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테이 토모야스
1. 개요
일본의 기타리스트. 군마현 타카사키시 출생. 호테이 토모야스 布袋寅泰 (Tomoyasu Hotei). 1962년 2월 1일생.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압적인 인상을 풍기는 기타리스트.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러시아계 혼혈 일본인이다.
Zodiac Works 라는 기타회사에서 나온 본인의 시그네쳐 "Main"[2] 을 들고 공연에 임한다.
2. 뮤지션 활동
2.1. BOØWY 활동 시절
BOØWY 항목 참조.
2.1.1. 히무로와의 관계
BOØWY 해산 원인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밴드의 투 톱이었던 호테이와 히무로의 음악적 견해로 인한 해산이 정설[3] . BOØWY가 해산한지 어느덧 20년이 넘어, 팬들은 다시 재결성을 바라고 있다.[4] 마침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록계는 해산했던 밴드들의 재결성 열풍이 불고 있었다. 혹은 완전 재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간 한정 재결성 같은 이벤트성 재결성을 하는 밴드의 수도 상당수 있을 정도였다. 전자는 DEAD END, D'ERLANGER, ANTHEM 등, 후자는 VOW WOW, 聖飢魔II 등이 그 예.
하지만 BOØWY는 재결성이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히무로가 제공. BOØWY의 노래는 일부곡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판권은 호테이와 TOSHIBA EMI 쪽에 있고, 해산 이후로 4명이 뭉친 것은 카메라맨 카토 마사노리 결혼식 때 한 번일 정도로 서먹서먹한 사이. 이런 상황에 히무로는 2004년 8월 22일, 21st Century BOØWY VS HIMURO라는 도쿄돔 라이브에서 멋대로 BOØWY의 악곡을 갖다 썼다.
일명 보위의 링고 스타로 불리는 타카하시 마코토[5] 는 당일 라이브를 관람하며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라고 코멘트했지만, 호테이는 '보위 악곡 연주해도 되냐고 언제 물어봤는데?', 마츠이마저 '저건 아니지'라고 대놓고 부정적인 발언을 했을 정도. [6][7]
여기서 끝이 아니라, 2011년 6월 11~12일 도호쿠 대지진의 부흥지원 체리티 라이브에서도 히무로는 또 보위의 악곡을 무단으로 사용. 호테이는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부흥을 위해서는 재결성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은 사실입니다..(중략)..재결성을 바라는 기분은 팬 여러분과 같았습니다만… 히무로의 부흥 지원을 향한 행동은 그의 신념에 근거한 선택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속에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도 '''재결성은 없고''',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자'''고.'라고 본인의 (이전) 블로그에 남겼다.
히무로 본인은 '가능한 관객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수익이 증가하여 자선효과는 보다 높아짐. 청중을 많이 모으기 위해, 보다 강한 임팩트를 주자는 발상으로 ‘BOØWY’로 연결했으나… 멤버의 기분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건 잘못이었다.'라는 반성의 멘트를 띄웠다지만… 이로써 호테이와 히무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BOØWY의 재결성 또한 마지막 희망마저 날아간 상태.[8][9]
히무로 쿄스케가 2016년에 기존에 누적되어 왔던 청력 손실이 심각해져(한쪽 귀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고..) 은퇴 투어를 발표했기에 이번 기회가 지나면 사실상 다시는 재결성할 수 없다. 호테이는 '마지막 순간에 한 번이라도 옆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라고 밝히고 나머지 멤버들도 히무로에 대한 걱정과 재결성 의사를 밝혔지만 투어가 이미 시작된 5월 시점에도 완전체 BOØWY의 등장은 아직 없다.
사실 재결성해서 나타난다고 해도 이미 록 보컬리스트로서, 성량 감소 등의 기량 하락을 겪은 히무로가 과거의 열기를 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며[10] [11] 호테이의 음악성도 상당히 변하였기 때문에 기억하던 형태의 공연이 될 확률은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올드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옛 시절을 100%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한 그룹으로 다시 뭉치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의문은 의미가 없다. 애초에 2004년도에 도쿄 돔에서 개최된 "21st Century Boowys VS HIMURO"는 보위가 뭉친 것이 아닌 히무로의 개인 콘서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히무로가 솔로 활동을 개시한 이래로[12] 처음으로 한 공연에서 수많은 보위 곡을 불렀기에[13] 당시에 이미 40대에 진입한 상태[14] 에서 어느정도 성량하락을 겪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보위 곡을 불렀다는 그것만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는데 만약 실제로 4명이서, 그것도 히무로의 은퇴기념 투어에서 뭉치게 되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끌어낸다면 과거의 열기는 충분히 재현되고 남을 것이다... 그러나, 5월 23일 도쿄 돔 공연 3일차를 마지막으로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15] . 그나마 히무로가 음악활동 자체를 아예 그만둔 것은 아닌고로 팬이라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믿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2.2. COMPLEX
BOØWY 해산 이후, 호테이는 일본 음악계에서 사람 좋기로 소문났던 킷카와 코지(吉川晃司)와 일명 '장신 유닛'으로 불린 컴플렉스(COMPLEX)를 1988년에 결성했다. 당시 떠돌던 소문과는 다르게 이 둘은 의외로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Be My Baby의 히트 등으로, 그에게 포르쉐 911을 끌 수 있는 대중적인 성공을 주었다.
