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1]
'''헌법 제66조 3항''':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
통일을 못 보고
가는 벗
잠드시라
여기 대동강에서 떠온 물이 있고
한강수가 있다오
이 물로
그대 심장을 식히소서
김규동(1925~2011) -'진혼가'모두[2]
[3]
1. 개요
'''南北統一 / Korean Reunification'''
낱말의 뜻만 따지면 남쪽, 북쪽으로 분단된 국가가 통일을 하는 것을 뜻하여, 한때 분단국가였던 베트남과 예멘, 그리고 분단이 현재진행형인 키프로스도 남북통일의 대상에 해당된다. 다만 여기서는 한반도의 남북통일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그 통일된 한반도의 나라는 통일 한국으로 정리한다.
만약 성사될 시 신라, 고려, 조선에 이어 한반도의 네번째 통일 국가가 될 것이다.
통일의 상징인 한반도기. 다만 한반도기는 남북통일의 상징물일 뿐, 통일 한국의 국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주도로 통일되는 한, 통일 이후에도 정통성을 가진 기존의 태극기가 그대로 국기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애초에 북한도 인공기를 만들기 전까지는 태극기를 썼다.
한반도는 민족의식에 별반 차이가 없었지만 정치적 이유로 분단되었다.[4] 키프로스와 북키프로스는 민족의식과 종교관을 달리하는 두 세력 간의 갈등이 분단의 원인이었다. 한편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같은 언어와 문자, 혈통, 문화 등 다방면의 요소를 공유하는 한족이 정치이념, 사상의 대립으로 내전이 발생했고 결국 각기 다른 체제로 분단되었다. 정치이데올로기를 달리하여 분단된 남북한과 일면 유사하다. 다만 국토 규모와 외교력의 크기에서 넘사벽의 차이가 나는 데다 역사적인 배경에서도 936년 고려 이후 통일된 형태의 국가를 1000년 넘게(제주도 제외) 지속해온 한반도와 달리 청나라 이전까지 중국 대륙과 문화적, 민족적으로 서로 다른 지역, 다른 지방으로 분리, 단절되어 지낸 시기가 상당히 길다.[5] 이러한 역사, 지리학적 배경과 문화적인 차이로 인해 민주진보당같이 분리주의를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후삼국시대 종결 후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단일민족국가를 꾸준히 유지, 지속해온 한반도와는 배경이 다르다. 한반도의 국가들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6] 고려~조선~대한제국의 약 1000년 동안 하나의 나라를 이루어왔지만, 1945년 8.15 광복 이후 군정시기에 통일정부를 수립하지 못하고 1948년 완전히 남북분단이 되면서 갈라지게 되었다.
남한에서는 분단 초기에는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멸공을 통해 통일을 하자는 이념이 강조되었으나, 조봉암 같은 인물이 평화통일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주장이 현재의 정치권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금도 통일의 방법에 이견이 있을 뿐 통일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원내정당은 없다. 분단이 장기화되며 남한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도 조성되고 있다. 다만 남북정상회담 같은 유화 무드가 조성되는 때에 통일 여론을 조사하면 젊은 세대에서도 통일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급등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7]
북한에서는 서민들은 남한에 비해 통일을 지지하는 여론이 매우 강하다는 연구나 증언이 많으며, 탈북민들도 통일에 찬성하는 비율이 남한 토박이에 비해 높다. 대체로 조사가 가능한 북한 주민이나 탈북민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90% 이상이 통일을 지지한다는 조사가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문단을 참고 바란다.
현재의 통일 담론은 확인이 어려운 북한 주민들의 잠재력, 북한 주민들의 정치 의식, 북한의 경제 상황, 북한의 사회 문제와 같은 정보에 기반하고 있기에 통일의 방법이나 통일의 장단점에 대한 예측이 사람이나 연구마다 천차만별이다. 통일 북한 지역이 어떻게 어떤 속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부터 남한 지역이 북한 지역을 얼마나 먹여살려야 하는가[8] 가 다 의견이 다르다. 통일에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있지도 않은 위험을 부풀리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이는 아래의 문서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 대한민국의 정치, 법적인 통일의 개념과 현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통일에 대해서는 꾸준히 국가의 우선과제로 삼고 있다. 법적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헌법 3조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 전체로 규정하여 북한을 별개의 국가가 아니며 4조에서 통일 조항을 명시하여 북한을 통합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해석에 따라서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듯 부인하는듯 모호할 수도 있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북한을 이중적 지위로 인정하여 국가는 아니지만 통일을 위해 협력할 대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을 국가가 아닌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하면, 북한이 차지한 곳은 북한의 영토가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지만 미수복지역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3조가 뜻하는 바는 북한은 국가가 아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4조에 있는 '통일'이라는 표현이 아닌 '수복'이라고 했어야 3조와 4조가 다양한 해석을 방지하고 일치된 지향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개별적인 국가로 인정한다면 사실상 통일 포기를 선언한 것이므로 그러기도 적절하지 않다.
세계적으로 각 국가의 통일의 사례를 볼 때, 상호 간에 공식적 인정을 하는 것과 별개로 국가 간의 일치, 합일을 통일이라 일컫는 점을 생각한다면 결국 논리적으로는 모순점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종전이 아닌 휴전 상태로 있는 북한과 대한민국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명분과 실제의 괴리로 해석할 수 있다.
2.1. 대한민국의 입장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최초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움직임은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이었다. 그 이전에 여러 차례 남북이 밀사를 보내는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이를 토대로 통일에 대한 대원칙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의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결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남북 정부 모두 남북통일을 빙자한 정치구조의 개혁을 핑계로 독재정치를 공식화해버렸다.
