이런 말이 나온 거다.
무미랑의 행보를 보면 처음에는 착하고 순수했다가 나중에 흑화하는데 처음에 순수했다가 점점 화려해지고 흑화하는 것은 일반 궁중암투 주인공의 클리셰이다. 실제 역사에서 무측천은 처음부터 야망이 크고 어린 시절부터 무자비하고 냉혹한 인물이었는데[6] 이 드라마에서는 처음에는 야망이 없었다가 나중에 종묘를 지키려고 어찌저찌 하여 황제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무미랑 일생 중 중요한 시절은 황후 시절과 황제 시절인데 여기서는 편수보장 때문인지 재인 시절이 드라마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건 편수 보장으로 재인 시절을 늘렸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중요한 무미랑의 황후 시절과 황제 시절 분량을 더욱 늘려야 하는데 무미랑의 환궁 스토리부터 태상황까지의 에피소드를 전부 37집 안에 정리했다. 재인 시절은 59집으로 그렇게 질질 끌었으면서 말이다. 역시 장옥정, 사랑에 살다처럼 무미랑을 마성의 여자로 만들 기획이라도 했는지 역하렘이기도 하다. 무미랑을 좋아하는 남자만 셋으로 애정고사도 많다.
처음 재인시절은 그럭저럭 볼만하지만 무미랑이 액정에서 돌아온 후 총애를 받고 서혜가 뜬금없이 개연성 부족하게 너무나 악독하게 변한다. 서혜 캐릭터가 아쉬울 정도.. 그 이후에는 쓰잘데기없이 첫사랑이 나와서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애초에 무미랑이 재인시절이 역사적으로 당태종의 총애를 받지 못했기에 더 억지스럽다. 소첩여와 서첩여, 정첩여는 한 번 자고 첩여가 되거나 좀 총애를 받으면 되는데 무미랑은 계속 재인신분이다. 역사에서 재인신분에 머물렀기 때문이지만 결국 스토리가 늘어지고 개연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장손무기가 황제의 집안일을 가지고 무씨 예언을 계속 들이대며 후궁 하나 내치라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과하다. 뒷부분에서 소숙비외 왕황후가 죽는 모습도 겨우 그거 가지고 죽나 할 정도로 궁중암투물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암투가 한심하고 수준이 낮다. 왕황후는 모함받아 죽고 소숙비도...
위귀비나 양숙비 또한 캐릭터가 아깝다. 장정 악녀라는 위귀비는 다른 암투물에 비하면 악녀 수준도 아니며 양숙비는 장손왕후 초상화만 계속 그리고 뭐하는 캐릭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거기다가 마지막 오왕의 반란이 무산되자 열받아서 자살한다는 것 또한 개연성이 떨어진다.
뒷부분 스토리 황후가 되어서 좀 볼 만한가 싶으면 조카 하란민월이 나와 극의 흐름을 또 망친다. 하란민월이 자신의 언니의 딸인데 정작 무미랑 언니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 복수한다며 태자 이홍을 죽인다(...) 여러모로 많이 허술하다.
제작비 500억을 전부 옷과 장식에 투자했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으나 그 옷도 소숙비나 왕황후, 서혜, 위귀비, 양숙비는 2-3벌 가지고 돌려입는 수준이며 장식도 재활용을 많이 했다. 전부 무미랑 의상과 치노의 의상값으로 쓰인 듯 하며[7] 보통 중국 드라마는 사전제작이라 랑야방, 보보경심, 후궁견환전에서는 계절이 바뀌는데 무미랑은 계절 따위는 바뀌지도 않는다(...)
