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히사타다

 


1. 소개
2. 출신 및 스승
3. 카게류
4. 왜구와의 관련
5. 유파 및 제자
6. 대중매체에서


1. 소개


愛洲移香斎久忠 (1452~1538)
아이스 이코사이 히사타다
무로마치, 전국시대의 검술가. 일본 검술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삼대 원류 중 카게류의 시조.
이코사이는 출가 후의 법명이며, 관위는 종 4위하 사에몬노죠(左衛門尉) 혹은 휴가노카미(日向守). 자칭인지 정식 관위인지는 연구에 따라 이설이 있다.
일본에서보다 중국과 조선에서 더욱 유명세를 떨친 인물로, 일본에서는 고금제일의 달인. 일본 역사상 최강자인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를 제자로 두었으며, 중국에서는 명의 장수 척계광(戚繼光, 1528~1588)이 신유년 즉, 1561년 진중에서 얻은 영류지목록(影流之目錄)이 <기효신서>에 실려 있는데, 원비(猿飛)·원회(猿回) 등의 명칭이 있는 것으로 봐서, 아이스 이코오사이 히사타다의 카게류인 것으로 보인다. 이 카게류는 <기효신서>의 장도(長刀)에 영향을 미쳤으며, 조선에서 편찬된 <무예제보(1598)>의 장도, <무예도보통지(1790)>의 쌍수도(雙手刀)로 이어진다. 즉, '''한·중·일 3국의 검술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상당히 연구가 덜 되어 있는 인물로 특히 1925년의 검도의 발달이라는 책에서의 연구는 왜구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라는 일본의 역사 왜곡 때문인지 특히나 부실했었지만, 이후 아이스 히사타다의 9대 손 히라사와 미치아리(平澤通有)가 저술한 '히라사와가전기(平澤家伝記)' 등의 가문 기록이 발견되고, 일본 고류 검술을 찾기위하여 묘족이나 중국, 심지어 조선의 무예도보통지 등을 연구하는 일본의 연구자도 늘어나면서 행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는 있다. 다만 아직 정확한 연구는 안되어 있는 수준이라 이하의 행적의 상당수는 역사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연구의 영역임을 유의.

2. 출신 및 스승


1452년, 이세(伊勢)의 다이묘 기타바타케 가문을 섬기는 호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일단 어린 시절부터 도검의 도에 능통하여 각지를 무사수행 다녔다고 하며, 1925년의 검도의 발달에 의하면 36살까지 키나이의 이가 등을 돌아다니며 당류 등의 고류 검술을 배웠으며, 사사키 씨 등의 검술사범으로서 벼슬을 살거나 교토로 상경하기도 했다. 정도로 넘어가고 있지만....
전술한 히라사와가전기에 의하면 아이스 히사타다는 젊은 시절 일본의 '''관동, 큐슈. 혹은 명나라, 조선까지 여행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을 토대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즉 무예 유파 대사전(1978)의 연구에는 이 '''여행'''이 실제로는 당대의 명나라의 해안에서 늘상 행해졌던 왜구약탈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하고 추측하고 있으며, 또한 이세 자체가 구마노(熊野)수군, 구키 요시타카 등 왜구로 대단히 유명한 지역이며, 심지어 히사타다의 출신인 이세 아이스 씨 역시 호족이라기보다는 이세의 수군 = 왜구로서 이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추측하고 있다.
어쨌든 그러한 무사수행(?)을 마치고 36살, 휴가에 우도 신궁에 참배하여 카게류를 개안하였다.
이 부분은 후대에 야규 신카게류가 너무 출세를 해버리면서 전승의 디테일 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일단 가장 오버하는 전승으로는 무려 신이 피비린내 나는 인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아이스 히사타다에게 비기를 전수하였다는 전승이 있고, 다른 전승으로는 우토 신궁의 암벽 위에서 좌선 수행을 하다가 꿈에 원숭이 신이 나타나서 그에게 비기를 전수하였다는 전승이 있으나 역시 믿을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믿을만한 이야기로는 후대의 야규 신카게류의 야규 쥬베가 남긴 월지초(月之抄)에서 기록된 이야기인데.. 즉 '''이코사이는 거미, 원숭이, 제비 등 동물의 움직임에서 검의 오의를 깨우쳤다.'''[1]
즉 왜구질을 다니면서 얻은 경험 + 원숭이의 움직임을 보고서 스스로 독학을 하여 유파를 창시한 대단한 인물. 어쨌든 원숭이와 관련이 깊은 유파라 카게류의 비기 또한 원숭이 원(猿) + 나를 비(飛)해서 엔삐라고 한다. 엔삐에 대해서는 후술.
카게류 창시 후에는 카게 류를 전파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하 왜구와의 관련에서 후술.
이후에는 사에몬노조, 휴가노카미를 자칭하다가 87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후사는 자식인 아이스 무네미츠가 잇는다.
다만 1971년의 무예 소전에서는 휴가노카미를 자칭한 것이 자칭이 아니라 우토 신궁의 신관이 되어 관위인 휴가노카미 등을 얻은게 아닐까라고 추측하고 있으며, 다이묘도 아니고 개인이 함부로 휴가노카미를 자칭할 수 있었냐는 걸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이쪽의 신빙성이 높을 듯.

3. 카게류


카게류 자체는 실전 되었기에, 후신인 신카게류와 야규파 신카게류로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이 두 유파의 검풍과 명나라의 기록이 달라서 정확한 추정은 불가능하다. 신카게류와 야규파 신카게류는 상대방의 검격을 피하면서 측면을 공략하는 유연한 검풍으로 유명하지만, 정작 명나라에서는 왜구가 펄쩍 뛰어오르며 베어 일도양단을 하였다는 투박하지만 박력있는 검술로 묘사하였다.

4. 왜구와의 관련



5. 유파 및 제자



6. 대중매체에서


[image]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 PK에서 첫등장.
[1] 신비주의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명인의 경지에 오른 이들 중에 동물의 움직임을 참고하는 이들은 의외로 많았다. 무술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이루기 위한 신체의 효율적 운용을 중요시하는데, 동물들은 언제나 효율적으로 신체를 다루기 때문이다. 현대의 달인 중 하나인 시오다 고조금붕어의 움직임을 수년간 연구하였다. 소림사에서도 다섯 동물의 움직임을 본뜬 오형권법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