그 이후,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공산주의의 몰락은 20년 가까이 멈춰 있던 남북통일에 대한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실상은 북한이 국제적 고립과 체제 유지에 불안감을 느껴서 국면돌파를 모색했던 것이다. 남한이 민주화되고 노태우 정부 때부터 다시 남북통일에 대한 방안을 공식적으로 상의하고 발표하는 자리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실상 남북 간에 발표되는 것은 국내법적 효력을 가지고 이에 구속될 수 있는 조약의 성격이 아니라 단순히 상호 간의 의견 통일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을 성명, 합의 등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큰 부분에 있어서 분단 이후 남북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위 글에 나와있듯이 남과 북 모두 권력의 정치적 불리한 상태를 한방에 타개하고 모든 이슈와 명분을 남북통일로 끌고 가서 실질적으로는 정말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이슈를 덮기 위한 정치적인 도구로써 사용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기구로서 통일부를 유지시키며 남북화합을 위해 크고 작은 노력을 경주하고 있긴 하다. 2000년에는 최초로 남북의 지도자가 한자리에 만나게 되었고, 이후 '남북정상회담'이라는 명제 하에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2.2. 대한민국 헌법에 나타난 남북통일의 당위성
전문 중 일부: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후략)
대한민국 헌법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위와 같이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과 헌법 제4조에서 통일이 헌법에 따른 사명임을 명시하고 있다. 국가 원수인 대통령 또한 이에 기속되며 통일은 대통령의 주요한 사명 중 하나다. 따라서 현행 헌법하에서 '''국가는 통일을 포기할 수 없고''' 헌법에 따라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의무가 있다.대한민국 헌법 제69조: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 대한민국 헌법
국민의 여론이 명시적으로 통일에 대한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여겨서 국회에서 발의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져서 헌법의 개정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면, 여전히 통일은 한국의 헌법상 과제가 된다.
2.2.1. 관련 시각
상당한 헌법학자들의 주장에서는 '''통일 조항은 헌법의 기본 원리'''이기 때문에 아예 개정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이는 헌법이 아무리 바뀌어도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하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 된다.
이 외 헌법의 개정을 통해서 "남북통일과 관련된 조항을 삭제하고 남북통일을 포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법학적으로는 아직 없다. 다만 남북통일이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 원리 중의 하나라고 해석하는 권영성 교수는, 한국 헌법의 기본 원리라는 항목 속에 평화통일의 원칙을 넣고 있다. 이에 따르면 헌법 개정을 통해 바꿀 수 없는 헌법개정금지조항으로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통일 관련 헌법 조항이 개정될 경우, 이는 헌법수호제도 내지 저항권행사의 문제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다.[9]
그러나 이러한 의무는 사실 남북통일 자체를 공식적으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회피가 가능하다는 특징도 갖고 있다.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의무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남북통일을 최종적으로 이룩해야만 한다"''' 는 선언적 의미 정도인지라, 연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규정만 남겨놓고 실질적으로는 포기하는 형태로 통일을 얼마든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10]
갈수록 남북한의 이질화가 심화되고 실제로 남북통일의 기회가 올 경우, 이런 방식으로 실질적으로는 포기하되 헌법 규정은 건드리지 않는 식으로 처리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헌법의 변천과 관련된 사항이다. 이는 일본이 군대 보유를 명문으로 금지한 헌법을 수정하지 않고 음양으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가 되는 것이다. 결국 헌법적 사항에서 통일에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으며, 이에 대해서 해태하는 모습을 대외적으로 드러내게 된다면 이는 명백한 헌법을 준수하지 않는 것이 된다.
사실 헌법과 현실의 괴리는 지금도 볼 수 있다. 당장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을 보자. 대한민국 헌법은 북한의 영토와 주권을 모두 부정하고 휴전선 이북 지역을 무력 점거한 반국가단체라고 여기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선수단은 인공기를 당당히 들고 입장했다. 사실 헌법에 비추어보면 이론적으로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심지어 반공주의자들도 별 말을 안 하는 것이 현실(...).[11] 비록 헌법에 그렇게 적혀 있으나 UN에서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한 마당에 현실적으로 북한 선수단을 거부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헌법이라는 것이 신의 명령도 아니고 단지 헌법 제정 당시 다수의 사람들이 가장 합리적으로 생각한 것을 적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서 여의치가 않으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붕괴했을 때 다른 나라들이 압력을 넣어 개정을 강요할 수도 있으나, 패전국이자 전범국인 일본이 평화헌법을 만들 당시에도 최소한 형식적이나마 자주개정의 모습을 가졌다. 타국에 의한 강제개정은 주권국가가 아님을 뜻하기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
2.2.2.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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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에 최초로 '통일'을 직접적으로 규정한 것은 1972년 유신헌법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초법적 기관을 설치하면서 그에 걸맞는 명분을 찾고자 통일이라는 주제를 성정하고 대통령에게 통일에 봉사할 의무를 지게 하였다.
3. 대한민국 정부 차원의 남북통일 방안
1974년 8월 15일, 박정희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평화통일 3대 기본원칙'을 발표하여 통일방안의 근간을 만들었고, 제5공화국 출범 이듬해인 1982년 1월 22일에 전두환 대통령이 단일국가 수립을 염두에 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마련했다가 1989년 9월 11일에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등 국제정세 변화에 발맞춰 중간단계인 '남북연합'을 열거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으로 자세히 구체화됐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론',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정책도 이 틀을 이어받아 보강해낸 것이다.
현 통일정책의 근간이 된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자주, 평화, 민주'''의 3대 원칙을 핵심으로 삼고 있는데, '''자주'''는 남북한 스스로가 외세의 간섭을 받지 않고 통일을 결정하는 것이며, '''평화'''는 6.25 전쟁이란 동족상잔의 비극을 교훈삼아 어떤 일이 있어도 무력을 쓰지 않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민주'''는 특정 소수세력의 집권[12] 을 거부하고 민주적 원칙에 따른 절차와 방법을 존중하고 통일 후에도 모든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을 이루기 전에는 동질성 회복을 위해 중간단계인 남북연합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통해 점차 단일민족사회로 만들어 통일민주공화국으로 이어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4. 남북통일의 방향
5. 남북통일의 이점
6. 남북통일 이후의 문제와 해결방안
현재 대한민국의 공식 입장은 남북통일은 필수라는 입장인 것이다. 다만 이전과 달리 안 해도 괜찮다는 여론이 많고 찬성론 측도 대부분이 신중론자들로 바뀌었고, 통일 반대론이 수면 위로 직접적으로 올라오게 된 점이 있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입장은 통일은 해야 된다는 것이다.