한줄로 요약하면 스토리는 비판점이 많으나 판빙빙의 미모와 화려한 의상 보는 재미에 보는 드라마란 평가가 많다. 거의 판빙빙의 화보집같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실제로 이 드라마의 제작사가 판빙빙의 소속사인 탕더영화그룹회사[8] 와 1인기획사인 판빙빙공작실이기때문에 드라마의 비중이 온통 판빙빙에게만 쏠리고 제작과정에서도 판빙빙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듯 하다.[9]
'''부인''' (정1품) 신비 귀비 숙비 덕비 현비 황후
'''구빈''' (정2품) 소의 수의 충의 소용 수용 충용 소원 수원 충원
'''세부''' (정3품) 첩여 (정4품) 미인 (정5품) 재인
'''어처''' (정6품) 보림 (정7품) 어녀 (정8품) 채녀 ||
1. 개요
중국 후난tv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주연은 판빙빙. 시청률 3%를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
2014년 12월 21일에 방영을 시작했다가 12월 28일에 갑자기 방영이 중단되었다가 2015년 1월 1일에 방송이 재개되었는데, 여배우들 의상이 가슴골 노출이 심하다는 논란이 있어서 이를 수정했기 때문. 얼굴만 클로즈업하는 방식으로 가슴골을 안 보이게 하다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가슴골 부분을 덧칠해서 수정판이 만들어졌다.[3] 답이 없는 중국 검열 제도의 폐해를 상기시켜 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에서도 과도한 검열이라고 보도를 했다. 다만 이건 제작진들의 잘못이 아니라, 원래 당나라 상류층의 한푸 자체가 노출도가 대단한데 그걸 그대로 고증해서 그런 것이다. [4] 한푸의 당나라 항목에 들어가면 대단한 노출도를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사실 한국 심의로 따진다면 저 정도의 가슴골 노출은 애초에 한국 방송에서 절대로 나올 수가 없을 정도다. 여담으로 수출용으로 제작되는 삭제판에서는 컴퓨터cg기술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슴골 부분을 옷으로 덮었다. 중국 사극의 가슴골 부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챌 정도로 궁중 모든 여인의 옷에 cg작업을 했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 가슴 부분의 작은 옷 부분은 모두 cg이다...) 2015년 2월 3일 96화를 마지막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후궁견환전처럼 전형적인 궁중암투물을 많이 접해본 사람이라면 무미랑전기가 진부할 스토리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류의 사극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시청할 수 있을 것이다.
2. 상세
말 그대로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지만 측천무후의 일대기를 다루는 대하사극이나 정통사극이라는 느낌보다는 후궁견환전 같은 궁중암투물에 가깝다. 로맨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장옥정, 사랑에 살다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고 역사왜곡도 심심찮게 있어서 정통사극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은 좀 실망할 수도 있다.
궁중암투 부분에서도 언제나 똑같은 화비 포지션인 위귀비와 주인공을 돕는 양숙비 그리고 초반에는 언제나 수수하지만 흑화를 거듭하는 주인공 무미랑에 그런 주인공의 단짝친구인 서현비와 하동춘 같은 싸가지 없는 캐릭터인 소첩여 등등이 등장해서 스토리가 진부한 면이 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총 80부작인데 53화에 가서야 겨우 당태종이 죽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남은 27화 동안 어떻게 무미랑의 이야기를 전부 다루고 스토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관심이 컸었는데 결국 96부작으로 연장했다.
하지만 복식고증이 뛰어나며 볼거리가 많고 '''눈이 호강한다.''' 특히 높은 지위에 있는 후궁들인 위귀비나 양숙비, 은덕비, 소숙비, 왕황후 같은 경우에는 당나라의 화려하고 대담하기 짝이 없는 의상들이 그대로 고증되어 매우 화려한데, 그 모습들은 그야말로 대륙의 기상을 보여준다.
또 주인공 무미랑도 후궁견환전의 견환이나 작약만가: 서리꽃의 리빈처럼 여러 단계를 거쳐 흑화를 하는데, 그 모습을 복식과 화장의 변화로 표현하고 있다. 처음에는 머리모양도 단순하고 장신구를 꽃으로 하거나 한두개만 하며, 옷도 파스텔 톤으로 연하고 하늘하늘하게 입었으나 위귀비에게 고문을 당하고 냉궁에 갔다 온 이후 옷의 색이 진해지고 장신구 수도 늘어나며, 머리모양도 높아진다.
감업사에 갔다 온 후 환궁 후에 태비의 신분이므로 더욱 화려해진 감이 있다. 이후 아이를 유산하고 난 후 소의에 책봉된 이후에 매우 화려해지지만[5] 여전히 화장은 분홍빛이 베이스이고 봄과 꽃의 이미지가 강하다. 황후가 된 이후의 모습은 작정하고 화려해졌으며 눈화장이 검정색과 보라색의 그라데이션을 넣어서 매우 다크해지고 카리스마도 넘친다.