COMPLEX 역시 보위 못지 않게 일본 록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로가 '이나바와 컴플렉스의 도쿄돔 라이브를 갔었어요. 훌륭했습니다. 그대로 컴플렉스가 계속되었다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못 했을 거에요.'라는 찬사에 가까운 회상을 호테이 토모야스의 자서전 비밀(秘密)에 남겼을 정도였다.
COMPLEX는 비록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새로웠던 일렉트로니카나 컴퓨터 음악들을 하드 록에 조합한 시도, 그리고 보위 시절보다 더욱 마초적이고 동서양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하드 록을 보여주었다는 점[16] 에서 양악과 방악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일구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서양의 정통 하드 록(에어로스미스, 더 후, 레드 제플린 등등...)과는 확연하게 다른, 일본적 멜로디 진행을 보여준다.[17] 그러면서도 당시 일본의 수많은, 대중적 하드 록을 표방하는 어느 그룹보다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훨씬 정통 하드 록에 가까운 리프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음악 특유의 '뽕끼'를 상당 부분 도려낸 긍정적이고 참신한 스타일의 결과물을 낳았다. [18]
후에 등장하는 B'z의 경우 일본적 하드록으로 정점을 찍긴 했지만 밴드 스코어(보컬과 주 멜로디를 제외한 나머지 세션) 대부분이 '양악의 도작'[19] 이라는 폄하를 받을 정도로 서양 음악을 카피했으면서도 멜로디 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특유의 일본적 뽕끼가 너무 강해 해외 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거나 평론의 면에서 절하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면 컴플렉스의 음악은 동서양 록 조화의 성공적인 결과물 중 하나였음이 명확해진다.
활동 당시 대표곡은 정말 거친 음악으로는 GOOD SAVAGE, COMPLEX에게 오리콘차트 1위를 안겨준 싱글의 타이틀곡 Be My Baby 오프닝과 후속 싱글인 19901990년 해산당시, 콘서트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던 강렬한 사랑노래인 恋をとめないで1990년 해산당시, 킷카와 코지가 만든 감성적인 곡인 CRY FOR LOVE가 있다.
그러나 컴플렉스 또한 호테이와 킷카와의 음악성에 관한 의견 차이로 인해 활동 중지(라고 쓰고 실질적 해체라고 읽는다.)를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보위 때와는 달리 분쟁의 소지가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3년간 의 짧고 굵은 활동이 그렇게 끝났나 싶었다.
그러다가 2011년 당시 여러 밴드들의 한정 재결성 열풍[20] 과 함께 21년만에 마지막 콘서트를 했던 도쿄돔에서 다시 뭉쳤다. 중년이 된 킷카와와 호테이가 등장하여 악수를 하는 장면이 오프닝에서 명장면. 이 콘서트는 일본의 위성방송사 WOWOW가 편집본으로 방영하고 이후에 DVD/블루레이로도 발매되었다. 원래 하루 공연으로 예정된 기획이었으나, 폭발적인 반응으로 2일 연속 도쿄돔 공연으로 이어졌다. 팬도 관객도 모두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1990년 당시의 열정만큼 뜨거운 콘서트였다고 평이 나있다.
21년 만에 다시 뭉치게 된 과정을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
오프닝부터 BE MY BABY까지.
7분부터 곡이 시작되고 21년만의 콘서트 재개라는 걸 보여주는 오프닝 내용이 인상적이다. 전주가 시작됨과 동시에 울려퍼지는 '''"BE MY BABY! BE MY BABY!"'''때창이 압권. 그리고 무대를 향하는 킷카와와 호테이 두 사람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자 환호성이 울려퍼지고, 두 사람이 가까워 질 수록 환호성은 커지더니 21년만에 재회의 악수를 나눈 순간 그야말로 도쿄돔이 폭발할 듯한 함성이 울려퍼졌다.