1997년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통일에 대한 반대의견이 50%를 넘는 여론에 따라 국민이 반대해도 통일을 추진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국민이 통일을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의 질문에 대해선 현실적이지 못하며 국민들은 당연히 통일을 원한다. 부정적인 견해는 통일이 과연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것과 통일후 우리가 겪어야 할 부담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지 통일의 본질적 의의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통일 후 주한미군에 대해 지금까지는 단순히 남북대립이나 안보차원에서 미군주둔이나 철수문제를 다뤄왔는데 통일 이후엔 미군주둔의 필요 여부를 정치적 국제관계차원에서 봐야하며 동북아시아 세력균형과 생각해봐야한다. 이 지역 강대국인 미중일의 세력균형속에 중국도 미군의 주둔을 원할때가 있다.라고 밝혔다. 1997.10. 한겨레신문 이회창 후보 인터뷰
하지만 통일이 어떻게 진행이 되든 간에 정치 통합 전 경제 통합을 먼저 하는 등 정치적 반대가 다소 있는 방안을 빼면 천문학적인 통일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사실이고, 보통 한쪽이 급격한 변화에 맞추어 인프라 건설 비용이 컸던 독일 통일이 가장 유명한 통일이기에 통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이런 생각을 함부로 말했다간 역적 취급을 받았다. 실제로 어느 외국인이 TV에서 "남북한이 두 나라로 따로 사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말했다가 온갖 비난을 받았다.
월스트리트이 전설적인 투자자인 짐 로저스는 통일 이후 현재 남북한이 국방비로 낭비하는 자원을 인프라 확충 등 더욱 생산적인 분야에서 활용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고 의견을 내는 것이 자유로워진 최근에는 통일에 회의적이라는 의견을 당당히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단순히 돈의 문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잃게 된다면 막대한 지정학적 손실을 입을 것이 유력한 중국을 외교적으로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물론 외교적으로 중국을 상대로 설득 외교를 하지 않고 영구분단이 되는 것보단 중국을 설득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서독이 당장에 동서 통일을 하려고 외교적으로 소련을 설득한 사례도 있고. 현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쪽이 중국이니 말이다. 사드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함을 강조하여 통일시 이를 철수한다든가, 남한보다도 출산율이 낮을 정도로 쇠락한 공업 지대가 돼버린 동북 3성의 개발 이점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반대론자는 동독과 서독 통일의 사례처럼 성공적으로 되고 잘 산다면 매우 좋을 것이라고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터지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식의 변화가 생겨날지는 아직 아무도 예상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남북통일은 어떻게 보면 재건하는 단계의 국가건설이기도 하다. 작게는 행정 단위부터 크게는 국호까지 새롭게 바꿀 준비를 해야 한다. 다만, 확실한 건 한반도의 통일은 동아시아를 비롯한 국제 정세의 판도를 뒤흔드는 일대의 대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며 그 결과는 한반도의 국가들 조차도 쉬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위에서 언급한 통일의 좋은 예시라고 불러왔던 과거 독일의 경우에도 한국에 비해 훨씬 순조로웠으며 서독-동독 두 국가간의 격차가 한국-북한에 비해 더 적었음에도 불구하고[13] 서독 지역이 통일 이후 20여년 이상 총 3000조원의 통일 비용을 감당했다. 지금은 동독 지역이 오히려 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훌륭하나, 서독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하며, 산업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14] 사실 통일세는 이제 폐지되었고#, 통일 이후 태어난 세대는 서독과 동독에 대한 구분 의식이 옅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북한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독일이니까 이런 게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비무환이 인간의 본성이나 다름없기 때문으로, 이것이 혐오감과 같은 정서로 발전하면 북한이 대단히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는 한 바꾸기 어렵다. 국가간의 격차가 더 큰 남북한 통일의 경우 독일식 급진 통일시 이보다 더 심한 통일비용과 리스크가 발생할 것이라는 점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1 2
이런 시각에서는 점진적 통일, 철저한 준비가 수반되는 통일을 강조한다. 대화를 통해 통일을 점진적으로 한다든가, 북한이 민주화 같은 것을 이루어내도 연방제 같은 것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관도 점진적 통일이고, 이전 보수 정부에서도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한 바 있다. # 2017년 현대경제연구원의 설문에서는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1국가 2체제의 평화로운 공존' 37.8%, '완전한 통일' 35.7%, '왕래만 자유롭게 하는 형태' 25.5%로 바람직한 통일의 형태를 선택했다. 점진적 통일이 현재로서 전문가 사이의 지지 여론이 우세하며, 이들은 느슨한 통일도 고려하므로 98%가 통일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다. #
2010년 8월에는 통일 준비를 위한 통일세가 제시되었다. 통일세의 필요성 자체는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그 과정이(...) 더구나 남북 관계는 악화일로였고, 한편에서는 부자감세 논란이 더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엇을 위한 통일 세를 걷느냐는 반발도 존재하였다. 실제로 통일세가 신설된다면 재산세와 같은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나 소비세와 같은 간접세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지금도 간접세 비율이 높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다.