실제로도 제작비에 3억 위안(한화로 530억)이 들었으며 인테리어와 복식고증에 많이 신경을 썼다고 한다. 진짜로 대륙의 기상을 담아 만들어낸 영화였던 것.
3. 등장인물
무미랑전기/등장인물 문서 참고.
4. 비판
한마디로 평하자면 '''중국판 장옥정, 사랑에 살다이다.''' 볼거리는 훌륭할지 몰라도 스토리가 클리셰가 심하고 여러모로 부족한 면이 많다. 일단 스토리의 클리셰부터. 스토리가 후궁견환전+황후화라는 비판이 중국에서 나오기도 했다. 후궁견환전에 나오는 캐릭터들과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고 황제의 목숨을 노리는 후궁들이 많으니까 이런 말이 나온 거다.
무미랑의 행보를 보면 처음에는 착하고 순수했다가 나중에 흑화하는데 처음에 순수했다가 점점 화려해지고 흑화하는 것은 일반 궁중암투 주인공의 클리셰이다. 실제 역사에서 무측천은 처음부터 야망이 크고 어린 시절부터 무자비하고 냉혹한 인물이었는데[6] 이 드라마에서는 처음에는 야망이 없었다가 나중에 종묘를 지키려고 어찌저찌 하여 황제가 되는 것으로 나온다.
또한 무미랑 일생 중 중요한 시절은 황후 시절과 황제 시절인데 여기서는 편수보장 때문인지 재인 시절이 드라마 분량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건 편수 보장으로 재인 시절을 늘렸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중요한 무미랑의 황후 시절과 황제 시절 분량을 더욱 늘려야 하는데 무미랑의 환궁 스토리부터 태상황까지의 에피소드를 전부 37집 안에 정리했다. 재인 시절은 59집으로 그렇게 질질 끌었으면서 말이다. 역시 장옥정, 사랑에 살다처럼 무미랑을 마성의 여자로 만들 기획이라도 했는지 역하렘이기도 하다. 무미랑을 좋아하는 남자만 셋으로 애정고사도 많다.
처음 재인시절은 그럭저럭 볼만하지만 무미랑이 액정에서 돌아온 후 총애를 받고 서혜가 뜬금없이 개연성 부족하게 너무나 악독하게 변한다. 서혜 캐릭터가 아쉬울 정도.. 그 이후에는 쓰잘데기없이 첫사랑이 나와서 극의 흐름을 방해한다. 애초에 무미랑이 재인시절이 역사적으로 당태종의 총애를 받지 못했기에 더 억지스럽다. 소첩여와 서첩여, 정첩여는 한 번 자고 첩여가 되거나 좀 총애를 받으면 되는데 무미랑은 계속 재인신분이다. 역사에서 재인신분에 머물렀기 때문이지만 결국 스토리가 늘어지고 개연성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장손무기가 황제의 집안일을 가지고 무씨 예언을 계속 들이대며 후궁 하나 내치라고 주장하는 것도 너무 과하다. 뒷부분에서 소숙비외 왕황후가 죽는 모습도 겨우 그거 가지고 죽나 할 정도로 궁중암투물이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암투가 한심하고 수준이 낮다. 왕황후는 모함받아 죽고 소숙비도...
위귀비나 양숙비 또한 캐릭터가 아깝다. 장정 악녀라는 위귀비는 다른 암투물에 비하면 악녀 수준도 아니며 양숙비는 장손왕후 초상화만 계속 그리고 뭐하는 캐릭터인지 의심스러울 정도. 거기다가 마지막 오왕의 반란이 무산되자 열받아서 자살한다는 것 또한 개연성이 떨어진다.
뒷부분 스토리 황후가 되어서 좀 볼 만한가 싶으면 조카 하란민월이 나와 극의 흐름을 또 망친다. 하란민월이 자신의 언니의 딸인데 정작 무미랑 언니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나 복수한다며 태자 이홍을 죽인다(...) 여러모로 많이 허술하다.
