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바 댐 붕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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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 7월 19일, 이탈리아 알프스 산맥 남단 트렌토(Trento) 자치현 스타바(Stava) 계곡에 있는 댐이 붕괴, 홍수가 발생하여 테세로 마을[1] 을 덮쳐 '''정확히 3분 29초만에 사망자 268명이 발생하고 건물 63곳, 다리 8개가 붕괴된 대참사이다.'''
스타바 댐이 있던 장소의 위경도 좌표는 아래와 같아서 구글어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46.322893°N, 11.494481°E'''
지금은 댐을 없애고 평탄화하여 건물을 세웠음을 구글어스에서 볼 수 있다.
2. 사고 전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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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마을에 있는 프레스타벨산에서 광물들이 발견된 이후, 주민들은 화학원료로 쓰이는 형석을 채굴하는 회사와 협력관계를 유지하였다. 형석을 채굴하느라 생긴 폐석[2] 들이 걸러지고 모여, 스타바 계곡에 계단 모양으로 30 m 높이인 댐 2개가 생겼다. 수십 년간 존재했으나 소나무 숲에 가려서 주민들 중에는 댐이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고, 댐이 있는 줄 아는 사람들도 위험하단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 댐에 폐석이 모이니 쌓인 양이 약 25만 리터였다. 저장된 폐석은 형석을 채굴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후 수력집진장치로 폐석에서 물만 분리하고, 흙과 모래로 댐을 좀더 견고하게 다지며 중앙에 파이프를 설치해 중앙의 액체를 서서히 빼내는 방법으로 20년간 25 m 이상 댐을 높였다.
1985년 7월 19일 오후 12시 22분 55초, '''댐이 무너졌다.''' 댐이 무너지자 진흙과 물 25만 리터가 계곡을 따라 3.5 km 밖에 있는 테세로 마을로 쓸려내려갔다. 굉음과 함께 진흙사태는 시속 90 km로 돌진하며 계곡에 자리잡았던 식당을 먼저 무너트린 뒤 마을을 덮쳐 가옥 20채 중 17채를 묻어버렸다. 흙더미가 계속 흘러내려 천 년간 이어진 다리까지 무너뜨리고 아비시오 강에 쏟아짐으로써 사태가 종결됐다.
이후 진흙 속에서 생존자들이 한두 명씩 나오자, 구급차와 사고를 간신히 피한 사람들이 생존자들을 구하였다. 부상자들은 임시로 만들어진 들것 등에 실려 병원에 이송되었다. 30분이 지나자 소방관, 구조대, 경찰들로 이루어진 7천여 명이 헬기 19대와 구급차 26대를 끌고 구조작업에 나섰으나 실종자 281명 중 생존자는 단 13명뿐이었다. 3주 후 구조작업이 끝나고 장례식이 열렸다.
남자 89명, 여자 120명, 어린이 59명이 진흙에 쓸려 사망자 총 268명이 발생했다.
3. 사고 원인
사고 당일, 지역 법원에서 정확한 원인규명을 시작했다.
처음엔 지진으로 인한 자연현상이라는 설이 나왔다. 댐 붕괴 전에 굉음이 들리고 땅이 흔들렸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있었고, 스타바가 있는 지역은 과거에도 지진이 자주 일어났다. 12시 22분 사고 당시에는 지진계에 30초 간격으로 거대한 진동 2번이 기록되어, 지진활동이 틀림없다고 생각하였으나, 동일지역의 다른 지진계에선 아무런 진동도 잡히지 않았다. 지진으로 보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았으므로 결국 지진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알프스 남부지역 광산에서 사용한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이 댐에 영향을 주고 무너뜨렸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후 스타바로부터 반경 31 km 내의 광산 3곳에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하고 폭파하면 지진계에 영향을 주는지 실험했으나, 지진계에는 아주 미미한 진동이 기록되었을 뿐이었다. 이후 지진계에 잡힌 것은 댐 2개가 무너지면서 발생한 진동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먼저 위에 있는 댐이 무너져 물과 모래, 진흙이 아랫댐에 쌓이면서 첫 진동이 발생, 갑자기 늘어난 양을 버티지 못한 아랫댐이 무너지면서 두 번째 진동이 발생한 것이다.
