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누트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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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 제국이라 불리기도 한 그의 영토. 붉은색이 직할 영토이며 주황색은 조공국, 노란색은 동맹국이다.
고대 노르드어: Knútr inn ríki (크누트 대왕)
고대 영어: Cnut se Micela (크누트 대왕)
덴마크어: Knud den Store (크누드 대왕)
노르웨이어: Knut den mektige (크누트 대왕)
영어: Cnut the Great (크뉴트 대왕)
중세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의 대왕.
덴마크의 왕 스벤 트베스케그의 차남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잉글랜드 정복전에서 맹렬히 활약하였다. 101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1015년에 옛 덴마크 바이킹이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것을 명분으로 잉글랜드를 다시 공격하여 에드먼드 2세를 몰아내고 왕위를 손에 넣는다.
뒤를 이어 형 하랄 2세가 사망하자 덴마크의 왕위도 겸직하게 된다. 크누트는 덴마크 국왕 크누트 2세로 즉위한다. 크누트 1세가 아닌 이유는 고름 전의 전설 속 군주들 중 하르다크누트(또는 크누트)[2] 라는 왕이 이미 있었기 때문.
그 뒤에, 1028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일부, 스코틀랜드의 일부도 정복한다. 이로서 당대에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걸쳐있고 북해를 '''마레 노스트룸'''[3] 으로 삼다시피 한 '''앵글로-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하지만 1035년 크누트가 4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제국은 분열되어 당대에 그치고 만다. 아들이 셋 있었으나 세 아들 모두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는데, 막내 아들인 하레크누드는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받는 데 성공한다.
아직 북유럽의 기독교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의 전통에 따라 왕비가 두 명이 있었다. 첫 번째 아내는 잉글랜드 귀족인 Ælfgifu로 장남 잉글랜드의 해럴드 1세와 차남 노르웨이의 스베인[4] 을 낳았고, 두 번째 아내는 노르망디의 엠마로 삼남인 덴마크의 하레크누드의 어머니였다.
그의 영어 이름 Canute에서 온 단어인 Canutism은 변화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려는 '''완고한 태도'''를 뜻하는데, 유래가 된 일화가 있다. 크누트가 신하들을 데리고 어느 바닷가에 갔는데, 파도가 밀려오는 데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파도에게 자신의 땅을 깎아내는 것을 꾸짖었고, 내 발과 옷을 적시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파도는 계속 밀려왔고, 크누트는 파도조차 멈출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성우는 오노 켄쇼. 실존인물로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벤왕의 차남이자 덴마크 제2왕자. 래그널이 양육을 전담했으며 바이킹들의 왕인 덴마크왕의 자식답지 않게 여리고 소심하게 자랐다. 적어도 왕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덴마크 제2왕위계승권을 가진 그의 존재자체가 덴마크의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부왕인 스벤왕은 크누트보다 더 왕위에 어울리는 장남 해럴드의 후계구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차남인 크누트를 제거하려 한다. 이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런던공략의 지휘관으로 임명,
4천의 군세를 맡겼으나 이 군대는 토르켈 부대에 의해 괴멸되었고 크누트는 후견인인 래그널과 가정교사인 빌바르도 신부와 함께 포로가 된다. 이후 그의 신병을 둘러싸고 각자 목적을 가진 세력들의 다툼에 휘말려 든다. 아셰라드는 토르켈에게 잡혀있던 크누트를 빼앗아와 스벤왕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래그널의 과보호 때문에 타인과 제대로 말도 못하고 왕족의 위엄도 전혀 없었는데, 이 혼란 중에 각성하여, 진정한 왕족으로 거듭난다. 오히려 자신을 서로 갖기 위해 다투는 두 세력, 아셰라드와[5] 토르켈 세력을 모두 자신의 휘하에 거두고는 부왕을 찾아가 간다.
아셰라드의 계책[6] 에 의해 부왕 사후 잉글랜드 통치대행을 선언하며 군권을 장악, 3년 만에 잉글랜드 정복을 완료한다.
덤으로 아셰라드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칼을 휘둘러 뺨에 상처를 남긴 토르핀 카를세프니를 노예로 파는 것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원래는 왕자 살해미수죄[7] 로 바로 죽일 수도 있고 갖은 고문 끝에 공개처형을 당할 만한 상황에서.