다만 통일의 경제적 문제를 부각하는 주장[15] 이 대한민국 2-30대 대중의 주류로 떠오르자, 그것은 너무 상황의 한쪽 면만 바라본 이상론 아니냐며 다시 역으로 반발하는 새로운 젊은 층들도 서서히 늘어나고 있기에 이런 경제 문제가 통일을 방해하는 큰 요소가 될지 안 될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또한 통일이 되지 말아야 한다면 체제의 차이가 가장 큰 이유라는 주장이 통일반대론자라도 2018년 이후 20% 가량이라 북한의 체제 개혁이 확실시 되는 경우나 민주화를 포함한 북한의 체제 변화를 유도[16] 하여 통일하자는 주장이 부각된다면 통일 여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19~29세도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35.3%,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도 35.3%다. 전쟁을 막기 위한 통일, 국익을 위한 통일이 민족적 정서에 기반한 통일을 대체하고 있다. #
이들의 주된 주장은, 통일을 대한민국 정부가 포기하거나 방치하게 될시 중국이 중화사상과 동북공정을 통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국은 과거에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해 영토를 확장시켜왔으며, 이 일환으로 현재의 불안정한 북한 체제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졌을 시 대한민국이 가만히 있는다면 중국이 그 영토를 전부 차지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역사상 전례없던 중국의 영토 침범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며, 중국이 한반도 북부 산악 지역을 전부 뚫어버린 상태다보니 아주 간단하게 남한으로 (특히 수도권으로) 중국 본토의 불법 이주민들과 중국 문화가 쏟아져 들어올 것은 뻔하고, 서해와 동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3면이 중국을 견제해야 하고, 미국의 멕시코 불법 이주민 문제가 남 문제가 아니게 되는 기괴한 상황에 닥치게 된다. 북한이 중국땅이 되고 1세대만 지나도 세금이고 뭐고 중국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7. 북한 출신의 입장
북한의 서민들은 통일 지지 여론이 남한에 비해 매우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북한 정권에 반대하는 탈북자도 그러하다. 이것이 처음 알려진 2010년대 초반에도 설문자가 놀랐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북한 정권의 주장을 떠나서라도 더 이상 남북이 적대하지 않아도 되고, 경제적 측면을 보면 국방비를 많이 쓰거나 외국과의 교류를 제한할 당위성이 사라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만 남한이 통일을 원치 않거나, 북한의 중앙당 간부들이 통일에 반대하여 통일이 안된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에 세뇌당한 서민도 남한의 경제력과 북한의 군사력을 합치면 좋을 것이라고 통일을 지지한다. 북한은 정권 차원에서 '통일은 매우 좋은 것이지만, 남측 정치 세력과 미제와 같은 외세가 통일을 방해한다'는 주장을 선전한다. 외신이 북한 주민을 인터뷰하면 서울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북한이 '병든' 정권과 '억압받는' 주민을 분리하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이런 대답이 가능한 것이다. 대신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응답이 남한에 비해 높으며, 그나마 남북정상회담 이후 탈북민의 증언에서는 이런 비관론이 줄어들고 있다고 언급한다.
인터넷 상에서 한때 2015년 SBS 다큐 '남북청년통일실험-어서오시라요'에서 통일을 반대한다는 탈북민 백용씨의 발언이 논란이 된 적 있다. 이런 사람은 많이 잡아야 10%다. 원래 방송 내용은 처음에는 통일이 광복같은 것이라고 여겨 찬성하였으나, 한국에서 살아보니 남한 주민들이 통일하면 자원을 약탈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 뒷부분의 충격이 워낙 커 인터넷에서는 뒷부분만 나돈다. # 탈북민들을 접해본 사람이나 탈북민의 의견에 따르면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한 케이스라든가, 탈북민 전체를 먹칠한다는 의견이 있다. ## 실제 탈북민은 2014년 기준 통일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91%일 정도로 통일을 긍정적으로 여긴다. 동시기 남한 주민은 30.9%였다.# 통일이 나라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의 비율은 4%로, 탄핵 국면의 박근혜 지지율과 유사하다.
북한 출신에게도 2등 국민 우려는 존재한다. 그러나 북한이 지나치게 가난하다보니 이런 것은 너무 관념적인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다. 2014년 연세대 산학협력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엘리트들은 중국식 개방은 좋지만 기득권을 내려놓기 싫어 계산이 복잡하다고 한다. 그러나 서민들은 중국 만큼이라도 살기 위해서 통일과 같은 변화를 꿈꾸며, 이때문에 통일에 수반될 수 있는 정치적 갈등은 개의치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탈북자 중에는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5~15년 안에 통일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등, 남한에도 통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경우도 있다. 대신 남성의 경우 결혼이 어려워질 것 등을 우려하여 당장이라도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더라도 20~25년 길게 잡아 통일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런 여론도 반드시 통일을 해야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통일이 싫으면 남측이 거부하면 그만이다. 싱가포르도 리콴유 정부에서 눈물을 흘리며 '원치 않는 독립선언'을 한 선례가 있다. 키프로스도 투표를 통해 한쪽이 반대하여 통일이 연기된 적 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도 2020년 8월 이런 여론 격차가 있어도 남측 청년이 거부하면 통일이 안될 수 있다고 하였다. #
다음과 같은 조사에서도 통일을 지지하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의 행태를 알 수 있다.
- 한국은 2008년에서 2020년까지 통일이 '필요하다'가 50%대로 나타나는데[21] , 북한에 대한 응답에서는 '북한 주민들은 통일을 매우 원한다'가 2010년에서 2018년[22] 탈북자 응답 기준 80~90%대였다. 2019년 들어 이 응답이 낮아졌어도 대한민국보단 지지여론이 강하다. 보수 야권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 '멸공통일'과 유사한 방식의 통일을 지지하거나, 여권의 의견을 따르면 여당이 주장하는 형식의 통일을 지지하기도 한다. [23]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매년 실시하는 탈북자 대상 설문조사에 따르면, 통일을 북한에서 매우 바라고 있었다는 탈북자들[17] 은 적어도 80% 이상이고, 약간 원한다까지 합치면 2010년 탈북자에서 2019년 탈북자까지 모두 93% 이상의 지지를 보인다. 동아일보도 2018년 같은 기관의 설문조사를 인용해 20대 탈북자라도 90% 이상이 통일을 원한다고 하였다. 2019년에 탈북한 사람의 '매우 원한다' 80%의 통일 찬성 비율은 지난 10년간 가장 낮은 수치다.
