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연(후한)

 


'''施延
시연
'''
'''최종직위'''
태위(太尉)
'''성씨'''
(施)
''''''
(延)
''''''
군자(君子)
'''생몰 기간'''
?년 ~ ?년 (향년 76세)
'''고향'''
패국(沛國) 기현(蘄縣) / 오흥(吳興)
'''무덤'''
무강현(武康縣) / 오정현(烏程縣)
'''태위 재임기간'''
133년 8월 1일 ~ 135년 4월 5일
자는 군자(君子), 패국(沛國) 기현(蘄縣) 출신 무덤은 무강현(武康縣)에 있다
나름 후한태위를 지내었지만, 그 기록이 안습할 정도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후한서에는 133년 6월에는 낙양의 가뭄이 들어 그 여파로 태위인 방참(龐參)[1]이 해임되고 그 대신 8월에 태위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135년에는 다시 방참이 태위가 되었다고 하니 그 후에는 기록이 없다.
명일통지(明一統志)에서는 오흥(吳興)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으며 태위와 홍건경(鴻臚卿)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원풍구역지(元豊九域志)에서는 시연의 무덤이 무강현에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서는 시연의 무덤이 오정현(烏程縣) 서쪽 24리 부근에 있고, 한순제 때 현위(縣尉)를 역임했다고 하지만 현위는 태위(太尉)의 오기(誤記)이다.
후손으로는 후에 주치(朱治)의 양자가 되어 주(朱)씨가 되는 시연(施然)이 있다.

[1] 전처의 자식들을 우물에 던져 죽인것 까지 합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