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카와 나나세

 


<color=white> '''아이카와 나나세'''
'''相川七瀬(あいかわ ななせ │ Nanase Aikawa'''
<colbgcolor=salmon><colcolor=white> '''본명'''
<color=salmon><moccasin>'''아이카와 나나세 (相川七瀬(あいかわ ななせ, Nanase Aikawa)'''[1]
'''출생일'''
1975년 2월 16일
'''출신지'''
오사카 부 오사카 시 히가시도요가와 구
'''혈액형'''
AB형
'''소속사'''
에이벡스
'''레이블'''
cutting edge 계열의 motorod
'''SNS'''
페이스북 트위터 아메바 블로그
'''홈페이지'''
에이벡스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가수 활동
3. 여담


1. 개요


'''아이카와 나나세(相川七瀬)'''는 일본의 여성 가수이자 컬러 테라피스트이다. 주 장르는 록으로, 초창기에는 보이시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주로 밀고 있었으나, 2000년을 전후하여 데뷔와 초기의 프로듀스를 담당해 주었던 오다 테츠로와 결별하면서 어느 정도 평범한 여성 솔로 가수와 비슷한 노선이 되었다. 2001년 결혼하고 첫 아들을 출산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져 초기의 반항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으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가정과 육아, 체력 등의 문제로 인해 활동 자체가 굉장히 뜸해진 상태. 최근에는 가끔씩 버라이어티 방송에 패널로 등장하는 것이 전부라고 느껴질 정도로 활동이 없다. 그나마 2016년에 오랜만에 앨범이 나온 것이 팬들로서는 기쁠 따름.

2. 가수 활동



<salmon><color=white>'''데뷔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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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mon><color=white>'''2집 paraDOX 당시의 빨간 머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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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mon><color=white>'''4집 FOXTROT 당시의 금발 숏컷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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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만 15세의 나이로 소니 주최의 오디션에 합격하고 이후 4년간 오다 테츠로의 프로듀스를 받아 데뷔를 준비하게 된다. 1995년 11월에 첫 싱글 '''꿈꾸는 소녀로는 있을 수 없어'''로 데뷔하며, 이 곡이 나나세의 최대 히트곡으로 기록된다.[2]
이듬해인 1996년, 첫 앨범 'Red'를 발표. 오리콘 앨범 차트에 등장하자마자 1위를 차지하고, 총 판매량은 280만장을 넘어 더블 밀리언 히트를 기록하며 그 해 연간 차트 10위에 입성한다. 압도적인 인기와 주목을 모아, 96년 연말에는 데뷔 첫 해임에도 불구하고 홍백가합전에 출장하게 된다.
1997년 7월에 2집 'paraDOX'를 발매. 이 앨범 역시 발매 직후 차트에 등장하자마자 1위를 달성했으며 누적 판매량은 180만장으로 당 해 연간차트 13위를 차지하며 첫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고 9월에는 무도관 라이브를 개최한다. 데뷔로부터 불과 1년 10개월만에 무도관 라이브를 하게 된 것. 이 해에도 홍백 출장이 유력시되었으나, 앨범 자켓의 해외 촬영 일정과 겹치게 되어 보류되었다.
98년 7월에 3집 'crimson'을 발매. 오리콘 차트 첫 등장 1위를 했으며 70만장 이상 팔며 당해 연간차트 36위를 기록한다. 또한 이 앨범으로 데뷔 앨범부터 3부작이 1위로 데뷔한 최초의 여가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해에도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개최하며 활동.
1999년에는 트레이드 마크였던 긴 빨간 머리를 단발의 금발로 바꾸고 "제 2기 아이카와 나나세"라고 명명. 첫 베스트 앨범인 "ID"를 발매, 이 앨범도 밀리언 히트를 기록하면서 당해 연간차트 20위를 기록.
2000년 2월 4집 "FOXTROT"를 발매. 분위기와 스타일의 변화 및 MP3 시대에 접어든 환경적 요인 등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해, 앨범 연속 1위 기록은 깨지고 최종 판매량은 20만장을 넘는 정도로 줄어들었다. 다만 강렬하고 반항적이었던 초기의 아이카와 나나세 스타일이 발휘된 마지막 앨범으로써 의의가 있다. 이 앨범 이후로 오다 테츠로와 결별하면서 전반적으로 곡이나 캐릭터의 분위기가 바뀌고 많이 부드러워지는데, 초창기 아이카와의 팬들은 이때부터 고유의 매력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후 BOØWY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가 프로듀스한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2001년 첫 아들을 출산하여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회복 이후에는 당시 인기 있는 여러 록밴드의 프로듀싱을 도왔던 '오카노 하지메'가 프로듀스한 곡으로 활동한다.
2005년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듀스한 앨범 'THE FIRST QUARTER'를 발표하였고, 이 해부터 '나나세의 날'이라 칭하며 매년 7월 7일에 공연을 가진다. 서포트 멤버는 X JAPANPATA, 메가 데스 출신의 마티 프리드먼 (이하 기타리스트), DEAD END의 CRAZY COOL JOE (베이시스트), LUNA SEA의 신야 (드러머), hide with Spread Beaver의 서포트 멤버인 D.I.E (키보디스트) 의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한다.
2007년에는 둘째 아들을 출산, 2012년에는 첫 딸을 출산하여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가정을 이루게 되면서 육아 관련 잡지의 투고도 종종 하기도 한다.

3. 여담



[1] 결혼 전의 본명은 사에키 미사(佐伯 美咲)[2]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가족끼리(주로 모녀지간 등 여자 가족들 사이에)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르는 곡 중 하나로 꼽힐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