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슬로바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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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어: Československo
슬로바키아어: Česko-Slovensko[4]
영어: Czechoslovakia
1. 개요
1918~1992년 사이 동유럽[5] 에 존재하던 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라는 명칭이다. 1992년 이후 '벨벳 이혼'이라 불리는 투표 분리 결정으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각각 분리 독립하여 사라졌다.
재미있는 건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민족도 같고,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도 비슷한데 정작 1918년 이전까지는 대부분 다른 나라로 지내왔다는 것이다. 체코가 강성할 때 일시적으로 슬로바키아 지역을 지배한 적은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합스부르크 제국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한테 뺏겨서 제대로 지배한 적이 없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무너질 때 통합한 이후 약 70년 간 한 나라로 지냈던 게 역사상에서 사실상 유일한 케이스이다.
2. 역사
2.1.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1918~1938)
신성 로마 제국 황제에 의해 왕관이 윤허된 보헤미아 왕국 - 체코와, 천년 동안 헝가리의 일부로서 지배되었던 슬로바키아를 합쳐서 만든 나라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Československá republika)으로 독립하였다. 문제는 민족자결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가인데 민족 구성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흡사했다는 것. 수데티(Sudety) 지방, 이른바 주데텐란트에 독일인이, 남부 슬로바키아 지방에 헝가리인이, 테신[6] 지방에 폴란드인이,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에 우크라이나인과 루신인이 살고 있었다.
전후 전간기 동안 독일인 문제로 위기를 맞았으나 연정의 형식을 통해 독일인들을 권력 집단의 주요 축으로서 끌어들임으로서 민족적 불만을 누그러뜨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성립 이후 본국에서의 막대한 후원을 등에 업은 수데텐 독일당이 득세하기 시작하면서[7] 체코슬로바키아는 위기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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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전 수데텐 독일인의 분포도.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가 된 이래 독일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특히 30년 전쟁으로 이런 이주가 가속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성립 당시에는 독일인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는데, 특히 독일과 국경을 이루는 수데텐란트에는 독일인들이 있었다[8] 독일 민족의 통일을 외치던 나치 독일은 이 '동포'들을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고 수데텐 독일당을 이용해 독일인들을 자극하여 말썽을 일으키게 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독일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선전을 하며 전쟁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미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흡수당하였던 전적이 있었으므로 위협의 메시지는 분명하였고 이 일로 인해 또다시 전쟁을 발생시키고 싶지 않았던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내각은 재빠르게 움직여 아돌프 히틀러와 직접 대면하였으나 협상을 원치 않았던 히틀러는 수데텐란트를 모두 내주도록 해주겠다는 협상 조건을 묵살하고 무조건 무력을 동원해 점령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영국과 프랑스 모두를 경악에 빠뜨렸다. 결국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는 이탈리아가 제안하고 중재자를 자처한 뮌헨 회담에 참석하여 나치 독일과 '협상', 수데텐란트를 독일 국방군이 직접 점령하는 데에 동의하고 체코슬로바키아에 압력을 넣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배제되었던 이 회담의 결과에 굴복한 체코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에 수데텐란트를 할양했을 뿐만 아니라, 인종 지도에 따라 헝가리에 슬로바키아 남부 지역과 루테니아를, 폴란드에 테셴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2.2. 체코슬로바키아 제2공화국(1938~1939)
뮌헨 협정 이후 제2공화국이 선포되고, 사임한 에드바르트 베네시를 대신해 에밀 하하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수데텐란트를 빼앗긴 체코슬로바키아는 더 이상 독일에 대항할 능력이 전무했다. 수데텐란트에는 독일과의 전쟁을 대비해 국경 요새가 건설, 확장되어 소(小)마지노라고 부를 만한 수준에 이르렀었는데, 이것들을 모조리 빼앗긴 것이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이른바 통일당이라는 것을 유일 집권당으로 삼아 독재 국가화하고, 중앙은행의 준비금을 베를린으로 옮기는 등,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나치에 완전히 종속되어 사실상 나치 독일의 괴뢰국이 되었다.
이 때를 틈탄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의 압력에 의해 체코-슬로바키아로 국가가 개편되기 시작하였으나 수데텐란트를 복속한 것으로도 만족하지 않은 나치 독일은 슬로바키아 민족주의자들을 사주, 이용하고 이들이 체포되자 즉시 군대를 움직여 슬로바키아 민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남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마저 병탄했다. 이후 슬로바키아를 분할시켜 1939년 슬로바키아 제1공화국이란 괴뢰국을 성립시키는 한편 나머지 영토는 형식적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를 계승하는[9] 보헤미아-모라바 보호령을 설치했다. 후에 체코슬로바키아 망명정부가 결성되어 영국의 도움을 받아 연합국에 가담하여 추축국에 대항하였다.
