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개
荀愷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위와 서진의 관료로 자는 무백(茂伯). 어릴 때의 자는 호자(虎子). 아버지는 순욱의 손자 순익이고 어머니는 사마의의 딸 남양공주이다. 즉 순개는 순욱의 증손자이자 사마의의 외손자이다.
어릴 때 총명해 사마의가 그 그릇을 기특하게 여겨 호자라는 자를 지어줬다. 하증, 진태 등과 친했다고 하며, 아버지 순익이 죽자 그 뒤를 잇는다.
263년의 촉의 정벌 때는 종회를 따라 종군하여 1만 명을 이끌고 장빈이 5천 명으로 지키는 한성을 포위했다.[1] 함희 연간(264~265), 배송지의 주석에 따르면 이 때 정서대장군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태강 연간(280 ~ 289)에 사예교위로 있을 때 왕개의 권유로 도관을 통해 견수[2] 가 밤 중에 도로에서 고평국의 수사인 전흥의 처를 수레에 태웠다고 견수를 모함했다.
또한 무무[3] 와 교제하려고 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무무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하며, 이 일로 인해 291년에 상서복야를 지내고 있을 때 양준이 주살되자 무무가 양준의 이종아우이므로 양준의 무리라 모함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또한 사마황과 함께 무도황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모의를 했으므로 존호를 깎아내려 폐위시키고 금용성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패퇴하는 종회를 추격하는 노손을 쏘아죽여 종회를 구하는 업적을 세운다. 묘하게 무관 스타일? 그런데 역사에서와는 달리 장수가 아니라 일개 병졸로 나온다. 당연히 순욱의 증손 얘기는 나오지도 않고.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8, 삼국지 9에 등장하는데 노손을 쏘아죽였기 때문인지 일러스트는 화살을 등에 매고 있는 모습이다. 병법이 기사, 연사, 정란, 충차가 있어서 공성전에 쓸만하다. 능력치는 55/75/67/72로, 순욱의 증손자라는 점이 고증되지 않은 것치곤 이상하리만치 정치와 지력이 제법 되는 편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호오즈키의 냉철의 나스비로 등장. 위관의 부하 중 하나로 나왔으며, 위관이 호오즈키로 패러디 되었기 때문에 옥졸 중 하나로 패러디된 듯 하다.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삼국시대의 위와 서진의 관료로 자는 무백(茂伯). 어릴 때의 자는 호자(虎子). 아버지는 순욱의 손자 순익이고 어머니는 사마의의 딸 남양공주이다. 즉 순개는 순욱의 증손자이자 사마의의 외손자이다.
어릴 때 총명해 사마의가 그 그릇을 기특하게 여겨 호자라는 자를 지어줬다. 하증, 진태 등과 친했다고 하며, 아버지 순익이 죽자 그 뒤를 잇는다.
263년의 촉의 정벌 때는 종회를 따라 종군하여 1만 명을 이끌고 장빈이 5천 명으로 지키는 한성을 포위했다.[1] 함희 연간(264~265), 배송지의 주석에 따르면 이 때 정서대장군으로 승진했다고 한다.
태강 연간(280 ~ 289)에 사예교위로 있을 때 왕개의 권유로 도관을 통해 견수[2] 가 밤 중에 도로에서 고평국의 수사인 전흥의 처를 수레에 태웠다고 견수를 모함했다.
또한 무무[3] 와 교제하려고 했지만 이를 거부당하자 무무에게 원한을 품었다고 하며, 이 일로 인해 291년에 상서복야를 지내고 있을 때 양준이 주살되자 무무가 양준의 이종아우이므로 양준의 무리라 모함해 그를 죽게 만들었다. 또한 사마황과 함께 무도황후가 사직을 위태롭게 모의를 했으므로 존호를 깎아내려 폐위시키고 금용성에 보내야 한다고 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패퇴하는 종회를 추격하는 노손을 쏘아죽여 종회를 구하는 업적을 세운다. 묘하게 무관 스타일? 그런데 역사에서와는 달리 장수가 아니라 일개 병졸로 나온다. 당연히 순욱의 증손 얘기는 나오지도 않고.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8, 삼국지 9에 등장하는데 노손을 쏘아죽였기 때문인지 일러스트는 화살을 등에 매고 있는 모습이다. 병법이 기사, 연사, 정란, 충차가 있어서 공성전에 쓸만하다. 능력치는 55/75/67/72로, 순욱의 증손자라는 점이 고증되지 않은 것치곤 이상하리만치 정치와 지력이 제법 되는 편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호오즈키의 냉철의 나스비로 등장. 위관의 부하 중 하나로 나왔으며, 위관이 호오즈키로 패러디 되었기 때문에 옥졸 중 하나로 패러디된 듯 하다.
[1] 한성은 함락되지 않았고 유선이 항복한 후에야 종회에게 항복했다. 애당초 종회가 순개와 이보에게 적의 2배만을 남겨 포위해놓고 본대는 검각으로 돌입했으니, 이 둘의 전략 목표는 성을 함락시키는 게 아니었을 것 같다.[2] 견초의 손자다[3] 장료의 호군이였던 무주의 삼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