1990
2집 Romantic 1990의 타이틀이었던 1990의 라이브.
CRY FOR LOVE
호테이 토모야스의 더블넥 기타가 인상적이고 감성적인 기타연주가 특징이다.
PROPAGANDA
바로 위의 CRY FOR LOVE가 발라드에 가깝다면 이 노래부터는 전형적인 거친 락유닛의 모습이다.
GOOD SAVAGE
BE MY BABY보다 더 거친 음악이다. 호테이 토모야스가 클래식 기타로 속주를 하는 부분이 특징인 곡.
2.3. 솔로
이후 POISON, 스릴, 밤비나 등의 명곡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가진 베테랑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되며 특히 그 기타 실력을 인정받아 다수의 영화나 행사 등에 음악을 제공하며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부상하게 된다. 호테이 토모야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연주곡이 바로 킬빌 OST에 추가된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그리고 호테이 토모야스가 솔로로 활동하면서부터 콘서트에서 BOØWY 시절의 노래와 COMPLEX 시절의 노래도 섞어서 연주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의 원곡과 다른 표현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베스트 앨범에서도 이 시절의 노래를 셀프 커버하였다.
기타리스트치고 퍼포먼스가 크기로도 유명한데 특징으로는 초장신의 몸으로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서 동작이 굉장히 돋보인다. 퍼포먼스 중에 하나로 기타를 칠때 왼다리를 니킥이나 미들킥 정도로 높게 차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따라해보면 이러면서 정확하고 날카롭게 연주한다는 것이 진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괜히 베테랑이 아니다. 그리고 팬들의 떼창을 유도할 때의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예술이다(…). 감성을 매우 잘 드러난다고 봐도 무방할 듯. スリル 같은 노래를 연주할 때는 하체는 춤을 추고 상체는 연주를 하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기타리스트로서의 입지는 이제 세계적인 수준에 있다곤 하지만, 호테이의 노래실력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잘 쳐줘도 개성있는 목소리. 싱글 활동 시기에 작곡한 대부분의 노래를 본인이 부르는데 이 목소리가 워낙 특이해서 스탠딩 개그에서 자주 패러디 되곤 한다. 본인도 이를 인지하고 있는 것인지 콘서트에 보통 3-4명 이상의 코러스를 동원하는 편이며, 유명 곡들(주로 BOØWY시절의 곡들)의 경우 본인이 부르기 보다 관중이 아예 부르도록 하는 편이다. 유명 밴드의 리드 보컬도 게스트로 자주 부르는 편인데, 그 예로 호테이 데뷔 30주년 공연에서는 GLAY의 테루가 참여하여 BOØWY시절의 명곡 BEAT SWEET, 1994 LABEL OF COMPLEX 등을 불렀으며 2017년 공연에서는 코부쿠로의 코부치 켄타로가 참여해 わがままジュリエット[21] , LIAR GIRL 등의 보위 시절의 명곡들을 불렀다.
싱글 데뷔 후에 BOØWY의 (일부) 멤버들과의 협연은 꽤 있었는데, 해산 후 같은 소속사에 속해 있었던 베이시스트 마쯔이 츠네마츠(松井常松)가 주로 서포트로 호테이의 콘서트에 참여해 주었다. 마코토(高橋まこと)와의 협연은 거의 없다가 호테이 데뷔 30주년 공연에 마코토가 참여하여 아주 오랜 만에 이루어지게 되었다 (해산 후 마코토는 히무로와 같은 소속사에 속했었다). 위에 항목에서 적혀진바와 같이, 히무로와의 협연은 한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히무로가 은퇴한 이상 이후로도 힘들다고 판단된다.
2.4. 음악 스타일
개인 커리어 중에도 보위 시절을 연상케하는 멜로디 선의 곡으로 많은 좋은 싱글을 남겼지만, 활동이 계속 될 수록 더욱 로커빌리 스타일의 플레이를 하고 있다. 2005년작 Monster Drive 앨범에서 특히 그러한 특징이 잘 드러난다. Brian Setzer와 협연한 것도 이 즈음.
