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네스토 마스체로니
[image]
마스체로니가 올림피아 몬테비데오에서 데뷔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스체로니는 우루과이에서는 CA 페냐롤에서 활약하였다. 22세의 어린 수비수였던 그에게 초대 월드컵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첫 경기는 베테랑 수비수 도밍고 테헤라가 주장 호세 나사치와 호흡을 맞췄지만 더 빠른 수비수였던 그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표팀을 첫 월드컵 정상에 올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성공을 거둬 1932년에 리그 첫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잠시 아르헨티나에 건너가 인데펜디엔테에서도 뛰었던 그는 인데펜디엔테의 팀 멤버들의 상당수가 팀을 떠나자 원래 혈통을 따라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세페 메아차 등의 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로서 큰 경험을 쌓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두 차례 소집되기도 하였다.
1936년에 다시 페냐롤로 돌아온 마스체로니는 1939년 코파 아메리카를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고 이듬해 선수 생활도 마무리하였다.
태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수비수로 알려져 있다.
1. 생애
1.1. 선수 생활
마스체로니가 올림피아 몬테비데오에서 데뷔한 정확한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스체로니는 우루과이에서는 CA 페냐롤에서 활약하였다. 22세의 어린 수비수였던 그에게 초대 월드컵에 출전할 기회가 주어졌다. 첫 경기는 베테랑 수비수 도밍고 테헤라가 주장 호세 나사치와 호흡을 맞췄지만 더 빠른 수비수였던 그에게 출전 기회가 주어졌고 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그는 대표팀을 첫 월드컵 정상에 올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리그에서도 성공을 거둬 1932년에 리그 첫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잠시 아르헨티나에 건너가 인데펜디엔테에서도 뛰었던 그는 인데펜디엔테의 팀 멤버들의 상당수가 팀을 떠나자 원래 혈통을 따라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주세페 메아차 등의 팀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이탈리아에서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선수로서 큰 경험을 쌓고 이탈리아 대표팀에도 두 차례 소집되기도 하였다.
1936년에 다시 페냐롤로 돌아온 마스체로니는 1939년 코파 아메리카를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고 이듬해 선수 생활도 마무리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평가
태클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수비수로 알려져 있다.
3. 뒷이야기
- 초대 월드컵 우승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이자 결승전 선발 멤버 중 마지막 생존자이다. 팀의 후보 멤버까지 포함하면 마지막 생존자는 에밀리오 레코바이다.
4. 수상
4.1. 클럽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3회: 1932, 1937, 1938(CA 페냐롤)
4.2. 국가대표
4.2.1. 우루과이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30
- 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1회: 1939(남미 축구 선수권 대회 페루)
4.2.2. 이탈리아
- 중유럽 컵 우승 1회: 1933-35