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리 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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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nley Clarke ( 1951. 6. 30.~ )
홈페이지 : http://stanleyclarke.com/
2015년 7월 31일일자를 기준으로 스탠리 클락이 위키에 추가되면서, S.M.V의 모든 멤버의 프로필이 모두 작성되었다.
미국의 재즈 베이시스트. 따지고보면 모든 테크닉의 시초를 구성한 사람이다. [1] 90년대까지만 해도 '테크닉'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던 연주자였다. 동시대의 자코와 퓨전 재즈계의 쌍벽을 이루던 베이시스트이며,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연주자.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칙 코리아가 리더였던 퓨전재즈 그룹 리턴 투 포에버의 첫 번째 베이시스트였다.)
필라델피아 태생이며, 그가 잡은 첫 번째 악기는 다름아닌 '바이올린' 이었다.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던 그는 고등학교 때 일렉트릭 베이스로 전공을 바꾸고, 그 지역의 록밴드와 R&B밴드에서 활동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퓨전 재즈 연주자로서 수면위로 떠오른 시기는, 한창 퓨전붐이 일던 1970년대가 지나서였다. 그 당시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밴드와 함께 뉴욕에서 몇 달간 무대에 섰고, 그 뒤에는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와 조 헨더슨(Joe Henderson)이 리드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음악성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해졌으나, 당시의 재즈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는 스탄 게츠(Stan Getz), 길 에반스(Gil Evans), 아트 블래키(Art Blakey), 돔 움 로마오(Dom Um Romao)와 많은 유명 연주자들과 합주를 하였고, 조 헨더슨 밴드에서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Chick Corea)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그의 퓨전 재즈&라틴 그룹 Return To Forever가 결성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Return To Forever는 지금도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inu Orchestra)와 함께 70년대의 대표적인 3대 퓨전 재즈 밴드로 회자된다. 어쨌든 리턴 투 포에버에서의 활동은 클락이 일렉트릭 베이스 주자로써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Weather Report의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와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스탠리 클락은 1974년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당시만 해도(일렉트릭 베이스가 나온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을 때이니)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테크닉과 파워풀한 리듬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 후1977년 Return To Forever를 떠나 클락은 2장의 싱글을 차트에 올렸고. 최근에 리턴 투 포에버의 재결합투어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그의 솔로경력은 계속되고 있고(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떠난 S.M.V.[2] 등) 세계의 여러 재즈 아티스트의 연주에 참여하며 그만의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일렉트릭 베이스에 대한 기여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그가 남긴 업적은 현대의 재즈 현장에 분명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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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연주도 수준급이다.
그의 연주 동영상. 그의 대표곡인 'School Days'라는 곡이다.
잘 보면 뒤에 베이스가 한 명 더 있다. Armand Sabal-Lecco 라는 베이시스트 인데, 스탠리 클락 밴드에서 많이 보인다. 친한 듯 하다.
스탠리 클락이 무대 앞에서 베이스를 기타 치듯이 연주하고, 아먼드는 뒤에서 받혀주는 '진짜 베이스' 역할을 한다...
Stanley Clarke ( 1951. 6. 30.~ )
홈페이지 : http://stanleyclarke.com/
2015년 7월 31일일자를 기준으로 스탠리 클락이 위키에 추가되면서, S.M.V의 모든 멤버의 프로필이 모두 작성되었다.
1. 개요
미국의 재즈 베이시스트. 따지고보면 모든 테크닉의 시초를 구성한 사람이다. [1] 90년대까지만 해도 '테크닉'하면 가장 먼저 거론되던 연주자였다. 동시대의 자코와 퓨전 재즈계의 쌍벽을 이루던 베이시스트이며,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연주자.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칙 코리아가 리더였던 퓨전재즈 그룹 리턴 투 포에버의 첫 번째 베이시스트였다.)
2. 생애
필라델피아 태생이며, 그가 잡은 첫 번째 악기는 다름아닌 '바이올린' 이었다. 어릴 때 가족들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던 그는 고등학교 때 일렉트릭 베이스로 전공을 바꾸고, 그 지역의 록밴드와 R&B밴드에서 활동하며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가 퓨전 재즈 연주자로서 수면위로 떠오른 시기는, 한창 퓨전붐이 일던 1970년대가 지나서였다. 그 당시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밴드와 함께 뉴욕에서 몇 달간 무대에 섰고, 그 뒤에는 파로아 샌더스(Pharoah Sanders)와 조 헨더슨(Joe Henderson)이 리드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다.
그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음악성은 입에서 입으로 빠르게 전해졌으나, 당시의 재즈사회에서 그리 환영받지는 못했다. 그는 스탄 게츠(Stan Getz), 길 에반스(Gil Evans), 아트 블래키(Art Blakey), 돔 움 로마오(Dom Um Romao)와 많은 유명 연주자들과 합주를 하였고, 조 헨더슨 밴드에서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Chick Corea)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그의 퓨전 재즈&라틴 그룹 Return To Forever가 결성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Return To Forever는 지금도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Mahavishinu Orchestra)와 함께 70년대의 대표적인 3대 퓨전 재즈 밴드로 회자된다. 어쨌든 리턴 투 포에버에서의 활동은 클락이 일렉트릭 베이스 주자로써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Weather Report의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us)와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스탠리 클락은 1974년 자신의 이름을 건 첫번째 솔로 앨범을 발매했다. 당시만 해도(일렉트릭 베이스가 나온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았을 때이니)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테크닉과 파워풀한 리듬은 충격에 가까웠다. 그 후1977년 Return To Forever를 떠나 클락은 2장의 싱글을 차트에 올렸고. 최근에 리턴 투 포에버의 재결합투어에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그의 솔로경력은 계속되고 있고(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떠난 S.M.V.[2] 등) 세계의 여러 재즈 아티스트의 연주에 참여하며 그만의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일렉트릭 베이스에 대한 기여는 과소평가 될 수 없고, 그가 남긴 업적은 현대의 재즈 현장에 분명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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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트라베이스 연주도 수준급이다.
3. 기타
그의 연주 동영상. 그의 대표곡인 'School Days'라는 곡이다.
잘 보면 뒤에 베이스가 한 명 더 있다. Armand Sabal-Lecco 라는 베이시스트 인데, 스탠리 클락 밴드에서 많이 보인다. 친한 듯 하다.
스탠리 클락이 무대 앞에서 베이스를 기타 치듯이 연주하고, 아먼드는 뒤에서 받혀주는 '진짜 베이스' 역할을 한다...
3.1. 앨범 목록
- 1974: Stanley Clarke
- 1975: Journey To Love
- 1976: School Days
- 1978: Modern Man
- 1979: I Wanna Play For You
- 1982: Let Me Know You
- 1984: Time Exposure
- 1986: Hideaway
- 1988: If This Bass Could Only Talk
- 1993: East River Drive
- 1995: At the Movies
- 2003: 1, 2, to the Bass
- 2010: The Stanley Clarke Band; featuring Hiromi (일본의 재즈 피아니스트 우에하라 히로미와 합작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