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로슬라프 부르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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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그르는 7살부터 크로체흘라비(Kročehlavy) 지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20년에 지역 연고팀인 SK 크로체흘라비에 입단했다. 그리고 16살에 1군 팀 멤버가 되었다.
이 어린 수비수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많은 클럽들이 군침을 흘렸다. 부르그르가 18살 때에는 빅토리아 지슈코프(Viktoria Žižkov)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지만 부르그르가 거부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팀인 SK 슬라비아 프라하의 영입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오퍼를 넣지는 않았다. 정식 영입 제의를 한 팀은 슬라비아 프라하의 라이벌 AC 스파르타 프라하였고 스파르타 프라하는 1926년, 크로체흘라비로부터 2000 코루나의 이적료를 들여 부르그르를 영입했다.
부르그르가 입단한 후, 안토닌 호예르(Antonín Hojer)와 풀백진을 구성했고 1927년 스파르타 프라하의 초대 미트로파 컵 대회 우승을 이끌어냈다. 호예르는 얼마 안 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부르그르는 2년 후에는 팀의 주장이 되었고 1942년까지 주장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스파르타 프라하의 주장에 선임될 무렵에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부르그르는 스파르타 프라하에서의 20년간 625회의 경기를 치렀고, 7회의 1부 리그 우승과 2회의 미트로파 컵 우승을 차지하며 1930년대의 클럽 전성기를 함께했다.
1946년, 부르그르는 SK 모스트(Most)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4년을 보낸 후 44세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부르그르의 선수 은퇴 경기는 그의 전성기를 함께 한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친선 경기였다.
부르그르의 첫 A매치는 1929년 3월 3일의 이탈리아 원정 경기였다. 볼로냐의 리토리알레 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이탈리아에 2대4로 패했다.
그 이후 부르그르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했고 두 차례의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커리어 중 최고의 순간은 1934년 월드컵의 준우승이었지만 이 대회에서 그는 졔니셰크와 치티르조키에 밀려 4강 독일전에만 출전했다.
부르그르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1939년까지 10년간 총 57경기에 출전했고 그 중 주장으로 9회 출전했다.
선수 생활을 마친 부르그르는 정육점을 경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부르그르는 타협할 줄 모르고 강인한 스타일의 수비수였지만 신사적인 매너를 지닌 선수였다. 그러면서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패스 능력, 드리블, 헤딩 능력도 갖추었고 수비진의 리더로 활약할 수 있는 축구 지능도 겸비했다.
1. 생애[2]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부르그르는 7살부터 크로체흘라비(Kročehlavy) 지역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1920년에 지역 연고팀인 SK 크로체흘라비에 입단했다. 그리고 16살에 1군 팀 멤버가 되었다.
이 어린 수비수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많은 클럽들이 군침을 흘렸다. 부르그르가 18살 때에는 빅토리아 지슈코프(Viktoria Žižkov)에서 입단 제의가 들어왔지만 부르그르가 거부했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명문팀인 SK 슬라비아 프라하의 영입설이 제기되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오퍼를 넣지는 않았다. 정식 영입 제의를 한 팀은 슬라비아 프라하의 라이벌 AC 스파르타 프라하였고 스파르타 프라하는 1926년, 크로체흘라비로부터 2000 코루나의 이적료를 들여 부르그르를 영입했다.
부르그르가 입단한 후, 안토닌 호예르(Antonín Hojer)와 풀백진을 구성했고 1927년 스파르타 프라하의 초대 미트로파 컵 대회 우승을 이끌어냈다. 호예르는 얼마 안 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부르그르는 2년 후에는 팀의 주장이 되었고 1942년까지 주장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스파르타 프라하의 주장에 선임될 무렵에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도 선발되었다.
부르그르는 스파르타 프라하에서의 20년간 625회의 경기를 치렀고, 7회의 1부 리그 우승과 2회의 미트로파 컵 우승을 차지하며 1930년대의 클럽 전성기를 함께했다.
1946년, 부르그르는 SK 모스트(Most)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4년을 보낸 후 44세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부르그르의 선수 은퇴 경기는 그의 전성기를 함께 한 스파르타 프라하와의 친선 경기였다.
1.1.2. 국가대표
부르그르의 첫 A매치는 1929년 3월 3일의 이탈리아 원정 경기였다. 볼로냐의 리토리알레 구장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이탈리아에 2대4로 패했다.
그 이후 부르그르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했고 두 차례의 월드컵에 모두 참가했다. 그의 국가대표팀 커리어 중 최고의 순간은 1934년 월드컵의 준우승이었지만 이 대회에서 그는 졔니셰크와 치티르조키에 밀려 4강 독일전에만 출전했다.
부르그르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표팀에서 1939년까지 10년간 총 57경기에 출전했고 그 중 주장으로 9회 출전했다.
1.2. 은퇴 후
선수 생활을 마친 부르그르는 정육점을 경영하며 여생을 보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부르그르는 타협할 줄 모르고 강인한 스타일의 수비수였지만 신사적인 매너를 지닌 선수였다. 그러면서 공격의 시발점이 되는 패스 능력, 드리블, 헤딩 능력도 갖추었고 수비진의 리더로 활약할 수 있는 축구 지능도 겸비했다.
3. 수상
3.1. 클럽
-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 우승 4회: 1926–27, 1931–32, 1935–36, 1937–38(AC 스파르타 프라하)
- 보헤미아-모라비아 리그 우승 3회: 1938–39, 1943–44, 1945–46(AC 스파르타 프라하)
- 미트로파 컵 우승 2회: 1927, 1935(AC 스파르타 프라하)
- 체코슬로바키아 1부리그 준우승 6회: 1929-30, 1930-31, 1932-33, 1933-34, 1934-35, 1936-37(AC 스파르타 프라하)
- 보헤미아-모라비아 리그 준우승 2회: 1939-40, 1942-43(AC 스파르타 프라하)
- 미트로파 컵 준우승 2회: 1930, 1936(AC 스파르타 프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