기타리스트로서는 보위 시절부터 이펙터를 이용한 톤 메이킹에 있어서는 이미 장인으로 평가받았고 [22] 특유의 훵키한 플레이와 독특한 피킹 하모닉스가 개성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유의 멜로디 감각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그 실력은 정체되지 않고 나날이 성장하여 2000년대 초반 즈음에는 이미 훵크 + 록 분야에선 일본의 본좌급 연주자로 대접받았고 이후에 재즈 및 로커빌리 스타일의 기타 또한 섭렵[23] 하여 연주만 들으면 서양인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괴수가 되어버렸다. 일본의 또 다른 록 기타 본좌 Char와 함께한 인터뷰 & 즉흥 연주 영상 최근의 연주 영상 일본 록의 조상님 격인 야자와 에이키치와 함께한 영상
반면 장르 구분은 애매한 면이 있다. 호테이하면 호쾌한 로큰롤이 떠오르지만 의외로 일본 일렉트로니카의 고참이기도 하며 간간히 블루스 & 재즈 풍의 음악도 하는 등 폭넓은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싱글 Liberty Wings의 자켓에는 나가이 고가 직접 그린 데빌맨과 큐티 하니를 박아 넣기도 했으며, 이번 북두의 권 201X의 테마곡인 STILL ALIVE의 작업도 맡는 등('''물론 자켓엔 켄시로가 그려져 있다''') 마초한(…) 만화 & 애니메이션 쪽과도 인연이 있다. 또 의외로 미야비와 친분이 깊은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그리고 히데와의 친분으로도 유명하다. 히데의 사망 이후 트리뷰트 앨범의 2번 트랙인 ROCKET DIVE를 호테이 토모야스가 커버했고, 이 버전에는 원곡에 없는 가사가 추가되어 있다. 해석의 내용은 히데 항목에 있고 친분에 관한 것은 아래에 이모저모 항목에서 상술한다.
활동 기간도 길고, 그에 비례해 앨범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한국의 J-POP 팬덤에서 인지도는 거의 0에 수렴해 앨범 물량도 적을 뿐더러 오래된 건 가격도 엄청 비싸다. 덕질하기 여러모로 곤란한 사람(…).[24]
3. 배우활동
1998년 영화 '사무라이 픽션'의 주역인 카자마츠리 란노스케 역으로 분하여, 특유의 흉악한 얼굴을 맘껏 어필한 바가 있으며(…) 그 덕분에 한동안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배우로 등재되어 있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심지어 2016년 기준으로도 직업은 가수, 기타리스트인데 데뷔는 1998년 영화 '사무라이 픽션'으로 되어있다.(...) 사무라이 픽션 영화 자체의 음악도 모두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곡.
新 仁義なき戰い(신 의리없는 전쟁)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OST작업에도 참여하였는데,(전부 작업인지는 불명.) 사실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는 이 영화의 OST 수록곡이다. 新 仁義なき戰いのテーマ라는 곡명으로 수록되어 있고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는 이 곡의 영제인 셈.
4. 친숙한 노래들
4.1. TV,영화
한국인들이 가장 친숙한 호테이의 곡이라면 역시 킬빌과 무릎팍도사(…)에 삽입되었고 혼다 어코드[25] 가 혼다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처음 출시될 당시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본래는 호테이 토모야스가 출연하고 음악감독도 담당한 영화 <신 의리없는 전쟁>의 OST에 있던 곡이다. 이후 트랜스포머에서도 잠깐 쓰이기도 하였다. 범블비가 샘의 투정(?)에 삐져서 카마로 5세대로 새로 스캔해서 등장 할 때 브금으로 깔렸다.[26]
무한도전에도 상당히 자주 나왔다. 화면이 느려지고 긴박한 상황에서 쓰였던 노래는 대부분 사무라이 픽션 OST와 Electronic Samurai곡에서 나왔다. 2015년 12월 26일 방송된 무도 공개 수배변 도입부를 보면 Strangers 앨범의 How The Cookie Crumbles이 나온다. 2015년에 발매된 앨범인데… 팀 내에 팬이 있을 수도?
MBC GAME의 워크래프트3 프라임 리그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시즌 4의 오프닝에 쓰였던 곡도 호테이 토모야스의 Frozen Memories. 원래는 영화 KT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2006년에 개봉했던 폭력써클이란 영화에서는 GUITARHTHM 앨범의 수록곡인 GLORIOUS DAYS가 삽입되었다. 또한,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KT의 OST에 수록되었던 Frozen Memories, Kill The Target도 같이 삽입되었다. 때문에 영미락인 줄 알고 넣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4.2. 게임,만화
닌텐도 DS 유저라면 응원단 시리즈 1편의 스릴과 2편의 밤비나에 익숙할 것이다. 밤비나는 드럼매니아 2nd에서도 판권곡으로 등장해 익숙하다. 커버 보컬로 수록되었고 그나마 국내 정발판은 보컬이 짤려서 MIDI음으로 대체되었다.
스릴(スリル)은 리듬 게임인 리플렉 비트 콜레트와 유비트 소서에 수록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항목 참조.
