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섬브리아
[clearfix]
1. 개요
고대 영국의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7왕국 중의 하나다. 국명은 고대 영어로 노르딤브레(Norþhymbre) 또는 노르단힘브레(Norþanhymbre)로 험버 강 북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되었고 독립된 두 국가인 버니시아, 데이라가 통합해 653년 건국했다.
2. 버니시아와 데이라
6~7세기 잉글랜드 북부와 스코틀랜드 남부 사이에는 버니시아(Bernicia)와 데이라(Deira)[5] 라는 두 개의 왕국이 존재했다. 버니시아는 동부 요크셔 일대를 기반으로 했고 데이라는 북부의 뱀버러, 린디스판, 컴브리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버니시아의 건국자 이다(Ida)의 손자인 애델프리드(Æthelfrith)는 593년에 즉위해 604년에는 데이라의 왕을 겸했다. 애델프리드는 정적인 처남 에아드위네(Ēadwine, 에드윈)를 제거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에아드위네는 동앵글리아로 망명했다. 이후 여러 차례 뇌물로 에아드위네의 암살을 청탁하나 616년, 되려 에아드위네가 동앵글리아의 왕 래드왈드(Rædwald)의 지원을 받아 군대를 이끌고 애델프리드를 격파했다. 그는 버니시아를 공식적으로 데이라 왕국에 합병하였다.
하지만 에아드위네는 632년 머시아의 펜다 왕과의 전투 중 전사했고, 634년에 애델프리드의 아들인 버니시아의 오수왈데(Osuualde, 오즈왈드)가 왕이 되어 버니시아와 데이라는 완전히 통합되었다. 오수왈데의 다음 왕이자 오수왈데의 동생인 오스위그(Ōswīg, 오스위우)는 에아드위네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고 653년에 노섬브리아 왕국의 건국을 선언한다. 결혼 동맹을 통해 통일 국가인 노섬브리아가 건국되면서 버니시아와 데이라의 끝없는 갈등은 막을 내렸다.
3. 확장기
노섬브리아는 에아드위네, 오수왈데, 오스위그 세 왕의 통치기에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에아드위네와 오수왈데의 통치기에는 여전히 버니시아와 데이라 두 개의 왕국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한 통일 왕국으로 볼 수는 없다.
오수왈데가 메이서필드 전투에서 머시아의 펜다 왕에게 전사하자 왕위를 계승한 동생 오스위그는 655년 펜다를 전사시켜 브리튼의 패자가 되었다. 오스위그의 시대에 노섬브리아는 스코틀랜드에서 머시아 왕국까지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그는 가톨릭과 토착화된 켈트 기독교의 종교적 차이로 발생하는 갈등을 완화시키려 했지만 결국 가톨릭을 지지했다. 하지만 그의 사후 노섬브리아는 다시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4. 번영과 몰락
7세기 후반에서 8세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종교, 예술, 학문 등의 문화적인 부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8세기 후반에 이르러 점차 동부 해안에서 바이킹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노섬브리아 영토였던 린디스판 섬의 린디스판 수도원을 약탈한 것을 시작으로 노섬브리아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이후 바이킹 쪽의 전설에 따르면[6] 제멋대로 구는 아들들의 행태에 화가 난 스웨덴과 덴마크의 전설적인 군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가 단 몇 척의 배만 가지고 노섬브리아를 정복하겠다면서[7] 9세기경 침략해왔고, 노섬브리아 왕 앨라 2세(Ælla II)[8] 는 해안가에서 대승을 거두어 그를 사로잡았다. 이후 앨라는 라그나르를 독사가 득시글거리는 뱀굴에 던져넣어 죽여버렸다.
라그나르가 죽었다는 사실에 분노한 바이킹들은 라그나르의 여섯 아들 굳센 뵤른, 뱀눈 시구르드, 약골 이바르, 흰옷 할프단, 흐비트세르크, 우바[9] 가 군대를 이끌고 대대적으로 잉글랜드를 침략하니, 이교도 대군세의 시작이었다.
866년 수도 에오포르위치(요크)가 함락당했고, 앨라는 붙잡혀 피의 독수리 형으로 처형되었다. 노섬브리아의 남부 일대가 점령당했다. 이후에는 베반부르흐(뱀버러)를 수도로 한 앵글로색슨족의 노섬브리아와 요르비크(Jórvík, 요크)를 중심으로 한 바이킹의 노섬브리아로 분열되었다.
877년 바이킹 노섬브리아의 왕 할프단 라그나르손(Hálfdan Ragnarsson)이 더블린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요구하면서 아일랜드를 침공했다가 전사했다. 그러자 북쪽의 앵글로색슨 노섬브리아의 에즈베르흐트(Ecgberht, 에그버트) 2세는 남쪽으로 진군해 버니시아 지방까지 회복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에그버트 2세 이후 앵글로색슨 노섬브리아는 내부 분열로 쇠퇴했다.
927년 잉글랜드 왕국의 건국을 선포한 웨식스의 애델스탄(애설스탠)은 노섬브리아로 진군해 요르비크의 바이킹 노섬브리아를 합병했다. 애설스탠 사후 노섬브리아는 부활했지만 954년 잉글랜드의 왕 에드레드의 공격에 완전히 병합되고 말았다.
노섬브리아를 계승한 현재의 지명으로 노섬벌랜드가 있다.
[1] Bebbanburh. 현대 지명은 뱀버러(Bamburgh).[2] Eoforwic. 현대 지명은 요크(York).[3] 노섬브리아 방언.[4] 바이킹 통치하의 요크 노섬브리아.[5] 고대 영어 발음은 각각 베오르니체(Beornice)와 데레(Dere).[6]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문서와 같이 보면 좋다.[7] 당시 라그나르가 탔던 배는 '크나르'라는 배인데, 보통 한 척에 100명, 우겨넣어서 많이 타 봐야 200명 정도인 배였다. 즉 끽해봐야 1000명도 안 되는 전사들과 함께 잘나가는 왕국 하나를 정복해보겠다고 한 것. 누가 보아도 만용이지만, 바이킹의 전성기를 이끈 자신을 도외시하고 아들들이 제멋대로 구는 통에 환멸을 느낀 것이라고도 한다.[8] 일단 노섬브리아의 왕이었던 것은 확실한데, 정확히 뭘 하던 인간인지는 불분명하다. 현재 알려진 그의 모습 대부분은 바이킹 쪽 전설에서 악역으로 등장하는 것뿐이다.[9] 이중 흐비트세르크라는 이름은 본래 '흰옷'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할프단과 동일인물로 여겨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