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1. 개요
16세기는 1501년부터 1600년까지이다.
1.1. 유럽
종교 개혁으로 벌어진 가톨릭 VS 개신교 간의 갈등과 발칸을 둘러싼 합스부르크 가문 vs 오스만 간의 유럽 패권 싸움 등 유럽 세계의 긴장과 갈등이 터져나오던 시기였다. 한편 신대륙에서 쏟아지는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합스부르크 치하 스페인 제국의 영광이 절정에 달했으며 이 밖에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도 번영을 누렸다.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성숙해지던 시기. 한편, 대항해시대의 전개에 따라 스페인 제국은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 등을 멸망시키고 신대륙에 막대한 영토를 확보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선주민들이 가혹한 착취와 학살을 당하게 된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이 셀림 1세와 쉴레이만 1세의 치세를 거치며 제국의 60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게 된다. 15세기에는 아직 소아시아와 다뉴브 강 이남의 발칸 반도에만 국한되어 있던 제국의 영토는, 16세기로 들어서면서 시리아, 이집트, 로도스 섬, 헝가리, 북아프리카, 키프로스 등을 차례로 정복하며 폭발적으로 팽창했으며, 바다에서도 프레베자 해전에서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를 무찌르는 등 동지중해의 패자로 부상하게 된다.
1.2. 아시아
동아시아는 (만력제/중종 or 선조/도요토미 히데요시)의 3대 암군이 다스리던 시대였다. 명나라의 국력이 쇠퇴해 서서히 망조가 들기 시작했고 조선은 임진왜란의 피폐 속에 국가 재건이 절대 난제로 떠올랐다. 일본은 15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군사, 정치, 행정, 산업,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으며,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에 의해 마침내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게 된다. 도요토미 정권 자체는 히데요시 사후에 구심점 상실의 개판5분전에 빠졌으나 국가적으로는 전국시대에서 에도시대로의 과도기가 되었다.
2. 주요 사건
- 1503년 - 오스만 제국이 베네치아와의 전쟁(1499년~)에서 승리. 이로써 동지중해의 패권은 베네치아에서 오스만으로 옮겨옴[1] .
- 1504년 - 조선에서 갑자사화 발생.
- 1505년 - 명나라 11대 황제로 정덕제 즉위(~1521). 명나라 4대 암군 시대 개막.
- 1506년 - 조선에서 중종반정이 일어나 10대 국왕 연산군이 폐위되고 이복동생이 11대 국왕 중종으로 즉위.
- 1509년 - 잉글랜드 왕 헨리 8세 즉위(~1547).
- 1510년 - 삼포왜란 발발.
- 1512년 - 오스만 제국의 술탄 셀림 1세 즉위(~1520).
- 1514년 - 오스만 제국이 찰디란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대파함.
- 1515년 -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 즉위(~1547).
- 1516년 - 에스파냐 왕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카를 5세(~1556) 즉위.[2]
- 1517년 -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에서 종교 개혁을 선포. 1648년까지 130년간 계속되는 신구교 간의 종교전쟁의 기원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맘루크 왕조의 영토를 정복하여 칼리파의 지위를 술탄이 겸직한다고 선언.
- 1519년 - 조선에서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이 처형됨. 에스파냐 왕 카를로스 1세가 카를 5세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취임.
- 1520년 -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 쉴레이만 1세 즉위(~1566).
- 1521년 - 에스파냐인 항해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일행이 최초로 세계 일주에 성공하고 조국 스페인으로 돌아오다.[3] 코르테스에 의해 아스텍 제국이 멸망하고 멕시코가 에스파냐 왕국의 식민지가 됨. 명나라 12대 황제로 가정제 즉위(~1566).
- 1526년 - 헝가리가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에 참패. 국왕 로요슈 2세도 전사하여, 헝가리는 로요슈의 친척으로 생전에 그로부터 왕위를 약속받은 페르디난트 1세와 헝가리의 귀족으로 헝가리인들의 인심을 얻은 야노슈 자포야가 나누어 갖게 됨[4] .
- 1527년 - 사코 디 로마. 교황이 황제의 권력에 완전히 굴복.
- 1529년 - 오스만군의 제1차 빈 포위. 이 전투에서 오스만이 패함으로써, 유럽 진출은 좌절되었다[5] .
- 1533년 - 잉카 제국이 피사로에 의해 멸망하고 남아메리카 서해안이 에스파냐 왕국의 식민지가 됨.
- 1534년 - 오스만군이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이라크 지방을 장악. 그러나 이 지역에 대한 오스만의 최종적인 패권이 확립된 17세기 후반까지 오스만과 페르시아는 이라크를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다./영국 헨리 8세의 수장령 반포
- 1538년 - 프레베자 해전에서 기독교도 함대가 오스만 해군에 패배.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에서의 패권을 완전히 확립했다.
- 1544년 - 사량진 왜변이 발발했다.
- 1545년 - 조선 12대 국왕 인종이 즉위[6] , 13대 국왕 명종이 즉위, 같은 해 을사사화가 일어나다.
- 1555년 - 을묘왜변 발발./루터파를 인정하는 아우크스부르크 화의가 열리다.
- 1556년 -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에스파냐 왕인 카를 5세가 퇴위하여, 신성로마제국의 제위는 동생 페르난도 1세(~1564)에게 넘겨주고 에스파냐 왕위는 아들 펠리페 2세(~1598)에게 넘겨주고 은퇴함.