이후의 행보는, 반대 세력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원정을 다니면서, 이전의 유약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 냉혹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왕권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지 않거나 항복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만, 반항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도 가차없이 제거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형(!)까지도 제거해 자식없는 형으로부터 영토를 물려받고 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자신에게 충성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케틸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어거지 누명을 씌워 제거하려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갈고 닦아서 친위대 출신인 토르길 같은 강력한 전사의 기습공격도 막아낼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참고로 크누트를 죽은 척하려는 작전을 짤 때 그의 외모가 여성스러워서 그를 닮은 여자 노예를 이용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났을 때 모습은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길러서 여성스러운 면이 확 사라졌다.
왕이니 만큼 토르켈을 부하로 부리고 있지만, 둘의 관계는 살짝 묘하다. 토르켈이 크누트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진정한 왕의 길을 지켜보기 위함이다. 토르켈이 다들 보는 앞에서 아직 왕도 아닌 애송이라고 꾸짖는 장면은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도 있음을 알려준다. 크누트도 저런 토르켈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토르켈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왕다운 모습의 인격을 각성하는 부분이 좀 난해한데, 사실 깊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일단 기독교적 관점에서 사랑이란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입장을 내 입장과 같은 가치를 갖고 대하는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이 어째서 가치있는 가르침인가 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이 일어나거나 입장이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힘과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싸움은 비효율과 비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매우 불행하게 만든다. 크누트가 보는 세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 그 자체로써, 끝없이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힘을 통한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이득을 추구한다.
'사랑'은 이러한 싸움을 피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다. 상대가 나의 득실을 존중해주고 또한 내가 상대의 득실을 존중한다는 상호 신뢰가 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싸우기보단 협력하여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 전체 규모에서 실현된다면 사회는 끝없는 파괴 대신 끝없는 번영을 이루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작중에서 크누트 왕자와 빌바르도 신부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차별없이 싸우거나 빼앗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를 사랑하여 그를 위해 다른 것을 짓밟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며, 무생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차별은 가능하지만 사랑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래서 끝없이 서로 싸우고 빼앗는다. 그래서 그가 본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크나큰 비극이므로, 크누트 왕자는 모든 싸움에서 이겨 절대자로써의 힘을 갖춤으로써 무의미한 싸움의 종결을 강제하고자 마음먹는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지상 낙원의 실현이다.
하지만 만화 내에서 너무 간략하게 설명하였고 무엇보다 그 후 크누트가 자신의 지상낙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략과 권모술수들에 의해서 그 자신도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상태. 자신의 형을 독살하였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흔들림없는 모습을 겉으로는 보였지만 내면으로서는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상을 이루고자 떠나는 토르핀을 보고 오랜만에 한번 시원하게 웃는다. 이후 잉글랜드에 주둔 중인 덴마크 군을 일부만 남기고 해산, 올바른 통치를 하면서 잉글랜드 인으로부터도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아 충성을 받게 된다. [8]
북해 제국이라 불리기도 한 그의 영토. 붉은색이 직할 영토이며 주황색은 조공국, 노란색은 동맹국이다.
고대 노르드어: Knútr inn ríki (크누트 대왕)
고대 영어: Cnut se Micela (크누트 대왕)
덴마크어: Knud den Store (크누드 대왕)
노르웨이어: Knut den mektige (크누트 대왕)
영어: Cnut the Great (크뉴트 대왕)
1. 개요
중세 스칸디나비아와 잉글랜드의 대왕.
1.1. 일생
1.1.1. 즉위 전
덴마크의 왕 스벤 트베스케그의 차남으로서 아버지와 함께 잉글랜드 정복전에서 맹렬히 활약하였다. 101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1015년에 옛 덴마크 바이킹이 상당 부분을 지배했던 것을 명분으로 잉글랜드를 다시 공격하여 에드먼드 2세를 몰아내고 왕위를 손에 넣는다.
1.1.2. 치세
뒤를 이어 형 하랄 2세가 사망하자 덴마크의 왕위도 겸직하게 된다. 크누트는 덴마크 국왕 크누트 2세로 즉위한다. 크누트 1세가 아닌 이유는 고름 전의 전설 속 군주들 중 하르다크누트(또는 크누트)[2] 라는 왕이 이미 있었기 때문.
그 뒤에, 1028년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일부, 스코틀랜드의 일부도 정복한다. 이로서 당대에 영국에서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걸쳐있고 북해를 '''마레 노스트룸'''[3] 으로 삼다시피 한 '''앵글로-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1.3. 사망
하지만 1035년 크누트가 41세의 나이로 사망하자 제국은 분열되어 당대에 그치고 만다. 아들이 셋 있었으나 세 아들 모두 20대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였는데, 막내 아들인 하레크누드는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받는 데 성공한다.