귀무자2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인 Russian Roulette도 나름 유명한 편. 이 곡도 드럼매니아에 판권곡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북두의 권 201X에서는 테마곡인 STILL ALIVE를 불렀다.
2013년에는 게임 진삼국무쌍7에서 사실루트 엔딩곡인 "폭풍의 언덕(嵐が丘)"을 불렀다. 게임 자체도 재밌다는 평가에 맞물려 반응이 제법 괜찮은 편.
5. 가족사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혼혈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이며 일본 국적이다. 자신의 데뷔 25년이던 2005년에 발간한 자서전 <비밀(秘密)>에서 처음으로 밝힌 내용이다.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다니며 무역 일을 하던 사람이었다. 당시 호테이의 집에 달린 명패에는 "야나가와"라는 명패와 "호테이"라는 명패가 같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호테이는 왜 자신은 엄마의 성씨인 호테이인지 궁금해했고, 어머니는 "호테이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란다."라고 알려줬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여기에 큰 충격을 받은 호테이 토모야스는 평생을 "나는 누구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를 고민하였다 하고 그 계속된 고민으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IDENTITY를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는 한국에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일본에 살림을 또 차렸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호테이네는 '일본용 가족'. 결국 호테이가 고교 3학년 무렵 두 사람이 결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국적이 없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아버지의 빚을 몽땅 떠안게 되어 힘든 생활을 보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나중에 보위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호테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을 통해 아버지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기 전에 호테이 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연락이 닿은 적이 있었던 때, 호테이의 여동생은 "이제는 만나서 용서를 받자"고 했지만 호테이는 끝까지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결사반대를 해서 무산됐다.
<사무라이 픽션>이 국내 개봉되고 배우 자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의 한국인 자녀(즉, 호테이의 이복 형제)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 내용에 한국의 가족도 무너져서 힘든 세월을 보냈고 아버지는 1992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는 내용과 함께, 아버지가 일본의 가족들에게 늘 사죄하며 후회했으며 자신이 버리고 온 아들 호테이에 대한 미안함과 일본내 최고의 락밴드인 보위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활동에 관련한 신문기사, 비디오, 앨범 등 모든 것을 소장하면서 보위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를 자랑스러워했단 사실,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1988년 당시에 보위의 마지막 도쿄돔 콘서트를 찾아갔다는 사실 등의 호테이가 몰랐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일본 위키에 따르면, 당시 호테이 토모야스의 아버지는 티켓을 구할 수 없어 도쿄돔 외벽에 귀를 대고 공연을 들었다고 한다). 이 편지를 받고서 그 당시에 엄청나게 울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다.
현재는 자신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서전 발매 이후 추가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단지 이전보다는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내용을 보고 어설프게 호테이 토모야스가 한국계라고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 쓰더라도 가족사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인에게 큰 혼란과 상처를 준 내용이고, 그다지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니기도 하니까.
6. 여담
- 내한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위에 가족에 관한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으며, 삼계탕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스튜디오에는 최근 기타 연주 앨범을 내고 방한한, 일본의 뮤지션 호테이 토모야스가 7시부터 40여 분간 ‘초대손님’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 토모야스가 던진 한마디에, 멋쩍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묘하게 그의 얼굴에 교차했다.
- “당신 또한 한국의 유명한 뮤지션이었다고 들었는데, 기타 2개만 있으면 같이 세션(연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 당시 기사 中. 찰스 배는 패기 넘치게 거절.
-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다. 교풍이 엄해서 록 스피릿이 끓어넘치는 바람에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퇴학 원인은 호테이의 장발 때문이었다고. 그 때 교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흥, 예수님 머리도 장발이었잖아."라고 중얼거렸다는 간지나는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도 같은 발언이 나온다. 거기선 바로 예수님 본인이 그렇게 말하지만.
- 잔뼈가 굵은 베테랑 아티스트인 만큼 여러가지 일화도 많다. 94년 멸종 동물 보호 자선 콘서트에 X JAPAN의 요시키가 참석 여부를 자꾸 번복하며 다른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고, 공연 당일 백스테이지에서도 거만한 모습을 보이자 참다 못해 한 소리를 했는데 요시키가 대든 사건이 있었다. 화가 난 호테이는 그대로 요시키를 두들겨 팼고, 이거에 앙심을 품은 요시키가 호텔에 비치된 장식용 일본도를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hide가 말리고 대신 사과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를 하고 서로의 세션을 소개시켜 주는 등의 친분을 쌓은 덕에 사후에 발매된 트리뷰트 앨범에 2번 트랙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3년 호테이의 솔로 전국투어 콘서트에서도 메들리 시리즈로 Rocket Dive를 다시 연주했을 정도.