- 2019년에 탈북한 탈북자 대상 조사에서는 '북한 주민은[18] 통일을 매우 원한다'가 처음으로 78.9%로 2011년 조사 이후 역대 최저였다. 그런데 대한민국을 긍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 참고로 '약간 원한다'까지 합치면 최신 조사를 합쳐도 조사기간 내내 북한 주민의 통일 지지는 90% 중후반의 지지를 보인다. 2020 조사 자료 원본(유튜브)[19]통일부 블로그 (2019)
- 2014년 조선일보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협조를 받아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한국 정착 탈북자 대상 설문에서는 통일은 나에게 이익이 된다고 응답한 비율이 91%였다. # 2016년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조사에서는 탈북자 대학생 106명 중 북한 주민에게 매우 이익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4%, 다소 이익이 된다는 응답을 한 비율이 20%였다. #
- 2014년에는 북한 국적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결론을 얻었다. 링크는 이 조사를 바탕으로 정리한 보고서의 자료인데, 남북 주민의 통합이 5년 이내에 이루어진다는 응답이 60%를 넘어가는 특이한 응답[20] 도 있다. 통일정책연구 제23권 제2호
- 다만 한국 출신들이 북한 출신들을 강하게 차별한다면, 북한 주민도 통일에 회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시각은 있다. 젊은 세대 중 통일을 반대하는 소수는 남한 출신의 차별에 내상을 입은 경우가 있다. # 여기에 있는 설문조사에서 통일 반대 측에서 통일 반대의 이유로 든 것은 남북의 극심한 적대에 따른 자포자기한 심정,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분석에서는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가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무렵에는 대화를 하며 북한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보고, 통일돼도 북한이 통제를 할 것 같아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
- 통일을 긍정하는 응답도 반드시 준비 없는 통일을 지지한다는 건 아니다. 문화 적응을 위한 10년 이상의 유예를 주장하는 의견이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의 통일 지지를 접해본 사람에게서 나온다. # 탈북민 출신 주성하 기자도 2019년 자신의 저서 '조선 레볼루션'에서 통일로 구 북한 지역이 구 남한 지역을 뛰어넘는 것도 가능하지만, 지금 곧바로 통일하면 남북의 격차가 심해 내전 확률이 50% 이상은 된다고 하였다. 현재 한국 출신들이 탈북자에게 하는 것 이상의 차별을 우려하고 있다. 사회주의적 세뇌는 나치 청산 비슷하게 금방 풀린다고 하지만, 조선족의 취급을 보면 돈 없는 사람이라는 멸시가 꽤 심할 것으로 본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도 통일 지지 의사를 밝히는 태영호 국회의원도 통일 과정에서 북한의 지배계층과 그 이외 계층의 화해가 실패하면 내전을 겪은 예멘, 시리아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한 적 있다. #
8. 남북통일 이후의 예상
8.1. 태풍의 작명
태풍의 작명은 북태평양 열대성 저기압 영향권에 드는 국가 14개가 각자 국가의 언어로 10개씩 제출하게 되는데, 통일이 되면 중화권을 제외한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태풍 작명 안을 '''20개씩''' 제출하는 나라가 된다. 중화권(중국, 홍콩, 마카오)처럼 회원국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려운 것이 저 셋의 언어 차이에 비해 남북한의 언어 차이는 굉장히 양호한 편이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보통화 그리고 대만에선 국어라고 부르는 언어, 즉 표준중국어로 된 이름을 제출하는 데 반해 홍콩에선 영국령 시절에 올린 영어 이름, 예를 들면 라이온 록(lion Rock)이나 광동어로 된 이름, 예를 들면 카이탁(啓德 Kai Tak)을 올려서 언어상의 차이가 있다.
8.2. 통일부의 로드맵
통일부는 향후 통일에 대비하여, 남북통일 로드맵을 마련하여 단기, 중장기에 따라 2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정부 '통일 로드맵' 상반기 중 마련, 통일부, 단기 압축 형ㆍ점진 형 통일시나리오 설정
8.3. 통일 대통령의 역사성
적화통일을 제외한 통일 당시의 한국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통일을 추진하였고 이것이 성공했다면 신라 문무왕 김법민, 고려 태조 왕건의 뒤를 이어 한반도를 통일한 3번째 국가 지도자로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물론, 남북통일이 떠안는 짐도 대단하기 때문에 당대의 평가는 상당한 악평과 그리고 정당한 비판이 섞일 수 있겠지만, 역사 기록의 특성 및 헌법에서 명시한 남북통일의 당위성 등을 생각하면 대통령 자신이 매우 무능하지 않고 평균적이기만 하다면 충분히 역사에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통일 시점에 따라 세월이 흐른 뒤에는 위의 두 통일군주처럼 객관적인 서술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한국이 서독과 마찬가지로 통일비용이 부담 가능한 상황인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기 초반에 바로 남북통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당장의 기쁨으로 문제가 부각되지 않다가, 슬슬 부담이 되는 것은 후임 대통령에게 떠넘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고 남북통일이 부정적으로 끝난다면 헬게이트를 열어 제꼈다는 평가로 후세에 바가지로 욕을 먹는다는 점이다(...). 사실 독일은 통일비용을 차입으로 조달하였고, 이는 후세대가 짊어질 짐이 되었다. # 신기한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세대, 특히 통일 후 태어난 세대가 더 통일지지가 높다는 점이다. 남이라는 개념이나 남이었다는 개념은 기성세대가 강하며, 이런 관념은 잘 바뀌지 않는듯하다. # 아마 이글을 볼 젊은 세대들은 이른 시일 안에 통일이 되고, 통일 후에도 부작용이 생겨도 국가 운영은 어느 정도 될 경우 다른 세대보다 가장 통일 대통령을 비판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한편, 북한 정권이 혁명으로 멸망하고 북한의 새 정권이 대한민국에 나라를 넘겨줘서 통일될 경우 북한의 혁명을 주도한 사람이 한반도를 통일한 인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그때의 남한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냥 어쩌다 보니 통일이 돼 있는(...) 것이고, 오히려 사회 문제로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8.4. 국토대장정
그리고 국토대장정이 2배 이상 길어질 것이다. 그런데 아예 폐지되거나, 최소한 구 남한지역 한정으로만 다닐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치안이나 교통망이 잘 닦인 남한이니까 어느 정도 가능했던 고생이었지, 통일 직후 북한의 교통망이나 치안 상태를 감안하면 정말로 위험해진다. 전 지역을 다니는 건 이 모든 걸 정비한 뒤에나 노려볼 만하다.
8.5. 관광
통일 후에는 한반도 백두대간 전체가 연결되므로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도 있다. 물론 여러 곳에 있는 김 씨 선전용 동상과 구조물, 시설들은 철거하고 역사관 등으로 옮겨놓고, 선전 구호가 쓰인 바위도 깨야 한다.