1.2. 가족
아직 북유럽의 기독교화가 완전히 되지 않은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일부다처제의 전통에 따라 왕비가 두 명이 있었다. 첫 번째 아내는 잉글랜드 귀족인 Ælfgifu로 장남 잉글랜드의 해럴드 1세와 차남 노르웨이의 스베인[4] 을 낳았고, 두 번째 아내는 노르망디의 엠마로 삼남인 덴마크의 하레크누드의 어머니였다.
1.3. 기타
그의 영어 이름 Canute에서 온 단어인 Canutism은 변화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려는 '''완고한 태도'''를 뜻하는데, 유래가 된 일화가 있다. 크누트가 신하들을 데리고 어느 바닷가에 갔는데, 파도가 밀려오는 데에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파도에게 자신의 땅을 깎아내는 것을 꾸짖었고, 내 발과 옷을 적시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파도는 계속 밀려왔고, 크누트는 파도조차 멈출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4.1. 빈란드 사가에서의 모습
성우는 오노 켄쇼. 실존인물로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스벤왕의 차남이자 덴마크 제2왕자. 래그널이 양육을 전담했으며 바이킹들의 왕인 덴마크왕의 자식답지 않게 여리고 소심하게 자랐다. 적어도 왕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덴마크 제2왕위계승권을 가진 그의 존재자체가 덴마크의 국론을 분열시켰으며 부왕인 스벤왕은 크누트보다 더 왕위에 어울리는 장남 해럴드의 후계구도를 안정시키기 위해 차남인 크누트를 제거하려 한다. 이 때문에 승부가 나지 않는 런던공략의 지휘관으로 임명,
4천의 군세를 맡겼으나 이 군대는 토르켈 부대에 의해 괴멸되었고 크누트는 후견인인 래그널과 가정교사인 빌바르도 신부와 함께 포로가 된다. 이후 그의 신병을 둘러싸고 각자 목적을 가진 세력들의 다툼에 휘말려 든다. 아셰라드는 토르켈에게 잡혀있던 크누트를 빼앗아와 스벤왕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래그널의 과보호 때문에 타인과 제대로 말도 못하고 왕족의 위엄도 전혀 없었는데, 이 혼란 중에 각성하여, 진정한 왕족으로 거듭난다. 오히려 자신을 서로 갖기 위해 다투는 두 세력, 아셰라드와[5] 토르켈 세력을 모두 자신의 휘하에 거두고는 부왕을 찾아가 간다.
아셰라드의 계책[6] 에 의해 부왕 사후 잉글랜드 통치대행을 선언하며 군권을 장악, 3년 만에 잉글랜드 정복을 완료한다.
덤으로 아셰라드의 죽음에 이성을 잃고 자신에게 칼을 휘둘러 뺨에 상처를 남긴 토르핀 카를세프니를 노예로 파는 것으로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원래는 왕자 살해미수죄[7] 로 바로 죽일 수도 있고 갖은 고문 끝에 공개처형을 당할 만한 상황에서.
이후의 행보는, 반대 세력에 대한 잔혹한 숙청과 원정을 다니면서, 이전의 유약한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는 냉혹한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며, 왕권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반대하지 않거나 항복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베풀지만, 반항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득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충성하는 이도 가차없이 제거하는데 하물며 자신의 형(!)까지도 제거해 자식없는 형으로부터 영토를 물려받고 형에게 조공을 바치다가 자신에게 충성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케틸의 막대한 재산을 노리고 어거지 누명을 씌워 제거하려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갈고 닦아서 친위대 출신인 토르길 같은 강력한 전사의 기습공격도 막아낼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참고로 크누트를 죽은 척하려는 작전을 짤 때 그의 외모가 여성스러워서 그를 닮은 여자 노예를 이용했다. 하지만 3년이 지났을 때 모습은 짧은 머리에 수염을 길러서 여성스러운 면이 확 사라졌다.
왕이니 만큼 토르켈을 부하로 부리고 있지만, 둘의 관계는 살짝 묘하다. 토르켈이 크누트를 따르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진정한 왕의 길을 지켜보기 위함이다. 토르켈이 다들 보는 앞에서 아직 왕도 아닌 애송이라고 꾸짖는 장면은 단순한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도 있음을 알려준다. 크누트도 저런 토르켈을 인정하면서 한편으로 토르켈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한다.
