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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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안봉생은 1908년 11월 22일 황해도 벽성군 금산면 냉정리에서 안세근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우는 독립운동을 함께 한 안춘생이며, 큰아버지는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 암살 미수 사건에 연루된 안명근이고, 작은 아버지는 역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해방 후 통일 운동에 전념한 안경근이다. 그리고 그의 당숙부는 바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다.
그는 일찍이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고, 1927년 9월 만주 지린성 주하현 오길밀에서 김좌진의 위촉을 받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혁명 청년을 규합, 안내했고, 혁명 민중 재조직을 위해 노력했다. 1931년부터 1932년 사이에 동광학교(東光學校)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반만항일군(反滿抗日軍) 조직에 적극 노력했다. 그러다가 1933년 1월 일본영사관원이 체포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오자 재빨리 몸을 피해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후 동생 안춘생과 함께 당숙 안경근이 있는 난징으로 찾아갔고, 그곳에서 안경근, 안정근, 안공근 등의 지시에 따라 중앙군관학교 구내에서 30여 명의 한인 학생들과 함께 합숙했으며, 이들을 지도하는 조완구, 차이석, 엄항섭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과 교류하며 보좌 임무를 수행했다.
1935년 김구와 안정근, 안공근의 특명을 받고 만주에서 반만항일전선에 참가해 활동하다가 정준수(鄭駿秀)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4개월 만에 석방되었다. 이후 요시찰 인물로 낙인 찍혀 일제 형사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어렵게 지내다가 8.15 광복으로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해방 후 한국독립당 전임위원, 당무위원, 대표최고위원, 고문 등을 역임했고, 1977년 건국포장을 수여받았으며, 1980년 1월 28일 수원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안봉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으며, 2009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