부산에서 경부선을 타고, 서울에서 경원선을 타서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탈 수 있고,[24] 또한 서울에서 경의선을 타고 베이징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통일 이후 아시안 하이웨이가 모두 연결됨으로 자동차를 타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에서 외국인들이 관광 오는 것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9. 남북통일 이후 문제 해결에 실패할 경우
현재 북한의 실정은 누구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며, 통일의 방식은 어떻게 될 지부터 알 수 없다. 가령 북한의 인적자원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부터도 가지각색의 주장이 있으며, 높다는 주장과 낮다는 주장 모두 공존한다. 이건 전문가 레벨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인적자원의 수준이 높거나 적어도 남한식 제도나 신식 제도에 대한 적응 의지가 강하면 정치경제적 갈등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안정적인 통일을 해낼 가능성이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제사회가 투자부터 주저할 것이다. 그래서 어느 한 쪽 의견만을 고집만 한다면 편향된 시각일 것이다. 대화를 통해 통일할 수 있다는 주장부터, 북한 체제의 붕괴로 통일한다는 말까지 의견이 엇갈리는데, 이에 따라 나타날 문제도 다를 것이다. 전자는 북한 체제 청산이 문제가 되며, 후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통일반대론, 통일반대론/근거 문서에 대강의 주장이 나와있다. 남북통일/이점 문서도 같지만, 다소 편향적인 서술도 있으므로 그런 부분은 감안하며 판단하도록 하자. 중립적인 접근으로는 "통일을 하는 경우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구나"라는 시각으로 문서를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국가의 사생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이 문제를 다룬 소설이다. 전자가 특히 생각은 해 볼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다루며, 토지청구권 문제 해결 실패, 범죄조직 창궐과 지역갈등 극단화 같은 시나리오를 다룬다.
10. 한반도의 통일시기
지금으로서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며 2021년에 분단 76주년[25] 을 맞았다.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인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 '''강경노선'''으로 변경되었고 북한에 대한 고강도 경제제재에도 대한민국이 동참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먹구름이 낀 상태이다. 또한 북한 김정은도 대남비방 및 강경책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라 남북간의 강대강 대결이 양극화되었기 때문에 통일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편이다. 여기에 국민들의 북핵 이후 여론조사에서도 '''북한을 동족이 아닌 적(敵)으로 인식'''하는 여론이 높아서 통일에 대한 기대는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복무 도중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서부전선 포격 등을 경험하여 분위기가 뒤숭숭했던 보수정권 시기 20대 군필자들은 '''북한을 동족이 아닌 신뢰할 수 없는 적으로''' 인식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감이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젊은 시절 '''남북정상회담, 햇볕정책''' 등을 경험하였던 30대와 40대 일부는 '''북한을 동족'''으로 인식하는 것으로도 조사되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초기 평창올림픽 남북 아이스하키 공동팀과 한반도기 논란 중 20대에서 가장 많은 지지율이 빠져나가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50대 이상은 전후와 다름없이 북한을 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26] 그 이외에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서도 격차가 큰데, 지역주의가 남아 있는 한국 정치의 특성상 지역별 격차도 제법 있다.
2020년 현재의 20대 후반~30대 초중반들은 남북정상회담, 햇볕정책 등이 있던 시절에는 모두 10세 전후였는지라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고 그 당시의 경험을 느껴본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본격적으로 정치적인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인 10대 중후반에는 북한의 돌발적인 핵실험과 갑갑한 육자회담이 반복되는 시기였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20대가 되었고 그 당시 북한의 잦은 불바다 협박과 금강산 총격사건, 천안함 폭침, 연평도 도발로 인한 햇볕정책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대 남성들은 이 당시 군복무 중인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말년 휴가가 돌연 취소되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 사회에서 뉴스로 접하는 것과 달리 실제 상황을 피부로 느낀 사람이 많다는 것.
거기에 더해, 북한에 대해 일종의 동일한 민족의식을 어렴풋이 느끼는 중장년층을 비롯한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신세대는 냉전이 끝난 후 이미 선진국에 도달한 한국에 더 익숙하며 북한과는 어떠한 연고도 없이 사용하는 언어만 똑같은 사실상 이질적인 '타국'으로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공정성에 대해 민감하고 서구권의 개인주의를 추구하며 애국, 북한을 포함한 민족주의를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느끼는 세대인 만큼 이들에게는 북한이 비도덕적이고 못나기까지 한데 주제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외국으로서 투영되고 있다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다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이후의 군필자들은 남북관계에 따라 변동이 꽤 심하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서는 북한의 대남도발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2017년 이후 30대에서 더 높다고 언급한다.
사실 이것이 더 근본적인 원인일 수 있는데, 대남 도발은 천안함 폭침 이전에도 연평해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많았고, 그 이전에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처럼 무고한 민간인이 죽었으며, 20대도 청소년기에는 진보 정부의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도 3~40대와 20대는 다른 시각을 보인다. 2010년대의 도발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그냥 외국과 비교하면 강하지만, 90년대 이전보다는 오히려 약한 편이었다. 2018년의 남북정상회담 무렵에는 20~30대가 오히려 60대 이상보다 통일 지지가 높았고, 81~95년생보다 95~2003년생이 통일 지지가 높았다는 설문조사가 존재한다. ## 그러니까 기성세대가 '내전'의 범주에서 북한을 보았다면, 90년대생부터는 외국의 범주에서 북한을 보아 박항서가 활약하던 시기의 베트남처럼 북한이 호의적으로 바뀐다면 통일에 찬성하며, 그렇지 않는다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아이스하키 공동팀도 이런 설문조사의 반응과는 맞지 않아, 이들이 '외국'과의 팀을 구성하는데에 대한 공정성 문제를 심각하게 여겼다고도 볼 수 있다.
3, 40대들의 경우 10대 시절에 냉전 해체와 북한이 고난의 행군으로 몰락하며 평화를 위한 기대감이 높던 시절이었고 2, 30대 시절을 김대중 정부에 영향을 받았던 데다가 정치 첫 입문도 김대중, 노무현 두 진보적 정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향이 있어서 20대와는 다르게 일부 중에서 북한을 적이라기보다는 동족으로 보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27] 또 2, 30대 시절 중에 남북정상회담이 2차례나 열렸던 영향도 있다. 그러나 40대도 45살을 넘어가기 시작하면서 북한이 핵 위협이 본격화되자 중도화된다. 대체적으로 정부의 정책이 구시대적인 반공 정책인 경우 반대하나, 북한의 자금을 끊는 등의 정책에는 우호적인 등, 상당히 중도적인 스텐스를 보인다.
