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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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호'''
에드먼드 2세(Edmund II)
'''별칭'''
용맹왕 에드먼드
(Edmund Ironside)
'''생몰년도'''
990년경 ~ 1016년 11월 30일
'''재위기간'''
1016년 4월 23일 ~ 1016년 11월 30일
고대 영어: Ēadmund Isernside (용맹왕 에아드문드)
영어: Edmund Ironside (용맹왕 에드먼드)
라틴어: Edmundus II (에드문두스 2세)
에드먼드 2세는 11세기 잉글랜드 왕국의 왕이다. 에드먼드 아이언사이드(Ironside), 즉 강하고 용감한 자라는 별칭이 있다. 용맹왕, 강용왕(剛勇王) 등으로 번역된다. ironside란 별칭이 붙은 이유는 그가 크누트 대왕이 이끄는 덴마크 침략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기 때문이다.
애설레드 2세와 그의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애설레드 왕은 나중에 다른 여자와 또 결혼했는데, 이 두 번째 아내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참회왕 에드워드로서 에드먼드와 배다른 형제가 된다.
1016년 4월 23일, 애설레드 왕이 죽었고, 런던의 시민들과 귀족들은 에드먼드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는 그에게 모인 시민들과 함께 다섯 차례나 크누트 대왕의 군대와 싸웠으나, 10월 18일 벌어진 애선던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했다. 이후 에드먼드는 크누트 대왕과 평화 협약을 맺어 그는 웨식스를, 크누트는 머시아노섬브리아를 가지는 것으로 합의 보았다. 하지만 한 달 반 조금 더 지난 11월 30일에 에드먼드는 숨을 거두었고 크누트는 잉글랜드 전체를 차지하게 된다.
덴마크 인들의 침략에 맞서 용감히 싸웠기에 잉글랜드 왕 중에서는 앨프리드 대왕 다음 가는 투사로 인정받는다. 그리고 별칭이 뜻하듯이 의지가 굳고 리더십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심지어 적이었던 크누트조차 그의 무덤에 찾아와 참배하며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잉글랜드의 왕 헨리 2세가 이 사람의 6대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