- 동갑내기인 마치다 코우 [27] 하고도 다소 악연. 이전부터 친구였고 2007년 음악 작업 때문에 만났다가 의견 충돌로 서로 주먹질을 한 적이 있다. 마치다가 두들겨 맞았는지 화가 나서 경찰서에 고소했고 호테이는 벌금 30만엔을 내야 했다.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폐막식 때 솔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 1986년에 가수 야마시타 쿠미코와 결혼하였으나 1997년 말에 이혼했다. 그리고 1999년 배우 겸 모델 겸 가수, 노래 PRIDE로 유명한 톱스타 이마이 미키와 결혼했다. PRIDE는 바로 호테이가 작사, 작곡한 곡. 이외에도 미키에게 많은 곡을 써줬는데, 그 자신의 노래와는 달리 서정적이고 달콤한 가사로 넘치는… 이렇게 곡을 주다가 그만 미키와 정분이 났는데, 당시 호테이의 부인이던 야마시타 쿠미코와 이마이 미키는 서로 친구사이였다. 즉, 좀 안 좋은 불륜이어서 한동안 미키의 가수활동에 지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8] [29]
- 한국에 Electronic Samurai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 안에 바로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무인, #2, #3이 있다.), Frozen Memories가 있다. 참고로 Frozen Memories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일본의 작가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납치 - 알려지지 않은 김대중 사건'을 원작으로 하고 김갑수가 주연을 맡아 2002년에 개봉한 영화 KT의 주제가이다.
- 2010년 가을에는 자신이 곡을 쓴 영화 킬빌의 고고 유바리 역으로 나왔던 쿠리야마 치아키의 2번째 싱글인 <可能性ガール>를 작곡/편곡하고 뮤직비디오에서 기타리스트로 출연, 쿠리야마와 함께 멋진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리고 이 곡은 <선발 은혼씨> 3기 오프닝으로 사용되었다.
- 2012년 미국 NBC의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 시즌 2의 홍보 광고(그것도 슈퍼볼 광고에!)에 그의 대표곡인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가 사용되었다.
- 2014년에는 인피니트의 곡 "딜레마"에서 기타 세션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2015년 8월 24일, 뜬금없이 아베 아키에와 불륜 중이란 기사가 났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2015년 당시 기준 일본 내각총리대신인 아베 신조의 부인(...).# 근데 이후 후속 기사가 안뜨는거 보면 찌라시일 가능성이 커보인다.[30]
- 2018년 북두의 권 연재 35주년 기념 싱글곡 202X를 발표했다. 소개에 따르면 보컬 & 기타에 호테이 토모야스, 베이스는「북두의 권」의 켄시로, 드럼은 라오우로 구성된 가상의 3인조 트리오 그룹이라고 한다.
7. 디스코그래피
정규 앨범만 정리.
BOØWY
- MORAL (1982.03.21)
- INSTANT LOVE (1983.09.25)
- Boøwy (1985.06.21)
- JUST A HERO (1986.03.01)
- BEAT EMOTION (1986.11.08)
- PSYCHOPATH (1987.09.05)
COMPLEX 활동- INSTANT LOVE (1983.09.25)
- Boøwy (1985.06.21)
- JUST A HERO (1986.03.01)
- BEAT EMOTION (1986.11.08)
- PSYCHOPATH (1987.09.05)
- COMPLEX (1989.04.26)
- ROMANTIC 1990 (1990.04.18)
솔로 활동- ROMANTIC 1990 (1990.04.18)
- GUITARHYTHM (1988.10.05)
- GUITARHYTHM II (1991.09.21)
- GUITARHYTHM III (1992.09.23)
- GUITARHYTHM IV (1994.06.01)
- King & Queen (1996.02.28)
- SUPERSONIC GENERATION (1998.04.29)
- fetish (2000.11.29)
- SCORPIO RISING (2002.03.06)
- DOBERMAN (2003.09.26)
- MONSTER DRIVE (2005.06.15)
- SOUL SESSION (2006.12.06)
- AMBIVALENT (2007.10.24)
- GUITARHYTHM V (2009.02.18)
- COME RAIN COME SHINE (2013.02.06)
- New Beginnings (2014.10.01)
- Stranger (2015.10.16)
- Paradox (2017.10.25)
- GUITARHYTHM VI (2019.05.29)
- GUITARHYTHM II (1991.09.21)
- GUITARHYTHM III (1992.09.23)
- GUITARHYTHM IV (1994.06.01)