50대 이상은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이고 세대 대부분이 냉전이 격렬하던 시대에 태어나 남북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을 눈으로 본 경험이 있고, 반공방첩 구호를 외치던 때에 초년 인생을 보내왔다. 게다가 20대 때 활발하게 활동하던 민족주의 운동권이 갑작스럽게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공산주의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무너지는 것도 봤던 세대다. 그럼에도 20대와 다르게 일단은 같은 민족이고 도와줘야 하는 동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전후에 관계없이 북한은 적이라고 생각해서 매우 강경한 편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 정계의 정당들 중 자유한국당은 북한에 대해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북한에 대화와 평화적 해결을 통한 유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28] 2016년과 2017년에 창당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해 구성한 바른미래당은 북한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29] 철저한 강경노선을 일관하는 자한당과 달리 현 문재인 정부의 대북 평화 정책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고 있으며, 군소 진보 성향 정당인 정의당은 "대북 강경책은 현실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키기에는 불가능하다. 대화와 협상이 북한 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북한 정권을 통일의 걸림돌로 보는 대신, 주민들이 남한을 알 수 있게 하는 데에는 크게 반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30]
그러던 도중에 2020년 6월 16일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이 발생. 그리고 '''북한이 사실상 20년 전의 6.15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행동을 보임'''으로서, 결국 김대중 대통령부터 남북평화를 위해 애써온 행동들이 한순간에 산산조각나버렸으며, 그나마 평화통일이 가능할 거라고 느꼈던 30, 40대들도(위에 거론한 남북정상회담, 햇볕정책을 지켜봐온 이들) 평화통일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어버려서, 사실상 기존의 남북 관계를 대표하던 전후 실향민 세대의 시대가 가고, 남북이 서로 이득을 위해 주고받는 완전한 남남인, 세계화 시대가 왔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버렸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공통된 의견으로 꼽는 것은, 남북통일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에도 잘 나와 있다. 이를 위해서 군사적인 옵션을 동원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외교적인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 투명한 남북교류협력으로 상호간의 이해를 증진시켜야 북한과 남한 주민들이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는 이것이 대북제재로 현재 막혀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이 상황에서, 종전까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일을 논하기는 현재 매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수[31] 는 북한 정권을 믿지 않는 전제에서 대북제재를 북한의 행동에 따라 강도를 달리하여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며, 대북 지원은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어도 북한 정권을 도와주는 형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종전은 북한이 요식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여긴다.
2020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2045년까지 '산업·시장·화폐·재정·정치'의 통합을 목표로 하겠다고 하였지만, 독일을 보며 이것이 가능할지 여기는 여론이 인터넷 상에 많다. 독일 재통일의 예로 알 수 있듯, 동독이 공산주의 국가 중에서는 최상위권의 부국이었음에도 통일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갔는데 공산주의 국가, 아니 전 세계적으로 봐도 하위권의 빈국인 북한을 상대로는 지금 이 상태에서 독일식으로 통일할 경우 대한민국은 엄청난 통일비용 폭탄을 맞게 될 것이다. 서로를 너무 몰라 남북 간 편견도 꽤 심한 것으로 보이며, 일반인들은 통일의 방법에 대해 경제적 부담이 심한 방안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남북이 최대한 협력해도 이럴 지인데 북한의 태도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일으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으며,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최소 3년, 10년 정도가 흘러야 평화통일을 논의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분단이 장기화되면서 통일은 절대 불가능하다거나 가능하더라도 수백 년 이후의 먼 미래일 것이라는 비관적인 의견이 점차 늘고 있으나, 예상보다 가까운 시일에 통일이 갑자기 진행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 체제는 온갖 통제와 감시로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이며, 북한 내 급변사태 등 돌발 변수가 붕괴를 촉발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자세한 시나리오는 북한 붕괴론 참조. 이러한 변수들을 감안한다면 2030년대 이후까지 북한이 현재와 같은 형태로 건재할 확률이 낮아질 것으로 보이며, 북한 붕괴를 통하거나 북한 정권이 붕괴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로서 최소한 시장 개방과 같은 조치는 취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에서는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자신의 빈곤과 이념 대립, 통제 생활의 불편을 해결할 유일한 수단은 통일이다'라는 인식이 강해 중국 수준의 개방만 되어도 선제적으로 북한이 통일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남측의 젊은 세대가 반발할 수 있어 북측이 남측을 설득하고 편견을 없애려는 노력을 하고, 자신도 세금이나 문화 차이 같은 남측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스스로 변화하고자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탈북자들이 정치 활동, 남한식 교육 이수, 유튜브를 통해 이런 활동을 하기도 한다. 동독에서도 동독 주민의 통일 의지가 통일에 큰 변수로 작용했다. 또한 실제 독일의 경우에도 다수의 주민들이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가졌으며, 통일이 되기 불과 2달 전에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30년 내에 통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 우위를 차지했지만 이러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0.1. 현실적 전망에 대한 관련 기사
http://www.sisa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738
http://news.donga.com/3/all/20141031/67562948/1
http://www.koreaunited.kr/wp-content/uploads/2017/12/안드레이-란코프.pdf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449844
https://www.google.com/amp/s/cm.asiae.co.kr/ampview.htm%3fno=2019061711532704845
https://n.news.naver.com/article/005/0000613931
11. 출처