제작비 500억을 전부 옷과 장식에 투자했다고 말해도 아깝지 않으나 그 옷도 소숙비나 왕황후, 서혜, 위귀비, 양숙비는 2-3벌 가지고 돌려입는 수준이며 장식도 재활용을 많이 했다. 전부 무미랑 의상과 치노의 의상값으로 쓰인 듯 하며[7] 보통 중국 드라마는 사전제작이라 랑야방, 보보경심, 후궁견환전에서는 계절이 바뀌는데 무미랑은 계절 따위는 바뀌지도 않는다(...)
한줄로 요약하면 스토리는 비판점이 많으나 판빙빙의 미모와 화려한 의상 보는 재미에 보는 드라마란 평가가 많다. 거의 판빙빙의 화보집같다고 봐도 될 정도인데, 실제로 이 드라마의 제작사가 판빙빙의 소속사인 탕더영화그룹회사[8] 와 1인기획사인 판빙빙공작실이기때문에 드라마의 비중이 온통 판빙빙에게만 쏠리고 제작과정에서도 판빙빙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듯 하다.[9]
5. 실제 역사와의 차이
- 우선, 이 작품에서 최고 악녀로 나오는 서혜는 당태종이 문덕황후 장손씨 사후 가장 총애한 총비이다. 그리고 무미랑보다 2살 어리다. 실제로 황후가 없었으니 내명부에서 막강했을 것이다. 서혜는 차분한 성격에 글을 굉장히 잘 썼다. 서혜가 당태종에게 간언한 글도 썼으며 고구려 원정에 관한 글도 있다. 그리고 서혜의 생전 지위는 정2품 충용이였고 사후 당고종에 의해 현비로 추존되었다.[10] 드라마에서는 서혜가 당고종 사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당태종 사후 병에 걸렸는데 치료를 거부하여 24살의 나이로 요절했다.
- 무미랑과 서혜가 입궁하고 나서 연못에 소원을 빈 종이를 담아 초를 켜놓고 보내는데, 서혜는 당태종의 시를, 무미랑은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이는 서혜가 당시 무미랑보다 실제로 2살이나 어렸으며 10살이 되기도 전에 글을 쓸줄 알아서 유능했기 때문이고 무미랑은 당시 글을 전부 익힌 것은 아니라 못 적어서 빈 종이였다는 설이 있다.
- 무미랑의 '미랑'은 당태종이 이쁜이라는 뜻으로 하사한것이 맞으나 총애는 받지 못했다. 당태종 첩으로 있을때 10년 조금 넘게 재인신분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서혜는 자식은 없었으나 현비까지 올라갔다.
- 무미랑은 당태종이 말을 길들이는 것에 3가지를 드는데 대충 말을 패라, 죽여라와 같은 다소 과격하다. 당태종이 무미랑의 해법에 칭찬을 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발랄하여 총애받지는 못했다.
- 음덕비는 수나라 충신가문이었고 극에서처럼 반란 때문에 죽는다. 위귀비의 경우 당태종에게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 양숙비가 극에서 제왕원길의 부인으로 수나라 공주로 나오는데 기록에 따라서 다르다. 하나는 양숙비와 제왕 원길의 비가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
- 무미랑의 딸 안정공주를 왕황후가 죽이려다 실패하고 고양공주가 죽이나, 실제로는 무미랑이 왕황후를 내쫓기위해서 안정공주를 죽인 것이라는 주장이 있고 상당히 지지를 받고 있다.
- 태자 이홍이 무미랑에게 소숙비의 두 딸의 혼사를 청하면서 "정치간섭 그만하고 내궁이나 다스리라"고 언급하는데, 무미랑이 태자가 소숙비 딸들을 챙겨서 열받아서 독살했다는 설이 있다.
- 궁녀 유씨와의 사이에서 장자 이충이 태어나지만, 무미랑의 언니와 당고종이 간통을 저질러 태어난 아들이 이충이라는 설이 있다.
- 고구려는 아예 계속 북방 반란군이라는 이름으로만 나온다. 이는 외국인 한국과의 관계 그리고 소수민족인 조선족 간의 관계로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은 아예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입사인 중화TV가 한국 자막에서조차 북방 반란군이라고 표기하는건 엄청난 문제가 있다.
