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1. 개요
2. 역사
3. 인구
4. 경제
5. 문화
6. 스포츠
8. 관광
9.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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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로냐'''(이탈리아어: Bologna)는 이탈리아 북중부에 위치한 도시며 에밀리아로마냐의 중심 도시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도시로 유명하다. 인구는 380,000명 정도, 면적은 140.86km²다.

2. 역사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시 펠시나에서 유래하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4세기경 갈리아족에 정복당했고, 기원전 190년에는 고대 로마가 이 지방을 차지한 이후 보노니아라는 새 도시를 세웠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서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6세기에 교황령에 속하였다. 하지만 오토 1세는 이 지역을 신성 로마 제국의 직접적인 권한 하에 두게 되었다. 12세기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며, 구엘프(교황파)들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이 때문에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를 격파하고 황제의 아들을 포로로 잡는 데까지 성공했다.(...)[1] 중세 말기에는 페폴리, 벤티볼리오 가문이 도시의 권력을 장악했다. 1509년 율리오 2세는 이곳을 다시 교황령의 직할 구역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전쟁 이후 시 의회와 교황 특사가 결합한 2두정치체제에 의해 통치되었다. 1860년 사르데냐 왕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1943년~1945년 동안 나치 독일이 도시를 점령했으며, 연합군의 폭격에 시달렸다.
공화국 설립 이후에는 공산당의 표밭이 되었다. 1946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볼로냐 시장들은 단 1명만 빼고 모두가 이탈리아 공산당과 그 후신인 좌파민주당, 민주당 출신이다. 이 때문에 '''붉은 볼로냐'''라는 별칭을 얻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1980년 8월에 네오파시스트들에 의한 테러 공격을 받기도 했다.

3. 인구



4. 경제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한 농업과 전자, 기계, 섬유, 식품, 의료기기, 세라믹 산업을 기반으로 한 상공업이 발달해있다. 두카티가 이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페라리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들이 같은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위치해 있다.
볼로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경제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들이다. 실제로 볼로냐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 평균보다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2] 볼로냐의 시민들은 대부분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의 종류도 산업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들은 위기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는데 대침체2011년 그리스발 경제위기 때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다수 협동조합들이 ‘조합기금’을 투자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등의 조치로 실업자들을 구제하기도 했다.[3]

5. 문화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볼로냐는 기름진 음식 때문에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트소스'로 알려진 라구소스가 볼로냐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스파게티가 아닌 탈리아텔레나 라자냐 등 넓적한 파스타에 곁들인다.
보통 '볼로냐 소시지'라 불리는 모르타델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근교 도시인 파르마의 치즈프로슈토가 유명하다. 잠포네라고 하는 에밀리아로마냐식 돼지족 훈제요리는 한국의 족발과 흡사하다. 와인으로는 람부르스코, 알바나 디 로마냐 등의 와인이 유명하지만, 토스카나와 피에몬테의 와인들에 묻혀 안습한 감이 있다.
이외 시네마테크계에서 유명한 시네마테크 볼로냐도 여기 있다.

6. 스포츠


볼로냐 FC 1909가 이 도시에 연고를 두고 있다. 하지만 볼로냐에서는 농구가 축구보다 인기가 있는 편이며, 포르티투도 볼로냐와 비르투스 볼로냐의 더비 경기가 유명하다. 야구팀으로는 포르티투도 베이스볼 볼로냐가 있다.

7. 볼로냐 대학


1088년[4]에 설립된 현대적 개념으로 따져봤을 때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고 여겨지는 대학이 이 도시에 있다.

8.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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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보이는 탑은 실제로 약유동성 지반으로 인해 피사의 사탑처럼 조금 기울어져 있는데, 볼로냐 대학의 학생들은 졸업 전에 탑을 오르면 졸업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어, 졸업식 날 탑을 오르는 관행 아닌 관행이 있다.
원래 볼로냐에는 중세에서 근세 시대까지 저런 탑들이 도시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거짓말같지만 남아있는 중세 그림들을 보면 정말 볼로냐만 무슨 마천루가 가득 찬 현대 도시마냥 기괴한 풍경을 보여준다. 더 황당한 것은 저 탑들에 뭔가 실용적인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도시 내 가문들끼리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거의 다 헐리고 위의 사진에 나온 탑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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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피에레라는 전시장도 있다. KINTEX 규모의 2배에 가깝다. 이 전시장을 활용하여 각종 박람회를 한다.

9. 출신 인물


[1] 이때 잡혔던 엔초 왕자는 죽을 때까지 볼로냐에 갇혀 지냈고, 그가 살았던 궁전은 엔초 왕궁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2] 1인당 평균소득이 40,000$로 이탈리아 평균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실업률도 3%로 이탈리아 최저치이다.[3] 덕분에 볼로냐는 유럽에서 잘사는 상위 도시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4] 당시 한국은 고려 시대였다. 정확히는 고려 선종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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