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오 이글스
1. 소개
과거 대만 프로야구 리그 소속이었던 팀으로, 창단 이후 점차 성적을 높여가며 5년차에 처음으로 타이완 시리즈에 진출하기까지 했으나, 타이완 시리즈 진출 결정 직후에 '''대형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며 순식간에 몰락함과 동시에 해체되고 만 팀이었다.
2. 역사
2.1. 창단~1997년 전기리그
1990년 '''블랙 이글스(黒鷹棒球隊)'''라는 이름의 아마추어 야구단으로 창단했으며, 1991년 중국시보의 후원을 받게 되면서 '''스바오 이글스(時報鷹)'''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국대 멤버들을 모아서 최종적으로 1993년에 본격적으로 프로야구단으로 전향하고 같은 해 창단한 줜궈 베어스와 함께 대만 프로야구 리그에 합류했다.
창단 첫 해인 1993년엔 신생팀의 한계로 5위에 머물렀지만 이후 점차 성적을 높이며 다음해부터 2년 연속 3위를 기록함과 동시에 1996년엔 56승 41패 3무, 승률 .577의 호성적을 기록하면서 리그 2위를 달성[3] 했다. 또한 메이저 신문사였던 모기업 중국시보의 버프를 받아서 꽤나 홍보 효과가 괜찮았다.[4]
창단 이후로 계속해서 성적을 올린 끝에, 5년차인 1997년 시즌에 30승 16패 2무, 승률 .652의 경이로운 성적으로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하며 처음으로 타이완 시리즈 진출에 성공한다. '''이대로 상승가도를 계속해서 달릴 줄 알았지만...'''
2.2. 1997년 후기리그, 그리고 해체 : 승부조작이 순식간에 불러온 비참한 결말
1997년 전기리그 직후, '''소속 선수들의 대다수가, 심지어 대만 국적의 선수들은 단 2명만 빼고 전원(!) 연루된''' 대형 '''승부조작''' 사건이 터저버리고 만다. 이것이 대만 프로야구 리그의 승부조작 암흑기의 본격적인 스타트를 끊은[5] '''검은 독수리 사건'''이다.
이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이 거의 다 제명 처분을 받고 퇴출되면서 처음으로 전기리그 우승의 영광을 거머쥐었던 팀은 한순간에 막장으로 추락해버렸다. 스바오 이글스는 황급히 신인 선수들을 모집함과 동시에 다른 구단에서 선수들을 임대해 와서 겨우 선수단을 메꿨지만, 이렇게 급조한 선수단으로 일이 제대로 풀릴 리가 없었기에 결국 이해 후기리그에서 통합우승을 노리긴 커녕 연전연패를 거듭했고 급기야 시즌 도중 감독이 교체되는 파행 끝에 11승 35패 2무, '''승률 .239'''의, 전기리그 때 그렇게 잘나가던 팀이 맞나 싶을 정도의 처참한 성적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후 치뤄진 타이완 시리즈에서도 결국 후기리그 우승팀 웨이취안 드래곤스에게 2승 4패로 패퇴하며 쓸쓸하게 시즌을 마감했다. 사실 구단이 개막장이 된 판국에 시리즈 스윕을 당하지 않고 2승이라도 거둔 게 용한 지경이지만.
그 해 시즌 종료 뒤 스바오 이글스는 승부조작의 책임을 물어 연맹으로부터 1년간의 리그 참가 정지 처분을 받았고, 결국 무너진 선수단과 승부조작의 오명, 참가 정지 처분을 견디지 못한 구단은 1998년 9월 16일, 해체를 선언하며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3. 역대 감독
4. 역대 성적
상술했듯이 1998년 시즌은 승부조작에 대한 처벌로 1년간의 리그 정지 처분을 받았고, 시즌 종료 후 해체되었다.
5. 기타
- 연고지는 일단 핑둥현이긴 하지만, 가오슝에 연고지를 같이 두고 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 스바오 이글스가 해체된 뒤에도, TML의 가오핑 레이공라는 구단이 핑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후 두 리그가 합병되어 라뉴 베어스(現 라미고 몽키스)로 2011년까지 가오슝에 자리잡고 있었다.
[1] 마지막 리그 참가는 1997년 시즌.[2] 가오슝 시내에 위치한 옛 야구장. 아이허 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금은 관중석을 대거 축소했다.[3] 하지만 전후기리그 전부 퉁이 라이온즈, 웨이취안 드래곤스에게 밀려 2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타이완 시리즈 진출엔 실패했다.[4] 스바오(時報)라는 단어 자체가 신문이라는 뜻으로, 모기업은 국민당 독재시절에는 1등 신문이었으나 이후 대기업에 인수되었고 메이저 일간지 중 가장 판매부수가 떨어진다. [5] 사실 승부조작 자체는 1995년 싼상 타이거스 소속 선수들이 저지른 '''검은 호랑이 사건'''이 먼저 터졌지만, 이 사건은 구단 관계자들과 후원회, 팬들이 쉬쉬하면서 조용히 사건을 덮어버리는 바람에 꽤 오랫동안 알려져 있지 않았다.[6] 슝디 엘리펀츠와 동률로 공동 3위를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