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1. 소개
前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사이드암 투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2군 매니저.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순천효천고등학교에서 에이스 김수화의 뒤를 받치는 투수였으며, 2003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광주동성고에 9-2로 앞서다가 연장 10회에 9-10 대역전극을 허용하며 준우승을 차지한다.
한일장신대 출신의 첫 프로 선수. 2003년에 18명의 선수로 야구부를 창단한 한일장신대는 국내 대학 야구 팀 중 가장 적은 인원 수로 운영되는 팀이었다.[1] 선수가 적다 보니 팀의 에이스인 양지훈이 거의 매 경기마다 등판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야구부가 해체하기 1년 전부터 야구부에 신입생을 선발하지 못해[2] 양지훈이 졸업하면 팀에 투수가 없어서 졸업도 1년 미뤘다.
3. 프로 선수 시절
연투, 완투가 가능하고 열악한 환경의 팀에서 활약하며 정신적인 측면도 다른 선수들보다 더 낫다고 판단되어 삼성에 지명되었다. 한일장신대 시절 선발로 등판해서 2009 시즌 2군에서도 애초에는 선발로 기용되었으나, 결과는 7번 선발 등판해 5선발패에 그쳐 중간계투로 보직을 변경하게 되었고, 1군 데뷔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삼성의 전력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 그는 1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찍으며 별다른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2010년에는 2군에서만 활약했고, 시즌이 끝나고 경찰청에 입대했다. 부상이라도 있었는지 5월 18일이 2011 시즌 첫 등판이었고, 그나마 6월 17일 이후로는 2군 등판 기록이 없다.
2012년에는 주로 선발로 등판했다. 첫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지만 팀 타선 불발로 무승부로 끝났고, 2번째 경기에서는 수비 실책으로 7⅓이닝을 4실점을 기록했는데, 수비 실책 때문에 자책점은 단 2점이었다. 3번째 경기에서는 7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만 또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첫 3경기 동안 발군의 실력을 보였음에도 단 한 번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하면서, 결국 이 이후로는 무너져 18경기 중 3승 3패 1홀드에 평균자책점 5.95의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2012년 후반기에 제대한 후, 2013년 2월에 괌 스프링캠프 명단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그 해 2군에서 단 3경기에 1승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하는데 그쳤고, 결국 시즌이 끝난 11월 28일에 에스마일린 카리대·신명철과 함께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방출되었다.
방출 이후, 삼성 라이온즈 2군 매니저가 되어 프런트로서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2018년 1월 6일에 결혼했다고 한다.
4. 연도별 성적
[1] 2010년 9월 기준으로 9명. 15인승 승합차로 선수단 전원이 이동할 정도. 그래서 이 때문에 붙은 별명도 '''봉고차 야구부'''. 하지만 학교가 전라북도에 있음에도 연습 구장이 없어서 훈련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사회인 야구장에서 했다고 하며, 야구부 사정도 열악했다. 결국 선수 부족으로 2010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가, 서남대학교 야구부를 인수하여 재창단하게 되었다. 해체 후 남은 몇몇 선수들은 편입했으며, 그 중에는 동국대학교에 편입한 후 2년 늦게 졸업하고 2014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한 투수 최병욱이 있다.[2] 정확히는 2010년에 1명이 들어왔는데, 열악한 환경 때문에 탈퇴했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