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틀 오나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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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틀 소크라티스 오나시스(Aristotle Sokratis Onassis)
(1906년 1월 15일~1975년 3월 15일)
1. 소개
2. 여담


1. 소개


그리스의 사업가, 재클린 케네디의 남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와의 염문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1906년 오스만 제국의 스미르나(현재 터키령 이즈미르)에서 중산계급의 그리스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터키 독립전쟁 이후 오나시스의 집안은 전 재산을 잃었고, 그리스와 터키의 인구 교환으로 그리스로 돌아가야 했다.
그 후 오나시스는 1923년 그리스를 떠나 아르헨티나에 정착했고 그곳에서 무역업,해운업을 시작해 큰 재산을 모았다. 그리스의 해운왕으로 불리던 스타브로스 리바노스의 딸이던 아시나 리바노스와 결혼한 오나시스는 장인의 도움으로 사업이 크게 확장해 1957년엔 그리스의 항공회사인 올림픽 항공을 설립하는 등 해운업 이외에도 사업을 확장했다.[1]
1957년에 베네치아에서 열린 파티에서 오페라 가수이던 마리아 칼라스와 사귀게 되었다. 이후 첫 아내 아시나와 1960년에 이혼했다. 마리아 칼라스 또한 오나시스와 사귀게 된 이후 남편인 메네기니와 이혼하려 했다. 칼라스는 무명 시절부터 자신을 후원해준 28세 연상의 사업가 메네기니와 결혼했고, 메네기니 덕분에 가난한 삶을 청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칼라스는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유명해졌고, 세계적인 갑부 오나시스와 사귀게 되자 메네기니의 재산 따위는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메네기니가 그녀와 이혼을 원하지 않았기에 칼라스는 오랜 소송 및 국적을 바꾸면서 메네기니와 이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나시스는 마리아 칼라스와 동거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
칼라스와 사귀는 와중에 오나시스는 미국 대통령었던 존 F. 케네디의 처제인 리 라지윌(Lee Radziwill)과 사귀게 되었다. 리 라지윌은 오나시스와 세번째 결혼을 하길 원했고, 오나시스를 알기 직전에 재혼한 것이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말했다. 라지윌은 친언니인 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에게 결혼하고 싶은 남자라고 말하며 오나시스를 처음 소개했다. 재클린을 소개받은 오나시스는 칼라스와 라지윌을 함께 사귀면서 동시에 재클린에게도 접근했다. 물론 그 외에도 더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1968년 오나시스와 재클린의 결혼 발표는 전세계적인 이슈가 되었고 특히 미국인들은 충격에 빠졌다. 케네디가 암살당했을 때 재클린이 'Oh, No.'를 외쳤고, 재클린이 오나시스와 재혼하자 이번엔 미국인들이 'Oh, No.'를 외쳤다는 일화를 남겼다.
오나시스와 재클린의 결혼 발표 직전까지 오나시스와 함께 파티에 다니던 라지윌은 친언니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며 분노했다.
하지만 결혼 후 오나시스와 재클린의 부부관계는 결코 좋지 못했다. 오나시스는 재클린의 사치 때문에 갈등이 심했고, 재클린과의 불화 이후 보다 자신을 진심으로 대한다고 여겼던 마리아 칼라스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재클린은 오나시스에게 자신과의 결혼은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고 여겼고, 전 남편인 케네디처럼 남편의 바람기로 고생했다.[2]
오나시스는 재클린과 이혼하려 했으나 그 전에 기관지 폐렴으로 사망했다.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남겼으나 이혼하려 했던 재클린에게는 한 푼도 주지 말고, 하나뿐인 딸 크리스티나(1950 ~ 1988)[3]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오나시스 사망 후 재클린은 유산 분배에 대한 소송을 걸었고 결국 1억 2500만 달러를 받아냈다.
한편 오나시스와 전처 다음으로 오랜 세월을 함께 했던 마리아 칼라스는 한푼도 받지 못했다. 다만 오나시스의 여동생이 그녀를 배려하여 약간의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2. 여담


  • 한국과도 약간의 인연이 있는데 오나시스의 처남이었던 조지 리바노스 회장[4]은 현대중공업과 각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처음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울산 조선소를 세울 당시 정주영 창업자에게 유조선 2척을 발주해줌으로써 세계 최대 조선소로 발돋움하는 기틀을 다질 수 있도록 도와준 것.
  • 그레이스 켈리모나코 공국의 공비로 앉힌 게 그라는 추정이 있다. 당시 오나시스는 모나코 왕실의 실세였는데, 그는 모나코 경제의 젖줄이나 다름없었던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레니에 2세에게 할리우드 스타와의 결혼을 제의했고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를 연결해 줬다는 것.

[1] 이 항공은 한때 그리스의 플래그 캐리어였지만 오나시스 사후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2009년 문을 닫았다.[2] 다만 그것과는 달리 오나시스는 케네디 대통령의 자식인 캐롤라인 케네디존 F. 케네디 주니어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3] 본래 아들 알렉산더(1948 ~ 1973)가 있었지만 비행기 사고로 일찍 죽어 크리스티나만이 살아남았다.[4] 첫부인인 아시나 리바노스의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