6. 기타
- 이전까진 우리나라에 수입이 되지 않아 보기가 쉽지 않았으나 2016년 3월 14일부터 중화TV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중화TV는 CJ E&M 계열 방송사이므로 웹하드의 제휴콘텐츠나 TVING 등의 서비스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단, 무삭제판이 아닌 삭제판이다. 중국 정부에서 무삭제판 수출을 금지했기 때문.
- 색채(특히 의상+장신구!)가 무척 화려한 편에 속하는 드라마여서 대사를 몰라도 옷 보는 재미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당나라 의상이나 헤어스타일, 장신구에 대한 재현도도 매우 뛰어난 편인데[11] 옥의 티가 있다면 당나라 시대에는 귀걸이를 하지 않았다 라는 점이다. 그래도 귀걸이 장식들도 하나같이 화려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또 명장면으로 유명한 소의 책봉식에서 착용한 꽃 장신구는 일본의 장신구이므로 고증에 맞지 않는다.[12]
- 생각보다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드라마다. 그래서인지 편수보장으로 아마도 당태종이 59집에 늦게 죽은 듯 보인다. 그리고 보통은 하루에 한편당 약30분씩 3집씩 하지만 매주마다 다르게 이틀씩은 1집씩만 방영했다. 그리고 보통 기사나 인터넷에 흔히 뿌려져 있는 무미랑이 하얀색과 빨간색의 화려한 옷을 당고종과 세트로 입고 머리에 빨간 꽃과 금장식을 한 사진은 황후책봉식이 아니라 정2품 소의 후궁책봉식이다. [13]
- 분장하는데 7시간이나 걸린 무미랑의 태상황시절의 머리스타일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유바바를 닮았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중국의 어떤 사이트에는 무미랑전기 옷입히기 게임이 있는데 퀄리티가 정말 뛰어나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새로운 아이템이 조금씩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아직 무미랑전기에 있는 모든 옷과 장신구가 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주 업데이트 되었으나 이제 업데이트가 끝났다. 그리고 이 게임은 옷과 장신구가 뭉텅이로 있는게 아니라 하나하나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하게 나만의 의상을 창조할 수 있다. 또 아래의 갤러리 같은 곳을 보면 중국인들이 자기들이 코디한 것을 올리는데 그것들을 보며 여러가지로 참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무미랑전기에 나온 이마에 붉은색 문양 그리는 것을 머리장신구로 작게 활용할 수 있고 귀고리보다 기다란 머리장식을 귀고리로도 활용할 수 있고 머리장식 중 꽃만으로도 의상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보면 그 꽃으로 치파오를 만들고 후궁견환전의 머리스타일을 비슷하게 꾸민 것도 많다. 아니면 전혀 시대도 다르고 내용도 다른 드라마에 나온 의상을 비슷하게 코디한게 많아서 여러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된다. 치마를 여러겹 겹쳐 입을 수도 있다. 거기다가 장신구를 옷에 올려서 무늬처럼 보일 수도 있고 몇몇 허리띠나 장식은 머리장신구로 사용할 수 있으며 귀고리도 머리장식으로 사용가능하다. 역시 머리장신구를 귀고리로도 사용 가능하다. 가면도 알맞게 배치하면 충분히 머리장식처럼 보이며 허리띠를 머리에 얹고 구슬장식이나 귀고리를 아래로 장식하면 황제의 딸에 나오는 위구르인처럼 꾸밀 수도 있다. 머리장식을 목걸이로 만들 수도 있으니 이 문서를 보는 사람이라면 꼭 이게임을 해보길 추천한다. 그밖에도 잘찾아보면 후궁견환전이나 보보경심, 궁쇄심옥 미인심계의상도 코디해볼 수 있지만 가다보면 간혹 네이버나 다음에 있는 어린이 코디게임이 보이거나 로이월드게임이 보이기도 하니 고전의상코디는 추천해도 일상복코디게임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다음키즈짱에 있는 장옥정 사랑에 살다게임과 기황후게임이 보이기도.. 그밖에도 일상복코디는 다른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이 대다수다. 또 잘찾아보면 중국 소설 일러스트 틀린그림찾기같은 게임도 보인다.