2.3.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1945~1948)
1945년 5월 나치 독일이 항복함으로서 해방이 되었지만 같은 시기 소련군이 영내로 진주하였다. 그리하여 전쟁 이전 헝가리 왕국에 빼앗겼던 카르파티아-루테니아 지방은 우크라이나인이 거주하고 있던 지역을 빌미로 다시 찾지 못하고 소련(우크라이나 SSR)에게 빼앗겼다.
전쟁이 끝난 직후, 망명 정부 인사들이 주측이 된 신 정부가 수립되었다. 제2공화국과 망명 정부에서 대통령을 했던 베네시가 다시 대통령으로 재추대되었고, 4개의 자유주의 정당과 4개의 사회주의 정당이 좌우합작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공산당은 원내 1당을 차지하며 연립정부의 추축을 맡았다.
베네시 정부는 제5열 노릇을 한 독일계 국민과 헝가리계 국민 1,000만명을 로잔 조약에 의거하여 시민권 박탈→부동산 및 예금을 비롯한 재산 몰수→강제퇴거로 이어지는 강력한 대통령령을 포고했다. 그 다음에 자연인 1명당 500코루나 이하까지 화폐와 수표와 어음 및 예금과 주식과 국채를 등가교환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했는데, 덕택에 외국인들이 큰 손해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상업과 공업과 광업의 국유화를 실행했는데, 1945년에 10,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주식회사를 국유화하고, 1946년에 1,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대기업을 국유화하고, 1947년에 1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유한회사를 국유화하고, 1948년에 10명 이상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을 국유화했다.
그러나 1947년 체코가 마셀플랜을 거절하면서 공산당의 지지율이 추락하였고, 이대로라면 공산당이 정권을 빼았기거나 아니면 정권에서 차지하는 몫이 축소될것이 뻔했다. 결국 초조해진 소련은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에 쿠데타를 지시했다. 2월 21일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행동을 개시했고, 소련 대사 발레리안 조린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그 결과 2월 25일 에드바르트 베네시 대통령이 공산당이 장악한 정부를 인정함으로서 제3공화국은 붕괴되어 버린다.
2.4. 체코슬로바키아 제4공화국(1948~1960)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참조.
2.5.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1960~1990)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참조.
2.6. 체코슬로바키아 제5공화국/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공화국(1990~1992)
냉전이 종결되고 1989년 11월 동유럽 혁명의 결과 1989년 12월 바츨라프 하벨이 새 대통령에 선출되어 자유주의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1990년 3월 정식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은 해체되고 정식국명을 "체코 및 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Česká a Slovenská Federatívna Republika)"으로 바꾸었으며 1991년 6월에는 체코 주둔 소련군도 철수를 완료했다.
하지만 곧 체코 정치세력과 슬로바키아 정치세력 간의 일련의 알력을 빚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국명 분쟁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었던 점은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소속국의 지위와 국체였다. 동구권 붕괴와 경제적 혼란 속에서 급속한 개혁이 필요했던 시점이었는데, 체코와 슬로바키아 양자의 인정을 모두 받아야 했던 당시 연방제 내에서는 수틀리면 어떤 개혁 시도든 쉽게 봉쇄될 수 있었다. 최대한 빨리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하여 EU 가입을 이룩하려고 했던 체코와, 상대적으로 EU나 나토 가입에 별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시장 개혁과 정부 역할 축소에 반발했던 슬로바키아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된 슬로바키아 입장에서 체코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별 다른 민족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나라가 무너질 정도로 큰 충돌도 아니었으며, 슬로바키아의 독자적인 외교권을 인정하되 통화 정책 등을 계속 연방 정부에서 수행하는 등의 합의안도 더러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정치인들은 평화적으로 연방을 해체하기로 합의를 보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은 1992년 12월 31일 해체되었으며 1993년 1월 1일부로 체코와 슬로바키아는 완전히 별개의 국가로 분리되었다. 양국은 협정에 따라 당시 인구 비율이었던 2:1로 모든 걸 나눠 가졌다. 심지어 국채까지... 기존의 UN 회원국 지위도 어느 한쪽이 물려받은 게 아니라 아예 말소 처리를 해 버리고 새로 가입할 정도로 철저하게 청산 절차를 밟았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북한의 요청과 유엔사의 동의에 따라 한국전쟁 정전 협정에 따른 중립국감독위원회 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이것은 체코가 물려받았다.[10] 해외 주재 대사관도 대체로 체코가 물려받았는데, 아마도 다른 나라의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대사관이 거진 체코의 프라하에 모여 있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분리되었을 적에도 벨벳 혁명처럼 아무런 군사적 마찰없이 해체됐기 때문에 이를 '''벨벳 이혼(...)'''이라고도 부른다. 다만 체코가 보복을 안 하진 않았는데, 처음 약속을 깨고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를 그대로 사용한 것. 이는 정통성 논쟁에서 승리하기 위함이다.[11]
3. 국가
전반부는 체코의 국가 1절, 후반부는 슬로바키아의 국가 1절을 이어서 연주하였다.