- 1557년 - 포르투갈이 명나라로부터 마카오를 조차함.
- 1558년 - 은퇴한 에스파냐의 선왕 카를 5세가 병사. 엘리자베스 1세 즉위
- 1559년 - 이탈리아 전쟁 종전. 이로써 스페인이 이탈리아 전 국토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이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때까지 계속됨./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통일령 반포
- 1560년 - 제르바 해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스페인과 교황령의 연합함대 격파. 이는 지중해에 대한 오스만 제국의 패권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받음.
- 1562년 - 위그노 전쟁 발발.
- 1565년 - 필리핀이 에스파냐의 식민지가 됨.
- 1566년 - 오스만 제국의 황제 술레이만 1세가 사망하고 셀림 2세 즉위(~1574). 명나라 13대 황제로 융경제 즉위(~1572).
- 1567년 - 조선에서 14대 국왕 선조가 즉위.
- 1568년 - 오라녜 공 빌럼 1세가 합스부르크 왕가에게 선전포고하여 네덜란드 독립전쟁 발발.
- 1571년 - 레판토 해전에서 기독교도 함대가 오스만 해군을 대파. 장기적으로는 오스만 해군이 몰락하는 시발점에 해당하지만, 당시에는 여파가 미미했음. 에스파냐 군대가 루손 섬을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아, 지역의 명칭을 국왕의 이름을 따 '필리핀'으로 정함.
- 1572년 - 명나라 14대 황제로 만력제 즉위(~1620).
- 1574년 - 오스만 제국 술탄에 무라드 3세 즉위(~1595).
- 1581년 -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의 압정에 대항해 독립 선언. 1648년까지 수십 년간 독립전쟁 전개.
- 1588년 - 에스파냐 해군이 잉글랜드 원정에 실패하고 괴멸.
- 1589년 - 조선에서 정여립의 난이 일어나다.
- 1590년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공식 통일. 일본의 전국시대가 끝남. 톤다비 전투에서 모로코 사디 왕조가 송가이 제국을 대파함.
- 1591년 - 송가이 제국이 멸망.
- 1592년 -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공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전쟁은 향후 7년간 지속되었다.
- 1598년 -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 병사. 일본군이 조선에서 철수하여 임진왜란 종전. 이순신 전사./ 프랑스 낭트 칙령
- 1600년 - 세키가하라 전투. 이 싸움에서 친도요토미파가 패배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치세가 실질적으로 확립.
3. 연도 목록
- 1501년 - 1502년 - 1503년 - 1504년 - 1505년 - 1506년 - 1507년 - 1508년 - 1509년 - 1510년
- 1511년 - 1512년 - 1513년 - 1514년 - 1515년 - 1516년 - 1517년 - 1518년 - 1519년 - 1520년
- 1521년 - 1522년 - 1523년 - 1524년 - 1525년 - 1526년 - 1527년 - 1528년 - 1529년 - 1530년
- 1531년 - 1532년 - 1533년 - 1534년 - 1535년 - 1536년 - 1537년 - 1538년 - 1539년 - 1540년
- 1541년 - 1542년 - 1543년 - 1544년 - 1545년 - 1546년 - 1547년 - 1548년 - 1549년 - 1550년
- 1551년 - 1552년 - 1553년 - 1554년 - 1555년 - 1556년 - 1557년 - 1558년 - 1559년 - 1560년
- 1561년 - 1562년 - 1563년 - 1564년 - 1565년 - 1566년 - 1567년 - 1568년 - 1569년 - 1570년
- 1571년 - 1572년 - 1573년 - 1574년 - 1575년 - 1576년 - 1577년 - 1578년 - 1579년 - 1580년
- 1581년 - 1582년 - 1583년 - 1584년 - 1585년 - 1586년 - 1587년 - 1588년 - 1589년 - 1590년
- 1591년 - 1592년 - 1593년 - 1594년 - 1595년 - 1596년 - 1597년 - 1598년 - 1599년 - 1600년
[1] 이후 베네치아는 오스만 제국이 쇠퇴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단독으로 오스만에 맞서지 못하고, 전쟁을 벌이기 전에 교황령이나 스페인과 연합부터 할 생각을 하게 된다.[2] 에스파냐 왕으로는 카를로스 1세로 부른다.[3] 마젤란 본인은 필리핀에서 죽었기 때문에 본인이 세계 일주에 성공하진 못했다. 다만 그는 10여 년 전에 동쪽으로 항해하여 필리핀에 도달한 일이 있기에, 두 번에 걸쳐 한 것까지 인정한다면 세계 최초.[4] 다만 야노슈는 오늘날 헝가리 역사에서 '야노슈 1세' 로서 인정받고 있지만, 합스부르크와 맞서 싸우기 위해 오스만의 신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완전독립국이며 단일국가로서의 헝가리'는 사실상 멸망한 셈이 되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한 뒤에야 완전독립국, 단일국가로서의 지위를 되찾았다.[5] 다만 당시에는 '이제 틀렸어. 꿈도 희망도 없어' 상태였다기보다 '다음에 두고보자' 하는 식이었다. 정말로 꿈도 희망도 없게 된 것은 1683년의 제2차 빈 포위 이후, 유럽 국가들과 오스만 제국의 국력 차이가 현져해진 다음의 일이다.[6] 같은 해 양력 8월 17일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