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벤 트베스케그
노르드어: Sveinn tjúguskegg (스베인 튜구스케그)
고대 영어: Sƿegn (스웨인)
영어: Sweyn Forkbeard (스웨인 포크비어드)
덴마크어: Svend Tveskæg (스벤 트베스케그)
노르웨이어: Svein Tjugeskjegg (스베인 튜게셰그)
하랄 1세의 아들로 960년에 출생했다.
스벤은 980년대에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은 성공해 986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노르웨이는 호콘 시구르손의 통치를 받았다.
하지만 995년 올라프 트뤼그바손이 노르웨이를 침공해 호콘 시구르손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스벤은 이에 맞서 호콘의 아들이었던 에어리크, 스웨덴 국왕 '올로프 솃코눙'[1] 등을 모아 동맹군을 결성했다.
스벤은 다시금 노르웨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서기 1000년 올라프 1세와 전쟁을 벌였고, 스볼데르 전투에서 올라프 1세를 무찌르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뒤 노르웨이 왕위를 회복했다. 스웨덴의 왕 올로프는 자신이 받은 영토를 자신의 사위였던 스웨인 호콘손[2] 에게 양보해 에어리크, 스웨인, 스벤이 분할통치를 하지만 명목상 에어리크, 스웨인은 스벤에게 충성한다.
한편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군사 압력을 가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는데 1002년 봄에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와 평화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인 1002년 11월 13일 '성 브릭티우스' 축일에 데인인 정착민에 대한 학살[3] 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1003년 ~ 1004년에 걸쳐 잉글랜드에 대대적인 원정을 실시한다. 그 후 스벤은 잉글랜드에 대해 10여 년간 간헐적인 침략과 돈을 받고 일시적인 휴전을 거듭한다.
그러던 중 1013년에 아예 잉글랜드 왕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하는데 이 원정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잉글랜드 전체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스벤에게 패한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망명한다.
이 승리로 스벤은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에 걸친 대 제국의 초석을 닦게 되지만 이듬해인 10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사망 후 올라프 2세에 의해 노르웨이가 단독 통치가 행해지며 이탈하고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 왕위에 복위 하면서 제국은 축소되지만 차남 크누트 대왕에 의해 재정복이 이루어지고, 104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지되게 된다.
성우: 스고 타카유키
잉글랜드 왕국이 돌연 바이킹 이주민들을 기습해 몰살하고 그 희생자중에는 자신의 여동생(한마디로 덴마크 왕족)이 끼어있자 이를 명분으로 수만 명의 원정군을 파병해 잉글랜드 정복전쟁을 일으킨다. 약 10년 만에 잉글랜드 정복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두 아들로 인해 차기 후계문제로 국론을 분열되자 이중 장남 해럴드가 더 후계자로 걸맞다고 판단, 차남 크누트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현군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직접 손을 쓰기보단 자연스러운 사망(전장에서의 전사라든지...)으로 보이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지만 그 와중에 크누트는 각성해 버렸고 이 때문에 조금은 서두르다가 크누트의 신하인 아셰라드의 역린을 건드려 살해당한다.
고대 고대 영어: Sƿegn (스웨인)
영어: Sweyn Forkbeard (스웨인 포크비어드)
덴마크어: Svend Tveskæg (스벤 트베스케그)
노르웨이어: Svein Tjugeskjegg (스베인 튜게셰그)
1. 개요
2. 일생
2.1. 960, 출생
하랄 1세의 아들로 960년에 출생했다.
2.2. 980년 21세, 아버지에 대한 반란으로 왕위에 오름
스벤은 980년대에 아버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고 반란은 성공해 986년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노르웨이는 호콘 시구르손의 통치를 받았다.
2.3. 995년 36세, 노르웨이의 반란
하지만 995년 올라프 트뤼그바손이 노르웨이를 침공해 호콘 시구르손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스벤은 이에 맞서 호콘의 아들이었던 에어리크, 스웨덴 국왕 '올로프 솃코눙'[1] 등을 모아 동맹군을 결성했다.
2.4. 1000년 41세, 노르웨이의 탈환
스벤은 다시금 노르웨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서기 1000년 올라프 1세와 전쟁을 벌였고, 스볼데르 전투에서 올라프 1세를 무찌르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뒤 노르웨이 왕위를 회복했다. 스웨덴의 왕 올로프는 자신이 받은 영토를 자신의 사위였던 스웨인 호콘손[2] 에게 양보해 에어리크, 스웨인, 스벤이 분할통치를 하지만 명목상 에어리크, 스웨인은 스벤에게 충성한다.
2.5. 1003년 ~ 1004년, 44세 ~ 45세, 잉글랜드 원정
한편 잉글랜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군사 압력을 가해 이득을 취하고 있었는데 1002년 봄에 잉글랜드 국왕 애설레드와 평화 협정을 맺는다. 하지만 이듬해인 1002년 11월 13일 '성 브릭티우스' 축일에 데인인 정착민에 대한 학살[3] 이 벌어졌고, 이에 대한 복수로 1003년 ~ 1004년에 걸쳐 잉글랜드에 대대적인 원정을 실시한다. 그 후 스벤은 잉글랜드에 대해 10여 년간 간헐적인 침략과 돈을 받고 일시적인 휴전을 거듭한다.
2.6. 1013년 54세, 잉글랜드 대원정
그러던 중 1013년에 아예 잉글랜드 왕위를 취득할 목적으로 대대적인 원정을 감행하는데 이 원정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잉글랜드 전체의 왕으로 인정받게 된다. 스벤에게 패한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로 망명한다.
2.7. 1014년 55세, 사망
이 승리로 스벤은 덴마크, 노르웨이, 잉글랜드에 걸친 대 제국의 초석을 닦게 되지만 이듬해인 10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사망 후 올라프 2세에 의해 노르웨이가 단독 통치가 행해지며 이탈하고 애설레드 2세가 잉글랜드 왕위에 복위 하면서 제국은 축소되지만 차남 크누트 대왕에 의해 재정복이 이루어지고, 1042년까지 스칸디나비아 제국이 유지되게 된다.
3. 자손
- 크누트 대왕
- 에스트리드 스벤스데더를 딸로 뒀는데 토르길의 아들인 울프 야를과 결혼해 덴마크 에스트리드 왕조의 스벤 2세 에스트리드센을 낳는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
성우: 스고 타카유키
잉글랜드 왕국이 돌연 바이킹 이주민들을 기습해 몰살하고 그 희생자중에는 자신의 여동생(한마디로 덴마크 왕족)이 끼어있자 이를 명분으로 수만 명의 원정군을 파병해 잉글랜드 정복전쟁을 일으킨다. 약 10년 만에 잉글랜드 정복완료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두 아들로 인해 차기 후계문제로 국론을 분열되자 이중 장남 해럴드가 더 후계자로 걸맞다고 판단, 차남 크누트를 죽이려 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현군으로 보이고 싶었기에 직접 손을 쓰기보단 자연스러운 사망(전장에서의 전사라든지...)으로 보이기 위해 상황을 조성하지만 그 와중에 크누트는 각성해 버렸고 이 때문에 조금은 서두르다가 크누트의 신하인 아셰라드의 역린을 건드려 살해당한다.
[1] 한 설에 따르면 스벤은 올로프의 어머니 시그리드 스토라다와 결혼했다 하는데 확실치는 않다.[2] 에어리크 호콘손의 형제[3] 만화 빈란드 사가(만화) 2권 초반에 묘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