-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9권: 우리나라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18. p209~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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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서 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형식적으로는 위헌에 가깝다. 또한 헌법에서 '평화적' 통일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북진통일'처럼 비평화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2] 실향민으로 함경북도 경성군 출신이다. 나비와 광장으로 유명하고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3]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작가 본인에게 하는 말이다.[4] 민족의식이 거의 같으면서도 분단되거나 다른 나라들로 갈라서 사는 사례는 많이 있다. 냉전 시대 때 독일과 베트남, 루마니아와 몰도바, 중동 아랍국가들, 코소보를 제외한 구 유고 연방 국가(코소보는 알바니아인들이 주류인 데 반해 다른 구유고 연방의 국가들은 국가는 다르지만 민족적, 언어적으로 남슬라브인 계통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로루시 등 옛 소비에트 연방의 동슬라브 국가 등 민족은 같으나 나라가 갈리거나 다른 나라들로 지내는 국가는 생각보다 많다. 일각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유일한' 분단국가라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분단국가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이런 케이스가 한국만 있는 게 아니다.[5] 굳이 비유하자면 남한과 북한보다는 고려, 조선시대 이전 한국의 한반도와 제주도 사이 정도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6] 신라의 삼국통일은 고구려 지역 전체를 통합하지 못했고, 결국 나중에 발해가 세워져 남북국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제외.[7] 남북관계: 한국인 10명 중 6명, '통일이 필요하다'...10년 만에 가장 높아[8] 정치 통일은 나중에 이뤄지고 경제적 통합만 되면 한국이 북한 주민들 먹여 살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 다만 이것도 실현 가능하거나, 정치적 이익이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9] 권영성, 헌법학원론(2008년판), 법문사, 43~56p, 178~182p 참조.[10] 사실 이런 식으로 무한 연기하는 쪽이 한국에겐 훨씬 유리하다. 통일을 공식 포기하고 북한을 정식 국가로 인정해봤자 한국에겐 메리트가 전혀 없다. 오히려 '이북 영토'에 대한 정통성과 당위성만 잃어버릴 뿐이다. 예를 들어 만일 하나 중국이 북한을 합병하려고 할 경우에도 통일을 포기한 한국 정부는 규탄 성명만 내고 잠잠히 있어야 한다.[11] 진영논리도 적용된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당시와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당시 정권의 성향에 따라 언론의 반응이 달라진다. 그리고 개, 폐막식에 한정하면 인공기 당당히 들고 입장한 것은 인천 아시안 게임이 사상 처음이다.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는 한반도기를 이용한 동시입장으로 '''인공기를 막았다.''' 태극기 포기 아니냐 하겠지만 어차피 개회식 행사에는 개최국 국기 게양이 있고, 거기 게양된 것은 한반도기가 아니라 태극기였다.[12] 북한이 주장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도 이에 해당된다.[13] 당시 서독의 1인당 GDP는 약 2만5천불, 동독의 1인당 GDP는 약 9천불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당시 서독을 수치상으로 초월했지만, 현재의 북한은 당시 동독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의 1인당 GDP를 가진 상황이다.[14] 사실 기사에서 사례로 든 예멘은 남북한보다 훨씬 긴 세월을 분리된 채 지낸 곳이다. 예멘 문서에서는 1839년에 분리 후 1990년에 통일했다고 언급한다. 갈라진 햇수로는 남북한보다 차이가 심하다. 다만 북한의 극심한 통제로 통일이 찾아오면 동독과 다른 형태를 예상하고, 남한도 '관용'이라는 면에서 서독보다 나을까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이 기자가 언급하는 대안은 북한 붕괴 후 2~3년 안에 일자리를 만들어 공동화 등을 방지하고, 이를 위해서 대화를 통해 붕괴 전 인프라를 지원하라는 것이다. 그는 북한 붕괴가 없으면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15] 통일이 '약간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19~29세의 28.6%, 이하 2020년 통일인식조사 출처)의 가장 주된 근거다.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19~29세의 6.7%)는 통일 이후 사회적 문제를 가장 큰 통일 반대 이유로 꼽으며, 다른 의견에 비해 문화적 차이를 통일 반대 이유로 드는 비중이 높다. 이들은 북한 주민과의 통합에서도 부정적 견해 내지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볼 수 있다.[16] 탈북자들은 북한의 젊은 세대가 주체사상에 대한 충성심이 낮다고 언급하기도 한다. 시장경제의 발달, 부정부패로 외부 정보에 대한 실질적 단속이 느슨해져 시간이 갈수록 그 주민들이 한국 문물을 친숙하게 여긴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북한 내부에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여론을 높여 김정은이 체제를 바꾸거나, 아니면 정권을 교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17] 주위와 무관한 자신을 의미한다.[18] 탈북자 본인이 아닌 주위의 여론을 묻는 것이다.[19] 4시간 46분짜리 동영상. 이 조사 자료를 공개한 학술회의 전체 내용을 유튜브에 공개하였다. 이 회의는 과거 조사 자료를 모두 포함한다.[20] 한류, 중국 내 한국 방송을 통해서만 한국을 접한 경우가 많아서 이런 답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21] 출처[22] 조사한 해의 직전 해에 탈북한 탈북자를 조사한다.[23] 문 대통령과 송영길 의원을 지지하는 탈북민 출신 주승현 박사가 있다. #[24] 다만 이런 루트로 가려면 원산역에서 함흥역으로 가는 철도를 새로 깔아줘야 한다. 그 후 평라선과 두만강선을 통해 러시아의 하산역, 블라디보스토크 역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25] '주기'는 뜻이 '제삿날'이므로 죽은 사람에 한정하여 사용하고 사건에는 쓰면 안 된다. 즉, '주기'라는 말을 쓰려면 앞에 사람 이름이 와야 한다. 사건 이름이 오려면 '주년'이라 해야 한다. 보통 부정적 사건은 'OO주년'이라고 기념하는 일이 많지 않아서 헷갈리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쪽이 옳은 표현임에도 "그런 심각한 사건을 '몇 주년'이라고 좋은 일인 양 표현하다니 말이 되냐."라며 항의를 받는 경우가 다반사다.[26] 특히 6.25 전쟁과 냉전 40년을 겪은 60대 중반 이상 세대의 경우 북한 정권과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27] 이 시절의 '정말로 몇 년 몇 십 년 내로 통일이 될 것만 같았던 분위기'를 기억하는 30~40대 세대들은 다른 세대들보다 통일에 대해 덜 비관적인 편이다.[28] 물론 이런 정책과 별개로 군비 또한 대폭 증가시키고 있고 국방 백서에도 북한의 위협을 분명히 언급하고 있는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말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29] 실제로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 대표는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창당 이전인 2013년 북한의 장성택 사형 당시 "야만적인 행위"라고 어느 정도 북한을 비판한 바가 있었다.#.[30] 대북전단 문제에서 이런 성향을 보였다. 이 문제는 민주당과의 대북관의 차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다.[31] 현 미래통합당의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