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베르트 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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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베르트 하임(Aribert Heim)'''
(1914년 6월 28일 – 1992년 8월 10일)
'''Dr. Death(죽음의 의사)'''
나치 독일의 생체 실험에 관여한 의사들 중 서양권에서는 상당히 인지도가 있는 의사로 꼽힌다. 왜냐하면 하임은 악명높은 모사드가 쫓았음에도 2009년까지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 하임의 생존여부가 계속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바트 라드켈스부르크에서 태어난 아리베르트는 빈에서 의사로 일하다가 1935년에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했다. 1938년에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된 후엔 친위대에 입대했고 1941년 11월에 오스트리아에 있던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의 의사로서 부임한 그는 이 수용소에서 SS의 약제사이던 에리히 바쉬키와 함께 유대인 수용자를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실시했다. 아리베르트가 직접 작성한 자신의 실험 일지에 따르면 아리베르트는 유대인 수용자들을 '''실험실로 끌고 가서 마취조차 하지 않고서 다리나 팔, 몸 전체를 절단하거나 사람의 장기를 절개하고 신체를 절단한 후에 장기를 적출하고 해부했다. 또한 가솔린이나 여러가지 용액들과 독극물, 화학 약물들을 주사기에 채워 넣은 후, 수감자들의 심장에 꽂아넣은 뒤에, 심장에 약물을 투여했고 시계를 이용하여 생존시간을 측정'''하는 인체 실험을 실시했고 이로 인해서 아리베르트 하임은 마우트하우젠의 도살자라고 불렸다. 1942년에 수용소 근무에서 제6 SS 산악사단의 군의관으로 핀란드 전선과 서부전선에서 근무한 후 그는 1945년 5월에 미군의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 들어갔다가, 다른 포로들과 함께 풀려났다.[1]
1961년에 서독 당국은 아리베르트 하임이 몇 년 형을 받았는가를 조사하다가, 그가 무죄로 풀려났으며 바덴바덴에서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는 것을 알고는 강제 수용소 시절의 범죄행위에 대해 다시 조사하겠다고 발표한 뒤 그를 공개 수배했다. 그러나 아리베르트는 체포장이 내려온 그 즉시 독일 밖으로 도주했고,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 모로코로 도망친 뒤 페르디난트 하임이라는 가명으로 이집트로 입국해 카이로에 정착했다. 카이로에서 그는 약 10년간 체류했는데, 이때 대담하게도 1976년에는 아들과 면회했으며, 그는 아들에게 당시엔 죄인줄 몰랐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2000년이 되어서도 아리베르트가 도저히 소식조차 들리지 않자 유럽은 그에게 150000 유로의 현상금을 내걸었고 그래도 잡히지 않자 오스트리아 정부가 그에게 50000 유로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아리베르트는 카이로의 한 호텔에서 외부 연락을 끊고 생활했으며 혹시라도 자신의 얼굴이 노출될 것을 염려하여 절대로 사진에 자신의 모습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소재는 이스라엘 모사드와 현지 유대인들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한 여자아이가 넘어져서 다쳤을 때 치료해 주거나 장난감이 고장났을 때 고쳐주는 등의 친절한 이웃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에 대한 행방이 묘연하던 차에 2009년 2월 4일 독일의 공공방송과 미국신문 뉴욕 타임즈의 공동조사로 인하여 아리베르트의 여권 및 은행 통장 등이 발견되어 그가 1992년에 사망했으며 이슬람교로 개종하여 이름도 탈리크 후세인 파리드로 또다시 개명한 것으로 판명났다. 이슬람교로 개종한 이유에 대해 연구원들은 나세르가 죽은 후 이스라엘과의 화평으로 이집트 정부가 자신을 전범으로 인도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아랍인으로 위장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리베르트와 오랫동안 교제해 온 이집트 의사의 아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대장암으로 사망했으며 카이로의 빈민묘지에 묻혔지만 현재 묘지는 도시개발로 인해 파괴되어 유해를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 아리베르트의 아들이던 루디거도 1990년에 아버지가 암으로 투병했다는 것을 이야기했으며. 원래 아리베르트는 남미로 달아나려 했지만 자신의 존재가 잊혀지면서 체포될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자, 그냥 그대로 이집트에 정착했다고 생각된다.
그는 종전 후에 의사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나치당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받은 보수들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이집트 호텔에서 생활할 수가 있었고, 그가 죽었을 때에도 '''120만 유로(약 21억원)'''의 돈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가 막힌 사실은 하임의 아들이 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나치 전범 추적자인 에프라임 주로프는 그가 죽었다는 보도의 내용이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만 아리베르트의 무덤과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그가 죽었다고 확인할 수 없다며, “만약 하임이 처벌받지 않은 채 삶을 마감했다면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