- 드라마에 나오는 후궁 품계
'''구빈''' (정2품) 소의 수의 충의 소용 수용 충용 소원 수원 충원
'''세부''' (정3품) 첩여 (정4품) 미인 (정5품) 재인
'''어처''' (정6품) 보림 (정7품) 어녀 (정8품) 채녀 ||
- 2003년 9월에서 11월 사이에 가정문이 출연한 44부작 지존홍안이 이 드라마와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지금은 사라진 무협TV에서 여황제 무측천이란 이름으로 방영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무미랑과 당고종의 사촌인 태자 이건성의 아들(...)과의 감동적인 사랑이야기로 이 드라마 역시 무미랑의 일대기보다는 치정에 중점을 두었다.
- 측천무후는 묘비에 한 자도 새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나의 모든 행적에 대한 가치 판단과 평가를 모두 훗날의 역사에 맡긴다는 뜻이 담겨있다. 후세의 사가들은 유교적인 관점에서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이유로 황제로 인정하지 않아 의도적으로 무측천, 측전무후 등의 명칭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명칭들이 널리 알려졌다.무미랑전기 포스트
[1] 방영 전반부에 끼어있는 전날 방영분이 20분 이상 차지할 때도 있다.[2] 판빙빙공작실과 더불어 판빙빙이 주주로 있는 판빙빙의 소속사이기도 하다.[3] 그러나 이 수정판은 중국 대륙판 한정. 대만 CTV 판본은 무수정판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홍콩 TVB에서는 수정판으로 사왔다(....) [4] 다만 극 중 의상들처럼 노출도가 대단한 형태의 복식은 당나라 중후반기에 이르러서야 나타나는 형태이고, 극 중 배경이 되는 당나라 초기의 경우 노출도가 비교적 적은 편이기는 했다. 제대로 된 당나라 초기의 복식의 형태를 보고 싶으면 드라마 대당영요 참조.[5] 소의책봉식을 황후책봉식으로 착각했던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6] 당태종에게 말을 다루는 것에 대해 잔인하게 말하며 당태종이 무관을 모욕한 것을 돌려깠다. 그 때문에 당태종은 비상함을 알아차리지만 총애하지 않았는데, 자기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낀 것 같다.[7] 특히 드라마의 전체 의상 3천벌 중에서 무미랑의 의상이 260벌에 달한다.[8] 동궁의 여주인공 팽소염도 이곳 소속이라 동궁도 마찬가지로 이 제작사에서 제작이 되었다. 하지만 판빙빙은 이 회사의 주주이기까지 하여 사실상 판빙빙의 입김이 많이 작용되는 소속사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9] 실제로 판빙빙은 종종 드라마나 영화 제작과정에서 제작진들에게 자신의 비중을 쓸데없이 늘려달라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중화권 연예인으로도 악명이 높은데, 이 때문에 한국의 곽재용 감독이 영화 양귀비: 왕조의 여인를 제작할 때도 똑같은 현상이 벌어져 결국 도중에 하차하고 장예모가 대신에 메가폰을 잡았을 정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곽재용 감독과 기자간담회를 가졌을 때 30분이나 지각하는 추태를 보였던 것은 덤.[10] '충용'까지 올라간 것은 확실하고 당태종 사후 추존되어서 현비인것인지 당태종이 현비로 올려준 것인지는 조금 불분명하다.[11] 당나라 의상을 모르던 사람들은 당나라 시대 여성들이 상당히 야하게 입었다는 사실(기본적으로 전신을 꽁꽁 싸매는 경향이 있는 한푸나 치파오, 한복, 기모노와 당나라 여성복을 비교해보면 굉장히 야해보이긴 한다.)에 충공깽 상태를 경험했다고 카더라. 원래 당나라가 외국 문물을 개방적으로 수용해서 여성들도 대담하고 개방적인 복장을 입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지만.[12] 당시 당나라에서는 비녀를 위주로 착용했지 종의로 만든 장신구는 절대 착용하지 않았다.[13] 그러니깐 후궁책봉 인데도 거의 황후의 의상 뺨칠정도로 화려하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