1.4.1.1.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그에 따른 각성
사랑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 왕다운 모습의 인격을 각성하는 부분이 좀 난해한데, 사실 깊이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이다.
일단 기독교적 관점에서 사랑이란 '나 아닌 다른 존재의 입장을 내 입장과 같은 가치를 갖고 대하는 것'이다. 이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잘 드러난다. 이것이 어째서 가치있는 가르침인가 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동물이어서,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희소한 자원을 두고 경쟁이 일어나거나 입장이 다른 상대를 만났을 때 힘과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들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싸움은 비효율과 비극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며, 관련된 모든 사람을 매우 불행하게 만든다. 크누트가 보는 세상은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 그 자체로써, 끝없이 싸움이 지속되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힘을 통한 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모두가 각자의 이득을 추구한다.
'사랑'은 이러한 싸움을 피하기 위한 매우 효율적인 대안이다. 상대가 나의 득실을 존중해주고 또한 내가 상대의 득실을 존중한다는 상호 신뢰가 있을 때, 두 사람은 서로 싸우기보단 협력하여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죄수의 딜레마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이 사회 전체 규모에서 실현된다면 사회는 끝없는 파괴 대신 끝없는 번영을 이루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작중에서 크누트 왕자와 빌바르도 신부가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란 차별없이 싸우거나 빼앗지 않고 아낌없이 주는 것을 말한다. 그들은 하나를 사랑하여 그를 위해 다른 것을 짓밟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이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며, 무생물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차별은 가능하지만 사랑은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래서 끝없이 서로 싸우고 빼앗는다. 그래서 그가 본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이는 크나큰 비극이므로, 크누트 왕자는 모든 싸움에서 이겨 절대자로써의 힘을 갖춤으로써 무의미한 싸움의 종결을 강제하고자 마음먹는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지상 낙원의 실현이다.
하지만 만화 내에서 너무 간략하게 설명하였고 무엇보다 그 후 크누트가 자신의 지상낙원을 이룩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략과 권모술수들에 의해서 그 자신도 점점 피곤하고 힘들어지는 상태. 자신의 형을 독살하였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흔들림없는 모습을 겉으로는 보였지만 내면으로서는 점점 썩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상을 이루고자 떠나는 토르핀을 보고 오랜만에 한번 시원하게 웃는다. 이후 잉글랜드에 주둔 중인 덴마크 군을 일부만 남기고 해산, 올바른 통치를 하면서 잉글랜드 인으로부터도 진정한 왕으로 인정받아 충성을 받게 된다. [8]
[1] 덴마크어로는 Knud,노르웨이어/스웨덴어로는 Knut[2] 크누트 왕조의 첫 번째 왕인 고름의 아버지라고 한다.[3] '우리들의 바다'라는 뜻의 라틴어. 원래는 지중해를 의미하는 단어로 로마 제국이 존재하던 시절엔 지중해에 맞닿은 모든 영토가 로마의 땅이었기에 지중해를 이렇게 불렀다.[4] 스베인 크누트손. 1030년에 아버지에 의해 노르웨이 국왕으로 임명되었으나 폭정을 펼쳐 금방 쫓겨났고 망누스 1세가 노르웨이의 왕위를 차지했다.[5] 당시 아셰라드 군단은 자멸하여, 모두 전멸, 아셰라드, 토르핀, 비요른만 남았다. 비요른도 중상을 입어 얼마 안가 사망하였다.[6] 처음부터 스벤왕의 암살을 계획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때를 기다리다가 스벤왕이 자신을 궁지로 몰자 미친 척하고 직접 스벤왕을 죽인 뒤 크누트에게 죽임을 당해 크누트의 왕위계승에 더욱 명분을 실어준다.[7] 그것도 직전에 국왕이 살해당한 바로 그 현장에서다.[8] 원래 크누트 왕이 많은 군대를 데려온 것은 잉글랜드 인들을 찍어누르기 위해서였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로 인해 오히려 잉글랜드 인들은 크누트 왕을 침략자로 보고 있었다. 거기다 크누트 왕은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 케틸 같은 유력한 부자들을 꼬투리를 잡아 턴 다음 그 재산을 몰수하는 식의 방법을 사용하려고 했었다. 즉, 부자들을 털어서 군사비를 충당하고 거기에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일석이조(?)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토르핀을 보고 느낀 바가 있었는지 군대를 해산하고 그만큼 세금을 낮추게 되자 오히려 잉글랜드 인들에게 환영을 받게 된 것. 그 대신 그간 군사력을 줄여 바이킹을 본격적으로 '''토사구팽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