- King & Queen (1996.02.28)
- SUPERSONIC GENERATION (1998.04.29)
- fetish (2000.11.29)
- SCORPIO RISING (2002.03.06)
- DOBERMAN (2003.09.26)
- MONSTER DRIVE (2005.06.15)
- SOUL SESSION (2006.12.06)
- AMBIVALENT (2007.10.24)
- GUITARHYTHM V (2009.02.18)
- COME RAIN COME SHINE (2013.02.06)
- New Beginnings (2014.10.01)
- Stranger (2015.10.16)
- Paradox (2017.10.25)
- GUITARHYTHM VI (2019.05.29)
[1] 국내에서도 PRIDE라는 곡으로 유명한 가수이다.[2] 메인(Main)이라는 이름 답게 30여년째 메인 기타로 항상 들고 공연에 임한다. 회사 사이트에 소개란에도 이름 그대로 본인의 메인기타를 복각한 기타라 설명한다. 기타에 대한 자세한 관련사항은 http://www.zodiacworks.com 을 참조바람[3] 이는 보위 해산 이후의 둘의 음악적 행보를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강렬한 하드록을 추구했던 호테이와 다르게 히무로는 솔로활동 초기에는 평론가들로부터 "전설적인 록밴드인 보위의 보컬리스트 출신이 맞냐?" 는 비판을 들을만큼 상대적으로 팝적인 면을 많이 보여주었다.[4] 히무로나 호테이나 둘다 자신들의 공연에서 여러 번 보위 곡을 부르거나 연주했으나 호테이는 연주는 완벽하지만 보컬에서 아쉬움을 샀고 반대로 히무로의 경우에는 보컬은 훌륭하나 그가 자신의 페르소나 수준으로 아꼈던 기타 서포트 멤버인 다이타가 연주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보위 곡을 연주할 때만큼은 호테이 특유의 맛을 살리지 못하여 아쉬움을 샀다.[5] 보위의 링고 스타로 불렸다는 것에 알 수 있듯이 날카로운 인상의 히무로, 190에 달하는 신장으로 위압감을 뿜어대는 호테이, 과묵하고 엄근진한 마츠이 등 하나같이 개성강한 보위의 멤버들 가운데에서 가장 친근하고 푸근한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히무로 또한 보위시절 공연 중간에 멤버들을 소개할 때 타카하시에 다해 '다정하고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는 멘트를 통해 그의 인성에 대해 인증한 바 있다.[6] 솔로가 된 멤버의 밴드 시절 곡 연주는 의외로 민감한 문제다. 페이브먼트의 리더 스테판 말크머스도 해산 후 옛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면서 밴드 시절 곡 연주를 꺼렸을 정도.[7] 사실 이건 당연한 거다. 누가 작사나 작곡을 했든 간에, 곡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편곡 등의 작업을 하고 세세하게 합주 연습을 해 가며 공연을 하는 등의 기억이 서려있을 악곡을 누군가 멋대로 자기 공연에서 부른다면 다른 옛 동료들의 입장에선 충분히 박탈감이나 배신감을 느낄 여지가 크다.[8] 비록 히무로는 미디어에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가 완벽주의적 기질이 강한만큼 자존심이 세고 예민하며 독고다이 기질에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는 것은 팬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한다. 보위의 재결성이 계속해서 불발되었던 것은 이런 측면이 강하게 작용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히무로의 발언도 상당히 이상한데 그가 바보가 아닌 이상 '청중을 많이 끌어 모으고 임팩트를 주자'는 측면에서 보면 그가 단순히 공연에서 보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넘어 아예 보위의 원년 멤버들과 다시 뭉치는 것만큼 강한 게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즉, 히무로는 애시당초 재결성을 할 생각따위는 전혀 없었고 염두에 두지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9] 또한 20년 넘는 솔로활동 기간 동안 히무로도 다른 많은 사람들과 작업을 해 왔고 자신의 페르소나급으로 극찬하고 아꼈던 후배이자 현존 일본 최고수급으로 인정받는 슈퍼 기타리스트인 다이타나 90년대 초부터 자신의 은퇴 전까지 쭉 변동없이 베이스 세션을 맡아 온 군마 출신 동향 밴드 ROGUE의 베이시스트 '니시야마 후미아키' 등 보위의 활동 기간 이상으로 인연을 맺어 온 탄탄한 세션진이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호테이가 대부분의 권리를 갖고 있는 보위의 악곡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나 멤버들의 의사조차 물어보지 않았던 점 등 그가 옛 멤버들을 존중하지 않았던 것은 팬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그의 잘못임을 부정하기 힘들다.