조사팀은 지진도 폭파도 원인이 아니면 댐 자체가 원인이라 보고 두 댐의 보수기록을 살펴보다가 놀라운 사항을 발견하였다. 사고 6개월 전에 댐 외벽에서 작은 산사태가 일어나 크기가 약 20m 쯤 되는 구멍이 생겨 물이 새어나왔다. 3월에 긴급보수를 할 때까지 구멍은 그대로 있었고, 5월에 추가보수를 하면서 두 댐에서 모두 물을 빼냈다. 이후 사고 4일 전에 댐을 재가동하였다. 조사팀은 윗댐에서 최소 6개월 전부터 붕괴가 시작되었단 판단에 도달하고, 그 부분을 자세히 조사하였다. 이후 댐에 고인 물이 외벽을 적셔 댐이 조금씩 무너져내렸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사고 전 66년간 기상기록을 알아본 결과, 매년 7~8월에 알프스를 통과하는 구름은 항상 비를 뿌리곤 했는데, 1985년엔 지난 66년간 기록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렸음을 확인하였다. 연간 강수량 중 22%가 그날 내린 것이다. 게다가 사고가 발생하기 전 해에 인근 라테마르 스키 리조트에 눈이 많이 내렸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자 눈 녹은 물이 스타바댐으로 흘러들어갔고, 수압이 크게 증가해 댐이 무너졌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1월에 위쪽 댐 일부가 무너져내린 때는 비가 오지도, 눈이 녹기도 전이라서 다른 자료가 필요했다. 단서를 찾기 위해 댐이 무너진 폐허를 뒤져보자 부서진 배수관이 발견되었다. 알고보니 미리 보수했단 말은 거짓말이었다. 배수관 길이는 교체되었으나 보수 후 수십 년간 막대한 폐석이 눌려 관이 아래로 늘어졌다. 이후 양쪽의 조임쇠가 풀리며 틈이 벌어지자 배수관은 제 기능을 상실하였다. 이후 배수관에 물이 고이자 수압이 증가해 댐벽에 스며들어 벽이 약해졌다.
사고 두 달 전에 한 보수공사 역시 문제였다. 물을 다 빼면서 배수관이 더 구부러지고 구멍 또한 더 커졌다. 이후 댐에 물을 다시 채우고 폐석도 다시 채워나갔지만 부서진 배수관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강우량과 녹은 눈이 댐을 압박하며 윗쪽 댐이 무너져내려 모래와 물 36만 톤이 마을을 덮친것이다.
거기다 물이 압력에 의해 모래의 구조 속에 들어가면서 물의 밀도가 두 배가 되었고, 일반적인 산사태보다 속도와 파괴력이 더욱 강화되어 사고 결과가 더욱 컸다는 결론이 나왔다.
4. 안전불감증
1974년, 테세로 마을에서 플루오마인 사에 댐 검사를 요청했다. 검사 결과 위쪽 댐의 경사가 상상 외로 가팔라서 매우 위험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그 때까지 버텨낸 것이 신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고 댐을 계속해서 사용하였다.
거기다 댐을 지지하는 흙 또한 좋은 흙이 아니었다. 너무 축축해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폐석댐의 외벽을 조금씩 무너뜨렸으며, 위쪽 댐이 아래쪽 댐에 지지된 상황이라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이 상태에서 배수관이 부서지자 붕괴는 더욱 빨라졌다.
5. 사고 이후
1988년, 재판이 열리고 스타바댐 붕괴사고 후 7년이 지나서야 끝났다. 위쪽 댐 건설부터 담당해온 5개 회사의 8명을 포함한 10명과 안전을 담당한 지역 의회 2명이 재난과 대량살상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실형을 살았다. 판사는 재판비용의 10%만 폐석 댐을 막는 데 썼다면 사고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책임자였던 빈센조 캐마델은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사고 17년 후, 사고로 부모를 잃은 그라지아노 루키는 사고를 기억하잔 의미에서 스타바 재단을 설립했다.
재판 이후 이탈리아 지역의 폐석댐 관련 법안이 좀 더 강화되었으나 1985년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비슷한 사고 33건이 발생하였는데, 그 중 8건은 미국이었다.
사고 이후 계곡을 복원하고 마을을 재건하였으나, 광산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