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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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로냐'''(이탈리아어: Bologna)는 이탈리아 북중부에 위치한 도시며 에밀리아로마냐의 중심 도시다. 세계 최초의 대학이 설립된 도시로 유명하다. 인구는 380,000명 정도, 면적은 140.86km²다.
2. 역사
에트루리아인들의 도시 펠시나에서 유래하였다. 이 도시는 기원전 4세기경 갈리아족에 정복당했고, 기원전 190년에는 고대 로마가 이 지방을 차지한 이후 보노니아라는 새 도시를 세웠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동고트 왕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서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가 6세기에 교황령에 속하였다. 하지만 오토 1세는 이 지역을 신성 로마 제국의 직접적인 권한 하에 두게 되었다. 12세기 이후 자치권을 인정받았으며, 구엘프(교황파)들의 거점도시가 되었다. 이 때문에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공격을 받았으나, 이를 격파하고 황제의 아들을 포로로 잡는 데까지 성공했다.(...)[1] 중세 말기에는 페폴리, 벤티볼리오 가문이 도시의 권력을 장악했다. 1509년 율리오 2세는 이곳을 다시 교황령의 직할 구역으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전쟁 이후 시 의회와 교황 특사가 결합한 2두정치체제에 의해 통치되었다. 1860년 사르데냐 왕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1943년~1945년 동안 나치 독일이 도시를 점령했으며, 연합군의 폭격에 시달렸다.
공화국 설립 이후에는 공산당의 표밭이 되었다. 1946년부터 '''2019년 현재까지''' 볼로냐 시장들은 단 1명만 빼고 모두가 이탈리아 공산당과 그 후신인 좌파민주당, 민주당 출신이다. 이 때문에 '''붉은 볼로냐'''라는 별칭을 얻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고, 1980년 8월에 네오파시스트들에 의한 테러 공격을 받기도 했다.
3. 인구
- 볼로냐/인구 참조.
4. 경제
넓은 평야를 바탕으로 한 농업과 전자, 기계, 섬유, 식품, 의료기기, 세라믹 산업을 기반으로 한 상공업이 발달해있다. 두카티가 이 도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페라리와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의 유명한 자동차 회사들이 같은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위치해 있다.
볼로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경제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들이다. 실제로 볼로냐는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 평균보다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2] 볼로냐의 시민들은 대부분 한 곳 이상의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있으며, 협동조합의 종류도 산업별로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들 협동조합들은 위기상황에서 서로 힘을 합치기도 하는데 대침체나 2011년 그리스발 경제위기 때는 단위 협동조합이 파산하거나 어려워질 때 다수 협동조합들이 ‘조합기금’을 투자해서 실업자를 다른 협동조합에 취직시켜주거나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등의 조치로 실업자들을 구제하기도 했다.[3]
5. 문화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볼로냐는 기름진 음식 때문에 '뚱보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미트소스'로 알려진 라구소스가 볼로냐에서 유래했다. 원래는 스파게티가 아닌 탈리아텔레나 라자냐 등 넓적한 파스타에 곁들인다.
보통 '볼로냐 소시지'라 불리는 모르타델라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근교 도시인 파르마의 치즈와 프로슈토가 유명하다. 잠포네라고 하는 에밀리아로마냐식 돼지족 훈제요리는 한국의 족발과 흡사하다. 와인으로는 람부르스코, 알바나 디 로마냐 등의 와인이 유명하지만, 토스카나와 피에몬테의 와인들에 묻혀 안습한 감이 있다.
이외 시네마테크계에서 유명한 시네마테크 볼로냐도 여기 있다.
6. 스포츠
볼로냐 FC 1909가 이 도시에 연고를 두고 있다. 하지만 볼로냐에서는 농구가 축구보다 인기가 있는 편이며, 포르티투도 볼로냐와 비르투스 볼로냐의 더비 경기가 유명하다. 야구팀으로는 포르티투도 베이스볼 볼로냐가 있다.
7. 볼로냐 대학
1088년[4] 에 설립된 현대적 개념으로 따져봤을 때 세계 최초의 대학이라고 여겨지는 대학이 이 도시에 있다.
8.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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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에 보이는 탑은 실제로 약유동성 지반으로 인해 피사의 사탑처럼 조금 기울어져 있는데, 볼로냐 대학의 학생들은 졸업 전에 탑을 오르면 졸업하지 못한다는 미신이 있어, 졸업식 날 탑을 오르는 관행 아닌 관행이 있다.
원래 볼로냐에는 중세에서 근세 시대까지 저런 탑들이 도시에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거짓말같지만 남아있는 중세 그림들을 보면 정말 볼로냐만 무슨 마천루가 가득 찬 현대 도시마냥 기괴한 풍경을 보여준다. 더 황당한 것은 저 탑들에 뭔가 실용적인 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도시 내 가문들끼리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 경쟁적으로 지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안전 문제도 있고 해서 거의 다 헐리고 위의 사진에 나온 탑들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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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피에레라는 전시장도 있다. KINTEX 규모의 2배에 가깝다. 이 전시장을 활용하여 각종 박람회를 한다.
9. 출신 인물
[1] 이때 잡혔던 엔초 왕자는 죽을 때까지 볼로냐에 갇혀 지냈고, 그가 살았던 궁전은 엔초 왕궁으로 아직까지 남아있다.[2] 1인당 평균소득이 40,000$로 이탈리아 평균의 2배에 달하는 수치이며, 실업률도 3%로 이탈리아 최저치이다.[3] 덕분에 볼로냐는 유럽에서 잘사는 상위 도시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4] 당시 한국은 고려 시대였다. 정확히는 고려 선종 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