[10] 히무로 솔로 곡의 경우 그의 보컬 변화를 고려해 발라드 친화적으로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11] 다만 히무로가 나이로 인해 성량, 체력 등의 기량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50대가 넘어서도 라이브에서 심심찮게 샤우팅을 하고 뛰어다니는 등 열정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는데 '과거의 열기를 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지나친 발언이라 볼 수 있다.[12] 사실, 아예 안 불렀던 것은 아닌데 갓 솔로 1집을 발표하여 자신의 곡만으로는 도저히 공연의 세트리스트를 채울 수 없었던 솔로 초기에는 공연에서 Image down, ハイウェイにのる前に, Cloudy heart, Honky Tonky Crazy, わがままジュリエット와 같은 보위 시절의 곡들을 의외로 많이 불렀었다. 데이빗 보위의 Suffragette city나 Rebel Rebel, Billy Idol의 Mony Mony 처럼 유명 해외 아티스트의 곡을 부르기도 하였으며 3번째 앨범인 Higher Self를 테마로 한 Over Soul Matrix 투어에 이르러서야 순수하게 자신의 솔로곡만으로 세트리스트를 채우기 시작했다.[13] 30곡의 세트리스트 중 18곡이 보위 곡이었다.[14] 히무로 쿄스케는 1960년 10월 7일 태생이다.[15] 단 이 공연에 호테이는 관객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16] 이것은 보위의 보컬이었던 히무로 쿄스케와 COMPLEX의 보컬이었던 킷카와 코지의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하였는데, 제이락 계에서 '꺾고 떠는' 창법의 선구자라 불릴만큼 기교적 측면이 강조되었던 히무로에 비해 킷카와는 상당히 직선적인 창법의 소유자였다.[17] 가령 2人のAnother Twilight 같은 곡은 형식적으로는 서양의 훵크 록이면서도 그것을 체감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적인 멜로디 진행을 느낄 수 있다.[18] 호테이 토모야스의 전 밴드였던 보위의 음악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컴플렉스 시절이 좀 더 근본적인 하드 록을 추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컴플렉스의 음악은 기타 '리프'의 비중이 보위의 음악에 비해서 훨씬 크다.[19] 당장 나무위키의 B'z 항목에도 서양의 하드 록 파쿠리에 대한 언급이 있고, X JAPAN의 요시키도 이를 비판한 바 있다는 소문이 있다.[20] 당시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전체의 분위기는 상당히 침채되어있었다. TV에서도 즐거움을 연상시키는 CM이나 프로그램은 철저히 배재되었고, 수많은 아티스트가 예정되어있던 콘서트를 취소하는 등 엔터테인먼트의 암흑기였다. 그러던 와중에 몇몇 아티스트들이 일본을 응원한다는 취지로 공연을 강행하였고, 점차 이미 해체하거나 활동을 중단한 밴드들이 팬 서비스 차원에서 재결성을 하는 케이스가 많아졌다.[21] 호테이가 대부분의 작곡을 담당한 보위 곡 중에서 몇 안되는 히무로 작곡의 대표곡이다.[22]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오는 오무 울음소리도 그가 기타로 녹음한 것이다.[23] 사실 보위 초창기에도 로커빌리 스타일의 곡을 시도한 바 있는 만큼, 해당 곡의 커버 영상 어느 정도는 이미 완성되어 있는 연주인이었다.[24] 이것은 한 때 같은 밴드 멤버였던 히무로 쿄스케와도 일맥상통한다.[25] 한국 런칭 당시 일본명 인스파이어[26] 황색 바디에 검은색 라인이 가미된 범블비의 컬러링이 킬빌에서 우마 서먼이 입었던 복장을 연상시키는 것에 대한 오마쥬인 듯.[27] INU 리더로, 소설가로 데뷔해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 뮤지션이다.[28] 다만, 본인도 아버지 때문에 상처를 받은 기억이 있으면서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 때문에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29] 이마이 미키와 결혼하고 나서도 사생활 굴곡이 꽤 있다. 불륜설이 아닌 실제로 정황이 확실한 배우들만 쳐도 타카오카 사키,모델 토미나가 아이 등등... 더 안습인 건 그러고도 친구 남편 빼앗아서 결혼했다는 이유로 현 부인 이마이 미키 역시도 니가 저지른 만큼 돌려받는 거라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굉장히 여론이 차갑다는 사실이다. 당대 최고급의 기타리스트와 당대 최고급의 여가수가 만났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적인 성취 이외에는 둘 다 이미지가 영 별로다.[30] 이후 몇달 후에 공식 인스타그램에 자기 아내 콘서트 홍보를 하는 걸 보면 찌라시가 확실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