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성씨)

 


1. 承 (이을 승)
2. 昇 (오를 승)


1. 承 (이을 승)


본관은 연일(延日), 광산(光山) 2본. 시조는 고려 정종 때 대장군 승개. 그는 고려 정종 때 대장군을 지냈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본관을 연일으로 하였다. 광산 승씨도 승개의 후손이며 광산에 정착하여 살면서 본관을 광산으로 하였다.
우리나라에선 3,000명밖에 안되는 희성이지만 북한 지역에는 승씨가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조선총독부에서 시행한 국세조사에 의하면, 당시 평안북도 정주군 신안면 안흥동(현 정주시 독장리)에 연일 승씨가 157가구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1], 그 밖에 정주군 신안면·동주면 일대에 358가구가 집단으로 거주했다. 또한 당시 전국에 사는 승씨 1032가구 중 694가구(약 67.2%)가 평안북도 지역에 분포했다[2].
2015년에는 남한 전체에 2,619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통일되면 국내 승씨 인구가 많이 늘어날 듯.
승씨의 대표적인 남한 인물로는 건축가 승효상[3]과 동화그룹 회장 승명호, 서부트럭터미널 회장 승만호, 핸즈코퍼레이션 회장 승현창, 교육인 승광은, 여류바둑기사 승순선, 독립운동가 승병일, 한국보이스카우트 사무총장 승병구 ,연극배우 승주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승재현 등이 있다.
북한에는 북한 여자축구대표팀의 승향심, 동창군당위원장 승건배,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국장 승경철, 국가검사위원회 정주시 1비서 승보경, 태천군당 부위원장 승상범, 조선인민군 소장 승용근, 정주가죽가공공장 지배인 승응표, 로동신문 부주필 승재순, 삭주군수출피복공장 지배인 승정숙, 창성종이공장 지배인 승태호 등이 있다.
여기에 북한 언론을 통해 정주기관차대 소속 기관사 승병국, 승경호가 보도되는 등[4] 집성촌인 정주시를 중심으로 한 평안북도 남부 지역에서 한가락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는 텍사스 오스틴대 석좌교수인 철학자 승계호와 그 아들인 AI공학자 세바스찬 현준 승[5] 부자가 있다.

2. 昇 (오를 승)


본관은 밀양(密陽), 창평(昌平), 남원(南原). 원(元) 말에 대하국(大夏國) 황제 명옥진(明玉珍)의 아들, 2세 황제인 명승(明昇)이 명장(明將) 전우덕(傳友德)에 패하고 이듬해인 서기 1372년 (고려 공민왕 21년)에 모후(母后)를 모시고 고려의 서해안으로 망명 밀양지방에 유하다 송도읍(松都邑)으로 이주, 현 평산(平山)군에 사방 30리의 땅과 노비를 하사 받고 안착하였고 이후 태종조(太宗朝)에 화촉군(華蜀君)으로 봉해졌다. 그의 4남 승신(昇信)은 망국황족(亡國皇族)임을 부끄럽게 여겨 명(明)자를 두고 부친의 이름인 승(昇)자를 성으로 삼고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정하셨다. 서촉 명씨와는 같은 계보라서 통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선영(先塋)은 황해도 평산(平山)군 세곡면(細谷面) 운봉리(雲峰里)에 위치하고 시조(始祖)이신 승신(昇信)으로부터 14세조까지 안치되어 있으며 매년 10월에 추계시향(秋季時享)을 봉행(奉行)하여 왔다.
원조(遠祖) 명옥진(明玉珍) - 중조(中祖) 명승(明昇) - 시조(始祖) 승신(昇信) - 2세(世) 승조(昇遭) - 3세 승수(昇峀) - 4세 승두경(昇斗經) - 5세 승길중(昇吉重)
1930년 국세조사에서는 전국에 79가구가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6.25전까지 황해도 금천군 금천면(金川面) 갈현리(葛峴里) 승씨 집성촌(集姓村)에 약 50호를 포함하여 황해도에 80호 정도가 살고 있었다.
2015년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811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인물로는 광주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서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은 독립유공자 승천일과 1930년대 OK레코드사의 문예부장으로 '휘파람, 타향살이, 사막의 한, 안해의 노래' 등을 작사한 17세손 승응순(昇應順, 1911-1937)[6]이 있다.

[1] 평안북도 정주시를 고향으로 둔 시인 백석의 시 《여우난 곬족》에서도 승씨가 언급된다. 고모가 시집간 집안의 성씨가 승씨인 모양.[2] 그 밖에 황해도 110가구, 평안남도 103가구, 함경남도 20가구, 함경북도 4가구 등 현재 북한에 편입되어 있는 강원·경기 지역을 제외하더라도 931가구, 즉 약 90.2%가 북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3]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승씨일 것이다.[4] 두 사람은 수송계획 초과수행 성과로 종종 언론에 이름이 나온다.[5] 2019년 4월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영입되었다.[6] 예명은 금능인(金陵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