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설레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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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고대 영어: Æþelrǣd Unræd (애델래드)
영어: Æthelred the Unready (애설레드)
라틴어: Ethelredus II (에텔레두스 2세)
애설레드 2세는 10세기 후반 ~ 11세기 초반의 잉글랜드 왕국 국왕이다. 왕위 후반부에 덴마크인들이 잉글랜드를 점령했었기 때문에 왕위에 몇개월 정도의 공백기가 있다. 즉, 1013년 말에 쫓겨났다가 다음 해인 1014년 봄에 다시 즉위했다. 재즉위 후에는 얼마 통치하지 못했고, 2년 후인 1016년에 숨을 거두었다.
별칭은 Aethelred the Unready. 우리 말로는 "준비 안된 왕" 애설레드 정도 되겠다. 그러나 이는 고대 영어가 근대 영어로 바뀌면서 잘못 전해진 것이다. 원래는 Æthelred Unræd 라 불렸는데, Unræd는 고대 영어에서 "나쁜 조언자" 쯤의 뜻이다. 당시 상황에 맞게 의역하자면 "제대로 조언을 못 받은(unadvised)" 정도의 뜻. 이 Unræd 가 근대 영어의 Unready 로 잘못 전해지면서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변질되었다.
이전 왕인 순교왕 에드워드와는 배다른 형제 사이. 에드워드가 암살(!) 당한 후 그 뒤를 이어 왕이 된 것이다. 피살 당시 에드워드는 15, 16세였고, 애설레드는 더욱 어려서 약 10세, 많아 봐야 13세였다.
2. 덴마크인들과의 투쟁
애설레드 왕의 역사는 덴마크인들과의 투쟁의 역사다. 당시 덴마크인들이 끊임없이 잉글랜드를 침략했고, 애설레드는 일생동안 피터지게 그들과 싸웠다. 심지어 그가 죽고 나서는 그의 아들과 덴마크 왕의 아들이 대를 이어가며 싸웠다. 근데 적 왕의 아들이 엄청 쎈 사람이라... 크누트 대왕 참고
아버지인 에드거 1세가 덴마크인들을 제압해놨기 때문에 애설레드가 어렸을 때까진 평화로웠다. 그러나 980년에 들어서 덴마크인들이 작은 무리를 이루어 계속해서 잉글랜드 해안을 침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앵글로색슨 족과 노르만 족과의 관계가 나빠졌다. 원래 노르만 족은 바이킹 족이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역에 정착한 것인데, 당시까지도 노르만 족은 스칸디나비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덴마크인들과 동질감을 갖고 있었고, 덴마크인과 색슨 족의 전투가 잦아지다 보니 색슨 족에 적대감을 갖게 된 것이다.
덴마크인들의 침략은 점점 거세졌고, 991년, 잉글랜드는 말던(Maldon)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크게 패했다. 그 결과 잉글랜드는 덴마크로 조공을 보내게 되었다. 994년에 덴마크 주력 부대가 노르웨이로 떠나 평화가 잠시 찾아왔으나 997년 덴마크는 다시 침략했다. 1001년에도 덴마크가 침략해서 잉글랜드의 서 서식스가 털렸으며, 1002년 봄에 애설레드는 돈을 주고 평화 협정을 맺었다. 반면 그도 1002년 11월 13일에 덴마크 정착민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다. (성 브릭티우스 축일의 학살)
그 후로도 침략과 격퇴, 그리고 조공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1013년에 덴마크 왕 스벤 트베스케그가 아예 왕위를 뺏을 생각을 가지고 잉글랜드를 침략했다. 뛰어난 지휘관이었던 스벤은 그해 말 잉글랜드를 정복하는데 성공한다. 애설레드는 노르망디로 튀었고 스벤은 1013년 크리스마스에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스벤은 불과 몇달 후인 1014년 2월에 죽었다. 그를 따르던 덴마크 세력들은 당연히 스벤의 아들인 크누트 대왕을 추대했지만, 잉글랜드의 귀족들은 도망가 있던 애설레드 왕을 추대했다. 뭐 잉글랜드 귀족들이 민족 정서라든가 애국심에서 애설레드 왕을 지지한 것은 아니고, 단지 그들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지지한 것이었다. 그들은 애설레드에게 사신을 보내 협상을 했다.
영국 역사에 보면 왕과 신하간의 협약을 맺은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것이 문서로 남겨진 최초의 협약이라 하겠다."님이 왕 하셈. 우리가 지지해 드림. 대신 님은 우리에게 충성(!)해야 함. 우리 맘에 안드는 제도들도 몽땅 바꿔주시고. 아, 전에 님한테 깝친 애들도 용서해 주셈. 그 대신 님은 왕 되는 거임. ㅇㅋ?"
귀족들의 세를 업은 애설레드는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1014년 4월, 미처 준비를 못 마친 크누트는 아무런 전투 없이 잉글랜드를 떠났다. 남아 있던 그의 병력은 애설레드에게 쳐발렸다. 하지만 1015년 8월, 크누트는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당연히 잉글랜드 군과 전투를 벌였다. 그는 승승장구하여 몇달새 잉글랜드 대부분을 차지했다.
1016년 4월 23일, 애설레드 왕이 사망했다. 왕위는 아들 에드먼드에게 계승되었고, 그는 대를 이어 덴마크인들과 싸웠다.
3. 이모 저모
키 크고 잘 생겼으며 우아한 예의범절을 지녔다고 한다.
두번 결혼 했는데, 첫번째 아내 사이의 아들도 왕이 되었고, 두번째 아내 사이의 아들도 왕이 되었다 . 각각 에드먼드 2세와 참회왕 에드워드.
두번째 아내는 그가 죽은 후, 적이었던 크누트 대왕과 재혼했다(...) 그와 낳은 아들도 역시 잉글랜드 왕이 되었다 . 하레크누드 참고.
영미법의 중요 요소인 배심원 제도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인지에 대한 논란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