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타 석굴

 


[image]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국어
아잔타 석굴
영어
Ajanta Caves
프랑스어
Grottes d'Ajanta
국가·위치
인도 마하라슈트라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3년
등재기준
(i)[1], (ii)[2], (iii)[3], (vi)[4]
지정번호
242
[image]
인도 회화의 금자탑으로 알려진 프레스코화
영어 Ajanta caves
힌디어 अजंता गुफाएँ
1. 개요
2. 구성
3. 프레스코 (회화)
4. 갤러리

[clearfix]

1. 개요


''' 인도 불교 미술의 정수 '''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에 있는 불교 석굴 사원.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 다시 5세기부터 7세기의 두차례에 걸쳐 조성되었는데, 주로 후반부인 굽타 왕조 시대에 집중적으로 지어졌다. 따라서 굽타 양식의 대표작으로 불리며 인도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이다. 사원은 총 29개의 석굴로 구성되어 있으며 (엘로라는 34개) 반원형의 현무암 절벽을 뚫어서 조성되었다.[5] 7세기 이후 불교가 쇠퇴하면서[6] 아잔타 석굴은 세간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그곳에 이르는 길마저 밀림 속에 파묻혀 버렸다. 그러고 1천 년이 넘게 잊혀져 있다가 1819년에 호랑이 사냥 중이던 영국 동인도 회사의 병사에 의해 재발견되어 세상을 놀래켰다.

2. 구성


[image]
[image]
아잔타 석굴 사원은 5개의 차이트야 (9, 10, 19, 26, 29번 석굴)와 24개의 비하라로 구성되어 있다. 차이트야는 (chaitya)는 굴 내부에 두 줄로 커다란 돌기둥과 회랑이 있고 그 안쪽에 스투파 (탑) 혹은 불상을 모신 작은 사원이다. [7] 비하라 (vihara)는 승려들의 참선공간으로 돌로 만들어진 가구가 비치되어 있고 설법을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한국의 가람 배치로 보자면 차이트야는 금당, 비하라는 강당의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석굴 안에 불상이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는데 불상 조성을 중시하는 대승 불교가 후대이므로 불상이 없는 굴이 후대 (5 ~ 7세기)에 조성된 것을 가능성이 높다. 소승 불교의 입김이 강한 남방 불교의 흔적이 남은 전기 석굴과 대승 불교의 영향을 받은 북방 불교의 흔적이 서로 대비되면서도 공존하는 모습은 아잔타 석굴의 가치를 드높힌다. 여담으로 인도 전역에 불교 석굴은 약 1,200여개가 있는데 그중 900여개가 마하슈트라 주에 있다. 따라서 불교 미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마하슈트라는 성지나 다름없다.

3. 프레스코 (회화)


[image]
[image]
[image]
[image]
# # # # 누드가 포함되어 있으니 후방주의
아잔타 석굴을 방문하였을 때에 가장 눈여겨 봐야 할 부뷴이 바로 굽타 시대의 프레스코 화이다. 석고 위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는 주로 5세기 경에 조성되었는데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특히 부처를 묘사한 벽화는 광채가 나는 듯한 효과를 내기 위해 노란색과 녹색을 섞거나 번갈아 사용하였는데, 2,000년이 넘는 세월에도 그 영롱한 색감이 살아있어 찬사를 자아내게 한다. 오른쪽 연꽃을 든 보살[8]은 섬세하면서도 육감적인 표현이 돋보여 굽타 양식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엷은 미소와 가녀린 모습은 일본 호류사의 금당 벽화에서 묘사된 관음 보살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굽타 왕조 시대에 인도는 평화가 지속되고 경제가 발전하여 예술이 발달하였는데 그 진수가 아잔타에 구현된 것이다.
한편, 발견 당시에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수북히 쌓인 먼지의 보호를 받아 선명한 색채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주 당국이 보존 처리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먼지를 제거하였더니 색채도 함께 희미해져 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한반도의 삼국시대 벽화분 보존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4. 갤러리


[image]
[image]
[image]
26번 굴
[image]
[image]
6번 굴
[image]
9번 굴
[image]
1번 굴
쿠샨 왕조 시대에 간다라 (현 파키스탄 북부) 지방에서 생성된 간다라 양식은 굽타 왕조를 거치며 인도화 되었다. 그를 굽타 양식이라 부르는데, 아잔타가 그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4]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5] 가장 깊게 파인 곳은 30m 정도이다.[6] 힌두교에 흡수되었다.[7] 중국의 석굴들과 우리나라 석굴암의 원형이라고 평가된다[8] 당대 인도의 귀족 여성을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