4. 여담
- NASA의 아폴로 계획 마지막 미션이었던 아폴로 17호의 사령관 유진 서넌(Eugene Čerňan)은 미국으로 이민한 슬로바키아인 아버지와 체코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던 인물로, 달에 가서 성조기와 별도로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기를 놓고 왔다. 이에 훗날 슬로바키아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했다.
- 대한민국 외교부가 2018년 11월 27일 공식 영문 트위터 계정에 문재인 대통령의 체코 등 순방 소식을 알리며 '체코(Czech Republic)'를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로 잘못 표기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다.
- 계획 경제 게임인 Workers & Resources: Soviet Republic에선 초반에 성능 좋은 차량을 판매하는 국가로 나온다.
5. 관련 문서
[1] 위의 사진과 아래의 사진에서 영토의 차이가 나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직전 독일의 압력에 의해 헝가리에 빼앗기고 전쟁 후에는 소련에 할양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지방은 루테니아라고 불리는데, 폴란드 동부의 갈리치아 일대와 더불어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에 할양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루테니아와 갈리치아는 2020년 현재 우크라이나에 들어갔다.[2] 사회주의공화국 수립 이후[3] 이중에서 독일인은 30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 인구의 '''22%'''을 차지해 16%을 차지하고 있는 슬로바키아인보다 수가 더 많았다. 헝가리인들도 슬로바키아 일대에 수십만명이 거주했다, 독일인들과 헝가리인들은 1945년 종전 이후 베네시 선언에 의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헝가리로 추방당했다. 다만 독일인들과는 달리 헝가리인들은 완전히 추방되지 않아 지금도 슬로바키아에 소수가 잔존해 있다.[4] 체코인들이 하이픈 없는 형태를 선호하고 슬로바키아인들이 하이픈 있는 형태를 선호하는 차이가 있다.[5] 현재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모두 중앙유럽으로 분류되지만 냉전 당시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동유럽으로 분류되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동유럽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다. UN도 동유럽으로 분류한다.[6] 독일어로는 테셴, 폴란드어로 치에쉰,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토였던 것이 제1차세계대전 후 영토 분할 과정에서 도시가 둘로 분단되었고, 때문에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되었다. 분할 과정에서 도시의 사회 인프라가 폴란드령 치에신과 체코령 체스키테신 간에 편중되어서 이에 따른 불편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솅겐조약으로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7] 1935년 총선에서는 독일인들의 몰표에 힘입어 수데텐 독일당이 '''득표율 제1당'''이 되었을 정도였다.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내 독일인들의 68%가 수데텐 독일당에 투표했다고 한다.[8] 만약 히틀러가 집권하지 않고 2차 세계 대전이 없어서 체코 거주 독일계가 추방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체코도 벨기에처럼 체코인-독일인 연방제 국가가 되었을 확률이 높다.[9] 실제로는 독일에서 파견된 총독이 통치. 2대 독일 총독이 그 유명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10] ...그러나 북한이 체코의 승계를 거부하면서 활동 개시 후 1년 남짓 지난 1994년 판문점 북측 구역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고 중감위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체코 대표단이 북한의 퇴거 통보에 항의하자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등 상당히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었다고.[11] 사실 체코슬로바키아 연방 시절의 체코의 국기는 체코의 3대 지역 가운데 가장 큰 보헤미아의 깃발이 바탕이 된 깃발이나, 하필 이 깃발이 폴란드 국기와 유사한 도안이기 때문에 구별을 위해 슬로바키아의 상징이기도 한 파란색 삼각형을 넣은 것이다. 어차피 슬로바키아와는 원래 인연이 없는 기이기 때문에 그대로 물려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사실 체코 국기 도안은 보헤미아 이외의 나머지 두 지방(모라비아, 슬레스코)도 배려하고 있으나 체코 국민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참고로 연방 시절 때 슬로바키아의 국기도 러시아의 국기와 흡사하여 독립 직전에 문장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