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발부 수지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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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감히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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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세워 도를 행하여서 후세에 이름을 드날려 부모님을 드러내드리는 것이 효도의 마침이다.
1. 개요
2. 상세
3. 기타


1. 개요


효경(孝經)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교적 효사상의 핵심적인 문구라 자주 인용된다. 여기서 나온 입신양명(立身揚名)은 세속적 출세를 나타내는 단어로도 흔히 쓰인다.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얼핏 면도도 하지 말고 손톱도 깎지 말라는 허무맹랑한 말로 들릴 수 있으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자식이 몸을 성히 보존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가 자식에게서 바라는 가장 큰 염원이다. 따라서 축자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해하지 말라”는 의미로 보면 시대를 초월한 효의 본질을 짧은 글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2. 상세


조선시대에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었고 조선말기 단발령에 대한 반발의 논거가 되었다.[1] 형벌도 참수형이나 거열형, '''궁형''' 등 신체절단형이 가장 치욕적 형벌로 여겼다. 자살도 당연히 큰 죄악으로 보았다. 현대에도 "몸에 칼을 대는" 외과적 수술을 꺼리고 미용목적의 성형수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풍조도 이의 유습이라고 볼수 있다.[2]
하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라 해도 손톱, 발톱은 깎았다. 손발톱을 깎지 않으면 생활에도 불편하고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발톱을 깎은 후에도 뒷처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항상 불에 태우거나 변소에 버렸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여우나 호랑이, 쥐 등이 이것을 먹고 그 손톱의 주인으로 변신해서 인간들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 비단 옛날 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어른들 사이에서는 이런 터부가 있다. 사실 손발톱뿐만 아니라 수염도 어느 정도 가위질을 해서 관리했다.
터럭을 손상한다 해서 무조건 불효로 매도당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시아버지를 봉양한 효부에 대한 전승이 곳곳에 전해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 단발령이 반발을 산 것은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을미사변, 배코친머리에 대한 부담감, 강제시행 등 여러가지 문제들이 얽히고설킨 결과였다.

3. 기타


포항공과대학교 생명과학과에서는 아직도 전설이라 불리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는데, 바로 "'''조선시대 단발령에 대한 조상들의 반발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대고, 이를 분자생명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시오.'''" 참고로 교수가 생각한 모범답안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한다. "조상들이 제시한 논리적 근거는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이나, 그들이 단발령에 대해 반발할 때에는 이미 부모에게서 물려받았다고 볼 수 있는 오리지널 세포는 없다. 즉, 그들의 체세포는 전부 그 오리지널 세포인 수정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부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신체발부수지부모를 주장할 수 없다." 이 문제의 배점은 98점 만점에 무려 '''20점.''' 교수의 독특한 시험문제 참고.
일제강점기가 끝나고나서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발단속이 지속적으로 이어져내려온데다가 특히 1970년대에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장발단속이 많이 이루워졌는데 그 때문에 신체발부 수지부모가 블랙코미디적인 용법에서 쓰여왔다.
이 사상 때문에 여러 문제를 야기한 적도 있는데, 특히 최시원 개 주민 습격 사망 사건처럼 고인이 정침에서 임종할 경우 사망자 본인이나 유족들이 대수롭게 여기면 사망 원인을 밝혀내기 어렵게 된다. 유족 측에서 변사사건으로 처리해야 했지만 정침에서 임종한 탓이 크기에[3] 일반 사망으로 처리한 것. 결국 최시원은 처벌받지 않았다.

[1] 그런데 상투를 틀기 위해서는 머리를 조금 잘라야 했다. 단발에 대한 저항은 사실 서양문물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2] 조선의 왕들 가운데 상당수가 종기로 사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많다. 이 의견은 주로 '옥체에는 침을 댈 수 없다'는 것. 다만 조선 현종의 종기를 치료한 백광현의 사례도 있고, 효종(조선)이 종기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의인 신가귀가 침을 잘못 찌르는 의료사고를 범하는 바람에 세상을 뜨는 등 왕에게도 외과 시술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3] 고인의 친아들은 사인이 명백하므로 모친을 깨끗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예시라 해도 이상할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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